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어둠의 표식
"비밀이야. 퀴디치 월드컵에 돈을 걸었다는 말은 절대로 엄마에게 하면 안 된다."
보라색 양탄자가 깔린 계단을 밟고 내려가면서 위즐리 씨가 프레드와 조지에게 말했다.
"걱정 마세요, 아빠." 프레드가 잔뜩 신이 나서 대답했다. "우리는 벌써 이 돈을 어떻게 쓸 건지 계획을 다 세워 놓았어요. 우리도 이 돈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 구요."
"어떤 계획이니?" 위즐리 씨는 당장이라도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더니 이내 입을 굳게 다물었다. 차라리 모르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마침내 경기장에서 나온 그들은 캠프장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왁자지껄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었다. 그들은 아직까지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것 같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깔깔거리면서 웃음을 터뜨리는 레프러칸 요정들이 등불을 흔들면서 그들의 머리 위를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시끄러운 노랫소리가 어두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마침내 그들은 텐트에 도착했다. 이미 밤늦은 시간이었지만, 잠자리에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캠프장이 너무나 소란스러웠기 때문에 도저히 잠을 청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코코아나 한 잔 하고 잠자리에 들도록 하자."
위즐리 씨의 말에 모두들 동의했다. 그들은 곧 퀴디치 월드컵에 대해서 즐겁게 떠들기 시작했다. 위즐리 씨는 불가리아 파수꾼의 반칙을 좋고 찰리와 한창 논쟁을 벌였다.
결국 졸음을 참지 못한 지니가 끄덕끄덕 좋다가 그만 뜨거운 코코아를 마룻바닥에 엎지르자, 위즐리 씨는 모두들 잠자리로 돌려보냈다. 헤르미온느와 지니는 여자들이 사용하는 텐트로 건너가고, 해리와 위즐리 형제들은 잠옷으로 갈아입고 재빨리 이층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밖에서는 여전히 흥겨운 노랫소리와 더불어 가끔씩 축포를 터뜨리는 소리도 들렸다.
"내가 당직이 아닌 게 천만다행이야." 위즐리 씨가 졸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온통 축제 기분에 젖어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을 무슨 수로 말리겠어? 밤새도록 즐기라고 할 밖에..."
해리는 론과 같은 침대를 쓰게 되었다. 이층으로 올라가서 침대에 드러누운 해리는 텐트의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레프러칸 요정들이 등불을 들고 날아다니는지 희미한 불빛이 어른거리고 있었다.
빅터 크룸... 정말 멋졌어. 해리의 머리 속에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던 빅터 크룸의 모습이 자꾸만 떠올랐다. 해리는 당장이라도 파이어 볼트를 타고 직접 렁스키 페인트 작전을 해 보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할 지경이었다... 올리버 우드가 만든 실물 작전 모델조차도 그런 멋진 기술은 펼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여러분! 해리 포터를 소개합니다!"
루도 베그만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해리가 입고 있던 붉은색 망토의 등에는 '해리 포터'라는 이름이 선명하게 수 놓여 있었다... 수많은 관중들이 해리를 향해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내가 정말로 잠이 든 걸까? 아마도 빅터 크룸처럼 멋지게 날아다니는 상상을 하다가 슬며시 꿈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 같았다. 해리는 비몽사몽 간에 문득 위즐리 씨가 고함을 지르고 있는 것을 들었다.
"일어나거라! 론, 해리! 자, 어서 일어나거라! 긴급 상황이다!"
해리는 벌떡 일어나다가 그만 텐트 천장에 머리를 부딪히고 말았다.
"무슨 일이죠?"
해리는 단번에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캠프장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흥겨운 노랫소리는 멈추고 처절한 비명 소리와 몹시 당황한 사람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해리가 서둘러 침대에서 내려와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하자, 잠옷 위에 그대로 청바지를 겹쳐 입고 있던 위즐리 씨가 다급하게 외쳤다.
"시간이 없다, 해리! 그냥 대충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가! 어서!"
해리는 위즐리 씨의 말을 닫고 재빨리 텐트 밖으로 달려 나왔고, 론도 허둥지둥 따라왔다. 아직도 꺼지지 않은 모닥불들이 캠프장을 희미하게 밝히고 있었다.
문득 해리는 숲을 향해 달아나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은 이상한 광채와 총성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들판을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는 무엇인가를 피해 도망치고 있는 중이었다. 누군가를 비웃는 듯한 야유와 왁자지껄한 웃음소리, 그리고 술 취한 고함소리도 들렸다.
갑자기 초록색 불빛이 폭발하면서 주위가 환하게 밝아졌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요술지팡이를 똑바로 치켜들고 무리를 지어서 캠프장을 가로질러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다. 해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는 금방 그들이 머리에 두건을 쓰고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신분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있던 마법사들의 머리 위로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네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그들은 마구 버둥거리면서 기괴하게 몸을 비틀고 있었다. 마치 가면을 쓴 마법사들이 그들을 보이지 않는 실로 묶어서 요술 지팡이 끝에 매달고 있는 것 같았다. 마법사들은 꼭두각시 인형을 다루듯이 마음대로 그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네 사람 중에 두 명은 어린 아이였다.
점점 더 많은 마법사들이 가면을 쓴 마법사 무리에 합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허공에 떠 있는 사람들을 향해 지팡이를 겨누면서 소리를 내어 웃고 있었다. 캠프장에 세워져 있던 텐트들이 마구 짓밟혀서 쓰러졌다. 해리는 행진하던 마법사 중 한명이 길을 방해하는 텐트를 요술지팡이로 폭파하는 장면까지 목격했다. 몇 채의 텐트에 불이 붙었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었다.
텐트에 붙은 불길로 주위가 환해지자, 해리는 허공에 묶여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 사람은 바로 캠프장 관리인인 로버트 씨였다. 다른 세 사람은 그의 아내와 아이들인 것 같았다. 가면을 쓰고 행진하던 마법사 가운데 한 명이 요술지팡이를 휘두르자, 로버트 부인이 거꾸로 뒤집혔다. 로버트 부인의 잠옷이 흘러내리면서 헐렁한 속옷이 다 드러났다. 마법사들은 조롱을 하면서 야유를 보냈고, 로버트 부인은 몸을 가리기 위해 버둥거렸다.
"구역질이 날 것 같아." 론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로버트 씨의 막내 아이는 지상 2미터 높이에서 마치 팽이처럼 뱅글뱅글 돌고 있었다. 축 늘어진 어린아이의 머리가 힘없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어떻게 저런 짓을..."
그때 잠옷 위에 대충 옷을 걸친 헤르미온느와 지니가 허둥지둥 다가왔다. 곧이어 위즐리 씨의 모습이 보였다. 거의 동시에, 옷을 완전히 갈아입은 빌과 찰리와 퍼시가 남자들의 텐트에서 뛰어나왔다. 소매를 걷어붙인 그들은 벌써 요술지팡이를 손에 들고 있었다.
