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4 내 오지랖은 세계 제일 (1)
인력 사무소에 있는 국밥집은 이미 수많은 사람으로 만석이었다.
하루를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들. 얼굴에 덕지덕지 붙은 피곤을 참아 내며 사람들은 묵묵히 수저를 움직였다.
나와 한조희는 그 틈을 비집고 앉았다. 왁자지껄한 다른 테이블과 달리 한조희와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숨이 막히는 침묵만이 감돌고 있었다.
이 침묵을 견디다 못한 한조희가 슬쩍 말을 건넸다.
“뭐 먹을래?”
“소고기국밥이요.”
“기껏 밥 사 준다고 그랬는데, 이런 데 데리고 오다니 미안하네.”
한조희는 그렇게 말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고시원에서 라면이나 먹을 생각이었던 나에게는 진수성찬이나 다름없는데 말이다.
음식을 시킨 뒤에도 우리 사이에는 여전히 침묵이 맴돌았다.
하긴, 새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사이가 되던가, 우리가.
벌써 몇 달째 같이 일하는 사이였지만 오늘이 오기 전까지 한조희하고는 제대로 말을 섞어 본 적조차 없었다.
딱히 한조희만의 잘못은 아니다. 과거의 나는 아카데미를 졸업한 뒤에 채굴꾼이나 하는 이 상황을 무척이나 부끄러워하고 있었고 여기 사람들과도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벽을 세우고 낯을 가리는 나에게 다가온 건 임현수, 그 개자식뿐이었다. 그도 나를 팔아넘기려는 목적이 아니라면 나에게 다가오지 않았겠지.
나는 한조희의 얼굴을 쓱 훑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피곤에 전 얼굴을 하고 있긴 하지만, 한조희는 이 중에서도 유난히 상태가 좋지 않았다. 마나 중독으로 푸르게 변한 입술은 이미 여기저기 터 핏물까지 비치고 있었고 손톱 또한 쩍쩍 갈라져 있었다.
저 정도면 사실 몸을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상당할 텐데.
이런 몸을 이끌고 나올 만큼 돈이 급하다는 거겠지.
임현수가 한조희에게 침을 줄줄 흘리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숨 막히는 침묵이 견디기 어려웠는지 한조희는 리모컨으로 손을 뻗었다.
“이모, 여기 TV 좀 봐도 되죠?”
“어, 편한 대로 보세요.”
한조희가 틀어 놓은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A급 게이트 ‘화룡의 둥지’ 공략을 마친 시리우스 팀의 발표에 대해 미리내당의 설록진 대표는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조금 더 자세한 정보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기자회견에서 말했습니다.
아나운서의 말이 끝나고 화면은 설록진의 얼굴로 전환되었다. 단상에 선 설록진은 목소리를 높였다.
━시리우스 길드에서는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국민께 공략에 대한 정보를 숨기고 있습니다. 게이트는 단순히 대형 길드의 이득을 창출하기 위한 어떤 물건이 아니라, 평범한 국민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는 위험 요소임을 간과한 것입니다.
40대가 되어서도 빛나는 외모로 정치인들에게는 흔치 않던 팬덤을 소유하고 있던 설록진이었지만, 30대 초반인 지금은 얼굴에서 빛이 났다.
정치판이 아니라 연예계로 빠지지. 그랬다면 이 대한민국도 멸망의 길을 걷지는 않았을 거 아닌가.
선해 보이는 저 얼굴로 얼마나 끔찍한 일을 많이 저질렀는지.
설록진의 얼굴을 보자마자 입맛을 잃은 나와는 달리, 주변에 앉아 있던 밥집 이모들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휴, 정말 얼굴만 봐도 배가 부르다니까, 불러.”
“말하는 건 어찌나 저렇게 예쁜지. 하여간 대형 길드라는 것들은 이익에 눈이 멀어서는 다 같이 잘 먹고 잘살면 뭐가 덧난다고 저러냔 말이야.”
말 몇 마디로 목숨을 걸고 A급 게이트를 공략한 시리우스 길드를 이익에 눈이 먼 집단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게이트가 열린 이후 세상의 사람들은 각성자와 비각성자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되었다. 힘을 가진 자와 힘을 가지지 못한 자. 단순하게 그렇게 생각하기에는 비각성자의 수가 많아도 너무나도 많았다.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였고, 그 법을 만드는 것은 비각성자였다.
