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3 나는 노가다가 싫다 (1)
청성 게이트 인력 사무소는 공략이 끝난 게이트의 부산물을 채취하는 일을 알선하는 업체였다.
이런 식으로 각성자에게 일거리를 주는 게이트 인력 사무소는 한둘이 아니었지만, 청성이 잘 나가고 있는 이유는 하나다.
무려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시리우스’와 계약한 사이거든.
그 덕분일까. 아침부터 청성을 찾은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그럼 이제 어쩐다?
십 년 전 기억을 더듬어 어찌어찌 출근까지는 했는데, 이다음 뭘 해야 할지가 도통 기억이 나질 않았다. 십 년 동안 워낙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어, 이신아. 이제 오냐?”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임현수.
내 인생을 망하게 한 개자식. 깜빡 잊고 있었다. 이곳에 오면 저놈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고개를 돌렸다. 임현수는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여전히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도, 친절해 보이는 눈동자도. 저 안에 어떤 쓰레기가 있는지 여기에 있는 사람들은 짐작도 못 하고 있겠지.
나는 끓어오르는 속을 겨우 진정시켰다.
여기에서 저놈의 얼굴을 쳐 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서야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을 달성할 수가 없다. 임현수를 폭로해? 어떻게? 당장 나는 아무런 힘도 없는 일용직에 불과하다. 임현수가 어떤 짓을 했는지 폭로해도 제대로 된 증거를 들고 있지도 않은 상황에선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끝나겠지.
그러니까 참자.
참아.
내 표정을 살핀 임현수가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어?”
나는 어금니를 꽉 문 채 말했다.
“아무런 일도 없어요.”
“연락도 없이 늦어서 걱정했잖아.”
임현수는 이런 간지러운 소리를 잘도 해 댔다. 어찌나 주변 사람을 살뜰하게 챙기는지, 임현수 하면 이 인력 사무소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이곳까지 흘러 들어와 겉도는 나에게도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어 준 좋은 사람.
저 녀석이 날 팔아넘기기까지 나는 저 녀석을 진심으로 믿었다. 슬며시 떠오르는 더러운 기억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오늘 조심해. 아침부터 박 반장이 아주 X랄 맞더라고. 집에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봐.”
“그래요?”
“그래, 아까 지급품 주면서도 어찌나 난리를 치던지. 너도 빨리 받으러 가. 벌써 늦었을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는 임현수의 손에는 이미 오늘 치 지급품이 들려 있었다.
아, 지급품.
깜빡 잊고 있었다.
게이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특별한 아이템들이 필요하다는 것 말이다.
어쩐지 해도 제대로 뜨지 않은 시간에 왜 이렇게 사람들이 바글거리나 했더니.
나는 혀를 차고 재빨리 지원품을 나눠 주는 곳으로 향했다.
임현수의 말대로 박 반장의 얼굴은 내가 기억하던 그것보다 훨씬 험악했다. 그는 우물쭈물 줄에 선 사람들에게 곧바로 소리부터 질러 댔다.
“빨리빨리 움직여.”
벽에 기대선 박 반장은 실내 금연이라는 표지판 아래서 뻑뻑 담배를 피워 댔다.
저렇게 성질이 더러운 남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청성에 오고 싶어 하는 건 바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게이트 지원품 때문이다.
그저 일자리만 주선하는 것에서 끝나는 다른 업체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이렇게 약식이나마 게이트 지원품을 무상으로 제공해 주었으니까.
하지만 그 지급품은 하필 내 앞에서 똑 떨어져 버렸다.
“다 떨어졌다고요?”
“예, 선착순 제공인 거 아시잖아요?”
지원품을 나눠 주던 직원은 굳어진 내 얼굴에 눈치를 봤다.
“그러게 조금 더 일찍 오지 그랬어?”
나를 본 박 반장은 귀찮다는 듯이 손짓했다.
“뭐 해, 여기 평생 있을 생각이야? 다들 일하러 가!”
박 반장의 우렁찬 고함에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고 모였던 사람들은 바퀴벌레처럼 후다닥 흩어졌다.
“하.”