"우리는 마법부를 도울 생각이란다." 위즐리 씨가 소매를 걷어 올리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너희들은 어서 숲 속으로 들어가거라. 서로 꼭 붙어 있어야 한다. 상황이 좀 진정되면 내가 데리러 가마!"
벌써 빌과 찰리와 퍼시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마법사 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서둘러!"
프레드가 지니의 손을 잡고 숲으로 달려가자, 해리와 혼과 헤르미온느와 조지도 재빨리 뒤를 따라갔다. 마침내 숲에 도착해서 캠프장 쪽을 돌아다보니, 행진에 참가한 마법사들의 숫자는 더욱 불어나 있었다. 로버트 가족은 여전히 허송에 둥둥 떠 있었다. 마법부 직원들이 행진하는 무리를 헤치고 중앙에 서 있는 가면을 쓴 마법사들을 향해 다가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혹시라도 가면을 쓴 마법사들이 마법을 부려서 로버트 씨의 가족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리지나 않을 까 몹시 걱정하는 것 같았다.
경기장으로 가는 길은 환하게 비추어 주었던 형형색색의 등불들은 이미 다 꺼졌다. 거무스름한 형체들이 휘청거리면서 숲 속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의 울음소리와 겁에 질린 사람들의 목소리가 차가운 밤공기를 헤치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해리는 사람들에 치여 이리저리 떠밀렸다. 하지만 주위가 너무나 어두웠기 때문에 아무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악!"
갑자기 론이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니?" 헤르미온느가 놀라서 물으며 너무나 갑작스럽게 걸음을 멈추는 바람에 해리는 거의 헤르미온느와 부딪힐 뻔했다. "론, 어디에 있니? 아참, 요술지팡이가 있었지! 루모스!"
요술지팡이 끝에 불이 밝혀지자, 헤르미온느는 재빨리 주위를 비추었다. 론이 땅바닥에 벌렁 나자빠져 있었다.
"나무뿌리에 걸려서 넘어졌어."
론이 몸을 일으키면서 투덜거렸다.
"당연하지. 넘어지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야."
등 뒤에서 누군가 론을 비웃는 목소리가 들렸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얼른 돌아다봤다. 드레이코 말포이가 팔짱을 낀 채 느긋한 얼굴로, 근처에 있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 있었다. 그는 나무 사이로 캠프장의 광경을 줄곧 구경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갑자기 론이 말포이를 노려보면서, 자기 엄마 앞이라면 입도 뻥끗 못했을 욕설을 퍼부었다.
"말조심하는 게 좋아, 위즐리." 말포이가 눈을 번뜩이면서 말했다. "빨리 도망쳐야 하지 않을까? 머글 계집애가 저 사람들의 눈에 띄기를 바라진 않겠지? 안그래?"
말포이가 힐끗 헤르미온느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바로 그때 캠프장에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들리더니, 초록빛 섬광이 순간적으로 그들의 주위를 환하게 밝혔다.
"그게 무슨 뜻이야?"
헤르미온느가 날카로운 눈길로 말포이를 노려보면서 물었다.
"그레인저, 저들은 지금 머글을 뒤쫓고 있어. 너도 허공에 둥둥 뜬 채 속옷을 자랑하고 싶니? 만약 그렇다면... 조금만 기다려 봐... 지금 그들이 다가오고 있으니까... 굉장히 재미있겠는걸."
말포이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헤르미온느는 머글이 아니야! 마녀란 말이야!"
해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건 네 생각이지, 포터. 저들이 잡종을 알아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니? 좋아. 그럼 여기서 가만히 기다려 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말포이가 심술궂은 목소리로 말했다.
"주둥이 닥쳐!"
론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머글 부모를 가진 마법사에겐 '잡종'이라는 말이 굉장히 모욕적인 말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저런 녀석은 상대할 가치도 없어, 론."
론이 말포이에게 덤벼들려고 하자, 헤르미온느가 재빨리 론의 팔을 잡아끌며 말했다. 갑자기 숲 반대편에서 요란한 폭발 소리가 들렸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겁쟁이들이군. 이런 일에 깜짝 놀라다니..." 말포이가 빈정거렸다. "너희 아빠가 너희에게 숨으라고 말했니? 네 아빠는 뭐 하러 갔는데? 머글들을 구하기 위해 애쓰고 있나 보지?"
"네 엄마 아빠는 어디 계시니? 가면을 쓰고 돌아다니고 있지? 그렇지?
해리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글쎄... 만약 그렇다고 해도 내가 너에게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지. 안 그래, 포터?"
말포이는 여전히 능글맞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 어서가자!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을 찾아보는 게 좋겠어."
헤르미온느는 불쾌한 얼굴로 말포이를 노려보았다.
"그레인저, 넌 좀 빠져. 머리는 온통 산발을 한 주제에..."
말포이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했다.
"어서!"
헤르미온느가 해리와 론의 팔을 붙잡아 길가로 잡아끌었다.
"가면을 쓴 사람들 중에 한 명이 말포이의 아버지일 거야!"
론이 잔뜩 흥분하면서 말했다.
"마법부가 반드시 그 사람을 체포할 거야. "헤르미온느도 몹시 화가 난 것 같았다. "어머나! 믿을 수가 없어. 다른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간 거야?"
수많은 사람들이 불안한 눈길로 소동이 일어났던 곳을 쳐다보며 다시 캠프장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득 메우고 있었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조지와 프레드와 지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길을 따라 조금 가니, 잠옷을 입은 여러 명의 십대들이 길가에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숱이 많은 곱슬머리 여자아이가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향해 돌아서더니 입을 열었다.
"우 에 마담 맥심? 누 라봉 페르뒤"
여자아이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뭐라구?"
론이 못 알아듣고 반문했다.
"오..."
전혀 말이 통하지 않자, 그 여자아이는 잠시 어깨를 으쓱거리더니 뒤로 돌아섰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가 다시 길을 걸어가는데 어깨 너머로 그 여자아이가 '오그와트'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보바통이야,"
헤르미온느가 작게 중얼거렸다.
"무슨 말이야?"
해리가 물었다.
"아마도 저 애는 보바통에 다니고 있을 거야. 알잖아... 보바통 마법 아카데미... <유럽 마법 교육의 평가>라는 책에서 그 학교에 대해 읽은 적이 있어."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아... 그래... 그렇구나."
해리가 고개를 끄덕 이면서 대답했다.
"프레드와 조지 형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그렇게 멀리가지는 않았을 텐데... 헤르미온느처림 지팡이로 불을 켜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리도 요술지팡이를 꺼내기 위해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보아도 요술지팡이가 없었다. 해리의 주머니 속엔 옴니클러뿐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믿을 수 없어... 요술지팡이를 잃어버렸어 !"
