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2 회귀했다
곰팡이가 낀 거울 안을 바라봤다. 거울 안에는 아무렇게나 잘라 끝이 지저분한 더벅머리를 하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남자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잘생겼냐, 못생겼냐를 따지자면 못생긴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평균보다 가로로 길게 찢어진 눈에 얇은 입술은 영 신뢰감이 없게 생겼다. 언제든 사람 뒤통수를 칠 것 같은 상이랄까.
상견례 프리 패스상 딱 정반대 얼굴이 있다면 그건 이런 얼굴이 아닐까.
참 야속하지만 이게 내 얼굴이다.
그나마 돈을 발라 어떻게든 호감상을 만들어 놨던 과거와 달리 지금 나는 세상 불만이 많아 보이는 양아치처럼 보였다.
“참 별로네.”
나는 쉰내 나는 수건으로 얼굴에 남아 있는 물기를 닦아 내며, 곰팡이로 가득한 화장실을 벗어났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좁아터진 원룸을 본 순간 현실감이 내 몸을 덮쳤다.
난 살아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돌아왔다’.
갓 헌터 아카데미를 졸업하고 게이트 채굴꾼으로 일하며 입에 풀칠만 하던 때로.
강남 땅 노른자위 위에 존재했던 펜트하우스는 사라졌다. 한 벌에 수백만 원이 넘는 수제작 양복도, 내 드레스 룸을 가득 채우던 수천만 원짜리 시계도 흔적도 없었다.
대신 내 눈앞을 채운 건 여기저기 널려 있는 즉석식품 봉지들,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는 보풀투성이의 옷들과 보기만 해도 우울증이 생길 정도로 칙칙한 벽지뿐이었다.
이게 설록진을 만나기 전까지의 내 삶이었다.
구질구질하게 하루를 버텨 내고 있던 패배자.
하지만 나는 몇 년 만에 소리 내어 웃을 수 있었다.
왜냐고?
자유니까.
나는 더 이상 설록진의 개가 아니다. 짖으라면 짖고, 뒹굴라면 뒹굴어야 했던 그 삶에서 나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탈출했다.
내 심장을 옥죄던 계약이 사라지자마자 내가 한 일은 터무니없다.
“설록진 개X끼.”
나는 그동안 속으로 꾹꾹 눌러 놓기만 한 욕을 꺼냈다. 설록진 개자식. 나쁜 놈의 새끼.
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놈.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엄청난 허탈함이 내 몸을 덮쳤다.
“하…….”
이렇게 노예는 탈출했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는 해피 엔딩이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내 삶은 그런 동화와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이 대한민국은 게이트 브레이크로 인해 멸망한다. 그 멸망이라는 놈은 문자 그대로 내 각막에 오롯이 새겨져 있다.
여기저기서 열린 게이트와 그곳에서 쏟아져 나온 몬스터들. 그리고 무력하게 찢겨 죽었던 시민들까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다.
온몸이 짓이겨지던 끔찍한 고통은 아직도 선명히 남아 있었다.
왜 하필 지금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되살아난 이유로 짚이는 것이 있었다.
설록진이 내게 가지고 오라고 했던 그 아티팩트. 거대한 괴물이 내 몸을 짓이기는 순간 내가 손에 쥐고 있던 앙크에서는 빛이 뿜어져 나왔다.
어쩌면 그 앙크가 나를 살린 게 아닐까?
당장에라도 그 앙크를 찾아 확인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앙크가 나왔던 게이트는 아직 생성되지 않았다. 앙크는 나중에 생각해 보도록 하자.
그보다는 더 중요한 게 있으니.
세계가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다.
내가 그 사실을 무시하고 도망친다면, 그래서 나 홀로 안전한 곳에 숨어든다면 대한민국은 똑같은 절차를 밟아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러라지.’
내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놀랍도록 이기적이었다.
나도 이 지긋지긋한 나라에 더는 미련이 없었다. 정신계 재능을 각성했다고 사람을 예비 범죄자로 보질 않나, 툭하면 각성자들에게 특별 세금이랍시고 말도 안 되는 돈을 걷어 대질 않나. 어딜 놀러 가고 싶어도 등록된 주거지에서 벗어나자마자 연락이 오질 않나.
돈이 없고 약한 각성자에게 이 나라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나 같은 2등 시민에게 애국심은 먼 옛날 교과서에나 나오는 개념이 된 지 오래였다.
