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베그만과 크라우치
해리는 론을 밀치면서 벌떡 일어났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짙은 안개가 자욱이 깔려 있는 황량한 들판이었다. 성미가 까다로워 보이는 마법사 두 명이 그들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한 명은 커다란 황금시계를 들고 있었으며, 또 다른 한 명은 두꺼운 양피지 두루마리와 깃펜을 들고 있었다.
두 사람은 몹시 지쳐보였다. 그들은 머글들처럼 옷을 입긴 했지만 차림새가 영 엉망이었다. 황금시계를 들고 있는 사람은 털이 숭숭한 트위드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맑은 날인데도 불구하고 넓적다리까지 올라오는 오버슈즈(비올 때 방수용으로 구두 위에 신는 덧신: 역주)를 신고 있었다. 또한 그의 동료는 엉뚱하게도 킬트(스코틀랜드 고지의 남자나 군인이 입는 치마로, 체크무늬에 세로 주름이 잡혀 있음: 역주)를 두르고 판초(남미 원주민이 입는 일종의 외투: 역주)를 걸치고 있었다.
"안녕하시오, 베이질."
위즐리 씨가 반갑게 인사하면서 킬트를 입고 있는 마법사에게 낡은 부츠를 내밀었다. 그 마법사는 부츠를 받아들더니 커다란 상자 속으로 집어던졌다. 이미 사용한 포트키들을 넣어 두는 상자 속에는 낡은 신문이나 음료수 깡통, 바람이 빠진 축구공과 같은 온갖 잡동사니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안녕하시오, 아서." 베이질이 지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직이 아닌가 보구려? 어떤 사람은 좋겠수... 우린 밤새도록 여기서 대기하고 있었다오... 그런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그 자리에서 얼른 비켜서는 게 좋을 거요. 블랙 포리스트에서 출발한 대부대가 5시 15분에 도착할 예정이니까... 잠깐만 기다리시오. 당신의 캠프장을 찾아 주리다... 위즐리... 위즐리..." 베이질이 양피지 목록을 훑어보면서 중얼거렸다. "저쪽으로 400미터 가량을 걸어가면 제 1캠프장이 있을 거요. 캠프장 관리인은 로버트라는 사람이오. 디고리... 제2캠프장... 페인 씨를 만나서 물어보시오."
"고맙소, 베이질."
위즐리 씨는 다정한 눈길로 아이들을 쳐다보더니 어서 따라 오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자욱한 안개 때문에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할 수조차 없는 황무지를 헤치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20분 가량 걸어가자, 캠프장 입구가 보이기 시작했다. 해리는 돌로 만든 작은 오두막을 볼 수 있었다. 어둑어둑한 숲 너머로 고래를 돌리자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드넓은 캠프장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캠프장에는 벌써 수백 개의 텐트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들은 에이머스와 케드릭에게 손을 흔들면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천천히 오두막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떤 남자가 오두막 문간에 기대서서 캠프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해리는 단번에 그 남자가 머글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득 그 남자가 고개를 돌리더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다가오는 발소리를 들었던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위즐리 씨가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하시오."
캠프장을 관리하는 머글이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혹시 로버트 씨인가요?"
"그렇소.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로버트가 사무적인 태도로 반문했다.
"위즐리라고 합니다. 이틀 전에 텐트 두 개를 예약했는데요..."
"확인해 보겠소." 로버트가 문간에 붙어 있는 예약자 명단을 훑어보면서 말했다. "저기 보이는 나무를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면 자리가 있을 거요. 오늘 하루만 예약한 거죠?"
"그렇습니다."
위즐리 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은 지금 내겠소?"
로버트가 위즐리 씨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네... 물론이죠." 위즐리 씨가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위즐리 씨는 오두막에서 조금 물러나더니 해리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 "나를 좀 도와 다오, 해리" 위즐리 씨는 주머니를 뒤지더니 머글들이 사용하는 돈을 꺼냈다. 머글들의 지폐가 돌돌 말려 있었다. 위즐리 씨는 지폐를 한 장씩 떼어 내면서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이건... 어... 어... 10이니? 아 그래! 이제 그 위에 적혀 있는 숫자들이 뭔지 알겠구나... 그러니까 이건 5?"
"20이에요."
해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바로잡아 주었다. 캠프장 관리인 로버트는 그들이 나누는 말을 엿듣기 위해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아, 그래. 그렇지... 나는 잘 모르겠다. 이 작은 종이들이..."
"외국인이오?"
위즐리 씨가 지불하기 위해 돈을 챙겨서 돌아오자 로버트가 궁금하다는 듯이 질문을 던졌다.
"외국인이라뇨?"
위즐리 씨는 약간 당황해하면서 반문했다.
"당신만 제대로 돈을 세지 못했던 게 아니라오." 로버트가 의아스러운 눈길로 위즐리 씨를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대답했다. "글쎄 10분 전에는 두 사람이 찾아와서 황금 동전을 내려고 하지 않겠소? 그 동전은 자동차 핸들만큼이나 커다란 것이었다오."
"그래요?"
위즐리 씨는 초조한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지금처럼 캠프장이 북새통을 이룬 적도 없었소.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다니... "잔돈을 넣어두는 깡통을 뒤적거리던 로버트가 다시 캠프장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캠프장에는 여전히 안개가 잔뜩 끼어 있었다. "예약이 무려 수백 건이나 된다오.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서는..."