"정말이야?"
론과 헤르미온느는 주위를 더욱 넓게 비추기 위해 요술지팡이를 하늘 높이 들어올렸다. 해리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요술지팡이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텐트에 두고 나왔을지도 몰라."
론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혹시 달릴 때 주머니에서 떨어진 게 아닐까?"
헤르미온느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어쩌면..."
해리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의 세계에서는 항상 요술지팡이를 몸에 지니고 다녔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요술 지팡이가 없으니까 해리는 자기 자신이 한없이 나약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꼬마 집요정 윙키가 덤불 속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윙키의 행동이 아주 이상했다. 윙키는 잔뜩 몸을 앞으로 숙인 채, 안간힘을 쓰면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고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윙키의 붙잡고 있는 것처럼...
"이 근처에 나쁜 마법사들이 있어요!" 꼬마 집요정은 억지로 걸음을 떼어 놓으며 말했다. '사람들이 허공에 떠있어요! 윙키는 그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비키고 있는 거예요 "
꼬마 집요정은 자신을 방해하는 힘과 싸우느라 숨을 헐떡거리며 길 맞은편에 있는 숲속으로 사라졌다.
"저 요정이 왜 저러지? 왜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는 거야7"
론이 윙키가 사라진 곳을 수상쩍게 바라보면서 물었다.
"주인의 허락을 받지 못한 거야... 몸을 숨겨도 좋다는..."
해리가 말했다. 해리는 도비를 생각했다. 도비는 말포이가족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만한 이야기를 꺼내려고 할 때마다 자기 몸을 마구 학대했었다. 꼬마 집요정은 주인의 명령을 절대로 거역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꼬마 집요정들은 정말로 푸대접을 받고 있어! 노예와 다를게 뭐가 있어? 크라우치 씨는 그 꼬마 집요정에게 경기장 꼭대기에 올라가라고 명령했어. 하지만 그 꼬마 집요정은 고소공포증이 있단 말이야! 나쁜 마법사들이 텐트를 짓밟기 시작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숲속으로 달아났어. 그런데 왜 꼬마 집요정은 달아날 수 없다는 거야? 왜 그 일에 대해서 항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야?"
헤르미온느가 분개했다.
"글쎄... 그래도 그 꼬마 집 요정들은 행복할 거야. 안 그래? 아까 경기장에 있을 때, 너도 윙키가 하는 말 들었잖아? '꼬마 집 요정들은 재미있게 지내면 안 돼요' 꼬마 집요정은 그런 생활을 좋아하고 있을 거야. 노예처럼 열심히 일하면서 살아가는 걸 말야...
론이 말했다.
"집요정도 다들 너 같은 사람이야, 론. 부패하고 부조리한 체제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나 게으른..."
헤르미온느가 화를 내면서 말했다. 숱 가장자리에서 또다시 폭발 소리가 들렸다.
"그냥 계속 가자, 응?"
론이 헤르미온느를 힐끗 쳐다보면서 말했다. 어쩌면 말포이의 말이 사실인지도 모른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헤르미온느가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그들은 다시 숲을 향해 출발했다. 해리는 요술지팡이가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해서 주머니를 뒤 적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프레드와 조지와 지니를 찾으면서 어두운 길을 따라 숲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다. 그러다가 그들은 도깨비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도깨비들은 퀴디치 월드컵에서 내기로 딴 게 분명한 금화 자루를 놓고 낄낄거리고 있을 뿐, 캠프장에서 벌어진 소동에는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계속 걸으니, 이번에는 은백색 불빛이 감도는 숲이 나왔다. 그 불빛은 아름다운 벨라 세 명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벨라들은 아주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젊은 마법사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다.
"난 1년에 100자루 가량의 갈레온을 벌어. 게다가 위험한 동물 처리 위원회 소속이지. 나는 용을 죽이는 업무를 맡고 있어."
그들 가운데 한 명이 큰 소리로 말했다.
"뭐? 자네가 무슨... 자네는 리키 콜드런에서 접시 닦는 일을 하고 있잖아... 나야말로 흡혈귀 사냥꾼이야. 지금까지 아흔 명이나 죽였어"
다른 마법사가 손을 내저었다.
"나는 역사상 최연소 마법부 장관이 될 거야... 벨라의 희미한 은백색 빛으로도 여드름이 다 보이는 세 번째 젊은 마법사가 끼어들었다. 해리는 코웃음을 쳤다. 그 여드름 투성이의 마법사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스텐 션파이크라는 구조버스의 차장이었다.
해리는 억지로 웃음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참으면서 멍하니 넋이 빠져 있었다.
"나는 목성까지 날아갈 수 있는 빗자루를 발명했어! 내가 아직 말하지 않았던가?"
다음 순간, 프크벨라가 충분히 듣고도 남을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왜 이래, 론"
헤르미온느는 한심스러운 눈길로 론을 흘겨보았다.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양쪽에서 론의 팔을 힘껏 보지 못하도록 빙글 돌려 놓았다. 그제서야 론은 차리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벨라와 마법사들이 떠드는 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걸어가다 보니, 이제 그들은 숲속 깊은 곳에와 있었다.
'그냥 여기에서 기다리도록 하자. 만약 누군가가 온다고 하더라도, 금방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야,'
해리가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해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앞에 있는 나무 뒤에서 루도 베그만이 불쑥 나타났다. 두 개의 요술지팡이에서 흘러나오는 희미한 빛이 루도 베그만의 모습을 비추었다.
해리는 루도 베그만의 행동이 무척 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루도 베그만은 더 이상 활기찬 모습이 아니었다.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으며 몹시 초조해 하고 있었다. 용수철이라도 달린 것 같았던 경쾌한 발걸음은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다. "거기 누구요?" 베그만이 눈을 깜박이면서 그들을 쳐다보았다. "아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그들은 깜짝 놀라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바라보았다.
"소동이 벌어지고 있어요,"
론이 말했다.
"뭐라구"
베그만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캠프장은 엉망이 되고 말았어요... 가면을 쓴 사람들이 머글 가족을 붙잡아서... "
"나쁜 놈들!"
베그만이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붓더니 순식간에 뽕 하고 사라졌다.
"베그만 씨를 퀴디치 월드컵의 책임자로 임명한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었던 것 같아. 안 그래7"
헤르미온느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하지만 그 사람은 훌륭한 몰이꾼이었어,' 론은 길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공터의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베그만 씨가 활약하고 있을 때에는 윔본 와스프 팀의 성적이 정말 대단했어. 퀴디치 리그전에서 연달아 세 번이나 차지했지."
론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빅터 크룸 인형을 꺼내서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론은 빅터 크룸의 인형이 서성거리면서 돌아다니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 인형은 진짜 빅터 룸처럼 안짱다리였으며 등도 약간 굽어 있어서 빗자루를 타고 있을 때처럼 멋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혹시 캠프장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해리는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잠시 동안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아주 조용했다. 마침내 소동이 끝난 것일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무사할까? 제발 아무런 일도 없었으면 좋겠어."