그래, 나도 이 나라 떠서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야.
어디 멋진 해변가에 집을 짓고 이 세상의 멸망을 지켜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래, 내가 그 멸망을 막을 필요는 없잖아.
나만 생각해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그런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라고? 개소리.
그렇게 한참을 중얼거린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 모든 것에서 도망치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정말 그걸로 멸망에서 도망갈 수 있을까.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걸까.
나는 설록진의 곁에 있으며 수많은 사람의 최후를 목격해야만 했다.
부당한 대우를 받는 각성자들의 인권을 위해 싸웠던 변호사.
S급의 재능을 타고 태어나 그 누구보다 반짝이던 각성자.
설록진의 뒤를 캐던 열정적이었던 기자.
그리고 내 가장 소중했던 친구…….
‘정호산.’
그 녀석의 얼굴을 떠올린 순간 숨이 턱 하고 막혀 왔다.
설록진이 그 사람들을 해치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멸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들은 이 세상에 멸망이 닥치도록 두지 않았을 테니까.
설록진이 해쳤던 그 사람을 구하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사람들을 어떻게 구하냐는 거지.
기껏해야 이미 공략된 게이트에서 마나석이나 캐는 인생인 내가 무슨 수로?
내 재능이 바뀌지 않는 한, 헌터로 활약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회귀로 뭔가 달라진 게 있다면 또 모를까.
나는 기대감을 품은 채 입을 열었다.
“상태 창.”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내 눈앞에는 반투명한 창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름] : 강이신(姜怡神)
[성별] : 남(男)
[나이] : 21세
[재능] : 불굴의 신념(S), 진실한 거짓말(B)
하지만 눈앞에 떠오른 상태 창은 내가 기억하는 그대로였다.
나를 수없이 절망시켰던 빌어먹을 재능마저 변한 거 하나 없이 그대로였다.
“하…….”
가슴속에 차올랐던 희망이 순식간에 꺼지고 입 안에는 재 맛만 돌았다.
무려 잠재력 S등급 패시브 스킬에 B등급의 재능을 가지고도 내가 그 어떤 길드도 들어가지 못하고 게이트에서 마나석이나 채굴하는 일용직 노동자를 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내 재능이 ‘거짓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거짓말.
━ 「진실한 거짓말」 ━
잠재력 : B
그 어떤 말이든 진실로 느껴지게 할 수 있다.
진실한 거짓말이라니. 이게 무슨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 같은 소리인지.
아메리카노는 마실 수라도 있지 이 재능은 영 쓸데가 없다. 내가 사기꾼이나, 사이비 교주가 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그 짓도 내 목을 죄고 있는 이 인식표를 떼기 전까지는 불가능했다.
정신계 재능을 각성한 각성자들은 누구나 목에 인식표를 장착해야만 했다. 인식표는 각성자의 몸에 흐르는 마력, 그러니까 마나를 감지하며, 각성자가 재능을 사용할 때마다 눈이 부시게 빛났다. 그뿐만이 아니라 재능을 사용할 때마다 주변 지구대에 자신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보고되기까지 했다.
이게 전부 다 3년 전 통과된 민간인 보호법 때문이었다. 그 법 때문에 정신계 각성자인 나는 평생 이 전자 목줄을 차고 살아가야만 했다.
육체계 각성자도 저마다의 고충이 있겠지만, 정신계 능력자들은 민간인들 사이에 섞이는 것도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하지만 이 빌어먹을 놈의 인식표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그럼 이야기가 바뀌지.’
이 세상을 멸망에서 건져 놓기 위해 나는 기꺼이 사기꾼, 악당, 사이비 교주가 될 수 있었다.
내가 상대해야 할 놈들은 모조리 이 대한민국에서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높으신 분들뿐이었다.
당장 강력한 대선 후보였던 설록진은 물론이고, 그의 뜻대로 움직였던 정부 기관들, 그리고 자신의 유망주를 팔아먹었던 길드 간부진들까지.
이 대한민국의 권력자 모두와 싸워야 할 판인데, 양지에서 그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 일이다.
그랬다간 무언가를 제대로 하기도 전에 철저하게 짓밟히고 말겠지.
