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23화 (109/128)

11장 - 죽절산

* * *

김수철은 삼족오의 몸쪽 자리는 중국 히어로 동료에게 내주고 소환수의 머리까지 올라와 말없이 전장을 유심히 살폈다.

보통 때 같으면 소환수에게 명령을 내려 숨결로 괴물의 수부터 줄여놨겠지만, 그는 아무 명령도 내리지 않는다.

그저 소환수와 교감하며 삼족오 위 동료의 공격 유효 사거리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할 뿐이다.

‘어디냐?’

특급 각성자, 그것도 범죄조직인 붉은달의 간부쯤 되면 자기 몸을 은폐하는 유물을 최소 한둘 정도는 가지고 있는 게 보통이다.

특급 괴물이라면 모를까, A급 괴물들로는 유물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숨기는 각성자를 직접적인 살기를 뿌리거나 감지 범위 내에 있는 것도 아닌데 찾아낸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 때문에 보통의 경우라면 대개의 적을 상대로 그의 공격권이란 건 일방적이었지만, 놈들을 끌어내기 위해서 그리고 전장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선 그도 상대 공격 범위 내에 들어가야만 했다.

‘한 번 정도는 두 놈의 공격을 동시에 상대해야겠군.’

특급 두 놈이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선공권을 가진 채 기습하는 걸 막는 건 그라도 버겁다.

따라서 둘 중 하나는 첫 공격 범위에 넣어야만 한다.

‘코브라 놈의 점프 거리는 잘 알고 있다.’

뱀으로의 변신 계열 빌드를 탄 그 미친놈의 점프력은 지면에서 백 수십미터 정도는 우습게 뛰어오른다.

급속 기동으로 그 공격 범위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날 수 있는 범위에서 미묘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그래서다.

물론, 놈들도 대놓고 이쪽에서 그런 움직임을 보이니 습격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한다는 것쯤은 예상하고 있을 것이다.

‘놈, 언제까지고 숨어있을 순 없다.’

끌어온 몰이 병력이 제법 된다고 한들, 대한민국 10대 길드의 일각인 금성의 정예나 등급은 낮아도 내실로 꽉꽉 채운 로텍의 원정대를 상대로 오래 버텨줄 리가 없다.

그리고 그 병력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데려온 이들의 위치가 파악될 확률은 올라간다.

당연히 수가 어느 정도 줄어들면 여유 인원을 퍼뜨려 수색을 시도할 테니까.

잠깐의 폭풍전야 같은 소강상태, 블랙과 모습을 드러낸 코브라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놈이다. 간다! 알아서 버텨라! 홍련의 숨결!”

그가 자세를 낮춤과 동시에 허공에 급정거한 삼족오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부풀어 오른다.

등에 타고 있던 동료 중 몇은 숨결이 쏘아진 뒤 빠져나가려는지 그와 똑같이 자세를 낮췄고 일부는 그 즉시 지면을 향해 뛰어내렸다.

숨을 끝까지 들이킨 삼족오로부터 태양 표면의 색, 홍염의 불꽃이 넓게 방사형으로 퍼지며 대지를 불사른다. 물론, 고작 이 공격으로 저게 죽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놈도 공격의 여파를 수습해야 할 터다. 자, 그럼 어디냐?’

그리고 당연히 연속으로 퍼부어질 블랙의 공격에서 코브라가 수세에 처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다른 놈이 나와야만 한다.

그 순간, 블랙의 감지 영역에 족히 수백이 넘는 고위 각성자들이 잡혔다.

“아···!”

그의 의식을 붙잡아 둔 것은 찰나였지만, 동급 싸움에서는 그 찰나가 극히 중요한 법이다.

그렇다면, 놈의 위치는 주변. 감지를 근방에 집중하자 바로 아래쪽에서 빌드 최종기급 기술이 펼쳐지는 유동이 잡혔다.

낭패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이었다.

‘늦었어.’

제대로 대응하기엔 반 박자를 놓쳤다.

동시에 이 위치에 유도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급히 마력을 퍼부어 소환수에게 강제 기동을 시켰지만, 순수하게 독기만으로 만들어진 검붉은 이무기는 이미 번개처럼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중이다.

그리고 그건 큰 기술을 써 몸이 굼떠진 삼족오로선 마력 가속을 받고도 피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삼족오와의 링크를 유지한 채 허공에서 그 동체를 뒤틀게 시켜보지만, 한쪽 날개를 통째로 주는 걸 피할 수 없었다.

순수하게 양력만으로 하늘을 나는 것은 아니지만, 이 거대 소환수가 하늘을 나는 개념의 기반이 그것인 만큼 추락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하지만 허공에서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는 상황에서도 블랙은 위치를 바꿔가며 자세와 침착함을 유지했다.

고작 이런 걸로 당황해서는 최상위 등급 히어로의 이름이 운다. 동료도 이미 다 빠져나간 만큼, 기술을 쓰는 데는 아무 거리낌이 없다.