"맞습니까?"
위즐리 씨는 거스름돈을 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로버트는 거스름돈을 주지 않았다.
"아." 로버트는 잠시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왔다오. 외국인들도 많고... 그런데 그냥 외국인이 아니라, 좀 이상한 사람들이었소. 킬트와 판초를 입고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소."
"그러면 안 되는 건가요?"
위즐리 씨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 아니지만... 꼭 무슨... 나도 잘 모르겠소... 대규모 집회라도 열리는 것 같소." 로버트가 얼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마치 서로를 잘 알고 있는 것 같았소... 무슨 축제라도 열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로 그때 헐렁한 반바지를 입은 마법사가 뿅 하고 나타났다.
"오블리비아테!"
오두막 현관 앞에 갑자기 나타난 마법사가 요술지팡이로 로버트를 겨냥하면서 날카롭게 외쳤다. 로버트의 눈이 초점을 잃어버린 것처럼 멍하니 풀렸다. 로버트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마치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기억력이 수정된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었다.
"이건 캠프장 지도요." 로버트가 위즐리 씨에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이건 거스름돈이오."
"정말 고맙소."
위즐리 씨는 다시 손을 내밀어서 거스름돈을 받았다. 헐렁한 반바지를 입은 마법사는 그들과 함께 캠프장 입구까지 동행했다.
그 마법사는 지칠 대로 지친 것 같았다. 수염을 짧게 깎은 그의 턱은 파르스름한 빛이 감돌았으며 눈 밑에는 진한 보랏빛 그늘이 져 있었다. 로버트의 오두막에서 멀어지자, 그 마법사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저 사람 때문에 정말 골치가 아파서 죽을 지경이오. 저 사람의 의문을 풀어 주기 위해 하루에도 열 번씩이나 기억력 마법을 써야만 하니까... 그런데 루도 베그만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아요. 루도 베그만은 그저 블러저와 퀘이플에 대해 목청껏 떠들어대고만 있어요. 머글들에게 들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눈곱만큼도 없는 것 같아요. 제기랄! 어서 빨리 이 모든 게 끝났으면 좋겠소. 월드컵이 끝나면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 들 거요. 나중에 봅시다, 아서."
그 마법사는 다시 뿅 하고 사라졌다.
"베그만 씨는 마법 게임 및 스포츠부의 책임자잖아요?" 지니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우면서 물었다. "그렇다면 머글들이 있는 곳에서 블러저에 대해 말하는 게 별로 좋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을까요? 안 그래요?"
"물론 그렇겠지."위즐리 씨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캠프장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루도는 항상... 뭐라고 말하는 게 좋을까... 보안에 대해 엄격하지 못하단다. 하지만 그 사람처럼 열성적인 스포츠부 책임자도 드물 거야. 너희들도 알다시피 루도는 잉글랜드를 대표하는 퀴디치 팀의 선수였잖니? 더구나 루도는 웜본 와스프 팀 역사상 가장 훌륭한 몰이꾼이었다."
그들은 짙은 안개를 헤치면서 길게 늘어서 있는 텐트들 사이로 조심스럽게 걸어갔다. 얼핏 보기에는 대부분의 텐트가 아주 평범해 보였다. 텐트를 세운 마법사들은 확실히 머글들의 텐트처럼 보이기 위해 무척 애를 쓴 것 같았다.
하지만 해리의 눈에는 어색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어떤 텐트에는 엉뚱하게도 굴뚝이 세워져 있었으며 초인종을 울리는 줄이 매달려 있는 텐트도 있었다. 심지어 풍향계가 달려 있는 경우도 있었다. 여기저기에는 누가 보더라도 단번에 마법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텐트들이 수두룩하게 늘어서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로버트가 의심을 하는 것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캠프장 안으로 계속 들어가자, 줄무늬 비단 천으로 만든 작은 궁전 모양의 아주 호화롭고 정교한 텐트가 보였다. 그 텐트의 입구에는 몇 마리의 공작새까지 매어져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이상야릇한 텐트들이 계속 나타났다. 어떤 텐트는 무려 3층이나 되었는데, 꼭대기에는 작은 첨탑까지 세워져 있었다. 심지어 정원이 딸려 있는 텐트도 있었는데, 수반과 해시계와 분수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언제나 똑같군." 위즐리 씨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마법사들이 한 자리에 모이면 서로들 뽐내기 바쁘다니까... 아, 다 왔구나. 봐라, 이게 바로 우리의 캠프장이란다."
마침내 그들은 캠프장 꼭대기에 있는 숲 가장자리에 도착했다. 텅 빈 공터에 '위즐리'라고 적힌 작은 푯말이 땅에 박혀 있었다. 위즐리 씨는 만족스러운 듯이 미소를 지었다.
