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흉터
해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꿈에서 깨어났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해리는 마치 달리기 경주를 한 사람처럼 가쁘게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갑자기 이마에 나 있는 번개 모양의 흉터가 타 들어가는 것처럼 아프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가 뜨겁게 달궈진 철사를 이마에 갖다대고 짓누르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해리는 여전히 한 손을 흉터에 갖다댄 채,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뻗어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뻗어서 침대 옆 탁자에 놓여 있던 안경을 집어 들었다. 안경을 쓰자 가로등 불빛을 받아서 오렌지색으로 물든 침실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창 밖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이 침실을 어슴푸레하게 밝혀 주었다.
해리는 다시 조심스럽게 흉터를 어루만졌다. 여전히 흉터가 쿡쿡 쑤시면서 아팠다. 해리는 램프를 켠 후에 침대에서 기어 나왔다. 그리고 거울을 쳐다보기 위해 옷장 문을 열었다. 깡마른 체격의 열네 살짜리 소년이 연한 초록색 눈으로 해리를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었다. 그 소년의 눈길은 어쩐지 무척 불안한 것 같았으며 머리카락도 마구 흐트러져 있었다.
해리는 거울 속에 비친 번개 모양의 흉터를 좀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칼로 찌르는 듯이 아팠다. 그래,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무슨 꿈을 꾸었는데... 해리는 어떤 꿈을 꿈을 꾸었는지 떠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너무나 생생한 꿈이었다... 해리가 알고 있는 사람이 두 명... 모르는 사람이 한 명... 해리는 기억을 더듬기 위해 얼굴을 찌푸리면서 정신을 집중했다...
어두운 방의 희미한 영상이 떠올랐다... 웜테일이라 불리던 땅딸막한 체구의 피터... 차갑고 날카로운 목소리... 볼드모트! 문득 볼드모트의 모습이 떠오르자, 해리는 마치 커다란 얼음 조각이 위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한 것처럼 간담이 서늘해졌다...
해리는 두 눈을 꼭 감고 볼드모트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잘 되지 않았다... 해리가 아는 거라곤 볼드모트의 안락의자가 빙 돌려지는 순간,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는 사실뿐이었다. 조금 전에 해리는 너무나 무서운 공포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벌떡 일어났다... 아니, 갑자기 흉터가 아파왔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던 걸까?
그런데 그 노인은 대관절 누구였을까? 분명히 꿈 속에서 어떤 노인의 모습이 보였다. 해리는 그 노인이 고목처럼 마룻바닥으로 쓰러지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머리 속이 어질어질 하고 혼란스러웠다. 해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그 방의 영상을 떠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희미하게 그 방을 비추던 벽 난로의 불빛... 하지만 그것은 오므린 두 손에 물을 계속 담고 있기 위해 애를 쓰는 것과 같았다. 꿈 속의 기억은 해리가 붙들고 있기 위해 애를 쓰면 쓸수록 빠른 속도로 새어 나가고 있었다... 볼드모트와 웜테일은 누군가를 죽였다... 그들이 살해한 사람의 이름도 얼핏 들었던 것 같았지만, 해리는 그 이름을 도무지 기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들은 또 다른 누군가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 들의 목표는 바로 해리!
해리는 얼굴에서 두 손을 내린 후에 살며시 눈을 뜨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치 뭔가 이상한 것을 보게 되지나 않을까 기대하는 것처럼... 공교롭게도 그 방에는 이상한 것들이 아주 많았다. 침대 발치에는 커다란 나무 트렁크가 놓여 있었는데, 그 속에는 커다란 냄비와 빗자루, 까만 망토, 여러 가지 마법책들이 잔뜩 들어 있었다.
해리의 책상 한켠에는 양피지 두루마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으며, 다른 한켠에는 커다란 새장이 놓여 있었다. 보통 때라면 눈처럼 하얀 부엉이 헤드위그가 새장의 횃대에 앉아서 끄덕끄덕 졸고 있겠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마룻바닥에는 책이 한 권 펼쳐져 있었다. 어젯밤에 해리는 그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책 속의 그림들이 모두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밝은 오렌지색 망토를 입은 사람들이 빗자루를 타고 바쁘게 날아다니면서 서로에게 빨간 공을 던지고 있었다.