나는 시리우스에서 빼돌린 지원품으로 가득 차 있을 창고를 노려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지. 이게 내가 알던 현실이지.
대한민국 최고의 길드 시리우스와 계약을 한 업체라고 하더라도 각성자들의 등골을 빼먹는 건 여전했다.
지원품을 받는 데 실패한 이들은 바로 앞에 세워진 보급소에 가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한 줄을 섰다.
다들 이게 말도 안 되는 폭리라는 걸 알고 있지만 따질 수는 없다. 따져 봤자 일자리를 잃을 뿐이니까.
사실 나는 이 지원품이 없어도 문제없었다. 내 재능의 잠재력은 B급, 적어도 마나 중독에 시달릴 정도는 아니니까.
하지만 모난 정은 돌을 맞는 법. 괜히 튀고 싶지 않은 마음에 나는 꼬박꼬박 지원품을 구매했다.
과거에는 말이지.
하지만 한 푼이 아쉬운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게이트 지원품이라는 것들 대부분이 대체품을 사는 것이 훨씬 나을 정도로 형편없는 물건들이기도 했고. 저 게이트 지원품에서 제일 중요한 건 방독면에 장착하는 마나 중독 방지 필터였는데 미약하게나마 게이트 내의 공기에 함유된 마나를 걸러 주는 역할을 했다.
다른 차원과 연결된 공간인 게이트 안에는 다른 차원의 에너지, 그러니까 마나가 가득했다.
고농도의 마나는 그 자체로 독극물이나 다름없다. 마나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르되, 평범한 사람들의 몸에 침투한 마나는 신체 세포를 파괴하고 그 기능을 정지시킨다.
게이트에 관한 연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던 예전에는 비각성자들도 게이트 안으로 출입했다고 들었지만, 지금 게이트는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었다.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각성자라고 하더라도 게이트 내 마나 중독에 완벽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몸에서 마나를 걸러낼 수 있을 만큼 마나를 다룰 수 있는 각성자는 상관이 없었지만, 마나석 채굴을 하는 인원 대부분이 헌터가 될 수 없을 정도로 마나 감응력이 낮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몸에 뭉쳐 있는 마나를 스스로 해독할 수 없는 만큼, 특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마나석 자체가 고농도의 마나가 뭉쳐 있는 물건인 만큼, 마나 중독 현상을 염려해야만 했다.
내 옆으로 다가온 임현수가 물었다.
“지원품은 샀어?”
“전에 쓰던 게 남아 있더라구요.”
나는 대충 말을 둘러댔다.
“가평 게이트 가는 분들은 이쪽으로 와 주세요!”
멀리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임현수가 툭 내 어깨를 쳤다.
“가자고.”
나는 임현수와 함께 게이트로 향하는 봉고차에 올라탔다.
봉고차는 이미 선객들이 가득 차 있었다. 다닥다닥 어깨를 붙이고 앉은 남자들의 몸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냄새가 났다.
제대로 말리지 않은 옷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에 며칠은 묵은 듯한 땀내와 담배 찌든 내까지. 예전에는 이 봉고차 안에서 이런 냄새가 나는 줄도 몰랐는데, 몇 년 동안 어울리지도 않는 상류층 생활을 했더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는 수준이었다.
젠장, 돈만 벌면 뜬다. 진짜 돈만 벌면.
나는 입을 꾹 틀어막은 채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임현수가 입을 열었다.
“아니, 조희 얼굴은 왜 또 저런 거야?”
그 말에 나는 시선을 돌렸다. 피곤한 사람들 틈에서도 확실히 유난할 정도로 파리한 얼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척 보기에도 입술이 파랗게 질린 게, 마나 중독 초기 증상이었다.
임현수는 한조희에게 말을 건넸다.
“너 설마 필터 아꼈냐?”
“그게, 저번 달에 아파서 제가 좀 쉬었잖아요. 월세가 밀려서…….”
“아무리 월세가 밀렸다고 해도 필터를 아끼면 어떡하냐?”
임현수의 말에 한조희가 한탄했다.
“저번 달부터 갑자기 월세를 40이나 올렸다고요. 기껏해야 몸이나 겨우 누일 집에 월세가 200인 게 말이 되냐고.”
