제8화
#5 암시장 (2)
내가 암시장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화폐 거래소였다.
암시장에 오면 현금을 바로 토큰으로 바꿔 두는 편이 좋았다.
여기만큼 도둑놈들이 많은 곳이 없을뿐더러 부피가 큰 현금은 가지고 다니기 불편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물론 토큰도 도둑놈들에게서 완전히 안전한 건 아니었지만, 토큰에는 자체적인 추적 장치가 장착된 데다가 식별 코드가 없으면 화폐 거래소에서 다시 돈으로 바꿀 수 없기에 현금보다는 훨씬 안전했다.
나처럼 바깥에서 들고 온 돈을 바꾸기 위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줄을 선 지 한 십 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나는 테이블 위로 돈 가방을 올려 두었다.
철창 너머 선글라스를 쓴 여자가 나에게로 시선을 올렸다.
“전부 바꿔 드리면 될까요?”
“네.”
“단위는?”
“중간 걸로 열 장. 작은 걸로 서른 장.”
나는 들고 온 돈 1억 3천을 그대로 모두 토큰으로 바꿨다.
내게서 돈을 받아 든 여자는 돈을 세는 기계에 돈을 넣었다. 중간중간 지폐를 꺼내 위조 여부를 판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괜히 저 여자가 선글라스를 쓴 게 아니다. 정신계 스킬을 막는 저 아티팩트는 보기에는 저래도 수천만 원에서 수억은 하는 귀중품이었다.
혹시 사채업자라고 위조지폐를 내게 건네준 건 아니겠지? 하는 의심이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다행히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지 여자는 내게 토큰을 건넸다.
“식별 코드는 C-198입니다.”
토큰을 챙긴 나는 화폐 거래소 바깥으로 나왔다.
돈도 바꿨겠다.
이제 본격적으로 암시장을 둘러볼 차례였다.
암시장의 입구에서 가까운 가판대에서는 바깥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헌터 관련 상품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은근히 효과가 좋은 회복제에서부터 바깥의 장비 상점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무기와 방어구들까지.
암시장이라는 이름에 맞지 않게 멀쩡해 보이는 물건들뿐이다. 그런데 왜 여기에 비싼 수수료까지 물면서 왔느냐.
그거야, 그 물건들을 입수한 경로가 영 꺼림칙하니까.
누군가의 핏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 아머를 집어 든 남자가 인상을 찌푸리는 걸 본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저런 건 백 퍼센트 장물이다. 사망자든, 부상자든. 어쨌거나 가족에게 인도되어야 할 물건을 중간에 빼돌린 거다.
게이트에 들어갈 수 있는 건 각성자뿐. 게이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게이트 안에서 묻는다는 말이 괜히 생긴 게 아니었다.
게이트 안에 들어갈 수도 없는 가족들로서는 저 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도 없었다.
그러니 저런 장물들이 생기는 거다.
유족들에게는 적당한 변명을 던져 놓고 뒤로는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거지.
나 또한 저런 장물을 몇 번이나 처리한 적이 있었다.
훅 하고 떠오르는 기억에 나는 재빨리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이 생각하는 ‘암시장’의 분위기에 어울리는 가판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단 분위기부터 달랐다.
그래도 사람 냄새가 나는 저쪽 골목과는 달리 이쪽은 숨이 막힐 듯이 조용했다.
하지만 이 분위기가 오히려 내게 더 익숙했다.
나는 야구 모자를 다시 한번 고쳐 썼다. 이 앞으로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만 한다.
나는 가판대를 둘러보았다. 제품을 모두 오픈하고 흥정까지 받아 주던 저쪽 가게들과는 달리 이쪽은 폐쇄적인 분위기였다.
높다란 벽을 쳐 놓은 가게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내가 가려는 곳은 지금 이곳에 있는 가게보다 훨씬 더 후미진 곳에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가는 길에 발을 디딘 순간 한 남자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길을 잘못 든 것 같은데.”
내 얼굴을 살핀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입꼬리를 쓱 올렸다. 나 같은 애송이는 이곳에 들어갈 수 없다는 듯이. 남자의 말에 나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오, 그래요? 소개받고 온 사람도 그래요?”