대한민국은 일찍이 각성자를 등록하는 등록제를 시행한 전 세계에 몇 안 되는 국가였지만, 그것만으로는 국민의 불안함을 해소할 수가 없었다.
왜냐? 각성자란 미지의 존재였으니까. 일반인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길이 없는 무시무시한 괴물들이었으니까.
그러니 각성자들이 이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고 떠들어 대도 비각성자들은 믿을 수가 없는 거다.
설록진은 바로 그 두려움을 파고들었다.
잘생긴 마스크에, 얼굴만큼이나 뛰어난 입담. 거기에 비각성자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만 해 주니 사람들이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겠지.
그래, 지금은 신나게 날뛰어라. 네 세상을 곧 망쳐 주러 갈 테니.
내 표정을 본 한조희가 물었다.
“밥이 입에 안 맞아?”
나는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그냥 TV에 입맛을 뚝 떨어지게 하는 사람이 나와서요.”
내 말에 한조희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각성자 중에서 저 인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걸.”
워낙 각성자들에게 적대적인 정책들을 펼쳐 왔던 터라 한조희의 말대로 설록진은 각성자들에게 인기가 무척이나 없었다. 단순히 인기가 없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테러를 받은 적도 몇 번이었다. 설록진은 그런 테러 시도를 자기가 좋을 대로 이용했다.
한조희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
“나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지만, 내 동생 서현이만큼은 살기 좋은 세상이 됐으면 좋겠거든.”
“서현이라면 아까 낮에 말했던 동생?”
내 말에 한조희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동생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저런 얼굴을 하다니. 어지간히 사이가 좋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밝아졌던 얼굴도 곧 다시 칙칙해졌다.
“응. 이번에 실습용 아이템이 필요하다는데, 그걸 구해 줘야 하거든. 월세가 오른 것도 크지만, 아이템이 진짜 문제야.”
비싼 등록금을 받아 가는 만큼 헌터 아카데미에서는 기본적으로 실습용 아이템을 꽤나 잘 갖춰 둔 편이었다. 당장 상처가 났을 때 사용하는 포션이라든가, 훈련할 때 사용하는 가상 게이트 시뮬레이터라든가.
하지만 아카데미가 지원해 주지 않는 물품도 있기 마련이었다. 하필이면 한조희의 동생은 그런 특수 아이템이 필요한 재능을 가진 모양이었다.
“어떻게든 해 줘야지.”
한조희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실습용 아이템이라는 게 한두 푼이 아닌 만큼 부담이 될 수밖에 없을 텐데.
어쨌거나 이건 내 일이 아니다. 오지랖을 부린 건 오늘 그를 도운 걸로도 충분하다.
“……그러고 보니 네가 바벨 아카데미를 졸업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사실이야?”
그 말에 나는 두 눈을 깜빡였다. 한조희의 입에서 들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었다.
“그 얘긴 어디에서 들은 건데요?”
“그냥, 여기저기서. 미안, 네가 직접 말한 것도 아닌데…….”
한조희는 말을 흐렸다. 하긴 내 출신에 대해 소문이 난 걸 어떻게 한조희 탓을 할 수 있을까.
한조희는 떨떠름한 내 표정을 보더니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나쁜 의도는 아니고 그냥 신기해서 물어본 거야. 솔직히 여기에서 바벨 출신을 볼 일은 흔치 않잖아.”
“바벨 출신 맞아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덧붙였다.
“뭐, 바벨 출신 낙오자를 보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바벨 아카데미는 이 서울에서는, 아니, 대한민국 최고로 꼽히는 헌터 아카데미였다.
입학 조건이 잠재력이 C급 이상인 각성자일 정도니까.
그곳을 졸업하고 겨우 마나 채굴꾼으로 일하고 있는 내가 이례적인 거지, 보통 바벨 아카데미를 졸업하고서는 다들 잘나가는 헌터가 되었다. 현장을 뛰는 헌터가 아니더라도 저마다 한자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벨 아카데미는 졸업했다는 것만으로도 찬사를 받을 만큼 굉장한 아카데미가 맞다. 다만 그 졸업생 중에도 나처럼 낙오되는 놈도 있을 뿐.
뭐, 기껏 바벨을 졸업하고 여기까지 굴러떨어진 거냐며 나를 무시하려고 물은 게 아니라면 한조희의 호기심 정도야 얼마든지 채워 줄 수 있었다.
