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장 초대
해리는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으로 들어갔다.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 그리고 두들리는 이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해리는 조심스럽게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런 관심도 없는 것처럼 해리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버논 이모부의 볼그스름하고 커다란 얼굴은 조간신문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았다. 페투니아 이모는 말처럼 툭 튀어나온 이빨을 감추기 위해 입술을 잔뜩 오므린 채 자몽을 네 조각으로 자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잔뜩 화가 난 두들리는 사각형 식탁의 한 면 전체를 턱 차지하구 앉아서 주절주절 불평을 늘어놓고 있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두들리의 접시에 자몽 4분의 1조각을 담아 주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여기 있다. 두들리."
두들리는 잔뜩 얼굴을 찌푸리면서 엄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학년말 통지서가 집에 도착한 다음부터 두들리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지고 말았다.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두들리의 형편없는 성적에 대한 변명거리를 찾기 위해 무진장 노력했다. 페투니아 이모는 학교 선생님들이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매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아이가 바로 두들리라고 주장했으며, 버논 이모부는 '내 아들이 공부벌레처럼 기를 쓰고 공부만 하는 계집애 같은 녀석이 되는 것은 결코 바라지 않는다'는 이유를 내세웠다. 그들은 또한 통지서에 적힌 두들리의 생활 기록부도 애써 외면하려고 했다. 거기에는 두들리가 약한 아이들을 괴롭힌다는 지적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그 애가 좀 거칠기는 해요. 하지만 파리 한 마리 죽이지 못하는 그런 착한 아이라구요!"
페투니아 이모는 눈물을 흘리면서 변명했다. 그러나 통지서의 맨 밑에는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가 아무리 해명하려 해도 빠져나갈 수 없는, 학교의 양호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몇 마디 쓴 소견이 적혀 있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마구 침을 튀기면서 두들리가 비만이라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더욱 많은 음식을 섭취해야 하는 성장기의 소년이라고 우겼다. 두들리는 원래 뼈가 굵은 체격을 타고났으며 사춘기의 일시적인 비만 증상으로 인해 다소 뚱뚱한 것처럼 보일 뿐이라고 주장했던 것이다.
하지만 페투니아 이모가 아무리 울먹이면서 소리를 질러도, 그 학교의 교복 용품점에는 더 이상 두들리의 몸에 맞을 정도로 큰 니커 바지(무릎 아래에서 졸라매는 느슨한 반바지: 역주)가 없다는 사실은 변할 수가 없었다. 양호 선생님의 눈에 비친 두들리의 모습은 거의 새끼 범고래의 크기와 몸무게에 육박하고 있었던 것이다. 두들리에게 더 많은 영양분이 필요하다는 말은 완전히 어불성설이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깨끗한 벽에 묻어 있는 손자국을 발견하거나 이웃 사람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일에는 매우 뛰어난 눈썰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자신의 아들이 뚱뚱하다는 사실은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따라서-수많은 분노와, 해리의 침실 바닥까지 뒤흔들었던 시끄러운 고함 소리와, 페투니아 이모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줄줄 흐른 후에-새로운 방법이 시작되었다. 마침내 스멜팅 학교의 양호 선생님이 발송한 다이어트 식단이 냉장고에 붙여진 것이다. 그 식단에는 두들 리가 가장 좋아하는 탄산음료와 케이크, 초콜릿과 햄버거 같은 것들은 몽땅 빠져 있었고, 그 대신에 과일과 야채를 비롯해서 버논 이모부가 '토끼밥' 이라고 부르는 종류의 것들이 잔득 적혀 있었다.