"여긴 정말 좋은 장소구나! 경기장은 바로 저 숲 맞은편에 있단다. 우리는 경기장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셈이야. "위즐리 씨는 어깨에 둘러메고 있던 배낭을 내려놓으면서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았어! 한데 분명히 말하지만 마법을 쓸 수는 없다. 우리가 한꺼번에 머글 땅으로 나와 있을 때에는 절대로 안 된다. 그러니까 우리 손으로 직접 텐트를 설치해야 한단다! 하지만 그다지 어렵지는 않을 거야... 머글들은 늘 그렇게 하니까 말이야... 자, 해리. 그런데 텐트를 설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해리는 지금까지 켐프에 참가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더즐리 가족은 휴가를 갈 때마다 절대로 해리를 데려가지 않았다. 그들은 언제나 이웃집 피그 할머니에게 해리를 맡기고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러나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그럭저럭 풀대와 말뚝을 제자리에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위즐리 씨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만 되었다. 나무망치를 사용해서 팩을 박아야 할 순간이 되자, 극도로 흥분해서 일을 망쳐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초라한 이인용 텐트 두 개만 간신히 설치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모두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자신들이 손수 만든 작품을 감탄하며 바라보았다. 해리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 엉성한 텐트를 보고 우리가 마법사라고 의심할 머글은 아무도 없을 거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텐트는 너무 작았다. 잠시 후에 빌과 찰리와 퍼시가 도착하면 인원은 모두 열 명이 될 것이다. 하지만 텐트는 고작해야 네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도 이런 문제점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헤르미온느는 위즐리 씨가 첫 번째 텐트 안으로 들어가자 힐끗 해리를 쳐다보면서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좀 비좁겠구나." 위즐리 씨가 외쳤다. "하지만 겨우 잘 수는 있을 것 같은데... 안으로 들어와서 한번 구경하렴."
고개를 숙이고 텐트 안으로 들어간 해리는 그만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안에는 초라한 텐트가 아니라 욕실과 주방까지 완벽하게 갖추어진 고풍스러운 아파트가 아닌가. 게다가 방이 세 개나 되었다.
해리는 두리번거리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이상한 점 을 발견했다. 그 안에는 피그 할머니의 가구와 정확히 똑같은 종류의 기구가 놓여 있었다. 텐트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의자들 위에는 크로셰 뜨개질로 뜬 커버가 덮여 있었고, 고양이 냄새도 희미하게 풍기고 있었다.
"그렇게 오래 쓸 건 아니니까..." 위즐리 끼는 벗겨진 머리를 손수건으로 문지르면서 침실에 놓여 있는 네 개의 이층침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이 사수들은 퍼킨스가 빌려준 거란다. 퍼킨스는 이제 더 이상 야영을 할 수가 없어. 가엾은 친구 같으니라구... 허리가 많이 아프거든." 위즐리 씨는 먼지투성이의 주전자를 집어 들었다. "물이 필요하겠구나..."
"머글이 준 지도에 수돗가가 표시되어 있어요." 해리를 따라 텐트 속으로 들어온 론이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론은 텐트 내무의 이상한 풍경을 보고도 전혀 놀란 것 같지 않았다. "그건 캠프장 맞은편에 있어요."
"네가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데리고 가서 물을 좀 받아 오겠니?" 위즐리 씨가 주전자와 냄비 두 개를 내밀면서 말을 이었다. "우린 불을 피울 나무를 좀 주워 올 테니."
"하지만 오븐이 있잖아요." 론이 아빠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냥 마법을 쓰면..."
"론, 말조심해라! 머글 안전 수칙을 지켜야지!" 위즐리 씨가 그런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밝게 웃으며 말했다. "머글은 캠프를 할 때, 야외에 모닥불을 피워서 밥을 한단다. 머글들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물을 떠오기 위해 텐트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잠시 여자들이 사용하게 될 텐트를 둘러보았다. 그것은 남자들이 사용하기로 한 텐트보다 약간 작긴 하지만 그 대신에 고양이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들은 주전자와 냄비를 들고 수돗가로 출발했다.
마침내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안개가 조금씩 걷히자 그들은 사방으로 길게 뻗어 있는 텐트촌의 광경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줄지어 늘어서 있는 텐트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갔다.
해리는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마녀와 마법사들이 갈고 있는지 비로소 실감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해리는 다른 나라 마법사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캠프장에서 야영을 하던 마법사들이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일어난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이 있는 가족이었다. 해리는 피라미드처럼 생긴 텐트에서 야영을 하고 있던 그 가족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해리가 아기 마법사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두 살도 채 되지 않은 듯한 작은 남자 아이가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요술지팡이를 들고 잔디밭에 있는 민달팽이 한 마리를 찌르고 있었다. 마법에 걸린 민달팽이는 살라미 소시지만큼이나 굵게 부풀어 올랐다.
"몇 번이나 말했니, 캐빈? 아빠의 요술지팡이는 절대로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 으이구!"
꼬마의 엄마가 허둥지둥 텐트 밖으로 나오면서 소리쳤다. 그러다가 그만 커다란 민달팽이를 발로 밟아서 툭 터뜨리고 말았다.
"엄마가 민달팽이를 밟아서 터뜨렸어! 엄마가 민달팽이를 밟았단 말이야!"
찢어질 듯한 꼬마의 울음소리와 엄마의 잔소리가 조용한 공기를 뒤흔들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캐빈과 비슷한 또래의 꼬마 마녀 두 명이 빗자루를 타고 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것은 이슬 맺힌 잔디를 살짝 스칠 정도로만 올라가는 장난감 빗자루였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저게 뭐람! 도대체 부모들은 아이들을 돌보진 않고 늦잠만 자고 있는 거야, 뭐야?
마법부에서 일하는 마법사가 투덜거리면서 지나갔다.
여기 저기 텐트에서 오른 마법사들이 나와 아침을 하기 시작했다. 어떤 마법사는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요술지팡이로 불을 붙이고 있었다. 불안한 표정으로 머글이 사용하는 성냥을 긋고 있는 마법사도 있었다. 정말로 불이 붙긴 붙을까?