떨어져내리는 소환수의 깃털이 전부 황금빛으로 물들고 무시무시한 열기를 뿜기 시작한다.

날개를 녹여버린 뒤, 우산처럼 퍼뜨려지며 전장에 내려앉으려던 독기는 그 고열에 담긴 마력에 전부 힘을 잃는다.

신화 속 예의 화살을 맞은 태양이 떨어지는 장면이 이랬을까?

거대한 운석이 불꽃에 휩싸여 떨어지는 것처럼 지면을 향한 신화 속 신조는 크레이터 만들며 그대로 폭발했고 역소환됐다.

그리고 그 직후, 바람 터지는 소리가 났다.

그 황금빛 폭풍 한가운데 오만하게 내려서는 듯, 일렁이는 사람의 형상을 향해 거대한 둔기를 든 황색 괴물이 짓쳐든다.

그러나 당연히 들려야 할 무엇인가의 타격음은 없었다.

휘둘러진 둔기 너머로 뒤늦은 충격파가 바닥에 상처를 남긴다.

경과는 폭발의 연기와 여파가 사라지고 난 뒤 확인할 수 있었다. 휘둘러지고 난 둔기 위쪽에서 짐짓 여유로운 목소리가 주변으로 퍼진다.

“대체 어딜 공격하는 거냐? 설마 노안이라도 온 거라면 벽에 똥칠하기 전에 뒈져주셨으면 하는데.”

“환영이었나? 하하, 우리 친애하는 깜둥이 친구, 그 여유가 어디까지 가나 볼까?”

여유롭게 내려보는 블랙과 그 정도 무게는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듯 미동도 없이 자세를 유지하는 코브라는 그렇게 간만의 만남에 안부인사를 주고받았다.

대치에서 높은 자리를 잡는다는 건 유리한 점이 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 무기를 휘둘러 털어내려 한다면 선수를 뺏긴다.

그렇기에 코브라는 둔기를 그대로 놓아버리는 선택을 했다.

몸이 돌아가며 휘둘러 치는 긴 꼬리는 채찍처럼 파공성을 내며 허공을 가른다. 그러자 블랙은 예상했다는 듯이 떨어지려는 둔기를 박차며 뒤편으로 뛰어올랐다.

“바이퍼!”

바닥의 둔기를 차올려서 다시 잡고 블랙을 추격함과 동시에 코브라가 제 파트너를 불렀지만, 파트너인 바이퍼는 지금 그쪽에 신경을 쓸 상황이 아니었다.

코브라는 견제가 들어가야 할 타이밍이 이미 한참 지났음에도 어떤 보조도 없자 제 파트너에게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지만, 지금 그쪽에 쓸 신경은 없었다.

블랙이 전방에 쏟아내는 소환수를 박살 내고 독을 뿜어 녹이며 광란의 질주를 하지만, 좀처럼 거리는 좁혀지지도 멀어지지도 않는다.

블랙과 그의 상성은 안 좋은 편이다. 한눈을 팔다간 지금 간신히 잡은 선공권도 놓칠 수 있다.

당장은 어떤 상황이건 파트너인 바이퍼를 믿는 수뿐이었다.

* * *

불과 몇 초 전, 위기를 반격으로 바꿔버리며 바이퍼에게 한 수 물러나도록 강요한 블랙의 대응은 유성에게도 기회를 만들어줬다.

최상위 술사답게 아무리 범위가 넓은 기술이라고 해도 뻔히 보고 있는 상황에서 당할 리는 없다.

그렇기에 깔끔하게 회피를 해낸 바이퍼였지만, 그게 향하는 다음 발걸음 방향만 봐도 어떤 자리를 잡으려고 빠져나가는지는 두 번째를 연 내 수준쯤 되면 바로 보이는 법이다.

‘그래. 거기가 전투 보조하기에 가장 적합한 자리겠지.’

뒤늦게 감지 범위 내에 나를 잡아냈는지 얼굴 절반을 가려 왼쪽만 보이는 스모키한 화장을 한, 그 눈 속에 당혹감이 서린다.

아까 블랙이 반 박자를 뺏겼다면, 바이퍼 역시 전혀 예측하지 못했는지 내게 반 박자를 뺏겼다. 미간을 노린 찌르기는 살짝 얕았다.

그대로 우측으로 긋는 공격에 피가 튀었다.

‘나쁘지 않다.’

그리고 그렇다는 건 상대에겐 자못 치명적인 공격이 들어갔다는 뜻이다.

방금 상황에서 베스트라면 눈을 가져오는 것이었겠지만, 지금처럼 눈꺼풀을 가르고 지나간 것도 전혀 나쁘지 않다.

그건 눈 속으로 들어간 피에 왼쪽 눈을 감아버린 바이퍼의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뒤로 물러나며 빠르게 수인을 맺는 바이퍼의 주변으로 검붉은 독구슬 여럿이 형성되어 회전한다.