아무리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게이트에서 안전한 편이라고는 해도 여전히 ‘게이트 안전지대’에 대한 수요는 엄청났다. 부동산만 가더라도 게이트 안전 지역이라는 걸 내세울 정도니까.
“하, 동생 때문에 다른 데로 갈 수도 없는데…….”
한조희의 말에 임현수가 물었다.
“동생이 헌터 아카데미에 다닌다고 했었나?”
“네. 걔는 나랑 다르게 대단한 놈이거든요. 어떻게든 내가 걔는 뒷바라지할 거예요. 그래서 나 같은 인생 안 살게, 그렇게 만들 거예요.”
한조희의 얼굴에는 오기마저 보였다. 봉고차 안에는 침묵이 감돌았다. 한조희의 마음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헌터가 되지 못한 낙오자였으니까.
“그래도 몸 축내 가며 일하지는 말자. 그러면 진짜 오래 못 버텨.”
임현수의 말에 한조희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임현수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겉으로는 저렇게 사람을 챙기는 척 굴지만, 속으로는 한조희를 어떻게 나락으로 떨어트릴지를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한조희는 좋은 먹잇감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조희에게 무어라 충고라도 남기고 싶었지만, 모두가 보고 있는 상황에서는 불가능했다.
또한 내 조언을 한조희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문제고.
아웃사이더로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한 나와 달리 임현수는 이곳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니 지금 임현수의 치부를 꺼내 보았자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고 끝날 뿐이다.
임현수의 앞에서 경계를 사는 건 나에게도 위험했고.
한조희가 했던 이야기 때문인지 게이트로 가는 내내 봉고차 안에는 씁쓸한 침묵이 맴돌았다.
4시간을 달린 봉고차는 한 게이트 앞에 멈춰 섰다. 봉고차에서 한참을 갇혀 있던 각성자들은 우르르 쏟아지듯이 봉고차 앞에 모였다.
이미 공략이 완료됐다는 뜻의 초록색 깃발이 꽂혀 있는 게이트 앞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다. 혹시 모를 게이트 브레이크 현상을 막기 위해서였다.
봉고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배낭에 담아 온 짐들을 체크했다. 마나석을 캘 수 있는 곡괭이와 캔 마나석을 담을 수 있는 특수 처리가 된 주머니까지.
준비가 끝난 사람들은 게이트 앞에 있던 사람 앞에 가서 줄을 섰다.
“청성에서 오셨죠?”
“네. 오늘 같이 가실 헌터분이십니까?”
“예에.”
지겹다는 듯 하품을 날린 남자는 줄을 선 사람들의 수를 셌다. 수가 맞아떨어진다는 걸 확인한 남자가 게이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채굴 시간은 5시간이고 끝날 때쯤 입구 쪽으로 오시면 됩니다. 무슨 일 생기면 조명탄을 쏴서 신호를 주시면 되고요.”
이미 수백 번은 들어 지긋지긋해진 말들이었다. 우리에게 말하는 남자 또한 지겹다는 얼굴이었다.
“제가 통과한 다음 차례대로 들어오면 됩니다.”
게이트는 옆에서 보면 종이 한 장 두께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얇았지만, 통과하는 순간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아직도 저 게이트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지만, 10년 후의 미래까지 저 게이트의 작동 원리를 정확하게 알아낸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차례대로 계단에 서서 게이트를 통과했다. 연보랏빛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그들의 몸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나 또한 걸음을 앞으로 옮겼다.
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 짜릿한 전류가 내 몸에 흘렀다. 그리고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아, 정글 타입이구나.
하필이면. 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가만히 서 있기만 해도 땀이 차오르는 정글 타입은 게이트 채굴을 하기에 최악인 곳이었다.
들어오자마자 온몸에 땀이 이슬처럼 맺히기 시작하는 높은 습도는 물론이고, 발이 빠질 정도로 질척거리는 바닥까지.
하지만 이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릴 여유도 없이 앞으로 척척 걸어 나갔다.
채굴 시간은 단 다섯 시간. 시간 안에 할당량을 채우려면 부지런히 일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