페투니아 이모는 두들리를 위로하기 위해서 다른 가족들 역시 그 식단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페투니아 이모는 해리의 접시 위에 자몽 4분의 1조각을 담아 주었다. 해리는 자신의 자몽 조각이 두들리의 접시에 놓인 것보다 훨씬 더 작다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페투니아 이모는, 두들리의 사기를 높힐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적어도 해리보다는 많은 양의 음식을 먹는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페투니아 이모는 이층의 느슨한 마루판자 밑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페투니아 이모는 해리가 그 다이어트 식단을 전혀 따르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여름 내내 당근이나 먹으면서 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해리는 친구들에게 헤드위그를 보내서 간곡히 도움을 요청했다. 친구들은 즉시 해리가 그 난국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헤르미온느는 달지 않은 과자들(헤르미온느의 부모님은 두 분 다 치과 의사였다)이 가득 들어 있는 커다란 상자를 헤드위그편으로 보내 주었다. 호그와트의 사냥터지기인 해그리드는 록 케이크(표면이 거칠거칠하고 단단한 과자 또는 건빵: 역주)가 잔뜩 담긴 봉지를 보내주었다(하지만 해리는 록 케이크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왜냐하면 해그리드가 만든 음식을 먹고 골탕먹었던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위즐리 부인은 부엉이 에롤을 시켜서 과일 케이크와 각종 파이들을 보내주었다. 가엾은 에롤. 나이가 많고 연약하기 이를 데 없는 에롤은 그 음식들을 해리에게 전달하고 돌아간 뒤, 그대로 앓아 눕고 말았다. 그리고 꼬박 닷새가 지난 후에야 겨우 기운을 회복할 수 있었다.
얼마 후에 해리는 자신의 생일(더즐리 가족은 해리의 생일을 완전히 무시하고 넘어갔지만)에 훌륭한 생일 케이크를 무려 네 개나 받았다. 론과 헤르미온느와 해그리드와 시리우스가 각각 하나씩 보냈던 것이다. 해리는 아직도 생일 케이크 두 개를 마루판자 밑에 보관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리는 이층으로 올라간 후에 즐기게 될 멋진 아침 만찬을 고대하면서, 아무런 불평 없이 자몽을 먹기 시작했다.
버논 이모부는 신문을 저은 후에 못마땅한 눈길로 자신의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그 접시에도 역시 4분의 1조각의 자몽이 담겨 있었다.
"이게 아침 식사란 말이야?"
버논 이모부가 페투니아 이모를 쳐다보면서 불만스러운 듯이 투덜거렸다. 페투니아 이모는 매정한 표정을 지으면서 버논 이모부를 흘겨보고는 고갯짓으로 두들리를 가리켰다.
두들리는 벌써 자신의 접시에 담긴 자몽을 다 먹어 치우고는 게걸스러운 눈빛으로 해리의 자몽을 심술궂게 노려보고 있었다. 버논 이모부는 체념한 듯이 수저를 집어 들면서 텁수룩 한 콧수염이 너풀거릴 정도로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버논 이모부가 의자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현관으로 나갔다. 페투니아 이모가 잠시 주전자에 눈길을 팔고 있는 사이에. 두들리는 번개같이 버논 이모부의 접시에 담겨 있던 자몽을 슬쩍 가로챘다. 해리는 버논 이모부가 현관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소리를 들었다. 어떤 사람이 마구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으며, 버논 이모부는 퉁명스럽게 대답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문이 닫히더니 현관에서 종이를 찢는 소리가 들렸다.
페투니아 이모는 찻주전자를 식탁위에 내려놓고 현관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침부터 무슨 소동이람? 하지만 무슨 일인지 알기까지는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1분 가량 흐른 후에 버논 이모부가 다시 식당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버논 이모부의 얼굴은 완전히 납빛으로 질려 있었다.
"너." 버논 이모부가 해리를 노려보면서 버럭 고함을 질렀다.
"거실로 와라, 당장!"
도대체 이번에는 또 무슨 일 때문에 난리법석을 떠는 걸까?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던 해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버논 이모부를 따라 거실로 들어갔다. 버논 이모부는 거칠게 문을 쾅 닫았다.