아프리카에서 온 세 명의 마법사들은 모두들 하얀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그들은 심각한 대화를 나누면서 밝은 보랏빛 불에 토끼처럼 보이는 것을 굽고 있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텐트들 사이로 걸어가다가 금박과 은박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살렘 마녀 연구소>라는 현수막을 발견했다. 미국에서 온 중년 마녀들이 현수막 밑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즐겁게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퀴디치 월트컵을 관람하기 위해 찾아온 외국인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말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비록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해리는 사람들이 모두 굉장히 흥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 눈이 잘못된 거야? 아니면 세상이 온통 초록색으로 변한 거야?"
론이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면서 물었다. 하지만 론은 잘못 본 게 아니었다. 그 지역에 있는 텐트들은 온통 클로버(아일랜드의 국화: 역주)로 뒤덮여 있었다. 마치 이상한 모양의 산들이 땅바닥을 뚫고 솟아오른 것 같았다. 텐트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들을 쳐다보면서 씩 웃고 있었다.
"해리! 론! 헤르미온느!"
갑자기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서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핀도르 기숙사 4학년생인 시무스 피니간이 그들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그는 클로버로 뒤덮인 자기 텐트 앞에서 엄마임이 틀림없는 엷은 갈색 머리의 여자와, 역시 그리핀도르의 학생인 단짝 친구 딘 토마스와 함께 앉아 있었다.
"장식이 마음에 들어?"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가 가서 인사를 하자, 시무스 피니간이 씩 웃으면서 말했다. "하지만 마법부는 이런 장식을 싫어하는 것 같아."
"난 마법부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단다. 왜 우리의 색깔을 나타내면 안 된다는 거야?" 엷은 갈색 머리를 말아 올린 피니간 부인이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를 말똥말똥 쳐다보면서 말했다. "불가리아 사람들이 텐트 여기저기에 뭘 매달고 있는지 알고 있니? 너희들도 물론 아일랜드를 응원하겠지?"
"물론이죠."
그들은 진정으로 아일랜드를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피니간 부인에게 납득시킨 후에야 비로소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열광적으로 아일랜드를 응원하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였는데 달리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론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그런데 불가리아 사람들이 텐트에 매달았다는 게 뭘까?"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가 보자."
해리가 불가리아 국기-빨간색과 초록색과 하얀색 줄무늬가 있는-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는 지역을 가리켰다. 거기 텐트들은 하나같이, 짙고 까만 눈썹을 가진 아주 무뚝뚝한 얼굴이 있는 포스터를 붙이고 있었다. 그 사진도 물론 움직이고 있긴 했지만, 그저 눈을 깜박이거나 얼굴을 찌푸리는 게 다였다.
"크룸이야."
론이 말했다.
"뭐라구?"
헤르미온느가 물었다.
"크룸 말이야! 빅터 크룸, 불가리아의 수색꾼!"
"정말 심술궂게 생겼다."
자기에게 눈을 깜박이거나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수많은 크룸을 보며 헤르미온느가 말했다.
"심술궂게 생겼다구?" 론이 눈을 치켜떴다.
"어떻게 생겼든 그게 무슨 상관이니? 크룸은 정말 굉장한 선수야. 나이도 아주 젊은 편이지. 열여덟 살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거야. 좌우지간 크룸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어. 오늘 밤에 열리는 퀴디치 월트컵을 보면, 너도 저절로 알게 될거야."
마침내 그들은 수돗가에 도착했다. 이미 제법 많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면서 줄을 서고 있었다.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도 줄 맨 뒤에 가서 섰다. 바로 앞에 서 있던 남자 두 명이 뜨거운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한 사람은 아주 늙은 마법사였으며, 다른 한 가람은 마법부 직원인 것 같았다. 해리는 노인 마법사의 옷차림을 보고 도저히 웃음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노인은 꽃무늬가 수놓인 잠옷을 입고 있었으며, 마법부 직원은 줄무늬 바지를 들고 있었다.
"제발 그 꽃무늬 잠옷을 벗고 이걸로 갈아입으세요, 아치. 그런 옷차림으로 돌아다닐 수는 없어요. 캠프장을 관리하는 머글이 의심하고 있단 말입니다."
마법부 직원은 거의 울다시피 애원하고 있었다.
"난 이걸 머글 가게에서 구입했네. 이것도 머글들이 입는 옷이란 말이야."
늙은 마법사는 완강한 태도로 거절했다.
"하지만 그건 여자 머글들이 입는 옷이에요, 아치. 남자 옷이 아니란 말입니다. 빨리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마법부 직원이 줄무늬 바지를 내밀면서 말했다.
"난 이 옷이 마음에 들어.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게 아주 시원하거든..."
늙은 아치가 짜증을 내면서 소리쳤다. 헤르미온느는 도저히 웃음을 참지 못하고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바람에, 잠시 줄에서 나와야만 했다. 헤르미온느가 다시 돌아왔을 때, 아치는 이미 어디론가 가 버리고 없었다.
그들은 물이 가득 든 주전자와 냄비를 들고 다시 캠프장을 가로질러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캠프장을 지나가는 동안, 해리는 친근한 얼굴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호그와트의 학생들이 퀴디치 팀의 주장으로 활약했으며 지금은 학교를 졸업한 올리버 우드가 해리를 물렀다. 그는 해리를 데리고 가서 자기 부모에게 인사를 시켰다.
