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 죽절산
둘의 격전은 내 우편에서 벌어지는 중이다. 그곳엔 일반적인 특급끼리 맞붙은 것과 비교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신화 속 영웅이 겨루는 듯한 장면이다. 블랙도 코브라도 대전쟁 기준으로 치더라도 특급 중 상위권에 들 수 있을 각성자다.
코브라의 경우엔 기본 잠재력은 특급 중간 정도로 여겨졌지만, 변신 빌드의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대략 반 단계 정도를 끌어 올렸다.
블랙의 경우 기본적으로 특급 상위권이지만, 두 명의 협공에 소환수를 내주면서 소모된 상태인데다 선수마저 뺏긴 터라 회피에 집중하게 되면서 이런 팽팽한 대치가 성립한 셈이다.
지금 나와 바이퍼의 전투는 고작 30초 남짓 지났을 뿐이니, 저쪽 전황이 바뀌지 않은 건 이상할 게 없다.
‘지금 내 수준으로도 저 전투는 따라가기 벅차겠어.’
물론, 맞상대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상성의 문제다.
그런 의미에서 바이퍼를 첫 상대로 잡게 된 건 운이 좋았다. 블랙도 코브라도 한 분야에 극단적으로 특화된 빌드를 탄 각성자라 내가 상대하기엔 벅차다.
블랙 같은 경우는 다재다능함도 강점이지만, 기본적으로 물량전을 강점으로 한다.
‘나랑 비교한다면 상위호환이겠지.’
내 강점이라면 각성자들 사이에 기본으로 여겨지는 모든 직군 기술을 사용 가능한 다재다능함이다.
블랙의 전투법은 막대한 마력량을 바탕으로 끝없이 소환수를 뿜어내고 그 조합 시너지를 통해 힘을 극대화하며, 그러면서 블랙 자신은 비행 소환수를 활용하며 무시무시한 기동력을 뽐낸다.
상대하는 처지에선 발목을 붙잡는 소환수들이 시간이 가면 갈수록 계속 쌓여나가는데 그러는 와중에 하늘에서 견제나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어 처리하는 걸 막는다.
강점이 명확한 전투방식이라 지금의 경우처럼 거리만 허용하지 않는다면 일대일로는 그를 상대할 수 있는 특급 각성자가 많지 않을 것이다.
한편 코브라의 경우엔 신체 능력에 극단적으로 투자한 각성자다. 독 폭탄을 쓰긴 하지만, 그건 빌런 활동을 위해 짜투리 재능 점수를 투자해 익힌 수준일 뿐.
변신 계열 각성자 특유의 인간을 벗어난 체급에서 나오는 막강한 신체 능력은 방어하려는 전위를 방어째로 부숴버릴 만큼 강력하다.
‘그러니 블랙도 절대 정면에서 공격을 맞받아치지 않는 거겠지.’
당연히 속도건, 힘이건 기초 전투 능력치라 불릴만한 것이 전부 나보다 우위라 전위 기술로 아무리 보강한다고 해도 정면에서 막다간 골병드는 걸 피할 수 없을 거다.
거리도 벌릴 수 없을 거고 술사 계열의 원거리 폭격 따위는 꿈도 못 꾼다.
‘은신으로 거리를 벌려봐야 근접 상황이 오면 감각으로 빠져나가기 전에 위치를 잡고 공격해 올 거다. 설령 벗어난다고 한들 화살 사정거리 정도면 순식간에 좁히겠지.’
내가 상대한다면 보조기로 어떻게든 움직임을 방해하고 전위 기술로 공격을 흘리면서 암살자 기술로 순간적인 틈을 노려 승부를 보는 방법뿐이다.
‘하지만 저렇게 앞에서 붙잡아 주는 조력자가 있다면 이야기가 좀 다르지.’
전투가 벌어지는 주변으론 휘말린 요괴들이 찢겨나가는 걸 제외하면 약속이라도 한 것 마냥 히어로도 빌런들도 기회를 노리며 눈치만 볼 뿐, 함부로 끼어들지 못했다.