해리는 마룻바닥에 떨어져 있던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마법사 가운데 한 명이 15미터 높이의 골대에 매달린 고리 속으로 멋지게 공을 집어넣어 점수를 따는 장면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에 해리는 그 책을 탁 덮었다. 해리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스포츠라고 생각하는 퀴디치조차도 그 순간만은 그의 마음을 빼앗지 못했다. 해리는 <캐논 팀과의 비행> 이라는 책을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고, 창가로 걸어가서 커튼을 걷었다.
프리벳 가는 흐릿한 어둠에 잠겨 있었다. 토요일 새벽에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모습이었다. 특별히 눈길을 끌거나 하는 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서성거리는 고양이 한 마리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다른 집들은 창문에 매달린 커튼을 죄다 내린 채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해리는 어쩐지 불안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침대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손가락으로 흉터를 어루만졌다. 지금 자꾸만 해리는 신경을 자극하는 것은 통증이 아니었다. 해리는 이미 고통이나 부상을 당하는 것에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한때 오른족 팔의 뼈가 몽땅 사라졌다가, 하룻밤 사이에 그 뼈가 다시 자라났던 적도 있었다. 물론 뼈가 완전히 자랄 때까지 해리는 줄곧 고통에 시달렸다. 그런 일을 당하고 얼마 있지 않아서 또다시 그 팔이 30센티미터 길이의 날카로운 독니에 찔리기도 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다가 15미터 상공에서 떨어진 적도 있었다.
지금 해리의 마음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전에 이마의 상처가 아팠을 때, 볼드모트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일이 벌어 질 수가 없었다. 볼드모트가 프리벳 가에 숨어 있다니... 그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인 것이다.
해리의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혹시라도 계단이 삐걱거리거나 망토자락이 끌리는 소리가 들리지나 않을까? 갑자기 옆방에서 천둥이라도 치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깜짝 놀라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이내 그 소리의 정체를 깨달았다. 그것은 바로... 해리의 사촌 두들 리가 코를 고는 소리였다.
해리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바보처럼 깜짝 놀라다니... 지금 이 집에는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 그리고 두들리 밖에 없다. 그들은 여전히 깊이 잠들어 있으며,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거나 고통을 느끼지도 않는다.
해리는 지금 이 시간, 더즐리 가족이 잠을 자고 있을 때가 가장 좋았다. 그들이 깨어 있을 때에는 해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와 두들리는 해리의 유일한 친척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형태든 마법이라면 몹시 혐오하고 경멸하는 머글이었다. 그것은 해리가 이 집에서 쓰레기만도 못한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했다. 그들은 이웃 사람들에게 해리가 지난 3년 동안 성 브루터스의 구제 불능 소년 선도 학교에 다녔기 때문에 그동안 집에 없었던 거라며 해명하고 다녔다. 물론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해리는 호그와트 마법학교에 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해리는 아직 미성년 마법사였기 때문에 호그와트 밖에서 마법을 쓰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더즐리 가족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무슨 일이든지 잘못되기만 하면 무조건 해리의 탓으로 돌렸다. 따라서 해리는 그들에게 마법세계에서 보냈던 자신의 생활에 대해 의논하거나 비밀을 털어 놓거나 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이 잠에서 깨어났다고 하더라도, 이마의 흉터에서 느끼는 통증이나 볼드모트에 대한 걱정 따위를 말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해리가 애초에 더즐리 가족과 함께 살게 된 것은 바로 볼드모트 때문이었다. 만약 볼드모트가 없었다면, 해리의 이마에 있는 번개 모양의 흉터도 없었을 것이고 부모님도 여전히 살아 계셨을 것이다...
100년 동안 가장 강력한 어둠의 마법사였으며, 13년 동안 꾸준히 힘을 회복하고 있는 볼드모트!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해리의 나이는 고작 한 살이었다. 볼드모트가 그의 집을 습격해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처참하게 살해했던 것이다. 포토 부부를 해친 후에, 볼드모트는 요술지팡이를 들고 해리를 겨냥했다. 그리고 마법 세계를 장악하기 위해 수많은 성인 마녀와 마법사들을 해치울 때 사용했던 저주의 주문을 내렸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볼드모트의 마법이 말을 듣지 않았던 것이다. 저주는 무방비 상태의 어린 꼬마를 죽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주문을 내린 볼드모트를 향해 되돌아갔다. 그 충격으로 인해 해리의 이마에는 번개 모양의 흉터가 생겼으며, 볼드모트는 가까스로 목숨만 연명하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시에 모든 힘을 잃어버린 볼드모트는 간신히 목숨만 건진 채 달아났다.