"나는 푸들미어 유나이티드 팀에 입단했어. 비록 후보이긴 하지만... 나중엔 반드시 주전으로 뛰게 될 거야."
올리버 우드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다음에는 후플푸프 기숙사의 4학년생인 어니 맥밀란이 그들을 불렀다. 조금 더 걸어가자 이번에는 래번클로 기숙사 퀴디치 팀의 수색꾼으로 활동하고 있는 초 챙의 모습이 보였다. 해리와 눈이 마주치자, 초 챙은 반가운 듯이 생긋 미소를 지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해리는 초 챙을 향해 손을 흔들다가 그만 실수로 물을 왕창 쏟고 말았다. 이런! 혹시라도 론이 비웃지 않을까? 해리는 어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십대 아이들이 모여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 애들은 누구야? 호그와트에 다니는 학생들은 아닌 것 같은데..."
해리가 딴전을 피우면서 말했다.
"아마도 아른 나라 학생들일 거야." 론이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다른 나라 마법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만난 적은 아직까지 한 번도 없지만, 그런 학교가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빌 형은 브라질에 있는 마법학교 학생과 펜팔을 한 적이 있었어... 물론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빌 형은 교환 학생이 돼서 브라질로 가려고 했었어. 하지만 형편이 어려웠던 엄마와 아빠는 빌 형을 외국에 보냘 수가 없었지. 형이 가지 못하게 되었다고 편지를 보내자, 그 친구는 굉장히 화가 나서 저주가 담긴 모자를 보내 왔어. 그 모자를 쓰자 빌 형의 귀가 순식간에 오그라들고 말았지."
해리는 다른 나라에도 마법학교가 있다는 말을 듣고 내심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태연하게 미소만 지었다.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캠프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데, 호그와트가 유일한 마법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말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리는 곁눈질로 헤르미온느를 슬쩍 쳐다보았다. 헤르미온느는 조금도 놀라는 것 같지 않았다. 호그와트 이외에도 다른 마법학교가 있다는 사실을 책에서 읽은 게 분명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니?"
마침내 위즐리네 텐트에 도착하자 조지가 물었다.
"돌아오는 도중에 아는 사람들을 만났어. 그런데 아직까지도 불을 피우지 않은 거야?"
론이 물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아빠가 성냥을 가지고 장난하고 계셔."
프레드가 투덜거리면서 대답했다. 위즐리 씨는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성냥을 그어대고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부러진 성냥들이 잔뜩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위즐리 씨는 평생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는 처음이라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이구!"
가까스로 성냥에 불이 붙었다. 그러나 위즐리 씨는 깜짝 놀라면서 성냥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위즐리 아저씨. 이렇게 해보세요.."
헤르미온느가 제대로 성냥불을 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겨우 모닥불을 피우긴 했지만, 뭔가 따뜻한 음식을 먹기까지는 또다시 한 시간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 시간이 별로 지루하진 않았다. 그들의 텐트가 경기장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마법부 직원들이 계속해서 급히 왔다 갔다 하면서 위즐리 씨에게 인사를 했던 것이다.
"저 사람은 도깨비 연락소의 소장 커스버트 모크리지 씨란다... 저기 실용 마법 위원회 위원으로 있는 길버트 윔플씨가 오고 있구나. 안녕하시오, 아놀드... 아놀드 피즈굿 씨는 우리의 해결사란다. 마법사고 복구반의 일원이지... 그리고 저기 저 사람들은 보드 씨와 크로우커 씨란다... 그들은 비밀단원이야..."
위즐리 씨가 해리와 헤르미온느에게 계속 해설을 늘어놓았다. 위즐리네 아이들은 마법부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이젠 아무 흥미도 없었으므로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일을 하는 분들인가요?"
"미스터리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단다. 주로 일급비밀을 취급하지. 무슨 일을 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단다..."
아침내 그들이 달걀과 소시지를 요리하기 시작했을 때, 빌과 찰리와 퍼시가 숲속에서 어슬렁어슬렁 걸어나왔다.
"역시 순간이동이 좋군요. 이제 막 도착했어요, 아빠." 퍼시가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말했다.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군!"
그들이 빙 둘러앉아서 소시지와 달걀을 먹고 있을 대, 갑자기 위즐리 씨가 벌떡 일어나더니 그들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는 한 남자를 쳐다보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하!" 위즐리 씨가 반가워하며 소리쳤다. "어서 오게, 루도! 마침내 나타났군."
루도 베그만은 지금까지 해리가 보았던 마법사들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꽃무늬 잠옷을 입고 있던 아치 노인보다도 더욱 이상했다. 루도 베그만은 노란색과 검은색의 굵은 줄무늬가 있는 기다란 퀴디치 선수 복을 입고 있었는데, 가슴에는 웜본 와스프 팀의 상징인 거대한 말벌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그는 한물간 운동선수처럼 보였다. 불쑥 튀어나온 배는 터질 듯이 팽팽했는데, 잉글랜드 퀴디치 대표선수 시절에는 분명히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 것이다.
루도 베그만의 코는 납작하게 뭉개져 있었다. (혹시 블러저에 맞아서 코가 깨진 게 아닐까? 해리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루도 베그만을 쳐다보았다.) 동그랗고 파란 눈과 짧은 금발 머리 그리고 발그레한 얼굴 때문에 나이에 걸맞지 않게 마치 덩치만 큰 남학생처럼 보였다.