저 전투를 돕고자 한다면 그만한 역량 혹은 엇비슷한 전투 감각 혹은 시야가 필요하다.
‘다들 끼어드는 것으로 오히려 아군에게 방해될 수 있다는 걸 아는 거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쳐가던 찰나, 블랙이 소환해낸 점액질 소환수를 어렵사리 늦지 않게 뿌리친 코브라가 비명인지 고함인지 모를 괴성을 질렀다.
“캬아아아아악!”
물론, 상대하는 김수철은 개가 짖느냐는 표정을 하곤 조금의 압박도 받은 기색 없이 기계적으로 소환수를 부르는 수인을 맺으며 뒤로 물러날 뿐이다.
거리가 벌어지려나 싶던 그 찰나, 무릎을 굽히며 몸을 앞으로 기울인 코브라의 몸이 전방으로 쏘아졌다.
아니, 그건 말 그대로 ‘날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지면과 수평인 채 일자로 날아가는 코브라의 전면으로 공기가 갈라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다.
‘그래. 저런 미친 괴물들이 즐비한 게 결사대였지.’
특급에 도달한 내 감각 능력치에도 그 모습이 흐릿할 속도니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건 지금 여기엔 전투 중인 저 둘 외에는 바이퍼와 나뿐일 것이다.
로켓이라도 발사한 것 마냥 뒤로 퍼져 나가는 충격파에 본능에 따라 인간을 죽이러 주변으로 몰려들던 요괴들이 하늘을 난다.
“하! 미친놈!”
그걸 전면에서 바라보는 블랙의 표정은 미묘했다. 어처구니없어하는 듯도 했으나 반대로 입꼬리에 걸린 미묘한 떨림은 그가 준비된 것도 같았다.
“예상했다!”
“개소리!”
얼굴에 서린 복잡한 감정도 잠시, 블랙은 거의 랩을 하듯 먼젓번 말에 이어붙이더니 험상궂게 웃으면서 맺던 수인 그대로 땅에 내리찍었다.
“그 성질! 언제 못 참고 달려드나 했지!”
“박살 내주마!”
둘 다 어찌나 속도가 빨랐는지 그런 대화들은 이미 격돌한 후에나 뒤늦게 들려올 뿐이다. 난 은신한 채로 화살을 겨누곤 조용히 기회를 기다렸다.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아도 고작 10초조차 지나지 않았다.
블랙 아래 지면이 솟아오르다가 소환이 다 이뤄지기도 전에 코브라가 휘두른 둔기의 희생양이 된다.
만들어지다만 흙더미가 그대로 허공에 흩날린다.
코브라는 전방으로 달려들며 우측으로 휘두른 둔기를 회수하며 덤블링해 착지한 뒤, 그 반동으로 하늘로 뛰어오른다.
이어 내리치려는 일격을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는 블랙은 도저히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블랙의 입 모양과 수인이 완성되며 멈추는 순간, 흙더미는 그대로 수백 마리의 까마귀로 변해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사이로 파묻힌 블랙의 위치를 추측으로 후려친 코브라의 공격은 아주 깔끔하게 빗나갔다.
시야가 없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다. 이 정도 전투가 되면 휘두르는 둔기의 방향을 상대를 보며 쫓아서 통제해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을 테니 어쩔 수 없다.
까마귀의 몸을 박차며 끊임없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블랙의 등 뒤로 거대한 두 개의 팔이 형상화된다.
조금 전의 전투 과정을 해석해보자면, 코브라는 이대로면 어차피 거리가 계속 벌어질 거라 판단. 반격을 감수하고 마력을 폭발시켜 날아가는 방법을 택했다.
어중간한 소환수로는 그 충격량을 버틸 수 없으니 블랙의 선택지는 강력한 기술을 준비해 반격하든지 측면으로 회피하는 수뿐이라는 생각이었던 걸로 예상된다.
물론, 측면 회피는 악수라 변수는 반격뿐이다.
회피하면 블랙 처지에선 마력을 퍼부어 소환수를 뽑아 기껏 벌려놓은 거리가 비행에 가까운 고속 이동에 극단적으로 좁혀질 뿐이다.