헤르미온느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조지 형과 프레드 형과 지니는 다들 무사할 거야,"
론이 말했다.
"혹시 너희 아버지가 루시우스 말포이 씨를 체포하지 않을까? 너희 아버지는 항상 말포이 씨에 대해서 뭔가를 알아내고 싶다고 말씀하셨잖아."
해리가 빅터 크룸 인형이 떨어지는 낙엽을 피하기 위해 어깨를 약간 구부리는 걸 보며 말했다.
"제발 그렇게 됐으면... 그럼 드레이코 녀석의 얼굴에서 저 능글맞은 웃음이 싹 사라질 거야.."
론이 투덜거렸다.
"그런데 저 가엾은 머글들은 어떻게 됐을까? 만약 마법부 사람들이 머글들을 구출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하지?"
헤르미온느가 초조해 하자, 론이 헤르미온느를 안심시켰다.
"그런 일은 없을 거야.마법부 직원들은 반드시 그들을 구출할 거야."
"하지만 그건 정말 미친 짓이야! 마법부 직원들 전체가 이곳에 있는데, 함부로 그런 짓을 하다니! 이런 일을 저지르고도 무사히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혹시 술에 잔뜩 취해 있었던 걸까?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말을 멈추더니 어두운 숲속으로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해리와 론도 얼른 그 곳을 쳐다보았다. 어떤 사람이 비틀거리면서 그들이 있는 공터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불규칙한 발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당장이라도 어떤 사람이 어둑어둑한 나무 뒤에서 불쑥 고개를 내밀 것만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발소리가 뚝 멈췄다.
"누구세요?"
해리가 외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해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조심스럽게 나무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너무나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분명히 저 너머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기 누구세요?"
해리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아주 낯선 목소리... 하지만 그것은 겁에 질린 비명이 아니라 주문을 외우는 소리였다.
"모스모드레!"
짙은 어둠을 뚫고 커다란 초록빛 물체가 하늘 높이 날아을랐다.
"아니? 저건 도대체..."
깜짝 놀란 론은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 물체가 나타났던 곳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잠시 동안 해리는 레프러칸 요정들이 또 다른 작품을 만들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형상은 아주 끔찍한 것이었다. 거대한 해골... 섬뜩한 해골이 뱀처럼 가느다란 혓바닥을 쑥 내밀고 초록빛 광채를 뿌리면서 어두운 밤하늘에 둥둥 떠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쳐다보기만 해도 온몸에 소름이 오싹 끼칠 정도로 끔찍했다.
갑자기 사방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나왔다. 네온사인처럼 창백하게 빛나는 해골은 이제 숲 전체를 비출 정도로 하늘 높이 올라가 있었다. 그 해골은 마치 새로운 별자리라도 되는 것처럼 어두운 밤하늘에 자리잡고 있었다. 도대체 마법을 써서 그 해골을 쏘아 올린 사람은 누구일까? 해리는 조심스럽게 어둠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누구세요?"
해리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던 나무 근처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해리, 어서 가자!"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해리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왜 그래?"
헤르미온느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어둠의 표식이야, 해리! 그 사람의 징조!"
헤르미온느가 나지막이 신음 소리를 내면서 말했다.
"설마? 볼드모트?"
"해리, 서둘러!"
헤르미온느가 다급한 목소리로 재촉했다. 론도 허둥지둥 빅터 크룸 인형을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들이 막 걸음을 옮기는 순간, 연달아 뽕뽕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수십 명의 마법사들이 나타났다. 해리는 홱 돌아보았다. 스무 명 가량의 마법사들이 요술지팡이를 들고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겨냥하고 있었다.
"피해!"
해리는 다급하게 소리치면서 론과 헤르미온느를 끌어안고 땅바닥으로 급히 숙였다.
'스투페파이!"
스무 명의 마법사들이 한꺼번에 큰 소리로 외쳤다. 갑자기 섬광이 번쩍 하더니 거센 바람이 불면서 머리카락이 마구 휘날렸다. 해리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마법사들의 요술지팡이에서 나온 빨간 불꽃이 해리 쪽으로 날아오다가 서로 엇갈려서 나무에 부딪히고는 다시 어둠 속으로 날아가는 게 보였다.
"그만두시오!" 갑자기 해리의 귀에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만두시오! 재는 내 아들이오!"
거센 바람이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해리는 조금 더 고개를 들었다. 그들 앞에 있던 마법사들이 서서히 요술지팡이를 내리고 있었다. 위즐리씨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론! 해리!" 위즐리씨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헤르미온느! 괜찮니?"
"비키게, 아서,"
갑자기 차갑고 무뚝뚝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법부 직원들을 대동한 크라우치가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해리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크라우치의 얼굴이 분노로 무섭게 일그러 일그러져 있었다.
"어떤 놈이냐?" 크라우치가 사나운 눈길로 그들을 노려보면서 소리쳤다. "도대체 어떤 놈이 어둠의 표식을 불러냈어?"
"우리가 한 게 아니에요!"
해리가 손가락으로 해골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맞아요. 우린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왜 우리를 공격했죠?"
론이 화가 나서 툴툴거리면서 팔꿈치를 문지르고 있었다.
"거짓말하지 마라! 너희들은 현장에서 발각되었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할 생각이냐?" 크라우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크라우치는 마치 미치광이처럼 부릅뜨고 요술지팡이로 론을 겨냥하고 있었다.
"바티... 재들은 아직 어린 아이들이에요. 절대로 그런 짓을 할 수가 없어요." 잠옷 위에 기다란 모직 가운을 걸친 마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둠의 표식이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봤니?' 위즐리 씨가 다급하게 물었다.
"저기예요... 헤르미온느가 조금 전에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던 곳을 가리켰다. "저 나무 뒤에 누군가가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뭐라고 주문을 외웠어요..."
"오, 저기 서 있었단 말이냐, 그들이?" 크라우치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을 듯이 두 눈을 부릅뜨며 헤르미온느를 노려보았다. 헤르미온느의 말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주문을 외웠다는 거냐? 그들이? 그런데 너는... 어둠의 표식을 어떻게 불러내는지 잘 알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러나 마법부 직원들 중에서는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가 그 해골을 불러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일제히 헤르미온느가 가리킨 방향을 향해 요술지팡이를 들어 올리고 어두운 숲을 힐끗힐끗 곁눈질하고 있었다.
"너무 늦었어요. 그들은 순간이동으로 달아났을 거예요."
모직 가운 차림의 마녀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수색꾼들이' 방금 숲속으로 들어갔으니까, 아직 그들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습니다..."