“그런, 그런 뜻으로 물어본 거 아니야. 나는 그냥…….”
한조희는 필사적으로 이 망해 버린 분위기를 수습해 보겠다고 애썼다.
“그냥 대단하다고. 어떻게든 힘을 내고 있는 거잖아, 너도 너 나름대로. 게다가 나를 도와주기도 하고…….”
한조희가 말을 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각성자’로 태어난 걸 원망했어. 정확히 말하자면 이딴 재능으로 태어난 날 원망했지. 이왕이면 더 멋진 재능으로 태어나게 해 주지. 겨우 이딴 재능으로 뭘 하라고.”
생각보다 한조희는 무척이나 어두운 성격이었다. 나는 수저를 뜬 채로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이거 밥 먹어도 되는 거냐?
한조희의 말이 이어졌다.
“그리고 동생이 태어났을 때, 난 솔직히 내 동생을 죽도록 질투했어. 나는 평생 반푼이 각성자라는 말을 듣게 생겼는데 걔는 A급 재능을 가졌으니까.”
무려 A급 재능이라니.
한조희의 동생이 대체 누구길래?
“근데 걔가 또 엄청 착해. 진짜 엄청 착해서 이렇게 모자라고 반푼이인 나를 진심으로 따라 줘. 이딴 것도 형이라고…….”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우울한 한조희의 얼굴을 보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진짜 대단한 사람은 형이잖아요. 동생을 위해서 자기 인생을 이렇게 헌신하고 있는데. 동생을 진심으로 위하고 있는 거잖아요.”
“걔가 잘돼야 나도 잘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어디 많나요. 가족이라고 해도 내버리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잖아요. 게다가 그렇게 이용만 하려는 것도 아니구만.”
눈앞에 있는 건 인생의 무게에 신음하고 있는 20대 중반의 가장일 뿐이다. 얘가 무슨 죄가 있겠나.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한조희를 비웃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를 구원해 주지도 못하지만, 진심으로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더 잘하지 못한다고 자책하지 말아요.”
한조희의 말대로 한조희가 잘되는 것보다는 동생 쪽이 성공하는 게 빠를 테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A급 재능이면 바벨도 들어갈 수 있었을 텐데요.”
그리고 바벨은 모든 교육 비용이 무료였다. 실습용 아이템이 필요하든 뭐든, 바벨에 들어갔다면 본인이 부담하는 돈은 없었을 거다. 심지어 가족들이 생활하는 비용까지 내줄 때도 있었으니 한조희의 동생이 바벨로 갔다면 한조희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었을 거다.
“서현이는 흑마력을 타고 태어났어.”
“아.”
그 한마디로 모든 게 설명되었다.
바벨 아카데미에는 그야말로 속이 꽉 막힌 인간이 있었다. 그 답답한 여자 때문에 놓친 인재들이 몇 명인지.
본인을 천사의 대리인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그 사람은 자기가 정한 기준에서 벗어나는 재능을 가차 없이 내쳤다.
대한민국 최고의 아카데미인 바벨이 세계 무대에서 통하지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어쨌거나 바벨에서는 그 마녀의 말이 절대적이었고 그녀의 기준에 맞지 않는 아이들은 모두 바벨의 품에 들어오지 못했다.
“물론 동생에게 지원해 주겠다고 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나서 몇 년을 개같이 굴러야 한다는 조항을 빼먹지 않더라고.”
“그런 데 가는 거 아니에요. 좀 힘들어도 졸업한 다음에 정식 지명을 받는 게 낫지.”
“내 생각도 그래. 그러니까 조금만 더 고생하려고.”
마나 중독에 파랗게 질린 입술을 하고 있으면서도 한조희는 환하게 웃었다.
입이 썼다. 이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희망을 품고 내일을 살아가는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짓밟고 자신의 잇속을 챙기는 놈들도 너무나도 많았지.
“임현수, 그 사람 너무 믿지 마요.”
겨우 이게 내가 한조희에게 할 수 있는 충고의 전부였다.
* * *
한조희와의 불편한 식사가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이 울렸다.
「공략 끝났다.
언제 시간 되냐?
밥 살게. 함 보자.」
그 문자를 본 순간 나는 딱딱하게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문자를 보낸 사람은 바로 나 때문에, 아니, 내가 죽였던 내 가장 절친했던 친구.
정호산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