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4 내 오지랖은 세계 제일 (2)
정호산을 만난 건 내가 일곱 살 때, 고아원에서였다.
당시 발생했던 게이트 사고로 인해 부모님을 잃은 나는 비슷한 시기 다른 이유로 그곳에 흘러들어 온 정호산을 만나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녀석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나랑 똑같은 처지에도 눈물 자국 하나 없이 방긋방긋 웃는 그 녀석이 괜히 꼴 보기 싫었다.
뭣도 없는 주제에. 부모님도 잃은 주제에. 뭐가 저렇게 신이 나서 매일 웃고 있는 거지?
하루아침에 모든 걸 잃고 이 무너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나와 달리 정호산 그 녀석은 꽤나 멀쩡해 보였다. 그게 얄미웠다.
하지만 새벽녘 숨죽이고 우는 그 녀석을 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정호산도 나와 똑같다는 것을. 그저 약해 보이기 싫어 강한 척해 왔던 것임을.
나는 그날 본 것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다. 정호산 본인에게도 비밀로 했다. 쪽팔려 할 것도 같았고, 그냥,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정호산에게 가시를 세우는 일을 멈췄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친해질 생각은 아니었는데…….
그 녀석과의 인연은 길게 이어졌다. 비슷한 시기에 부모님을 잃었던 것처럼 그 녀석과 나는 비슷한 시기에 재능을 얻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내가 생각하는 미래에는 늘 그 녀석이 있었다. 하지만 아카데미를 다니며, 그리고 졸업하며 내 생각은 바뀌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헌터가 되지 못하고 빌빌거리는 나와 달리 A급의 육체 강화계 재능을 가진 정호산은 아카데미를 졸업하자마자 대한민국의 길드 랭킹 5위인 <붉은개> 길드에 스카우트되었다.
내 미래에 정호산은 당연하지만, 정호산의 미래에 나라는 사람은 당연하지 않았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나는 현실을 알게 되었다. 녀석에게는 내가 어울리지 않았다. 나같이 헌터도 되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재능을 가진 놈은, 그 녀석과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지독하게 착한 정호산은 나 같은 놈도 친구랍시고 챙겨 줬지만, 결국 내 예상대로 나와의 우정은 그 녀석을 죽음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니까 이젠 안 돼.
이 두 번째 삶에서 나는 녀석과의 관계를 모두 끊어 낼 생각이었다.
어차피 악당이 되기로 한 내가 아닌가. 나라는 존재를 아예 모르고 사는 게 나을 거다.
나는 휴대폰에 뜬 문자를 삭제한 뒤 정호산의 연락처를 차단했다.
침대 위로 휴대폰을 던져 놓은 나는 샤워부터 했다. 아무리 다른 이들보다 수월하게 채굴했다고 해도 정글 타입의 게이트였던지라 온몸에서 땀 냄새가 진동했다.
꿉꿉한 냄새가 나는 옷은 세탁기에 돌린 다음 옥상에 널어놨다. 다 낡아 빠진 이런 트레이닝복을 훔쳐 갈 인간은 없겠지.
빨래가 끝난 다음에는 엉망진창인 방 안을 치웠다.
막 되살아났다는 것을 깨달은 직후 정신이 없어 집 안을 살피지 못했는데, 조금 더 여기에 있다가는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었다.
몇 년 동안 상류층의 삶을 누렸던 내 정신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노동에 지친 몸은 휴식을 요구했지만, 이런 곳에서 잠을 잘 순 없었다.
일단 집 안에서 퀴퀴한 냄새를 나는 물건들을 죄다 걷어 내고 나니 좁아터진 고시원이나마 숨통이 트였다.
“이제야 살 것 같네.”
이제 미래를 고민할 때다.
내가 하려는 일에는 돈이 필요했다. 그것도 아주 많은 돈이. 설록진이나 부패한 대한민국의 윗사람을 걷어 내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했다.
오늘 내가 번 돈은 130만 원.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내가 목표하고 있는 금액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생활비를 빼고 나면 정말로 남는 것도 없는데.”
이렇게 조금씩 모아서 내가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순 없다.
“웬만하면 이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는데.”
답은 간단했다.
벌 수 없으면 빌리면 된다.
* * *
내 얼굴을 살핀 은행원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고객님. 열심히 알아보기는 했는데 고객님의 조건으로는…….”
“받을 수 있는 대출이 없다고요?”