부수면 독무가 퍼질 것이고 각성자 특유의 마력 장벽이 있다고 해도 호흡은 반드시 참아야 한다.

그리 되면 독무를 그때그때 흩어버릴 능력이 있거나 동급 서포터의 보조가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술사 계열 상대로 최소 원거리 견제가 가능한 빌드거나 해야 한다.

‘어지간한 각성자는 그런 복합적인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그럴 서포터는 지금 옆에 없지. 하지만···.’

공격도 방어도 동시에 되는 형태. 까다로운 스타일이고 강점이 확실한 빌드지만, 나는 저 어려운 것들 중에 첫째와 마지막을 모두 만족한다.

그렇기에 내 전투 스타일에 분명 당황할 것이다.

바이퍼가 던지는 독 구체를 단검으로 베어버림과 동시에 바람 폭발을 일으켜 좌우로 흩어버린다.

“뭐, 마···검?”

빌런의 입에서 당혹감 서린 목소리가 삐져나온다.

정확히는 마궁수고 마검 빌드는 아니지만, 애초에 쓰는 무기만 다를 뿐 원리는 같다.

화살을 집어 던지는 것도 하는데, 그런 응용을 못 할 것은 또 뭘까?

이미 내 얼굴을 알고 있을 텐데, 기존과 다른 정보에 혼란이 왔겠지.

그 궁사가 자기 이목을 속일 정도 능력치를 가진데다 암살자 빌드에 마검까지 전부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일반적 상식을 넘어서는 일이다.

“윽···!”

놈은 구슬을 하나하나 부수며 접근하는 날 막기 위해서 남은 구슬을 전부 일제사격을 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걸 내가 뚫는 것이 아니라 물러나며 회피하는 걸 택하자 이후 뭐가 올 것인지 예상했는지 숨을 삼키며 곧장 전방에 방어 주문을 겹겹이 둘렀다.

그쪽이 예상했을 건 아마도 화살일 것이고 나도 활대와 화살을 만들어냈지만, 내가 쏴낸 건 최종기급 기술이 아니라 일반 기술인 선레이지였다.

바닥에 내려앉기도 전에 쏴 날린 화살, 자연스레 굽혀졌던 무릅을 펴며 달려들려는 자세.

페이크였다는 걸 보여주는 행동에 그 사이 제 머리카락을 쳐냈는지 드러난 오른눈을 부릅뜬 채 나를 쳐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물러났다곤 하지만 이어질 공격을 예상해 뒤로 물러나지 않고 방어를 택한 탓에 벌어진 거리는 고작 해봐야 십수미터에 불과하다.

그리고 그 정도면 거리를 좁히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도 바이퍼는 방어막을 물리고 지금이라도 뒤로 빼야 할지 아니면 믿고 역공을 위한 공격 주문을 외워야 할지 판단이 안 된 것 같다.

뇌 정지가 온 건지 손을 들어 올린 채 입만 뻐끔이는 모습이다.

[날 도와!]

결국, 바이퍼가 택한 것은 제 마력을 퍼뜨리며 전언을 보내서 주변 부하들을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저런 방어막 부수는데 전위 빌드 기술만큼 강력한 게 없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내 주먹이 전방으로 뻗자 마치 붕권이라도 갈긴 것처럼 웅혼한 소음을 동반한 충격파가 발산하며 보호막이 산산히 부서진다.

당연하지만, 주변에 흩어져 다른 히어로나 헌터를 상대하고 있던 암살자들이 도우러 오기엔 한참이나 모자란 짧은 시간이다.

“이···미친!”

저 정도 각성자의 안목이면 지금 이게 전위 빌드의 제어 계통 기술이라는 걸 모를 수가 없겠지.

바이퍼의 비명에 가까운 욕설과 제어기가 걸린 내 돌려차기가 날아드는 건 거의 동시였다.

‘아, 그래. 당연히 생존기 정도는 있겠지.’

독무가 되어 허공에서 흩어진 바이퍼의 모습이 족히 백 미터는 멀어지고 그와 동시에 내 모습도 흩어지듯 전장에서 사라졌다.

내가 두 번째 기억에서 사용했던 은신 계통 기술만 셋이다.

대기시간이 따로 돌아가는 종류고 거기에 궁사의 동화 기술까지 생각하면 저 빌런은 일반적인 빌드 상식을 벗어나는 암살자와의 악몽 같은 전투를 하게 될 거다.

급히 사용한 생존기의 여파인지 심장을 부여잡은 바이퍼가 내 위치를 찾는지 두리번거리는 게 보인다.

내 위치를 짐작할 수 없었는지 급히 독구슬을 만들어내고 마력을 퍼뜨리며 기습에 대응하려는 모습이다.

‘블랙 쪽은 어떻지?’

바이퍼는 당황으로 시야가 좁아진 상황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곧바로 저쪽에 생각이 닿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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