갈색 턱수염이 나 있는 마법사가 말했다. 그 사람은 바로 에이머스 디고리였다. 에이머스는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요술지팡이를 치켜든 채 공터를 가로질러 달려갔다.
"에이머스, 부디 조심하게 !"
다른 마법사들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경고했다. 헤르미온느는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케드릭의 아버지가 숲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그들은 에이머스가 소리치는 걸 들었다.
"잡았어요! 여기에 누군가가 있어요! 의식이 없어요! 그게... 그런데... 제기랄!"
"자네가 잡았단 말인가?" 크라우치가 전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누구야? 그게 누구야?"
나뭇가지가 딱 부러지는 소리,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성큼성큼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리더니 마침내 에이머스가 나타났다. 에이머스는 꼬마 집요정을 안고 있었다. 해리는 단번에 그 꼬마 집요정이 누구인지 알아차렸다. 그 요정은 바로 윙키였다!
에이머스가 꼬마 집요정을 땅바닥에 내려 놓자, 크라우치는 마치 얼어붙은 듯이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른 마법사들의 시선이 일제히 크라우치를 향하고 있었다. 크라우치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크라우치가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어떻게...‥
크라우치는 재빨리 에이머스를 지나서 윙키를 발견한 장소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소용없어요, 크라우치 씨," 에이머스가 크라우치를 보며 말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어요,"
하지만 크라우치는 에이머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한참 동안이나 크라우치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덤불을 헤치는 소리가 들렸다.
"좀 곤란하게 됐군. 하필이면 바티 크라우치 씨의 꼬마 집요정이라니..."
에이머스는 못마땅한 듯이 윙키를 내려다 보았다.
"쓸데없는 말은 그만두게,에이머스.설마 정말로 이 요정이 그런 짓을 했다곤 생각하지 않겠지? 저 어둠의 표식은 어떤 마법사의 상징이라네, 그건 반드시 요술지팡이가 있어야만 해."
위즐리 씨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 요정은 요술지팡이를 갖고 있어," 에이머스가 고개를 끄덕 이면서 대답했다.
"뭐라구?'
위즐리 씨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걸 보게," 에이머스가 한 손에 들고 있던 요술지팡이를 위즐리 씨에게 내밀면서 말했다. "꼬마 집요정은 이걸 들고 있었어, 크라우치 씨의 꼬마 집요정은 '요술지팡이 사용 규범' 세 번째 조항도 어겼어. '인간이 아닌 생물은 요술지팡이를 휴대하거나 사용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조항 말이야."
바로 그 순간 뽕 하는 소리가 나더니 루도 베그만의 모습이 불쑥 나타났다. 루도 베그만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허공에 떠 있는 초록색 해골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직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의 표식이야!" 루도 베그만이 윙키를 거의 밟다시피 하면서 다른 마법사들에게 소리쳤다. "누가 그랬지? 놈을 잡았나? 바티!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크라우치가 아무것도 찾지 못한 채 돌아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유령처럼 창백했고 손은 마치 경련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어디에 있었어요, 바티? 경기장에는 왜 오지 않았어요? 꼬마 집요정이 자리를 맡아 두고 있는 걸 봤는데... 이런! 이게 뭐야?" 베그만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윙키를 발견하곤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 꼬마 집요정이 왜 여기에 있는 거죠?"
"좀 바빴네, 루도." 크라우치의 얼굴은 여전히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요정은 기절한 것이라네." "기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 누가 꼬마 집요정을 공격했단 말인가요?"
갑자기 베그만의 둥근 얼굴에 무엇인가를 이해한 듯한 기미가 엿보였다. 베그만은 고개를 들고 어두운 밤하늘에 떠 있는 해골을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에 잠시 윙키를 바라보다가 다시 크라우치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세상에!" 베그만의 얼굴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윙키가 어둠의 표식을 불러냈단 말인가? 꼬마 집요정이? 요술지팡이도 없는데?"
"아니. 꼬마 집요정은 요술지팡이를 갖고 있었다네, 루도." 에이머스가 베그만을 쳐다보았다. 꼬마 집요정은 분명히 요술지팡이를 들고 있었어. 내가 직접 발견했다네. 크라우치 씨, 죄송하지만 꼬마 집요정이 뭐라고 말하는지 한 번 들어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크라우치는 에이머스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지만, 에이머스는 크라우치의 침묵을 무언의 동의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에이머스는 자신의 요술지팡이를 들어올리더니 윙키를 겨냥했다.
"에네르바테"
에이머스가 주문을 외우자 윙키의 몸이 조금 움찔했다. 커다란 갈색 눈이 몇 번 깜박거렸다. 마법사들은 조용히 윙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꼬마 집요정은 비틀거리면서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는, 부들부들 떨면서 에이머스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조금 더 고개를 들더니 어두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꼬마 집요정의 흐리멍텅한 갈색 눈동자에 거대한 해골의 영상이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갑자기 꼬마 집요정이 울음을 터뜨렸다.
"꼬마 집요정! 내가 누군지 알겠나? 나는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의 직원이야!"
에이머스가 사납게 말했다. 윙키는 갑자기 숨쉬기가 곤란한지 몸을 앞뒤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해리는 도비의 모습이 떠올랐다. 주인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을 때, 도비 역시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전에 누군가가 어둠의 표식을 불러냈다! 네가 본 것처럼... 그런데 네가 바로 그 밑에서 발견됐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7"
에이머스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전... 하지 않았어요! 저는 어떻게 하는지 몰라요!"
위키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변명했다.
"너는 이 요술지팡이를 들고 있었어!"
에이머스가 윙키가 들고 있던 요술지팡이를 마구 휘두르면서 호통쳤다. 해골에서 흘러나온 초록색 불빛이 은은하게 사방을 비추었다. 해리는 단번에 그 요술지팡이를 알아보았다.
"어? 그건 제 요술지팡이예요!" 해리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공터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해리를 바라보았다.
"뭐라구?"
에이머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제 요술지팡이예요! 제가 그걸 떨어뜨렸어요!" "네가 이걸 떨어뜨렸다구? 어둠의 표식을 불러낸 후에 이 요술지팡이를 던져 버렸니? 지금 네가 한 일을 고백하는 거야?"
에이머스가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물었다.
"에이머스, 제발 이성을 되찾도록 하게! 해리 포터가 어둠의 표식을 불러내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위즐리 씨가 버럭 화를 내었다.
"어... 그야 물론 아니지. 미안하네... 내가 잠깐 정신이 어떻게..."
에이머스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걸 저기에 떨어뜨리진 않았어요." 해리는 손가락으로 해골이 솟아오른 숲속을 가리켰다. "숲속으로 들어오자 마자 잃어버렸어요."
"그렇다면..." 에이머스는 무서운 눈길로 윙키를 노려보았다. 잔뜩 겁에 질린 윙키는 바들바들 떨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꼬맹이! 네가 이걸 발견했지? 이 요술지팡이를 가지고 장난칠 생각이었지, 그렇지?"
