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26화 (112/128)

11장 - 죽절산

* * *

삼족오 위에 탈 수 있는 인원은 대략 열 명 남짓이라 이번 원정대에 포함된 A급 이상으로 꽉꽉 채웠다. 그리고 그 대상에는 교주가 보내준 지원 전력과 계속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도선측 두 명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슨짓을 할지 모르니 떨어뜨려 놓는 게 안전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저들을 두고 가는 리스크가 더 크다고 판단했다.

기본적으로 혈교라는게 우호적인 집단이 아니다. 평범한 길드 따위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이런 사파 계열에 속한 중국의 문파는 빌드에 최소한의 제약도 두지 않는 게 특징이지.’

제물을 바쳐서 일시적으로 힘을 증폭한다거나, 흡혈을 통해 힘을 저축해둔다거나, 직업적 균형이야 당연히 적절히 잡혀있는 능력들이지만, 마공 운운하며 그런 기상천외한 빌드를 타는 놈이 한둘이 아니다.

‘뭐, 그런 놈들이라고 해도 최소한의 선은 지킨다고 말하긴 하지.’

일단 그런 빌드도 겉으로는 몬스터를 제물로 삼는다고 말하고 흡혈도 돈 주고 자발적으로 받는다고 하는데, 뒤에서 뭔 짓을 해왔는지는 별로 관심도 없고 알 수도 없다.

귀주는 이 사태 전까지만 해도 거의 절반 이상이 혈교 영역권이었고 성 하나를 거의 지배하다시피 하는 만큼 국민으로 등록조차 되지 않은 난민이나 부랑자들에게 뭔 짓을 하는지를 밖에선 알 도리가 없으니까.

거기에 혈교주가 거짓예언자라거나 한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사이비에 가까운 종교 집단의 형태를 하고 있다.

구성원 중에 정신세계가 정상이 아닌 놈이 많을뿐더러 당장 혈교주 본인부터가 빌런화 위험 등급 B급 지정을 받은 중국 영웅 협회의 지정관리 대상이다.

즉, 얕보이면 미친 척하고 사절로 간 우리를 습격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거다.

‘아무래도 이번 만남에 전력이 필요하니까. 거기에 교주가 보낸 두 명은 전부 A급 상위 전력, 만약 이런 놈들이 내가 없는 사이 작심하고 요새에 수작을 부리면 알아내기가 힘들다.’

감시야 붙이겠지만, A급 대부분을 데리고 가는 상황에서 확실하게 통제할 수 있을 거란 장담이 어렵다.

저놈들이 노리는 게 요새에 수작을 부리는 거라면, 붉은달을 대강 해결했다고 안심하고 요새에서 방어하다가 요새가 터져나가면서 성이 요괴들에게 쓸려나가면 여간 낭패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각심을 주는 게 문제지.’

이게 내가 예상한 대로의 일이라 친다면 메이링이 수하들을 아자젤에게 협력하게 할 가능성이 큰데, 두고 가는 것 자체로 이쪽에서 눈치챘다는 걸 알려주는 꼴이 될 것이다.

저런 문제들을 감수할 바엔 같이 데려가서 눈이 닿는 곳에 두고 도선 측이 보내준 둘과 붙여두는 게 낫다.

“아니! 그 몸으로 어디를 가요! 너! 너도 컨디션 다 돌아오려면 3일은 쉬어야 한다고!”

우리가 계획을 알리자마자 김민지 본부장은 거의 발작을 했다. 무슨 말을 할 틈을 안 주고 차트를 붙잡은 채 비명에 가까운 고음으로 타박을 하는데, 끝나지 않는 잔소리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여태 만났던 치유 계열 각성자들은 열에 아홉은 저랬던 걸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그쪽 직업병인 것 같다.

그녀는 블랙이 땀을 삐칠 흘리며 그 필요성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고 나서야 불퉁한 표정으로 차트를 내려놨다.

“정찰만 하고 오는 겁니다.”

“그럴 겁니다.”

“저도 따라가요. 출발 시각은 언제죠?”

“점심 먹고 한 시간 뒤.”

“···이수 녀석 잔소리가 그리워질 줄은 몰랐는데.”

정확히 그로부터 세 시간 뒤, 우리는 하늘을 날고 있었고 저 멀리 혈수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에···.”

“와, 미친. 저걸 어떻게 버티는 거야?”

“맘에 드는 놈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국의 한 성을 지배하는 이들이다. 저 정도도 해주지 못해서야 그 이름값이 아깝지.”