“누구?”
“백 실장.”
내 말에 남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까짓 게 어떻게 그 이름을 알고 있냐는 듯한 눈빛이다.
역시, 이 이름은 이때에도 먹히는군.
“그 사람이 그러더군요. 여기에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사가 있다고.”
그렇게 말해도 남자의 눈에는 의심이 가득했지만, 나는 뻔뻔하게 고개를 들었다.
영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남자는 내게 순순히 길을 열었다.
백도산. 내가 양지에서 설록진에게 벌벌 기는 애완견이었다면 그 남자는 음지에서 설록진의 말을 따르는 사냥개였다.
아직까지는 설록진의 밑에 들어가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겠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설록진의 둘도 없는 개가 될 테지.
어쨌거나 이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내가 뱉은 이름에 남자는 순순히 길을 열었다. 암시장 안에서는 전파 재밍 때문에 휴대폰이 터지지 않으니 남자가 내 정체를 다른 사람들에게 캐물을 걱정도 없다.
몇 시간 안에 들통날 거짓말이지만, 몇 시간 동안은 진실이라는 게 중요하다.
가판대 형식으로 다닥다닥 붙어 있는 다른 가게와는 달리 이곳은 가벽으로 완전히 막아 둔 복도를 쭉 따라가야만 닿을 수 있었다.
그만큼 이 암시장에서도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있다는 뜻이다.
그렇게 어렵게 도착한 이곳. 나를 반긴 것은 곱슬머리에 뺑뺑이 안경을 쓴, 누가 봐도 만화 캐릭터 같은 모양새를 한 남자였다.
“오, 손님이군.”
기술을 연구하는 ‘박사’라면 으레 이래야 한다는 듯 자신을 스타일링한 남자는 퍽 괴상망측한 취향을 지니고 있었다.
내 오래된 기억 속에 있던 그 금 박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본인을 박사라고 불러 달라고 했던 이 미치광이 기계광. 박사 학위는커녕 제대로 학교에 다닌 적은 있을까 싶게 무식한 면이 있지만, 이런 일에 있어서는 확실히 박사가 맞았다.
“무슨 일로 날 찾으셨을까?”
“이걸 좀 떼려고요.”
나는 박사를 보며 툭툭 내 인식표를 건드렸다. 그 말에 금 박사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오오, 재밌는 일이 들어왔군. 그거 이번에 나온 3세대 목줄이야?”
“목줄이 아니고 인식표인데요.”
“그걸 인식표라고 부르는 건 비각성자들의 시선이지. 정부는 너희한테 함부로 날뛰지 말라는 목줄을 걸어 놓은 거야. 너희가 날뛰면 콱 잡아채려고.”
금 박사의 말이 정확하다. 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걸 달고 살려니 영 뭣 같겠지만, 어쨌거나 그걸 달아 놓은 건 정부라고. 꼬맹아, 그걸 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알아?”
“뭐, 적어도 제 본래 이름으로는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겠죠.”
금 박사는 내 말에 히죽 웃었다. 여전히 나를 애송이로 보는 눈이지만 어쩔 수 없다. 현재의 나는 실제로 애송이가 맞으니까, 뭐.
“여기서 뒤처리까지 해 주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 서비스는 비싸.”
“범죄자까지는 각오했어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것까지 생각한 건 아니라서요.”
내 말에 금 박사는 낄낄거리며 웃었다.
“뭐, 그야 그렇지만 이거 귀찮게 됐군. 마침 그 일을 하는 놈이 자리를 비워서 말이야.”
“미리 만들어 둔 거라도 좋아요.”
어차피 신분은 계속해서 바꿀 생각이었다. 내가 계획하는 일을 하려면 하나의 신분으로는 부족할 테니까.
“인종이 다른데도?”
“음, 그건 좀.”
이건 안 되겠다.
“임시로 쓸 만한 걸 넘겨주지, 대신 일주일 뒤에는 여기 다시 와야 해.”