"그러니까..." 버논 이모부는 벽난로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더니 마치 금방이라도 체포 영장을 내밀기라도 할 것처럼 해리를 향해 돌아섰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뭐요?' 해리는 당장이라도 이렇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문득 이른 아침부터 버논 이모부의 성질을 건드려서는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턱없이 부족한 음식 때문에 버논 이모부는 이미 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런 마당에 공연히 버논 이모부를 자극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해리는 덩구 신중하게 행동하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얌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게 막 도착했다." 버논 이모부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해리를 노려보았다.
"편지다. 너에 대한..." 버논 이모부가 보랏빛으로 쓰여진 편지지를 휘두르면서 소리쳤다.
해리는 몹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가 버논 이모부에게 편지를 보낸 걸까? 그것도 나에 대한 내용을 적어서...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 중에서 집배원을 통해 편지를 배달할 줄 아는 사람이 누구일까?
버논 이모부는 무서운 눈길로 해리를 노려본 후에 큰 소리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친애하는 더즐리 부부에게
비록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적은 없지만, 그래도 해리를 통해서 우리에 대해 익히 알고 계실 줄 압니다. 저의 아들 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들으셨겠지요.
해리가 이미 말씀을 드렸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번 월요일 밤에 퀴디치 월드컵 결승전이 열릴 예정입니다. 그런데 저의 남편 아서가 마법 게임 및 스포츠부에서 근무하고 계시는 분을 통해 일등석 티켓을 구했습니다.
우리가 해리를 데리고 그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정말로 일생에 한 번 올까말까한 기회랍니다. 영국은 지난 30년 동안이나 퀴디치 월드컵을 주최해 본 적이 없어서 티켓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답니다. 물론 우리는 나머지 여름 방학 기간 동안 해리가 우리 집에서 머물다가 기차를 타고 다시 학교로 안전하게 돌아가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해리가 '정상적인 답변'으로 두 분의 답변을 보낼 수 있도록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머글 집배원은 지금까지 우리 집으로 편지를 배달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을뿐더러, 우리 집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곧 해리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몰리 위즐리
추신: 편지에 붙인 우표가 혹시라도 부족하지 않았기를...
버논 이모부는 편지를 모두 읽은 후에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무슨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걸 좀 봐라."
그건 위즐리 부인의 편지가 들어 있었던 봉투였다. 그 순간 해리는 억지로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만 했다. 그 편지 봉투에는 온 우표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위즐리 부인이 깨알처럼 작은 글씨로 더즐리네 집 주소를 써 놓은 앞부분 조금을 제외하고는...
"위즐리 아줌마는 우표를 충분히 붙인 셈이네요."
해리는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위즐리 부인의 실수는 아주 사소한 것이라는 듯이... 누구라도 그런 실수는 저지를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버논 이모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버논 이모부의 눈동자가 분노로 인해 차갑게 번뜩였다.
"그 집배원이 눈치를 챘단 말이다." 버논 이모부가 이를 악물면서 내뱉듯이 말했다.
"이 편지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무척 알고 싶어했단 말이야. 집배원이 초인종을 눌렀던 것도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어! 정말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해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편지는 고작 다른 편지들보다 우표가 조금 더 많이 붙어 있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점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버논 이모부가 그런 일을 갖고 왜 그렇게 흥분하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미 오랫동안 더즐리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해리는 평범한 일상 생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는 것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더즐리 가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그들이 위즐리 씨 같은 부류의 사람들과(아주 약간이라도)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혹시라도 알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버논 이모부는 여전히 차가운 눈빛으로 해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해리는 별다른 감정을 나타내지 않고 담담하게 서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해리는 그토록 고대하던, 일생 일대의 큰 기쁨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위즐리 가족과 함께 꿈에 그리던 퀴디치 월드컵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만약 해리가 버논 이모부를 자극하는 어리석은 말이나 행동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혹시라도 버논 이모부가 허락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일들이 수포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버논 이모부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저 계속해서 노려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마침내 해리는 침묵을 깨기로 결심했다.