우리 원정대에서 내뱉은 감탄사에 이번 정찰에 참가한 중국 측 히어로 한 명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뭐, 그래. 우리로 따지면 창천과 같은 급에 놓아야 하는 놈들이니까. 하지만 저런 걸 홀로 상대하는 건 제아무리 창천이라도 무리지. 보니까 거의 한계가 온 모양인데.”

중국 측 비위를 맞춰주려는지 블랙은 맞장구를 쳐주면서도 상황만큼은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는 듯 그리 답했다.

“혈교 놈들의 신물이라는 유물, 혈령대진까지 쓰고도 저런 상태인 걸 보면 자네 말이 맞아. 대체 왜 사태 초기에 빠져나오지 않은 거지?”

“그런 정신 나간 놈 생각을 어떻게 알겠냐.”

그 말대로 붉은 장막이 꺼졌다가 펼쳐졌다 하며 위태롭게 깜빡이는 혈수산은 위태로워 보인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요괴의 군세만 족히 십만은 가뿐히 넘을 것 같다.

그 군세는 파도가 출렁이는 것처럼 요새의 까마득한 절벽을 빽빽이 기어오르고 있었고 하늘에는 날개를 펄럭이는 비행체 요괴들이 호시탐탐 혈교도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간 비행 괴수조차 오지 않을 고도에서 이동한 덕에 전투가 벌어지지 않았지만, 우리도 이제는 하강해서 접근해야 하니 오인 사격을 피하려면 저쪽에 우리를 인지하게 해야 한다.

방금 대화를 나누던 중국측 히어로와 내 시선이 마주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의 헌터 와치를 혈교에게 주어진 주파수로 맞추는지 조작한 뒤, 호출했다.

“답이 없다.”

“···네. 그럴 여유가 없어 보이긴 하네요. 어찌할 건가요?”

“접근하죠.”

운이 따라주는 건지 그 순간, 괴물 무리 속에서 검붉은 참격이 번쩍 터져 나오더니 그 상태 그대로 오른쪽으로 쭉 돌며 요괴를 모조리 쓸어버리며 지나갔다.

그리고 블랙은 요괴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몰려든 틈을 놓치지 않았다.

거대 요괴가 달려드는 것으로 여겼는지, 요새 위 원거리 몇이 견제를 날렸으나 각성자 특유의 방어막이 펼쳐지는 걸 보더니 이내 공격이 잦아들었다.

“최종기 날릴 여력조차도 없나 보네요.”

“뭐, 덕분에 안전하게 들어오긴 했는데. 대화 나눌 인간들 빼곤 일단 좀 돕자. 그래야 이 녀석들도 여유가 생기니 우리랑 대화할 기분이 들겠지.”

그렇게 지원 인원이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이쪽으로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측을 가로지른 흉터가 인상적인 깐깐하게 생긴 중년인이다.

“너희는 뭐지? 지원군이라도 온 건가?”

멀리서 보기엔 중후한 중년인 같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꼴이 족히 한 달은 철야를 한 모습이다.

아무래도 우리가 나서기엔 그림이 안 좋다 보니 중국 히어로측에서 먼저 나섰다.

“그 전에, 너희는 대체 왜 연락을 안 받는 거냐?”

“그쪽은?”

“아니, 너희 미친놈들은 너희 지역 담당하는 자국 히어로 얼굴도 못 알아보는 거냐? 내가 이 꼴 나기 전 귀주성 영웅 협회 지부장이다! 내가 니들 때문에 상부에 얼마나 깨졌는지 알기나 해?”

답답했는지 가슴을 치며 괴성을 지르는 게 좀 짠해 보였다.

“그딴 것, 알게 뭐냐?”

“그래. 하긴 너흰 이런 놈들이었지. 그래서 너희 교주란 작자는?”

“교주님께 예우를 갖추도록!”

그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표정에 히어로가 빠르게 포기했다.

“그래. 너희 그 잘난 교주님은 우리가 오는 걸 보고도 안 돌아온 거냐?”

“들어오면서 보지 않았나? 밖에서 싸우고 계시다.”

“그래. 뭐, 그러면 이제 내 소개는 한 것 같은데, 그쪽 직책은? 권한은 어디까지 있지?”

“혈교 대총관 자오타오.”

“3인자군. 그런데 부교주는 어디가고?”

“그는 죽었다. 그러니 전달할 사항이 있다면 내게 말해라. 교주님께 전하고 답을 받아주지.”

중국측 히어로들은 한 차례 술렁였다. 우리 원정대는 잘 모르겠지만, 몇 차례나 회차를 반복한 내가 모를 순 없다. 혈교 부교주 역시 특급 각성자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을 흘릴 뿐, 뭔가 꺼림칙함을 느껴서 그 원인을 찾아내느라 대화에 끼어들지 못하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이제 어쩔 건가요?”