"저는 절대로 마법을 부리지 않았어요!" 윙키가 울먹이며 말했다. 뜨거운 눈물이 꼬마 집요정의 두 뺨을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전... 전... 전... 조금 전에 그 요술지팡이를 집어 들었어요 그 요술지팡이는 숲속에 떨어져 있었어요. 저는... 어둠의 표식을 만들지 않았어요 저는...그런 마법을 몰라요!"
"꼬마 집요정이 그런 게 아니에요!" 지금까지 잠자코 있던 헤르미온느가 갑자기 나섰다. 마법부 직원들의 시선이 일제히 헤르미온느에게 향하는 바람에 그녀는 약간 주눅이 든 것 같았지만, 언제나처럼 아주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윙키의 목소리는 아주 높고 가늘어요. 조금 전에 우리는 어떤 사람이 어둠의 표식을 불러내는 주문을 외우는 소리를 들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의 목소리는 훨씬 더 굵고 낮았어요!" 헤르미온느는 도움을 청하기 위해 해리와 론을 바라보았다. "윙키의 목소리는 분명히 아니었지? 안 그래?"
"맞아요. 윙키의 목소리는 절대로 아니었어요,"
해리가 대답했다.
"글쎄... 그건 곧 알게 되겠지." 에이머스는 그들의 말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제일 마지막으로 요술지팡이를 사용해서 무슨 마법을 부렸는지 알아낼 수 있는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지. 꼬맹이! 그 사실을 알고 있기나 해?"
꼬마 집요정은 부들부들 떨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기다란 윙키의 귀가 깃발처럼 펄럭거리고 있었다. 에이머스는 자신의 요술지팡이와 해리의 요술지팡이를 가슴 높이까지 들어올리더니 끝과 끝을 맞추었다.
"프리오르 인칸타토!"
에이머스가 큰 소리로 외우자, 두 개의 요술지팡이가 맞닿은 지점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갑자기 뱀 같은 혓바닥을 가진 해골이 나타났다. 헤르미온느는 겁에 질려 숨이 탁 막혔다. 하지만 그것은 어두운 밤하늘에 떠있는 초록빛 해골의 허깨비에 불과했다.
'델레트리우스!"
에이머스가 다시 주문을 외우자,해골이 점차 흐릿하게 변하더니 한줌 연기로 사라졌다.
"봤어?"
에이머스가 득의 양양한 얼굴로, 여전히 발작적으로 떨고 있는 윙키를 사납게 노려보았다.
"저는 하지 않았어요!" 꼬마 집요정이 눈알을 굴리면서 황급히 말했다. "저는 아니에요! 저는 아니에요! 저는 몰라요! 저는 좋은 요정이에요! 저는 요술지팡이를 쓰지 않았어요! 저는 몰라요!"
"꼬맹이! 너는 현행범으로 붙잡혔어!" 에이머스가 고함을 질렀다. "이 요술지팡이는 네가 들고 있었어!"
"제발 에이머스... 그게 아니야... 그 주문은 극소수의 마법사들만이 알고 있다네... 꼬마 집요정이 어떻게 그런 마법을 알 수 있겠나?"
위즐리 씨가 말했다.
"혹시... 크라우치가 에이머스를 노려 보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에이머스, 자네는 내가 정기적으로 꼬마 집요정들에게 어둠의 표식을 불러내는 마법을 가르쳤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
잠시 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크라우치 씨는...전혀 그럴 분이 아니죠..."
에이머스 디고리가 말꼬리를 흐렸다.
"자네는 지금 엉뚱한 사람을 의심하고 있네! 처음엔 해리포터! 다음엔 나를...자네도 이미 저 애들의 증언을 듣지 않았나, 에이머스?"
크라우치가 고함을 질렀다.
"물론이죠,'
에이머스는 몹시 당황한 것 같았다.
"게다가 자네는 내 경력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어둠의 마법뿐만 아니라 그것을 행하는 사람들까지도 경멸하고 혐오한다네,"
크라우치가 또다시 눈을 부릅뜨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크라우치 씨, 전... 전 당신이 이 일과 관계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어요!"
에이머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내 집요정을 의심하는 건, 나를 의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네, 디고리! 그 꼬마 집요정이 어둠의 표식을 불러내는 마법을 나 아니면 어디에서 배울 수 있었겠나?"
크라우치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닙니다... 꼬마 집요정이... 그 요술지팡이를 주웠을 수도 있죠."
"그래, 에이머스. 꼬마 집요정은 그 요술지팡이를 주운거야... 윙키?" 위즐리 씨가 윙키를 향해 돌아서면서 상냥하게 말했다. 하지만 꼬마 집요정은 마치 위즐리 씨가 버럭 소리라도 지른 것처럼 움찔거렸다. "해리의 요술지팡이를 어디에서 발견했지?"
윙키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수건을 마구 비틀고 있었다. 어찌나 심하게 비틀었던지 토가처럼 생긴 수건의 가장자리가 거의 해질 지경이었다.
"저는... 그 요술지팡이를... 숲속에서 발견했어요... 저기에서..."
"들었나, 에이머스? 어둠의 표적을 불러낸 자는 일을 마친 후에 순간이동으로 재빨리 달아났어. 해리의 요술지팡이만 남기고... 그건 아주 영리한 행동이었지. 자기 요술지팡이를 사용하면 정체가 탄로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지. 그 후에 공교롭게도 윙키가 우연히 그 요술지팡이를 발견한 거야."
위즐리 씨가 차분히 설명했다.
"그렇다면 저 꼬마 집요정은 범인 가까이에 있었을 거야!"
에이머스가 조바심을 내면서 소리쳤다. "꼬맹이, 누굴 본 거야?"
잔뜩 겁에 질린 윙키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꼬마 집요정은 불안한 듯이 커다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에이머스와 베그만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보았다. 꼬마 집요정의 눈길이 다시 크라우치에게 향했다.
"저는 아무도 보지 못했어요... 아무도..."
꼬마 집요정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에이머스!" 크라우치 씨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자네는 당연히 자네 부서로 윙키를 데려가서 심문하고 싶겠지. 하지만 그 꼬마 집요정을 다루는 건 내게 맡겨 주었으면 좋겠네."
에이머스는 이런 제안이 전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크라우치는 마법부의 요직에 있었기 때문에 에이머스는 감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윙키는 분명히 무거운 벌을 받게 될 테니 그 점은 걱정하지 말게."
크라우치가 냉정하게 덧붙였다.
"주... 주... 주인님..." 윙키는 말을 더듬으면서 애처로운 눈길로 크라우치를 올려다보았다. "주인님, 제... 제...발..." 윙키의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고였다.