‘반격은 몸으로 버텨낼 자신이 있었단 거겠지.’
그리고 블랙은 고함치는 순간, 그걸 예상했는지 그 두 가지 방법이 아닌 자신의 ‘위치’를 바꿀 수 있는 소환수를 뽑았다.
날아드는 상태에서는 즉각적인 공격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값이 ‘덤블링’이라는 동작이 필요했던 코브라의 연계. 그리고 그 덤블링하는 시간이면 블랙의 첫 번째인 소환 촉매에 이은 다수 소환수 소환이라는 연계가 펼쳐지기엔 충분했다.
코브라는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소환수들을 박차며 위치를 바꾸는 블랙의 회피에 공격에 실패해 다시 땅으로 떨어져 내렸고 그 사이 블랙은 원하는 만큼 하늘로 거리를 벌렸다.
코브라 정도면 다시 점프해서 하늘로 따라잡을 수는 있겠지만, 그땐 이미 블랙의 공격이 내리꽂히고 있겠지. 선공권이 넘어간 거다.
이 정도면 내가 굳이 도울 필요는 없겠지만, 나는 저 상태의 블랙이 최대 포텐을 뽑아낼 수 있는 기술을 잘 알고 있다.
‘지금 상태론 고작 거대 팔로 찍어 누르는 거나 택하겠지.’
그걸 결정타로 바꾸려면 아마 노란 화살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결심을 마친 내 주위로 보랏빛 보랏빛 마력의 뇌광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기술 시전 속도를 마력을 퍼부어 강제로 가속하는 여파다.
거대 기술을 사용하는 마력의 격류 탓에 은신은 풀렸다.
그제야 내 위치를 파악했는지 바이퍼가 날 사정거리에 두기 위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감각에 잡혔지만, 그 사이 벌린 거리로 시간은 충분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블랙 역시 바이퍼의 전투 영역이 있던 방향으로 회피하지는 않았으니까.
일전 설악산에서와 달리 황금색 별빛으로 빛나는 화살임에도 그때만큼의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코브라! 너다!”
내 화살이 노리는 것이 제 파트너라는 걸 모를 수가 없는 바이퍼가 동료를 향해 고함을 쳤다.
그 여자는 내 쪽으로 달려오는 걸 포기하고 화살의 경로를 막을 수 있는 위치로 달리는 모습이다.
파트너의 외침에도 코브라는 등 뒤를 노리는 나를 무시하겠다는 듯,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내 공격을 경시할 수는 없지만, 급히 기술을 쏴 날리는 내 쪽보다 저 위의 블랙이 몇 배는 더 위험하다는 걸 아는 거다.
‘과연, 선후는 확실하다 이건가?’
내 공격은 감각으로 잡아내 피하거나 자신의 내구도를 믿고 몸으로 받아낸다. 그리고 누가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블랙의 지금 기술은 회피하거나 쳐낸다.
아마도 그런 계산이겠지.
내 보조를 확인한 즉시, 블랙도 두 개의 팔의 행동을 바꿔 하늘로 들어 올린 상태다. 그 거대 팔의 손바닥 사이엔 불길한 검은빛 원구가 심연의 색을 빛내고 있다.
‘다크 매터 프레셔. 믿고 써 주는군. 이거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그간 블랙에게 내가 꽤 믿음을 산 모양이다.
블랙이 사용한 기술은 ‘저편 너머 혼돈의 손’이라는 계약 소환 기술로, 그리스 신화 계열 최상위 신좌인 ‘카오스’의 힘을 불러오는 기술이다.
무려 신좌의 힘을 불러오는 기술인 만큼, 저 팔을 단순히 전투 용도로 쓰는 게 아니라 저런 소환 기술을 쓰면 역소환 되는 건 당연하고 반동도 크다.
그러니 만전의 상태면 모를까 블랙 입장에서도 내 보조를 믿고 승부를 건 셈.