"론의 집으로 놀러가도 될까요?"
해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보랏빛이 감돌고 있던 버논 이모부의 큼지막한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나더니 콧수염이 꿈틀거렸다. 해리는 그 콧수염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버논 이모부의 가장 근본적인 두 가지 본능이 서로 충돌하면서 격렬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위즐리 부인의 제안을 받아들여서 해리를 보낸다면, 당연히 해리는 무척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13년 동안 해리가 행복해하는 꼴을 절대로 보지 못했던 버논 이모부의 자존심은 여지없이 상처를 입게 될 것이 너무나 분명했다.
반면에, 나머지 여름 방학 동안 해리를 위즐리 부부의 집으로 보내는 것은, 버논 이모부에게는 무척 고마운 제안이기도 했다. 어쨌거나 해리가 집에 있는 것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던 버논 이모부의 입장에서는 이 주일이나 빨리 해리를 떠나 보내는 것은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할 시간을 벌려고 하는 걸까? 버논 이모부는 위즐리 부인이 보낸 편지를 다시 한 번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누구냐?" 버논 이모부는 못마땅한 기색을 역력하게 드러내면서 위즐리 부인이 남긴 서명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마 이모부도 보신 적이 있을 거예요." 해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위즐리 아줌마는 제 친구 론의 어머니예요. 지난 학기말에 호그... 아니, 학교로 가는 기차를 타는 론을 배웅하기 위해 역으로 나오셨잖아요."
해리는 '호그와트 급행 열차'라고 말할 뻔하다가 황급히 말을 바꾸었다. 호그와트라는 말을 했다간 버논 이모부의 성질을 돋울 게 너무나 뻔했다. 해리가 다니는 학교의 이름을 큰소리로 말하는 것은 그 집에서 거의 금기 사항이었다. 버논 이모부는 마치 무엇인가 대단히 불쾌한 것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큼지막한 얼굴을 찡그렸다.
"땅딸막한 여자 말이냐?" 마침내 버논 이모부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빨간 머리 아이들을 잔뜩 데리고 있던?"
해리는 눈살을 약간 찌푸렸다. 버논 이모부가 누군가를 '땅딸막하다'고 부르는 게 어쩐지 몹시 얼토당토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논 이모부의 아들 두들리는 세 살 이후로 계속 피둥피둥 살이 쪄서 아슬아슬한 고비를 몇 번 넘기더니, 마침내 키보다 몸통 둘레가 더욱 커져 버렸던 것이다.
버논 이모부는 그 편지를 다시 한번 정독하고 있었다.
"퀴디치라니?" 버논 이모부가 의아스러운 듯이 중얼거렸다.
"퀴디치? 이 쓰레기 같은 건 또 뭐냐?" 해리는 또다시 화가 치미는 걸 느꼈다.
"스포츠예요. 빗자루를 타고 하는..."
해리가 짤막하게 대답했다.
"그래, 알겠다. 알겠어!"
버논 이모부는 어쩔 줄 모르면서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해리의 얼굴에 살짝 미소가 떠올랐다. 버논 이모부가 몹시 당황해하는 걸 보자, 유쾌한 기분이 들었다. 버논 이모부는 자신의 집에서 '빗자루'라는 소리를 듣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게 분명했다.
그는 편지를 다시 한 번 정독하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했다. 해리는 버논 이모부의 입술에서 '정상적인 방법으로 두분의 답변을 보낼 수 있도록' 이라는 말이 흘러나오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버논 이모부는 못마땅한 듯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정상적인 방법이라는 게 무슨 뜻이냐?"
버논 이모부가 내뱉듯이 물었다.
"그건 우리에게 아주 정상적인 방법이라는 의미예요." 해리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설명했다. 그리고 버논 이모부가 말을 가로막기 전에, 재빨리 한 마디 덧붙였다.