설록진의 악행을 알아챈 이들은 언제나 설록진에게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세상이 너 같은 추악한 놈의 뜻대로 될 것 같으냐고.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세상은 설록진의 뜻대로 아무런 문제 없이 돌아갔다. 이 세상이 멸망할 때까지.
나는 그들의 어리석음을 그대로 따를 생각이 없었다.
그들은 틀리지 않았지만, 약했고 무지했다.
선함으로는 설록진을 꺾을 수 없다.
더러운 놈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나도 더러운 놈이 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말이지. 나는 더는 선한 사람이 아니거든. 설록진의 곁에 있으면서 이미 나는 더러운 놈이 되었다.
설록진의 밑에서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지었고 그러했기에 설록진을 상대할 방법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설록진이 죽였던 죄 없는 이들을 구할 거다. 그렇게 구하고 또 구하다 보면 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나는 내 주제를 잘 알고 있었다.
나는 비겁한 사람이었고, 악하고 치졸하고 모자란 놈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놈들을 상대할 수 있다.
선하고 무지한, 순진한 사람들은 할 수 없을 방법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내 목에 둘러져 있는 이 망할 놈의 인식표를 떼어 내야만 했다.
물론 평범한 방법으로는 이 인식표를 제거할 수 없다. 물리력으로 제거하는 순간 기동대가 나타나 나를 잡아가겠지.
이걸 제거하기 위해서는 암시장에 가야만 했고, 그 암시장에서도 특별한 장인을 찾아야 했다.
나는 그 장인이 누구인지도, 그 장인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돈이다.
나는 휴대폰으로 내 가상 계좌를 확인했다. 그리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은 단 30만 원뿐이었다. 정확히는 27만 9,800원.
“허.”
어이가 없어서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혹시나 다른 계좌에 돈을 넣어 놓은 건 아닌가 싶었지만, 아니. 내가 가진 계좌는 이게 전부였다.
그러니까…… 지금 내 전 재산이 고작 27만 9,800원이라는 뜻이다.
사지가 멀쩡한 각성자가 이 년을 꼬박 일해서 모은 돈이 27만 9,800원.
과거의 나는 사기라도 당한 게 아닐까?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돈이 없을 리가 없잖아.
나는 황급히 통장을 살펴보았다. 매달 빠지는 월세. 각종 공과금. 그리고 카드값. 나는 카드값을 보며 기함했다.
아니, 버는 것도 얼마 되지도 않는 놈이 무슨 카드를 이렇게 썼어? 소액 결제 사기라도 당한 거 아냐?
나는 곧장 카드 내역서를 확인했다.
모바일결제_굽어치킨 27,000원
요기서먹어_1인야채곱창세트 23,000원
A마켓_베이지색긴바지 98,000원
오늘뭐입어_목이늘어나지않는티셔츠10매특가세일 108,000원
나는 카드 내역서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그리고 30분 만에 나는 충격적인 결론에 다다랐다.
이 많은 돈은 죄다 내가 쓴 게 맞았다. 사기도, 뭣도 없었다. 게다가 흥청망청 쓴 것도 아니었다. 뭐, 배달 음식을 조금 과하게 시켜 먹은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 밖의 소비는 꼭 필요한 곳에 고심해서 쓴 흔적이 보였다.
다만 물가가 내 지갑 사정을 뛰어넘었을 뿐이다.
‘나 이렇게나 가난했나?’
설록진의 밑에 있으면서 나는 세상의 부를 제대로 누렸다. 가난이라는 단어는 이미 낯선 세상의 것이 된 지 오래였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온 나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가난뱅이였고, 이 상태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돈을 버는 방법이야 많이 알지.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인식표를 떼야 했고 그 인식표를 떼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이게 무슨…….”
마치 자신의 꼬리를 집어삼킨 뱀처럼, 나는 자가당착에 빠지고 말았다.
돈은 어떻게 버는 거였더라?
설록진의 밑에 있으며 배웠던 부정한 방법을 쓰지 못하게 된 지금 막막할 뿐이었다.
그때 내 휴대폰의 알람이 울렸다.
“아, 젠장.”
낯익은 알람 소리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지긋지긋한 게이트로 또 가라고?
하지만 당장 내가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나는 옷장에서 낡아 빠진 작업복을 꺼내 걸쳤다. 제대로 말리지 않은 옷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진동했다.
쿰쿰한 가난의 냄새를 맡으며 나는 바깥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