볼드모트가 종적을 감추자 오랫동안 공포에 질린 채 살고 있던 마법계는 다시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볼드모트를 따르던 추종자들은 뿔뿔히 흩어졌으며, 해리 포터는 단번에 유명해졌다. 그러나 정작 해리 자신은 그런 사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열한 살이 되던 생일날에서야 비로소 자신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게 된 해리는 마치 단단한 물체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마법계의 모든 사람들이 '해리'라는 이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어느날 갑자기 자기가 유명 인사라는 사실을 안 해리는 더욱 당황 할 수밖에 없었다.
호그와트에 도착한 후에도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시선과 수군거림이 항상 해리의 뒤를 따라다녔다. 이번 여름 방학이 끝나면 해리는 호그와트의 4학년이 될 예정이다. 해리는 다시 성으로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학교로 돌아가려면 아직도 이 주일이나 더 기다려야만 했다.
해리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한 번 방을 둘러보았다. 해리의 눈길이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생일 카드에 가서 멈추었다. 그것은 두 명의 단짝 친구가 해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7월 31일에 보내 준 카드였다. 번개 모양의 흉터가 몹시 아팠다고 말하면, 그 애들은 뭐라고 할까? 근심에 가득 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당장이라도 들릴 것만 같았다.
"흉터가 아프다구? 해리, 그건 정말로 심각한 거야... 덤블도어 교수님께 당장 편지를 써! 나는 <일반적인 마법사 질병과 통증> 이라는 책을 찾아보도록 하겠어... 어쩌면 저주흉터를 치료하는 방법이 그 책에 실려 있을지도 몰라... "
그렇다! 헤르미온느는 분명히 이런 식으로 충고할 것이다. 당장 호그와트의 교장 선생님에게 말씀을 드리고, 그 사이에 책을 찾아보라고 말이다. 해리는 창 밖으로 고개를 돌려서 잉크빛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과연 책이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볼드모트처럼 뛰어난 마법사의 저주를 받고도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인 마법사 질병과 통증> 이라는 책의 목록에서 해리의 증상에 대해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대단히 희박했다.
덤블도어 교장 선생님에게 알리는 문제만 하더라도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다. 해리는 여름 방학 동안 덤블도어 교수가 어디에서 지내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혹시 덤블도어 교수님은 아름다운 해변에서 느긋하게 휴가를 즐기고 있는 게 아닐까? 은빛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덤블도어 교수가 팔다리를 쭉 뻗고 드러누워서 구부러진 매부리코에 선탠 로션을 바르고 있는 모습이 해리의 머리 속에 떠올랐다. 뾰족한 모자를 쓰고 바닥까지 질질 끌리는 마법사 망토를 걸진 채, 휴가를 즐기고 있는 덤블도어의 모습이 떠오르자, 해리는 잠시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 덤블도어 교수가 어디에 있든지, 해리는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헤드위그는 반드시 덤블도어 교수가 있는 곳으로 날아가서 한 치의 착오도 없이 우편물을 배달할 수 있을 것이다. 해리의 부엉이는 지금까지 주소가 전혀 없는 우편물을 수없이 날랐지만, 편지 배달에 실패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도대체 편지에 뭐라고 써야 할까?
덤블도어 교수님께, 귀찮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오늘 아침에 제 이마에 나 있는 흉터가 아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해리 포터 올림.
해리가 생각해도 그건 너무 우스꽝스러웠다. 덤블도어 교수님에게 이런 편지를 보낼순 없어. 그런데 단짝 친구 론 위즐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빨간 머리 론이 주근깨 투성이의 얼굴을 잔뜩 찌푸리면서 심각하게 말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네 흉터가 아파? 하지만...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 네 근처에 있을 리가 없잖아? 안 그래? 그러니까 내 말은... 넌 알 거야, 그렇지? 그 사람이 또다시 너를 해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야. 안그래? 사실은 나도 잘 모르겠어. 해리, 어쩌면 저주 흉터는 언제나 조금씩 쑤시고 아픈 건지도 몰라... 아빠에게 한 번 물어보는 게 좋겠어..."