"어이!"
루도 베그만이 유쾌한 목소리로 외쳤다. 루도 베그만은 마치 발바닥에 용수철이라도 달린 것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주 신이 난 표정이었다.
"잘 있었나. 아서?" 루도 베그만이 모닥불을 향해 걸어오면서 말했다. "정말 멋진 날이야. 그렇지? 이보다 더 좋은 날씨가 어디 있겠나?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지... 모든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지... 난 별로 할 일도 없다네."
그 말이 끝나자마자 지칠 대로 지쳐 보이는 한 무리의 마법부 직원들이 루도 베그만의 등 뒤로 황급히 지나가면서, 6미터상공까지 보랏빛 불꽃을 쏘아 올리는 어떤 마법의 불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었다.
퍼시는 손을 내밀어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루도 베그만의 부서 운영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아..." 위즐리 씨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이 애는 내 아들 퍼시라네. 이제 막 마법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신참이지. 그리고 이 애는 프레드, 아니 조지라네. 미안하네. 저 애가 프레드야. 빌과 찰리, 론이라네. 이 애는 내 딸 지니... 그리고 론의 친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 해리포터..."
루도 베그만은 해리의 이름을 듣자 깜짝 놀라더니 그의 이마에 난 흉터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위즐리 씨가 아이들에게 말했다.
"모두들 인사해라. 이분이 바로 루도 베그만 씨란다. 우리가 퀴디치 월드컵 티켓을 구한 건 모두 이분 덕분이란다."
루도 베그만은 미소를 지으면서, 그런 일은 마치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손을 내저었다.
"이번 시합의 결과에 대해 내기를 걸지 않겠나, 아서?" 루도 베그만은 노란색과 검은색 줄무의 옷 호주머니 속에 두둑이 들어 있는 금화를 짤랑짤랑 흔들면서 말했다. "로디 폰트너는 불가리아가 먼저 선제골을 놓는 쪽에 돈을 걸었네. 하지만 로디가 돈을 딸 수 있는 확률은 아주 낮아. 올해의 아일랜드 공격수 세 명은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보았던 선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지. 그 점을 고려해서 나는 로디에게 후한 배당을 주었다네. 그리고 땅딸보 애거사 팀스는 이 경기가 일주일 동안이나 계속될 거라는 쪽에 그녀의 양식장에서 기르는 뱀장어 절반을 걸었다네."
"좋아. 나도 걸겠네." 위즐리 씨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어디 보자... 아일랜드가 이기는 쪽에 1갈레온..."
"1갈래온?" 루도 베그만은 약간 실망한 것 같았다. "좋아, 좋아... 애들아, 너희들도 내기를 해겠니?"
"저 애들은 내기를 하기에는 아직 어리다네." 위즐리 씨가 말했다. "애들 엄마가 알면 야단날 거야."
"우리도 돈을 걸게요. 모두 37갈레온, 15시클, 3크넛이에요."
프레드가 조지와 함께 돈을 빡빡 긁어모으며 말했다. "물론 아일랜드가 이기는 쪽에 걸겠어요. 하지만 스니치는 빅터 크룸이 잡을 거예요. 아 참, 이 가짜 요술지팡이는 덤으로 드릴게요."
"그런 쓰레기 같은 물건을 뭐 하러 드리겠다는 거야?"
퍼시가 퉁명스럽게 면박을 주었다. 하지만 루도 베그만의 생각은 전혀 다른 것 같았다. 루도 베그만은 얼른 가짜 요술지팡이를 받아들었다. 소년 같은 그의 얼굴이 환하게 빛난다.
갑자기 가짜 요술지팡이가 삐약삐약 소리를 내면서 고무 병아리로 변하자, 루도 베그만은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굉장하구나! 이렇게 멋진 선물을 받다니... 좋아. 이 지팡이 값으로 5갈레온을 주마!"
퍼시는 기가 막힌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다.
"얘들아, 난 너희들이 내기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가지고 있는 돈을 몽땅 걸면 어떻게 하니? 만약 엄마가 알면..."
위즐리 씨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다.
"흥을 깨뜨리지 말게 아서!" 루도 베그만이 다시 한 번 금화를 잘랑거렸다. "쟤들은 자기들이 뭘 원하는지 다 알 만한 나이 아닌가! 우승은 아일랜드가 차지하지만, 스니치는 빅터크룸이 잡는 쪽에 건다 이거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단다, 얘들아.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너무나 희박해... 여기다 이 이상한 요술지팡이 값으로 5갈레온을 보태면... "
루도 베그만은 노트와 깃펜을 꺼내 쌍둥이 형제의 이름을 적었다. 위즐리 씨는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고맙습니다."
루도 베그만이 양피지 영수증을 내밀자, 조지가 재빨리 받아서 망토 속에 쑤셔 넣었다.
"차 한 잔 주지 않겠나? 나는 줄곧 바티 크라우치를 찾고 있었다네. 나와 함께 이 경기를 주관하고 있는 불가리아 책임자가 계속 뭐라고 불평을 늘어놓고 있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을 도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하지만 바티 크라우치는 알아들을 수 있을 거야. 150가지 정도의 언어는 충분히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니까..."