"이모부도 아시잖아요, 부엉이 집배원. 마법사들은 부엉이를 이용해서 우편물을 배달해요. 그게 정상적인 방법이에요."
버논 이모부는 굉장히 화가 난 것 같았다. 마치 진절머리가 나는 욕설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버논 이모부는 분노로 인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재빨리 창문으로 시선을 돌리는 버논 이모부의 얼굴에 초조한 기색이 떠올랐다. 혹시라도 이웃 사람들이 창문에 귀를 대고 엿듣지나 않을까?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해야 알아 듣겠니? 이 집에서 그런 이상야릇한 말은 절대로 꺼내지 말라고 했잖아!" 버논 이모부의 얼굴이 자주색으로 물들었다. "대관절 지금 네가 입고 있는 옷을 누가 사다 준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페투니아 이모와 내가 선물한 옷이야! 그런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
"이건 모두 다 두들리가 입던 낡은 옷이예요." 해리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말로 해리는 마음대로 손을 움직이려면 소매를 다섯 번이나 접어야 할 정도로 큰 스웨트 셔츠(운동 선수가 보온을 위해 경기 전후에 입는 헐렁한 스웨터: 역주)를 입고 있었다. 스웨트 셔츠의 옷자락은 헐렁한 청바지의 무릎 언저리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런 터무니없는 말은 더 이상 꺼낼 생각도 하지 마라!"
버논 이모부가 화를 내면서 소리쳤다. 해리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더즐리 가족의 멍청한 규칙 하나 하나를 억지로 따랐던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이었다. 이미 해리는 두들리의 다이어트 식단도 따르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퀴디치 월드컵을 관람하지 못하도록 버논 이모부가 방해한다면 가만 있지 않을 작정이었다.
해리는 크게 심호흡을 한 후에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
"좋아요, 정 그렇다면 퀴디치 월드컵에 가지 않겠어요. 이제는 제 방으로 올라가도 되겠죠? 시리우스 아저씨에게 보낼 편지를 마저 써야만 하니까요. 이모부도 아시죠? 저의 대부 말이예요."
마침내 해리는 그 말을 하고 말았다. 그 마법의 말을! 해리는 보랏빛이던 버논 이모부의 얼굴이 마치 아무렇게나 뒤섞인 까만 건포도 아이스크림처럼 변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네가... 네가 그 살인자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단 말이냐?"
버논 이모부는 짐짓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버논 이모부의 눈동자는 갑작스러운 공포로 인해 가늘게 수축되고 있었다.
"네, 그래요." 해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
"벌써 한참 동안이나 아저씨에게 편지를 보내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모부도 아시겠지만, 제 편지를 받지 못하면 시리우스 아저씨는 분명히 뭔가 일이 잘못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할 거예요."
해리는 느긋한 마음으로 그 말이 주는 효과를 즐기고 있었다. 새까맣고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빗어 넘긴 버논 이모부가 이리저리 잔머리를 굴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해리는 단번에 버논 이모부의 속셈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만약 시리우스에게 편지를 보내지 못하도록 가로막는다면, 그 끔찍한 살인자는 버논 이모부가 해리를 학대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버논 이모부가 해리에게 '너는 퀴디치 월드컵에 갈 수 없다.'고 말한다면, 해리는 아마도 시리우스에게 그런 내용을 죄다 알릴 것이다. 그렇다면 시리우스는 어떤 식으로 나올 것인가? 그런 생각만 해도 소름이 오싹 끼칠 지경이었다.
버논 이모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콧수염을 기른 얼굴이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기라도 한 것처럼. 해리는 버논 이모부의 머리 속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결론을 빤히 들여다볼 수가 있었다. 해리는 자꾸만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억지로 참았다. 그리고 해리는 일부러 멍한 표정을 지으면서 버논 이모부를 쳐다보았다.
잠시 후에 버논 이모부가 투덜거리면서 말했다.