위즐리 씨는 마법부의 머글 문화유물 오용 관리과에서 근무하는 완전한 자격을 갖춘 마법사였다. 하지만 위즐리 씨도 저주 마법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해리는 이마의 흉터에서 통증을 느낄 때마다 자신이 깜짝깜짝 놀라고 있다는 사실을 일부러 위즐리 가족에게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위즐리 부인은 헤르미온느보다 훨씬 더 야단법석을 떨 게 너무나 분명했다. 론의 쌍둥이 형 프레드와 조지는 해리가 겁을 내는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위즐리 가족은 해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족이었다. 해리는 머잖아 위즐리 가족이 자기를 집에 초대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었다.(론이 퀴디치 월드컵에 대해서 뭐라고 말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해리는 위즐리 가족을 방문했을 때, 이마의 흉터를 걱정하는 온갖 질문들은 결코 받고 싶지 않았다.
해리는 다시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해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스스로 그런 사실을 시인하는 것이 약간 창피하긴 하지만) 마치 부모처럼 따뜻하게 자신을 감싸 줄 수 있는 보호자였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언제든지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어른 마법사, 진심으로 해리를 염려해 주는 사람, 그리고 어둠의 마법을 경험한 적이 있는 사람...
잠시 후에 해리의 머리 속에 한 가지 해답이 떠올랐다. 그것은 너무나 간단하고 너무나 명백했다. 그 사람을 생각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사람은 바로 시리우스였다.
해리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후에 얼른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양피지 조각을 끌어당기고는 독수리 깃펜에 잉크를 잔뜩 묻힌 후에 '친애하는 시리우스에게' 라고 적었다.
해리는 편지를 쓰기 전에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식으로 의논하는 게 좋을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리는 금방 시리우스를 떠올리지 못했다는 사실일 약간 의아스러웠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것이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시리우스가 자신의 대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고작해야 두 달 전이었기 때문이다.
해리가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시리우스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시리우스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즈카반에 갇혀 있었기 때문이다. 아즈카반은 영혼을 빨아먹는 눈먼 악마인 디멘터라는 생물이 지키고 있는 무시무시한 마법사 감옥이었다. 시리우스가 아즈카반에서 탈출하자, 디멘터들이 달아난 죄수를 찾기 위해 호그와트를 감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아무런 죄가 없었다.
시리우스가 범인으로 지목되었던 그 살인은 볼드모트의 추종자인 웜테일이 저지른 것이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웜테일이 죽었다고 믿고 있지만, 해리와 론과 헤르미온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작년에 웜테일과 직접 대면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오직 한 사람, 덤블도어 교수만이 그들의 이야기를 믿어 주었을 뿐이다.
비록 잠시 동안이긴 했지만, 해리는 마침내 더즐리 가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고 믿었다. 일단 시리우스가 살인자라는 누명을 벗기만 하면, 해리는 대부와 함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일단 웜테일을 잡아서 마법부로 데려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런 희망은 뜻밖의 사고로 인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생쥐로 변신한 웜테일이 재빨리 달아나는 바람에 시리우스도 어쩔 수 없이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해리는 시리우스가 벅빅이라는 히포그리프의 등에 타고 무사히 탈출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 이후로, 시리우스는 계속 도망치는 중이었다. 만약 웜테일이 달아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해리는 새로운 가정을 가지게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여름 내내 해리의 머리 속에서 잠시도 떠나지 않았다. 더즐리 가족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허무하게 놓쳐 버리고, 다시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우스는 해리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비록 함께 있을 수는 없지만 대부가 있다는 사실은 해리의 마음에 한결 위안이 되었다. 호그와트에서 사용하던 잡다한 물건들을 침실에 놓아 둘 수 있게 된 것도 전적으로 시리우스 덕분이었다.
더즐리 가족은 이전까지는 결코 그런 행동을 용납하지 않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더즐리 가족은 해리의 학교 트렁크를 층계참 벽장 속에 쑤셔 넣고 자물쇠로 굳게 잠가 버렸던 것이다. 이런 소동은 여름 방학 때마다 계속 되풀이되었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해리를 구박하던 더즐리 가족은 내심 마법을 몹시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애초에 해리가 아무런 마법도 쓰지 못하도록 모든 물건들을 빼앗았던 것이다.