“네.”
은행원은 내 시선에 침을 꿀꺽 삼켰다. 잔뜩 겁을 집어먹은 얼굴이 불쌍할 정도였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인상이 꽤나 험악해졌던 모양이다. 시선이 닿자 은행원은 재빨리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각성자이시기는 해도, 이게, 어, 지금 길드 소속도 아니시고 해서…….”
이래저래 말이 길어지긴 했는데, 결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신은 돈이 될 만한 각성자가 아니다’ 이거다.
역시 제1금융권은 가차 없군.
각성자라고 해도 헌터가 되지 못한 각성자의 취급은 좋지 않았다. 특히 나처럼 목에 인식표를 달고 있는 사람은 더더욱.
내 목에 있는 인식표를 힐끔거리는 은행원의 손은 언제든 경비원을 부를 수 있도록 책상 아래에 박혀 있었다.
누굴 예비 범죄자로 보나. 물론, 난 예비 범죄자가 맞지만.
나는 결국 빈손으로 은행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아직 돈을 빌릴 곳이 한 군데 더 남아 있었다.
「푸쉬 앤 캐시」
돈을 안 갚았다간 내 내장을 전부 쥐어짜서라도 돈을 만들어 낼 것 같은 이름이지만, 당장은 선택지가 이곳뿐이다.
그래도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했던 은행과는 달리 이곳의 입구는 마치 출구가 없는 지하 게이트를 생각나게 할 정도로 우중충했다.
입구에서 날 맞은 건 불독을 닮은 얼굴을 한 남자였다. 나를 보자마자 얼굴과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서 오세요, 고객님. 대출 때문에 오셨나요?”
얼굴과는 대비되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등 뒤로 소름이 쫙 돋았다.
“예, 예.”
남자는 말을 더듬거리는 나를 보며 진한 미소를 지었다.
누가 봐도 호구 물었다는 얼굴이다.
“그래요. 딱 보니 우리 손님 각성자시네?”
내 목에 달린 인식표를 본 남자가 자신의 목덜미를 두들기며 슬쩍 웃었다.
내가 정신계 각성자라는 걸 알고 눈에 띄게 날 꺼렸던 1금융권과는 달리 남자는 내가 각성자인 걸 반기는 눈치였다. 하긴 이런 곳에서는 나를 데려다가 아주 여기저기에 써먹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남자는 꺼림칙한 미소와 함께 나를 복도 끝으로 이끌었다.
“자, 우리 담당 팀장님이 사정이 어떻든 최대한 맞춰 줄 테니까 너무 긴장하지는 말고요.”
사채업자가 내 사정을 봐준다니, 그것참 안심이 되는 말인걸.
남자는 나를 검은색 문짝 앞에 두고 사라졌다.
이 검은색 문짝 안에는 남자가 말한 팀장이라는 사람이 있겠지.
후, 짧은 숨을 내쉰 나는 그대로 문을 열었다.
“실례합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어두운 톤으로 맞춰진 깔끔한 사무실이 나왔다. 그 안에는 쓰리피스를 단정하게 갖춰 입은 30대 초반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팀장이라는 직책에 맞지 않게 그는 젊어 보였다. 20대 후반에서 많게 봐야 30대 초반. 그것도 겉늙어 보이는 이 대 팔 가르마에 딱 붙는 슈트 덕분에 30대 초반까지 쳐주는 거지, 얼굴만 봐서는 완전히 애송이였다.
저런 애송이가 이런 곳의 실장이라고.
“대출 때문에 오셨나요?”
“예, 예.”
내 대답에 남자는 손으로 소파를 가리켰다. 그곳에 머쓱하게 궁둥이를 붙이고 앉으니 남자가 친절하게 말을 건넸다.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아, 아뇨. 됐습니다.”
최인혁 팀장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남자는 날 안내한 남자보다 훨씬 인상이 좋았다.
누가 봐도 ‘그쪽’이라고 생각이 들 만큼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던 남자와 달리 최인혁은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회사원 같았다. 하지만 저 젊은 나이에 팀장이라는 직책에 올라 있는 만큼 저 남자에게도 숨기는 면이 있겠지.
남자는 나에게 빈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일단 그것부터 작성해 주시죠.”
내 이름, 생년월일부터 내가 졸업한 학교에 가족 관계까지. 모든 정보를 적어 내야만 했다.