"그래, 좋다! 빌어먹을! 그 멍청한... 월드컵인지 뭔지 하는 곳에 가도 좋다. 위... 위즐리...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라. 그 사람들이 널 데리고 갈 수 있도록... 물론 내가 널 데려다 줬으면 좋겠지만... 내겐 그럴 만한 시간이 없단다. 그리고 나머지 여름 방학은 그곳에서 보내도 좋다. 그리고 너... 너의 대부... 그 사람에게... 네가 간다고 말하거라."
"알겠어요."
해리는 활짝 웃으면서 대답했다. 해리는 허공으로 펄쩍 뛰어오르면서 함성이라도 지르고 싶은 충동을 애써 억눌렀다. 해리는 조용히 뒤로 돌아서서 거실 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래,갈 수 있어! 위즐리네 집으로! 그리고 퀴디치 월드컵도 볼 수 있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던 해리는 하마터면 두들리와 부딪힐 뻔했다. 두들리는 문 뒤에 숨어서 해리가 혼나는 것을 가만히 엿듣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해리가 환하게 웃으면서 나오자, 두들리는 깜짝 놀란 것 같았다.
"아침 식사는 정말 좋았어! 그렇지?" 해리는 은근히 두들리를 약올렸다.
"나는 정말로 배가 부른 것 같아. 넌 어때?"
해리는 성큼성큼 한 번에 세 칸씩 계단을 밟으면서 이층으로 올라갔다. 방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해리의 눈에 들어온 것은 조금 전에 돌아온 것 같은 헤드위그의 모습이었다. 새장 속에 앉아 있는 헤드위그는 커다란 호박색 눈으로 해리를 빤히 쳐다보면서 무엇인가 불쾌한 게 있는지 부리로 딸깍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어째서 헤드위그는 불쾌한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 이유는 금방 밝혀졌다.
"아야!"
해리는 비명을 지르면서 손으로 머리를 어루만졌다. 회색 깃털이 나 있는 작은 물체가 막 해리의 머리를 때렸던 것이다. 해리는 테니스 공처럼 보이는 그 이상한 물체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작은 부엉이 한 마리가 마치 사방으로 흩어지는 폭죽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한 손으로도 넉넉히 잡을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부엉이였다. 그 부엉이는 무엇 때문인지 몹시 흥분한 것 같았다.
비로소 해리는 그 부엉이가 발치에 편지 한 통을 떨어뜨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해리는 재빨리 그 편지를 집어 들었다. 편지 봉투에 적힌 글씨는 론의 필체가 분명했다. 해리는 봉투를 찢고 그 속에 들어 있는 편지를 꺼냈다.
해리! 아빠가 월요일 밤에 열리는 퀴디치 월드컵의 티켓을 구하셨어. 아일랜드 대 불가리아의 경기야. 엄마는 지금 너네 머글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고 계셔. 네가 우리와 함께 지낼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는 글이야. 어쩌면 너네 이모부가 벌써 그 편지를 받았을지도 모르겠구나. 나는 머글 우편이 얼마나 빠른지 잘 몰라. 어쨌거나 나는 이 편지를 피그 편에 보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
해리는 잠시 '피그'(우리말로 '돼지'라는 뜻: 역주)라는 단어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돼지라니? 해리는 다시 작은 부엉이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 부엉이는 천장에 매달린 전등갓 주위를 붕붕 날아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쳐다보아도 돼지 같은 구석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내가 론의 글씨를 잘못 읽은 걸까? 급히 휘갈겨 쓴 듯한 론의 글씨는 너무나 구불구불했다. 해리는 다시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반드시 네가 있는 곳으로 갈 거야. 너네 머글 가족이 좋아하든 말든 그건 아무런 상관없어. 네가 퀴디치 월드컵을 놓친다는 건 말도 안 돼. 안 그래? 엄마와 아빠는 우리쪽에서 먼저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는 척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 만약 너네 이모부가 좋다고 하면, 신속히 피그에게 답장을 보내도록 해. 우린 일요일 오후 다섯 시에 너를 데리러 갈 예정이야... 만약 안 된다고 반대를 하더라도 피그에게 답장을 보내. 그래도 우리는 일요일 오후 다섯 시에 너를 데리러 가겠어.