"윙키! 오늘 밤에 넌 내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행동을 했어." 크라우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난 분명히 너에게 텐트에 있으라고 명령했어. 모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텐트에서 나오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넌 내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어. 나는 네게 옷을 줄 수밖에 없다!"
크라우치는 한층 더 날카로운 눈빛으로 꼬마 집요정을 노려보았다. 연민의 정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차가운 눈빛이었다. "안돼요! 주인님! 옷은 안 돼요! 옷만은 제발 안 돼요!"
해리는 꼬마 집요정에게 옷을 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윙키를 해고한다는 뜻이다. 윙키가 수건을 꼭 움켜쥐고 크라우치의 발 밑에서 흐느끼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꼬마 집요정은 겁에 질려 있었어요!" 갑자기 헤르미온느가 벌컥 화를 냈다.
"아저씨의 집요정은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걸 아주 무서워해요. 그런데 가면을 쓴 마법사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을 마구 허공으로 들어올렸어요. 그들을 피해 달아나려고 한 꼬마 집요정을 탓할 수는 없어요.!"
크라우치는 꼬마 집요정을 피해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크라우치는 마치 윙키가 번짝거리는 구두를 더럽히는 무슨 불결한 것이라도 되는 양 냉정한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내 말에 복종하지 않는 꼬마 집요정 따윈 필요없다."
크라우치가 헤르미온느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인과 주인의 명예에 해를 입히는 꼬마 집요정 따위는 조금도 필요 없단 말이다."
윙키는 여전히 구슬프게 흐느끼고 있었다. 얼마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저는 이만 아이들을 데리고 텐트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잠시 후에 위즐리 씨가 말했다. "에이머스, 우리는 이미 그 요술지팡이를... 철저히 조사했네. 이제 그만 해리에게 돌려주는 게..."
에이머스는 즉시 해리에게 요술지팡이를 내밀었다. 해리는 그 요술지팡이를 받아서 재빨리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자, 얘들아!"
위즐리 씨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헤르미온느는 꼼짝하지 않았다. 헤르미온느의 시선은 여전히 꼬마 집요정에게 가 있었다. 가엾은 꼬마 집요정은 어깨를 들썩이며 아직도 울고 있었다.
"헤르미온느!"
위즐리 씨가 재촉하자, 헤르미온느는 마지못해 돌아서더니 해리와 론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윙키는 어떻게 될까요?"
공터에서 나오자마자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그건 나도 잘 모르겠구나."
위즐리 씨는 천천히 머리를 흔들었다.
"꼬마 집요정을 함부로 취급하다니..." 헤르미온느가 벌컥 화를 내면서 말했다. "디고리 씨는 말끝마다 '꼬맹이' 라고 불렀어요... 그리고 크라우치 씨도 정말 너무해요! 꼬마 집요정은 아무런 죄도 없어요. 크라우치 씨는 꼬마 집요정의 짓이 아니라는 걸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해고하려 하잖아요! 크라우치 씨는 그 꼬마 집요정이 얼마나 겁에 질려있었는지, 얼마나 당황했는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있어요. 꼬마 집요정을 인간취급도 하지 않았다구요!"
"꼬마 집요정은 인간이 아니잖아."
론이 말했다.
"하지만 그 꼬마 집요정은 감정을 갖고 있어, 론. 그런 식으로 대한다는 건 말도 안 돼!"
헤르미온느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론을 비난했다.
"헤르미온느, 나도 너와 같은 생각이란다. 하지만 지금은 꼬마 집요정의 권리에 대해 왈가왈부할 때가 아니야. 우리는 빨리 텐트로 돌아가야 한단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됐니?"
위즐리 씨가 물었다.
"우린 어둠 속에서 그만 헤어지고 말았어요. 그런데 아빠, 왜 사람들이 모두 저 해골을 그토록 불안해하는 거죠?"
론이 묻자, 위즐리 씨의 얼굴에는 착잡한 표정이 떠올랐다.
"일단 텐트로 돌아간 후에 설명해 주마."
그러나 숲 가장자리에 도착하자, 그들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수많은 마녀와 마법사들이 겁에 질린 얼굴로 모여 있다가, 그들을 보자 앞으로 몰려들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죠?"
"누가 그걸 불러냈소?"
"아서, 혹시...그 사람은 아니겠죠?"
"물론 그 사람은 아닙니다." 위즐리 씨가 조바심을 내면서 말했다. "우리도 누가 범인인지 몰라요. 그자는 순간이동으로 달아났어요. 자, 실례합니다. 제발...우리는 잠을 좀 자고 싶어요."
위즐리 씨는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데리고 다시 캠프장으로 걸어갔다. 캠프장에는 무거운 정적이 감돌고 있었다. 가면을 쓴 마법사들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불에 잔뜩 그을린 텐트 몇 채에서 여전히 회색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빠, 무슨 일이에요? 프레드와 조지와 지니는 조금 전에 돌아왔어요.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찰리가 텐트 밖으로 고개를 불쑥 내밀었다.
"함께 왔단다."
위즐리 씨가 허리를 굽혀 텐트 안으로 들어갔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도 재빨리 뒤를 따라 들어갔다.
빌은 작은 식탁에 앉아 있었다. 팔에는 침대 시트를 감고 있었는데, 붉은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찰리의 셔츠는 엉망으로 찢겨 나갔으며, 퍼시는 코피를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퍼시는 자랑스러운 듯이 코피를 닦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프레드와 조지와 지니는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지만, 굉장히 놀란 것 같았다.
"어둠의 표식을 쏘아 올린 사람들을 잡았어요, 아빠?" 빌이 급히 물었다.
"아니야. 바티 크라우치 씨의 꼬마 집요정이 해리의 요술지팡이를 들고 있는 걸 발견하긴 했지만, 누가 어둠의 표식을 불러냈는지는 전혀 모른단다."
"그게 무슨 말이죠?"
빌과 찰리와 퍼시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해리의 요술지팡이?"
프레드가 놀라서 물었다.
"이 사건에 크라우치 씨의 꼬마 집요정이 관련되어 있나요?"
퍼시도 깜짝 놀라면서 소리쳤다. 위즐리 씨는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의 도움을 받으면서, 어둠의 표식이 나타난 사건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크라우치 씨가 그런 요정을 해고하는 건 당연해! 그 꼬마 집요정은 크라우치 씨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달아났잖아... 크라우치 씨의 입장이 얼마나 곤란했을까? 마법부 직원들도 다 지켜보고 있는데... 만약 그 꼬마 집요정이 신비한 동물 단속 및 관리부로 끌려갔다면..."
퍼시는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
"그 요정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그저 우연히 그 장소에 있었던 것뿐이라구!" 헤르미온느가 퍼시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소리치자, 퍼시는 깜짝 놀랐다. 헤르미온느와 퍼시는 그래도 사이가 좋은 편이었다. 적어도 다른 아이들보다는...