어차피 친인척 하나 없는 상황이라 거리낄 것이 없다지만, 확실히 가벼운 마음으로 올 곳은 아니었다.
마치 뱀처럼 날카로워 보이는 눈동자가 내 몸을 훑었다. 역시 좋은 낯은 모두 위장이라니까. 나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척 차분한 얼굴로 서류를 채워 나갔다.
작성이 끝난 서류를 살펴보며 남자는 눈을 빛냈다.
“바벨 출신 각성자시라고요.”
내 몸을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아주 꺼림칙했다.
“헌터가 되었다면 여기까지 왔을 리는 없고.”
툭툭 자신의 목을 두드린 남자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재능이 뭐길래 그걸 차고 있을까나.”
혼잣말처럼 들리지만 명백한 질문이다. 서류에는 내 재능에 대해 적는 칸이 없었지만, 목에 이 지긋지긋한 인식표를 달고 있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저주파 발사요. 모기 쫓는 데 그만이에요. 사람한테는 거의 소용이 없지만.”
하지만 여기서 내 재능을 곧이곧대로 말해 줄 필요도 없었다. 정부 기관이 아니고서야 내 재능을 제대로 조회할 수 없을 테니, 대충 거짓말을 해 둬도 되겠지.
헌터가 됐다면 불가능한 일이지만, 헌터가 되지 못한 나는 얼마든지 거짓말로 내 재능을 둘러댈 수 있었다.
남자는 내 말에 눈을 찌푸렸다.
“그 정도로도 인식표를 다나?”
“아주 미미하지만, 인간의 뇌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던데요.”
내 말에 최인혁은 턱을 훑었다. 내 말이 의심스럽다는 얼굴이었지만, 내 거짓말을 당장 알아낼 방법은 없겠지.
재능을 알아내기 위해서는 각성자 협회를 거쳐야 하니까. 1금융권이라면 몰라도 이곳에서는 정보를 바로 관람할 수 없을 거다. 불법으로 알아내더라도 시간이 꽤 걸릴 거고.
나는 속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쪽을 담보로 최대 1억 3천. 대신 이렇게 갖고 가시면 연 이자 40퍼까지는 해야 하고, 일반적인 이자로는 5천까지.”
언젠가부터 존댓말을 때려치운 최인혁의 말투는 참 거슬렸지만, 생각보다 금액이 컸다.
“추천드리는 금액은 5천까진데 어떤 걸로 해 드릴까?”
최인혁의 질문이 끝나자마자 나는 재빨리 외쳤다.
“1억 3천이요.”
내 말에 최인혁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이자가 벅찰 텐데.”
그렇게 말한 최인혁이 재빨리 덧붙였다.
“삼 개월 동안은 상환 안 되는 거 아시지?”
역시 망할 고리대. 무조건 삼 개월 치 이자는 내게 만들겠다는 뜻이지. 역시 서민들의 등골을 빼먹는 바퀴벌레 같은 놈들.
“매달 이자만 4,333,333원씩. 다음 달 15일이 첫 상환일이야. 자신 있겠어?”
금액을 읊은 최인혁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평범한 소시민이라면 숨이 턱 하고 막힐 금액이었지만, 설록진의 밑에서 일하며 간덩이가 퉁퉁 부은 나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금액이었다.
설록진의 돈지랄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몇억, 몇십억을 수 분 만에 써 버렸던 때도 있었으니까.
내 담담한 표정에 최인혁은 조금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개뿔도 가진 게 없는 놈이 이렇게 당당하게 나오는 이유가 궁금하겠지.
뭐가 문제냐는 듯 최인혁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자 최인혁의 입꼬리가 슬금슬금 올라갔다.
“흐음, 뭐가 됐든 우리 돈을 제때 갚기만 하면 문제는 없지. 하지만 말입니다, 고객님. 한 푼이라도 모자란다면, 하루라도 늦는다면. 그때에는 고객님 내장을 다 긁어내는 한이 있더라도 내 돈을 받으러 갈 겁니다.”
그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최인혁은 꽤나 순순히 나에게 돈을 내줬다.
인식표의 시리얼 넘버를 보증으로 넘기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순순히 돈을 내주는 최인혁에 솔직히 나는 조금 놀랐다.
이 사람 알고 보니 호구인 거 아니야?
묵직한 내 가방을 확인한 나는 미소를 지었다.
1억 3천. 연이자 40%?
응, 안 갚으면 그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