헤르미온느는 오늘 오후에 도착할거야. 퍼시 형은 국제 마법협력부에서 근무하기 시작했어. 팬티에 구멍이 나고 싶지 않으면, 우리 집에 잇는 동안에는 외국에 대해서 입도 뻥긋 하지마.
나중에 보자.
론
"진정해!"
해리가 부엉이를 향해 소리쳤다. 그 작은 부엉이는 편지를 제대로 배달한 것이 무척 기뻤는지, 해리의 머리 위로 낮게 날아다니면서 미친 듯이 울어대고 있었다.
"이리 와. 답장을 써 보내야 하니까!"
잠시 후에 그 부엉이는 날개를 퍼덕거리더니 헤드위그의 새장 꼭대기에 웅크리고 앉았다. 헤드위그는 마치 가까이 오지도 말라는 듯이 그 부엉이를 냉담한 눈길로 올려다보았다.
해리는 새로운 양피지 조각을 내서 독수리 깃펜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론, 모든 게 잘 해결됐어. 머글 이모부가 가도 좋다고 허락했어. 내일 오후 다섯 시에 보자. 빨리 만났으면 좋겠어.
해리
해리는 편지를 아주 작게 접어서 부엉이의 다리에 묶었다. 하지만 그 일은 결코 쉽지 않았다. 몹시 흥분한 부엉이가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바람에 간신히 편지를 매달 수 있었던 것이다. 편지가 제대로 매달린 것을 확인한 후에 해리는 부엉이를 풀어 주었다.
작은 부엉이는 다시 창 밖으로 날아가 이내 해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해리는 에드위그를 향해 돌아섰다.
"긴 여행을 할 수 있겠니?"
해리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헤드위그에게 물었다. 헤드위그는 부엉부엉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시리우스에게 배달할 수 있겠니?" 해리가 편지를 지어 들면서 말했다. "잠깐만... 마무리를 하는 게 좋겠어."
해리는 양피지를 펼친 후에 급히 추신을 덧붙였다.
만약 저에게 연락할 일이 있으면, 제 친구 론 위즐리의 집으로 하세요. 저는 남은 여름 방학 동안 그곳에 있을 거에요. 론의 아버지가 퀴디치 월드컵 티켓을 구하셨대요!
해리는 조심스럽게 헤드위그의 다리에 양피지를 묶었다. 해리가 편지를 묶는 동안 헤드위그는 이상할 정도로 얌전하게 굴었다. 마치 진정한 집배원 부엉이라면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보여주기로 결심한 것처럼...
"네가 돌아올 무렵이면, 나는 벌써 론의 집에 가 있을 거야. 알았지?"
해리가 헤드위그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헤드위그는 부리로 다정하게 해리의 손가락을 살짝 깨물더니 커다란 날개를 활짝 펼쳤다. 그리고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창문을 통해 하늘 높이 날아갔다.
해리는 헤드위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었다. 마침내 헤드위그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해리는 재빨리 침대 밑으로 들어갔다. 헐거운 마루판자를 비틀자 커다란 생일 케이크가 나타났다. 해리는 마룻바닥에 앉아서 생일 케이크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난 정말 행복해! 나에겐 달콤한 케이크가 있지만, 두들리에겐 고작 자몽뿐이야.
아주 화창한 날씨였다. 어서 내일이 되었으면... 마침내 프리벳 가를 떠날 수 있다. 이마의 흉터도 별다른 이상이 없는 것 같았다. 모든 게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게다가 퀴디치 월드컵도 관람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이 순간... 걱정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볼드모트 조차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