일주일 뒤라. 이쪽에 있는 사람들이 내 거짓말을 눈치채고도 남을 시간이다. 백 실장을 안다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게 나았을까?
하지만 그 거짓말이 아니었더라면 난 이곳에 들어오지도 못했을 터.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이 인식표, 금 박사의 표현을 따르자면 목줄을 제거하는 일이다.
“날 따라오라고.”
금 박사는 나를 안쪽에 있는 방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고문 기계 같은 것들이 수십 개나 늘어서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죽어도 앉기 싫은 끔찍한 디자인의 쇠로 된 의자가 놓여 있었다.
수많은 뱀을 뭉쳐 만든 것 같은 디자인의 의자에는 손과 다리를 결박할 수 있는 쇠사슬도 달려 있었다.
‘다시 봐도 악취미라니까.’
의자가 저 꼴인 건 어디까지나 저 괴짜 박사의 취향이다.
처음에 여기에 왔을 때는 설록진이 나를 고문하다가 죽일 거라는 두려움에 덜덜 떨었는데 말이다.
“저기 앉아.”
금 박사의 말에 나는 재빨리 의자에 가서 앉았다.
“의외로 겁이 없네. 다들 여기를 처음 볼 때는 덜덜 떨더라고.”
“그 사람들이 담이 작은 거겠죠.”
“하하, 마음에 드는 말이야.”
그렇게 말한 금 박사는 구석에 있는 기계를 끌고 왔다.
여기저기 녹이 슨 데다가 전선 피복이 벗겨져 있는 기계는 족히 수십 년은 된 것처럼 낡아 보였다.
특히 기계 끝에 달린 칼끝에는 피인지 녹인지 모를 무언가가 달라붙어 칼날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전에는 설록진의 명령으로 와서 그런가 기계 상태가 저것보다는 훨씬 괜찮았던 거 같은데.
그걸 본 내가 눈썹을 찌푸리자 헛기침을 내뱉은 금 박사가 재빨리 허리춤에 수건을 꺼내 그 칼날을 닦았다.
“소독도 안 해요?”
“칼날이 피부에 닿을 일은 없을 거야.”
“닿으면요?”
“파상풍 주사는 맞고 왔지?”
질렸다는 표정을 지은 나에게 금 박사가 멋쩍은 얼굴로 말했다.
“보기에는 이래도 최첨단 기계라고.”
퍽이나. 당장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금 박사의 말대로 꽤나 정교한 기계였다, 저건.
목에 걸고 있던 고글을 올려 쓴 금 박사가 기계 뒤에 섰다. 박사가 복잡하게 달린 버튼을 눌러 대니 기계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기계에 달린 칼날이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친.”
욕이 절로 나올 정도로 황홀한 풍경이었다.
“눈 돌리고 있어.”
금 박사는 그렇게 말했지만, 눈을 돌리는 게 더 어려웠다. 날카로운 기계가 내 목에 다가오는 건 닿는 건 아무리 각오했다고 해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여기에서 조금만 저 기계가 어긋나면 난 그대로 세상 하직이니까.
피부를 강화하는 각성자들이야 아무렇지도 않겠지마는, 나처럼 허접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쫄 수밖에 없단 말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제발 빨리 끝나게 해 주세요.
충치 때문에 치과에 간 어린애처럼 징징거리는 소리만 나왔다. 그래, 제발 빨리 끝나라.
긴장으로 식은땀을 줄줄 흘려 대는 나와는 달리 금 박사는 심드렁한 얼굴로 살살 피복을 긁어내고 전선을 제거했다.
띡, 띡, 피복을 벗겨 내자마자 그 안에 있는 신호기에 괴상한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나자마자 금 박사는 재빨리 전선 사이로 신호 재밍기를 쑤셔 넣었다.
전선이 끊기자마자 중앙 본부로 송출되는 신호를 차단한 거다.
여기까지 왔으면 일단 반은 끝났다. 남은 건 이제 이 더럽게 단단한 목줄을 잘라 내는 거다.
“맙소사.”
나는 내게 다가오는 거대한 칼날을 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