하지만 해리에게 대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 더즐리 가족의 태도가 순식간에 180도로 바뀌었다. 그 대부는 수많은 사람들을 해친 위험한 살인자였던 것이다. 따라서 해리는 시리우스가 결백하다는 사실을 더즐리 가족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 프리벳 가로 돌아온 후에 해리는 시리우스로부터 두 통의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들은 배달한 것은 부엉이가 아니라(마법사들이 흔히 하는 것처럼) 화려한 빛깔의 깃털을 가지고 있는 열대 지방의 새들이었다.
헤드위그는 이 화려한 불청객들을 별로 좋아하지 안았다. 그 새들은 다시 날아가기 전에 헤드위그의 물통에 담긴 물을 마셨다. 헤드위그는 그 점이 몹시 못마땅한 것 같았다. 그러나 해리는 그 새들이 마음에 들었다.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들을 볼 때마다 야자나무와 하얀 모래사장이 생각났던 것이다. 해리는 시리우스가 어디에 있든지(시리우스는 다른 사람들이 편지를 가로챌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절대로 밝히지 않았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를 원했다. 문득 해리의 머리 속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시리우스는 왜 남쪽으로 간 것일까? 그래, 어쩌면 디멘터들이 밝은 햇살을 몹시 싫어하기 때문일지도 몰라. 디멘터들은 눈부신 햇살을 받으면 살아 남기 힘들 거야.
시리우스가 보낸 편지들은 아주 유쾌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해리는 그 편지들을 침대 밑 마루판자 속에 감춰 두었다. 그 느슨한 마루판자는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던 시리우스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지금은 시리우스의 도움이 정말로 필요한 시기였다. 정말로...
서서히 동이 트면서 여명이 밝아 오기 시작했다. 어느덧 해가 떠오르고 아침 햇살이 비치자, 침실 벽들이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버논 이모부와 페투니아 이모도 이제 막 일어난 것 같았다. 두 사람의 방에서 옷을 갈아입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해리는 꼬깃꼬깃한 양피지 조각들을 대충 치우고 조금 전에 완성한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았다.
시리우스 아저씨께
지난 번에 보내 주신 편지는 고맙게 잘 받았습니다. 그 새의 덩치가 너무나 커서 하마터면 제 방 창문으로 들어오지 못할 뻔했답니다. 이곳은 언제나 똑같답니다. 두들리의 다이어트는 잘 되지 않고 있어요. 이모는 두들리가 어제 자기 방으로 도넛을 몰래 갖고 들어가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이모와 이모부는 두들리가 계속 그런 식으로 행동한다면 용돈을 줄이겠다고 위협했어요. 그러자 굉장히 화가 난 두들리는 창 밖으로 플레이스테이션을 집어던지고 말았어요. 플레이스테이션은 게임을 할 수 있는 일종의 컴퓨터 장치입니다. 그건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었죠. 이제 두들이에겐 관심을 쏟을 만한 메가-멀티레이션 3탄이 없어요.
저는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건 더즐리 가족이 아저씨에게 잔뜩 겁을 먹고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부탁만 하면 갑자기 아저씨가 나타나서 자기네들을 박쥐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예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이상한 일이 있었어요. 제 흉터가 또다시 아팠어요. 지난 번에 통증을 느꼈던 것은 볼드모트가 호그와트로 몰래 숨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볼드모트가 제 근처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안 그런가요? 혹시 저주를 받아서 생긴 흉터가 몇 년 후에도 가끔씩 아프기도 하나요?
이 편지는 헤드위그가 돌아오면 곧바로 부치도록 하겠어요. 헤드위그가 잠깐 먹이 사냥을 나갔거든요. 벅빅에게도 안부를 전해주세요.
해리
좋아. 잘 썼어. 해리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악몽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이 만제에 너무 집착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해리는 헤드위그가 돌아오면 곧바로 보낼 수 있도록 양피지를 접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의자에서 일어난 해리는 활짝 기지개를 켰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다시 옷장 문을 열었지만, 이번에는 거울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해리는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