삼족오가 블랙의 전투 방식이자 상징 같은 소환수라 자주 쓰이지만, 저 손은 블랙이 주로 불리할 때 나오는 소환수라 대전쟁 이전에는 거의 쓰는 일이 없다.
‘약점인 초근접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이니까.’
시위가 손끝을 떠났다. 그리고 화살이 시위를 떠나기 직전의 마지막 순간, 활대를 쥔 내 오른손이 살짝 아래로 꺾인다.
아스트룸 정도 되는 최종기급 화살이면, 특급 각성자라도 아까 코브라의 로켓 같은 비행과 마찬가지로 보고 쳐낸다는 건 불가능하다.
감각에 들어오는 걸 보고 야수 같은 반응속도로 쳐내거나, 혹은 방향 그리고 순간순간 잡히는 것으로 속도를 예측해서 막아내는 거다.
“뭐?!”
그리고 내 사소하다면 사소한 그 수작으로 바이퍼가 코브라를 돕기 위해 쏴날 린 술법은 화살에 어떤 영향도 주지 못하고 낮게 스쳐 지나갔다.
그랬다. 내가 노린 건, 코브라의 몸이 아니다.
‘어차피 맞춘다 해도 아무리 잘 해봐야 내장 좀 진탕이 되고 말겠지.’
아무 대응도 못 하고 그대로 맞추거나 급소를 맞추거나 해야지 예전의 해룡을 상대할 정도의 타격을 줄 수 있는 거다.
코브라 정도면 그 상황에서도 순간적으로 화살을 후려쳐 타점을 바꾼다거나 받아치고 움직일 실력이 된다.
그 사이 화살이 지면에 닿았다.
콱! 파가가가각!!
뭔가가 땅속으로 파고들어 가는 소리가 정적에 빠진 전장을 울리고 출렁이듯 지면이 흔들린다.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며 땅이 쪼개지고 불규칙하게 지면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블랙의 공격을 기다리며 회피 타이밍을 재던 코브라에게 그건 재앙이었다.
놈이 이 정도 지면 붕괴에 대응하지 못할 리 없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가라앉는 지면에서 빠져나가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 방어조차 못 하고 준비된 하늘 위 공격의 먹이가 된다.
‘그러면 이제 방법은 하나뿐이지. 안 그런가?’
결국, 자세가 흔들리는 빌런놈에게 남은 선택지란 건 쏟아질 공격을 막는다는 것밖에 없다.
“죽어라!”
고함과 함께 타이밍을 놓치지 않은 블랙의 소환 기술이 지면에 내리 꽂힌다.
회피는 포기한 듯, 그 사이에 마찬가지로 발동이 빠른 최종기급 기술을 준비했는지 양손에 소용돌이치는 녹색 마력을 휘감은 코브라 역시 그걸 받아낼 준비를 했다.
블랙 뒤의 두 팔은 어느새 합쳐져 한 손으로 구슬을 내리찍으려 하고 있었고 그 거대한 구슬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하자 전장 전체에 묵직한 압력이 퍼져 나간다.
중력이 몇 배는 증가하는 느낌이다. 진원지 주변에 흩어진 D급, C급 괴수들은 그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몸이 터져 피떡이 되어버리고 있다.
한참 떨어진 이곳조차 평소보다 움직이는 데 힘이 서너 배는 더 들 정도니 저 구슬의 바로 아래 있는 코브라가 받고 있는 압력이 얼마일지는 경험하지 않아도 예상이 간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내 감각 영역 내로 뭔가가 날아온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수인을 맺어 그걸 쳐냈다. 아니, 쳐내려 했으나 바람의 막이 튕겨내는 순간, 그건 퍼지며 독무로 변했다.
저 멀리, 독액으로 만들어진 이무기에 탄 바이퍼가 미친 듯이 내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저쪽 승부가 나기 전에, 나를 처리하지 않으면 무조건 불리하다는 걸 아는 거겠지.
‘은신은 불가능하다.’
지금 블랙이 펼친 광역 기술의 여파 탓에 타격 판정을 받아 바로 풀릴 것이다. 난, 블랙의 저 기술이 펼쳐지는 동안의 시간이 내겐 위기라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