누군가 어깨를 치는 것에 고개를 드니 일행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려 있었다.

“뭘 생각하느라 못 들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죠.”

그간 나눈 대화를 전혀 듣지 못했다는 내 반응에 김민지 본부장이 한숨을 내쉬곤 정리를 해줬다.

“먼저 여기서 돕다가 혈교주를 만나느냐, 아니면 그냥 지금 바로 다시 떠나느냐를 정하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대세는 어느 쪽입니까?”

“바로 떠나자는 쪽이 우세해요. 혈교도들이 우호적일 거란 보장도 없고 전세가 너무 안 좋은데 여기 우리까지 휘말리면 위험하죠. 그리고 지금 우리 쪽 최대 전력은 당신이랑 블랙씨인데, 둘 다 컨디션 정상 아니잖아요?”

혈교주가 날뛰고 있는 지금 다시 빠져나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겠지. 분위기 보니까 거의 만장일치였나 보다.

“일견 합리적인 판단이군요. 그 외에는?”

“지원한다면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죠. 일단, 이번에 방문한 히어로로부터는 통신을 받겠다는 확답은 그 대총관이라는 자에게 받았어요.”

“상황상 군부는 우리 의도대로 움직여줄 확률이 낮다. 우리측에 지원을 요청할 수는 있겠지만, 이쪽도 그리 긍정적인 답이 나올 거라기엔 확신이 없어.”

김민지 본부장과 중국 히어로 측의 말로 왜 시선이 내게 집중되었는지를 알겠다.

“여기서 여유 전력을 움직일 수 있을만한 건, 제 인맥뿐이라는 말이군요.”

“명교 교주나, 무림맹의 병력 일부를 빼 올 수 있다면, 작전을 펼쳐볼 만은 할 것 같은데. 그쪽이 그들을 움직일 수 있나?”

“작전이라면, 어떤 걸 생각하고 있습니까?”

“지어 놓은 요새를 기점으로 게릴라를 펼쳐서 깎아내면 여기 압박이 좀 덜해지지 않겠나? 우리가 가시적 성과를 내고 혈교가 좀 더 버텨준다면 그걸로 군부를 압박할 수 있겠지.”

난 고개를 저었다. 지금 내가 본 것을 감안하면 그런 작전은 택도 없다.

“지금 여기 혈수산에 작전을 펼친다면 오직 길을 뚫어주는 구출작전 하나뿐입니다.”

“김유성, 그건 너무 무리한 것 같은데?”

“이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제가 혈교 교주를 따로 만나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그 배후성을 만나야겠다. 지금 아자젤, 혹은 그 수하가 분명히 이 근처에 있었다.

‘그래. 그게 아니고선 이 지역에선 절대 나올 리 없는 그 괴수들이 섞여 있을 수가 없지.’

모습을 의태 해서 숨기고 있지만, 놈들을 많이 겪어본 내 눈을 피할 순 없다. 그리고 만약, 혹시나 만의 하나의 경우지만 아자젤이 여기 있다면 혈교는 물론이고 지원 오는 자들은 다 죽는다.

‘교주가 어떤 정보를 줬는지 모르니까. 놈이 낚시 중일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도선이 있다고 한들 이렇게 주변에 괴물이 많아선 놈을 죽일 수가 없어.’

아자젤의 권능은 ‘그 생은 전부 나에게서부터’라는 것이다. 놈은 일정 범위 내 괴수와 수하인 네팔렘의 생명력을 착취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이 주변에 어림잡아 있는 괴물만 십수만 마리인데 그 병력을 함께 줄여줄 군대를 같이 끌고 오는 게 아니고서야 승산이 있을 리 없었다.

“뭐, 네가 뭔가 생각이 있겠지.”

“만약, 일이 잘못되면···.”

“제가 책임을 지죠.”

그간 보여준 것 덕분인지, 아니면 인맥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원정대 동료는 일단 지켜보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반면, 중국측은 다수 의견을 내 멋대로 뒤집은 것이 자못 못마땅해 보였으나 어차피 블랙이 나를 지지하는 이상, 그 없이 여기서 빠져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인지 일단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그리고 거의 해가 질 무렵이 될 때쯤, 혈교 교주가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성벽을 향해 돌아오고 혈교도들이 거의 짜내는 듯 힘을 퍼부어서 그런 교주가 돌아올 길을 만드는 것이 보였다.

“흐···, 나를 보자고 했다고?”

그리고 혈교주는 온갖 괴수의 체액으로 목욕하다시피 한 그 꼴 그대로 날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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