"헤르미온느, 크라우치 씨 정도의 지위에 있는 마법사는 요술지팡이를 가지고 미친 듯이 날뛰는 꼬마 집요정에 신경을 쓸 틈이 없단 말이야."
퍼시가 즉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요정은 미친 듯이 날뛰지 않았어! 그저 우연히 요술지팡이를 발견했을 뿐이란 말이야!"
헤르미온느가 거칠게 소리쳤다.
"그런데 그 해골은 도대체 뭘 의미하는 거야? 그게 아무도 다치게 하지는 않았잖아... 그런데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 거지?"
론이 물었다.
"이미 말했잖아! 그건 그 사람의 상징이라구, 론! <어둠의 마법의 번영과 몰락>이라는 책에 나와 있어"
다른 사람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헤르미온느가 딱 잘라서 말했다.
"그리고 그건 지난 13년 동안 우리의 눈에 띈 적이 없었단다. 사람들이 몹시 걱정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야... 그것은 그 사람이 다시 돌아온 것을 의미하니까..."
위즐리 씨가 신중하게 말했다.
"하지만 저는 이해할 수가 없어요. 그건... 그저 하늘에 떠있는 형상일 뿐이잖아요..."
론이 눈살을 찌푸렸다.
"론, 그 사람과 그의 추종자들은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하늘에 어둠의 표식을 쏘아 올렸단다." 위즐리 씨가 말했다. "그건 사람들에게 엄청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지... 너는 모른다, 론. 그런 걸 이해하기엔 아직 나이가 너무 어려... 한번 상상해 보렴. 외출을 했다가 집으로 돌아왔는데, 허공에 어둠의 표식이 떠돌고 있는 거야. 그 순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을 때의 기분이란..." 위즐리 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었단다... 가장 끔찍한 것이었지..."
잠시 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어쨌거나 그건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어요. 누가 그걸 불러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은 그걸 본 순가, 깜짝 놀라서 모두들 뿔뿔이 달아나고 말았어요. 우리는 겨우 그들의 가면을 벗길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곳까지 접근했지만 죽음을 먹는 자들은 순간이동으로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어요. 우리는 로버트 가족이 땅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무사히 구출할 수 있었죠. 마법부 직원들은 지금 그들에게 기억력 수정 마법을 걸고 있어요."
빌이 팔을 감싼 시트를 살짝 걷어 상처를 살피면서 말했다.
"죽음을 먹는 자들이라니? 그게 뭐예요?"
해리가 물었다.
"그건 그 사람의 추종자들이야." 빌이 상처를 다독거리면서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는 오늘 밤에 그들 가운데 일부를 본 것 같아요, 아빠. 용케 마법부의 추적을 피해서 아즈카반에 갇히지 않았던 사람들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이 죽음을 먹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입증할 수가 없단다, 빌. 설사 그 말이 사실이라고 해도..."
위즐리 씨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맞아요. 저도 장담할 수 있어요! 아빠, 우리는 숲속에서 드레이코 말포이를 만났어요. 그 애의 아버지도 가면을 쓰고 있던 사람들 중에 한 명이라고 분명히 자기 입으로 그랬어요. 더구나 말포이 가족이 그 사람들과 친밀하게 지낸다는 건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사실이잖아요!"
론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볼드모트의 추종자들이..." 해리가 말을 꺼내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어깨를 움찔했다. 왜냐하면 마법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런 것처럼, 위즐리 가족 역시 볼드모트의 이름을 직접 말하는 것을 피했기 때문이다.
"미안해요." 해리가 얼른 말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추종자들이 무슨 일을 꾸미고 있는 거죠? 왜 머글들을 묶어 놓은 거죠? 도대체 그들의 목적이 무엇일까요?"
"목적?" 위즐리 씨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해리, 그들은 그저 재미로 그런 짓을 한 거란다. 그 사람의 힘이 아주 강력했을 때, 그들은 그저 재미로 수많은 머글들을 살해했단다. 목숨을 빼앗긴 머글의 절반 가량은 그런 식으로 억울하게 죽었지. 오늘밤에 술이 좀 들어가자, 그들은 자신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에게 알려 주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던 것 같구나. 그들은 아주 멋진 재회를 즐긴 거야."
위즐리 씨가 분노를 억누르면서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그들이 죽음을 먹는 자들이었다면, 왜 어둠의 표식을 보자마자 순간이동으로 부리나케 사라진 거죠? 오히려 그들은 표식을 보는 순간, 아주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안 그래요?"
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를 좀 써라, 론. 그들이 정말로 죽음을 먹는 자들이었다면, 당연히 달아날 수밖에 없었을 거야. 그 사람이 권력을 잃었을 때, 그들은 아즈카반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줄줄이 거짓말을 늘어놓았지. 사람들을 죽이고 고문한 것도 모두 다 그 사람의 강압 때문에 억지로 한 거라고 하면서 말야... 그러니 그들은 그 사람이 돌아온 걸 보고 우리보다도 더 잔뜩 겁에 질렸을 거야. 어쨌거나 그 사람이 모든 권력을 잃어버리자, 그들은 그 사람 편에 붙어있었다는 사실을 철저히 부인하면서 태연하게 일상생활로 돌아갔단 말이야... 그러니까 그 사람이 그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건 너무나 뻔한 사실이야. 안 그래?"
빌이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까... 어둠의 표식을 불러낸 사람은...죽음을 먹는 자들을 멀리 쫓아 버리려고 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려고 했다는 건가요?"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바로 그거란다, 헤르미온느." 위즐리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먼저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어둠의 표식을 불러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오직 죽음을 먹는 자들뿐이란다. 그러니까 어둠의 표식을 쏘아 올린 사람이 지금은 비록 죽음을 먹는 자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과거에는 그 무리 속에 있었던 게 분명하단다... 자, 시간이 너무 늦었구나.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네 엄마가 알면 무척 걱정할 거야. 다들 잠자리에 들거라. 내일 아침 일찍 포트키를 사용해서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자."
해리는 서둘러 이층 침대 속으로 들어갔다. 시계는 벌써 새벽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만약 평소라면 지칠 대로 지쳐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도 졸리지 않고 정신이 말똥말똥했다.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흘 전에(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았지만, 고작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다) 해리는 무서운 악몽을 꾸고 소스라치게 놀라서 벌떡 일어났었다. 이마의 흉터가 타 들어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그리고 오늘 밤에 다시 어둠의 표식이 나타났다. 무려 13년 만에 볼드모트의 상징이 부활한 것이다. 이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래. 프리벳 가를 떠나기 전에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냈지... 시리우스는 그 편지를 받았을까? 과연 답장을 보낼까? 해리는 텐트의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도저히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머리 속이 너무나 복잡했다. 찰리가 드르렁거리면서 코를 고는 소리가 들렸다. 한참 후에야 해리를 겨우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