루도 베그만이 위즐리 씨를 향해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크라우치 씨가요?" 줄곧 뚱한 표정으로 서 있던 퍼시가 갑자기 흥분하면서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크라우치 씨는 무려 200가지가 넘는 언어를 구사할 수 있어요. 인어 말과 도깨비 말, 심지어 트롤 말도 알고 있단 말이에요..."
"트롤 말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어." 프레드가 빈정거리면서 말했다. "그저 손가락질을 하면서 툴툴거리기만 하면 되는데..."
퍼시는 잠시 화가 난 눈빛으로 프레드를 노려보더니 주전자를 들어서 모닥불 위에 올려놓았다.
"버사 조킨스에 대한 소식은 듣지 못했나, 루도?"
위즐리 씨가 묻자, 베그만은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전혀. 하지만 곧 돌아오겠지, 뭐. 한심한 늙은이 같으니라구... 마치 줄줄 새는 솥단지 같은 기억력에 방향감각까지도 없으니까... 아마도 버사는 길을 잃은 게 분명해. 10월이 되면 버사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올 거야. 아직도 7월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루도 베그만은 조금도 걱정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이제는 사람을 시켜서 버사를 찾아봐야 하는게 아닌가?"
위즐리 씨가 약산 망설이다가 말을 꺼냈다. 루도 베그만이 동그란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태연하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도저히 그럴 수 없어. 인원이 턱없이 부족하단 말이야. 이런!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바티!"
그 순간 마법사 한명이 뿅 하고 모닥불 가에 나타났다. 그 마법사의 모습은 낡은 웜봄 와스프 팀 선수 복을 입고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아 있는 루도 베그만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주름하나 없는 빳빳한 양복에 넥타이까지 단정하게 매고 있는 바티 크라우치는 아주 깐깐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짧게 깎은 흰머리는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곧은 가르마를 따라서 빗을 넘겨져 있으며, 칫솔처럼 생긴 콧수염은 꼭 자로 잰 것 같았다. 신발은 반질반질하게 윤이 났다.
해리는 퍼시가 왜 크라우치를 우상처럼 섬기고 있는지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퍼시는 반드시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크라우치는 머글 옷차림에 대한 규칙을 어찌나 철저히 따랐던지 은행장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심지어 버논 이모부라고 하더라도 크라우치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차릴 수 없을 것 같았다.
"바티, 이리 와서 좀 앉으세요."
루도 베그만이 손으로 잔디밭을 툭툭 치면서 말했다.
"아닐세, 루도." 크라우치가 단호하게 말했다. 크라우치의 목소리에는 짜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까지 자네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었네. 불가리아인들이 일등석에 열두 개의 좌석을 더 추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네."
"그래서 그들이 날 쫓아다니는 건가요? 난 또 그 사람들이 족집게라도 빌려 달라고 부탁하는 줄 알았어요. 이상야릇한 사투리를 쓰면서 말이에요,
"크라우치 씨!" 그때 퍼시가 마치 곱추처럼 허리를 90도로 깍듯이 숙이면서 황급히 말했다. "차 한 잔 하시겠어요?"
"오..."크라우치는 전혀 뜻밖이라는 듯이 퍼시를 쳐다보았다. "고맙네, 웨더비."
프레드와 조지는 차를 마시다가 그만 사레가 들고 말았다. 퍼시는 귓불까지 빨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얼굴을 붉히면서 주전자를 들고 재빨리 움직였다.
"참, 아서... 자네에게 전할 말이 있다네." 크라우치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위즐리 씨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알리 배셔가 잔뜩 성이 났더군. 자네가 하늘을 나는 양탄자를 압수한 것에 대해 할 말이 있는 모양이야."
"저는 지난주에도 그 일 때문에 알리에게 부엉이를 보냈어요. 이번 한 번만이 아니에요. 아마 백 번도 넘게 말했을 겁니다. 하늘을 나는 양탄자는 마법 물품 등기소가 머글 문화재로 정해 좋은 물건이라고 말이죠. 하지만 알리가 그 말을 듣기나 하겠습니까?"
위즐리 씨가 무겁게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물론 들은 척도 하지 않겠지. 알리는 양탄자를 영국으로 수출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
크라우치는 퍼시가 내민 찻잔을 받아들면서 대답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절대로 빗자루 대신 양탄자를 타고 다니는 일은 없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루도 베그만이 한 마디를 거들었다.
"알리의 생각은 다르다네. 한 가족이 타기에는 양탄자가 빗자루보다 훨씬 더 시장성이 높다고 여기니까 말일세." 크라우치 씨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할아버지는 한번에 열두 명이나 태울 수 있는 액스민스터를 가지고 계셨다네. 하지만 그건 물론 양탄자가 법으로 금지되기 전의 일이었지."
크라우치는 자신의 조상들이 철저하게 법을 지켰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하듯이 황급히 덧붙였다.
"그런데 무척 바쁘셨나 보죠, 바티?"
루도 베그만이 쾌활하게 물었다.
"아주 바빴다네. 다섯 개의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포트키를 설치하는 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네. 루도."
"이 일이 끝나면 두 분 모두 무척 기쁘시겠어요."
위즐리 씨가 말하자, 루도 베그만은 천만의 말씀이라는 듯이 말했다.
"기쁘다니! 난 이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없는데... 하지만 아직 기대할 만한 일이 한 가지 남아 있긴 해요. 안 그래요, 바티? 준비할 게 많죠?"
"상세한 사항들이 모두 결정되기 전까지는 말하지 않기로 했잖나?"
크라우치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오, 상세한 사항들!" 루도 베그만은 마치 성가신 벌레를 쫓기라도 하는 것처럼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서명을 했어요. 그들도 동의를 했잖아요. 안 그래요? 어쨌거나 이 애들도 곧 알게 될 건데요, 뭘... 내 말은 그게 호그와트에서 벌어질 일이라는... "
"루도! 우리는 불가리아인들을 만나러 당장 가야 하네." 크라우치가 루도 베그만의 말을 가로막으면서 말했다. "차 잘 마셨네, 웨더비."
크라우치는 손도 대지 않은 찾잔을 다시 퍼시에게 돌려주고는 루도 베그만이 일어나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루도 베그만은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다 마신 후에야, 호주머니 속의 금화를 짤랑짤랑 흔들면서 마지못해 일어났다.
"모두들 나중에 보자!" 루도 베그만이 웃으면서 말했다. "너희들은 일등석에서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내가 이 경기의 해설을 맡았단다!"
루도 베그만은 손을 흔들었지만. 바티 크라우치는 무뚝뚝하게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잠시 후에 두 사람의 모습이 뿅 하고 사라졌다.
"호그와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거예요, 아빠? 아까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한 거죠?"
베그만과 크라우치의 모습이 사라지자마자 프레드가 물었다.
"곧 알게 될 거다."
위즐리 씨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그건 비밀 정보야. 마법부가 발표할 때까지는 크라우치 씨의 말처럼 절대로 알려 줄수 없어."
퍼시가 거만하게 말했다.
"시끄러워, 웨더비."
프레드가 투덜거리면서 핀잔을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뜨거운 열기가 캠프장을 온통 뒤덮기 시작했다. 마침내 해질 무렵이 되자, 고요한 여름 공기조차도 부푼 기대로 인해 바르르 떨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둠의 장막이 드리워지자, 그 순간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던 수천 명의 마법사들은 더 이상 머글인 척 위장하려 하지 않았다.
마법사들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여기저기에서 마법을 부리고 있었다. 이제는 마법부도 체념한 듯이 그들과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사방에서 장사꾼들이 뿅뿅 나타났다. 장사꾼들은 이상한 물건들이 가득 담긴 쟁반을 들거나 수레를 밀면서 손님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다. 어떤 장사꾼은 자기 팀 선수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빛을 발하는 마법의 장미를 팔고 있었는데, 아일랜드 팀의 장미는 초록색이었고 불가리아 팀의 장미는 붉은색이었다. 춤추는 클로버로 장식한 초록색 모자와, 사나운 기세로 으르렁거리는 사자들이 그려진 불가리아 팀의 스카프와, 손에 들고 흔들면 그 나라의 국가를 연주하는 깃발도 있었다. 그 외에도 정말로 날아다니는 작은 파이어볼트 모형과 손바닥위에 올려놓으면 의기양양하게 걸어다니는 유명한 선수들의 인형도 있었다.
"난 이걸 사기 위해 여름 방학 내내 용돈을 모았어."
론이 해리를 쳐다보면서 씩 웃었다. 장사꾼들 사이로 걸어 들어간 그들은 마음에 드는 기념품을 샀다. 론은 춤추는 클로버 모자와 초록색 장미를 샀다. 혼의 손바닥 위로 올라간 크룸의 인형은 못마땅한 얼굴로 초록색 장미를 힐끗 쳐다보면서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와, 이것들 좀 봐!"
해리가 황동 쌍안경처럼 생긴 물건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수레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그 물건에는 갖가지 모양의 손 잡지와 다이얼이 잔뜩 달려 있었다.
"옴니큘러입니다."장사꾼 마법사는 열심히 소리쳤다. "지나간 장면을 다시 재연할 수 있습니다. 경기 장면으로 느린 속도록 볼 수도 있습니다. 경기 장면을 부분적으로 편집해서 보여주기도 합니다. 싸다 싸! 하나에 10갈레온..."
"이걸 사지 말걸."
론은 춤추는 클로버 모자를 가리키면서 후회스러운 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동경 어린 눈빛으로 옴니큘러를 쳐다보았다.
"세 개 주세요?"
해리는 장사꾼 마법사에게 30갈레온을 내밀었다.
"아니, 괜찮아."
론이 살짝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 부모에게 약간의 유산을 물려받은 해리가 자신보다 훨씬 더 돈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 론은 항상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 대신에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아예 선물 받을 생각조차 하지 마."
해리는 론과 헤르미온느에게 옴니큘러를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물론이지,"
론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정말 고마워, 해리." 헤르미온느가 상냥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기 프로그램은 내가 살게."
한결 주머니가 가벼워진 그들은 서둘러 텐트로 돌아갔다. 빌과 찰리와 지니는 초록색 장미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 있었으며, 위즐리 씨는 아일랜드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반면에 프레드와 조지는 아무것도 살 수가 없었다. 그들은 가지고 있던 돈을 몽땅 루도 베그만에게 줘 버렸기 때문이다.
갑자기 숲 너머에서 은은한 징소리가 들리더니 숲 속에 매달려 있던 초록색 등불과 붉은색 등불이 일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 등불들이 경기장으로 가는 길을 환하게 밝혀 주었다.
"경기 시간이 되었구나!" 잔뜩 흥분한 위즐리 씨가 소리를 질렀다. "어서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