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21화 (107/128)

11장 - 죽절산

* * *

“믿느냐고? 그럴 리가.”

나는 부탁한다는 말로 통화를 끊으려 했을 때, 붙잡으며 교주가 건넨 말을 되뇌었다.

[그런데 지금의 유성 씨는 절 믿나요?]

“아니.”

그때 그녀는 그리 물었고 나는 바로 즉답했다. 어차피 거짓말을 해 봐야 바로 알아차릴 여자다. ‘감정’에 관해서는 메이링은 특별했다.

[잘 됐네요.]

“마음이 상한 게 아니라?”

[그 정도로 상할 마음이었다면 진작에 떨어져 나갔겠죠?]

조금 전의 그 목소리가 왜인지 즐거워 보였기에 유성은 인상을 찌푸렸다.

“여러 회차를 거쳤다고 하지만, 그 악취미적 성격이 바뀌진 않았겠지. 그렇다면···.”

지금 통화에서 뭔가 그가 알아야 하는 정보를 숨겼을 가능성이 있다.

회귀자를 상대한다는 그런 압도적으로 불리한 정보 격차가 있던 상황에서도 조금이라도 유리해졌다 싶으면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연락을 취해와 그를 놀리듯이 조롱하던 여자다.

‘회차 중 하나가 믿었다면 그만한 이유는 있었겠지만, 방심해선 안 된다.’

다만, 지금 상황에서 내 역량으로 뭔가 알아차릴 방도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중에 유일하게 지금 의심해볼 만한 것.’

의심이 가지를 뻗고 닿은 곳은 이번에 지원을 온다는 두 명에 이르렀다.

‘만약, 그자들이 아군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그 둘을 내게 처리해달라는 암시인 건가?’

하지만 그렇다기엔 성좌와 계약을 시키라는 말이 걸린다. 저들도 분명 설명을 듣고 오고 있을 것이고 내가 소개하는 성좌와 계약한다는 것 자체가 뭘 의미하는지는 잘 알고 있을 터다.

“아니다. 분명, 성좌와 계약한다고 항상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해당 각성자들은 성좌의 제약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겠지만, 그런 맹점은 존재한다. 난 생각을 내뱉으며 스스로 내린 반론을 정리했다.

명교인을 상식선에서 판단해선 안 된다. 지금 저 교주의 부하라는 자들은 대다수가 어릴 적부터 세뇌된 유망주거나 혹은 그 어떤 이유로든 그녀에게 충성하는 자들이다.

그녀의 명령이 있다면 빌런이 될 각오를 하고 나를 찌를 놈은 널리고 널렸다.

‘거기에 포르세티는 절대 명령권을 쓰지 못하지.’

한 회차를 그리 밀접하게 지냈다면 교주가 그의 지분 계약에 대해 알 가능성이 있었다. 설령 포르세티가 그 장면을 보고 있더라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다면 ‘그녀가 왜?’라는 물음에 도달한다. 메이링이 생각 없이 움직이는 것 같아도 즉흥적이라지만 그녀의 행동에는 항상 이유가 있다.

그녀가 내 동료로 있는 상황에서 내 뒤통수를 찌르기로 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란 뜻이다.

‘그게 내가 뭔가를 건드렸기 때문인 배신이건, 큰 그림에서 뭔가를 봤기 때문이건 그 이유는 반드시 있다. 혹시 이번 일을 꾸민 붉은달에게 뭔가 제안을 받은 건가?’

내 생각은 거기까지 닿았고 문득, 유사한 어떤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럼. 설마···.”

일전에 내가 그녀에게 내뱉었던 말, 아자젤이 그녀에게 접촉해왔을 가능성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의 영역이지만,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준비를 해야 한다.

“접니다. 도선.”

[무슨 일인가?]

“자세한 건 직접 만나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시간을 내실 수 있습니까?”

[중요한 일인가?]

“가능성에 불과하지만, 예. 중요합니다.”

[충징으로 오게.]

나는 곧장 충징에 받기로 한 보급품을 실어오기 위해 돌아가는 비행선에 올랐고 도착하자마자 무림맹의 안가에서 도선과 독대했다.

“흠···.”

내 예측을 들은 도선은 고개를 갸웃했다.

“일이 그렇게까지 잘 풀린다?”

“그 정도가 아니라면 교주가 저를 시험하겠습니까?”

“그 요녀의 악취미는 익히 알고 있네만, 그건 너무 나간 것이 아닐지. 아무리 그래도 그런 중요한 일을 자네에게 일언반구 없이 진행하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아뇨. 메이링이라면 분명 합니다.”

만약, 이번 회차에도 기억을 빨리 열어서 교주를 아예 무시했다면 나도 도선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남들에게는 선을 그으며 보여주지 않지만, 분명 한때 연인이었다는 그 사실 때문인지 은연중 메이링이 내비치는 ‘진짜’감정이라는 게 있다.

그저 감이었기에 도선에게는 이해시키긴 어렵겠지만, 나는 종종 그녀가 보이는 무심한 관찰차 같은 표정이나 여전히 어딘가 공허한 눈동자에서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메이링이 사랑하는 건 내가 아니야.’

그녀는 일전 그걸 부정하는 듯이 말했지만, 그녀가 보이는 행동과 말은 그걸 부정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사랑하는 건 ‘나를 사랑하는 그녀 자신’일 것이다. 회귀를 따라다니며 내 곁에 있는 것 역시 그녀 자신의 즐거움, 그리고 말로 설명하기 힘든 무엇인가 특이한 ‘감정’ 때문이겠지.

모두가 그녀를 믿지 못하는 것은 여러 회차를 거치며 겪은 ‘경험’으로 그 감정에 대해서는 몰라도 어렴풋하게 행동에서 느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메이링이 따라오면서 단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는데도 그래서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근거는?”

도선의 그 짧은 되물음이 무겁다. 그래. 이 노인은 몇 번을 회귀해도 항상 어려웠다.

도선은 만만한 이가 아니었고 내가 아무리 대장이라 할지라도 그를 움직일만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다면 역으로 논거를 제시해 설득하려 하거나, 자신의 의도를 내게 밝히며 따로 행동할 것이다.

전성기가 한참 지났음에도 항상 선택받았고 몇 번이고 회귀를 따라왔을, 그 거인이 그렇게 되물어왔고 난 그에 대한 대답을 신중하게 골랐다.

“교주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말, 이성적인 판단이시겠죠. 맞습니까?”

“그래.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지만, 경험에 미루어보아 그런 큰일을 일언반구 없이 한 적은 없었지. 만약, 자네가 그렇게 느꼈다면 그저 약간의 장난을 치는 거로 생각하네.”

“하지만 감정은 어떻습니까?”

내 말에 한참이나 말이 없던 도선은 흔치 않게 노기를 드러내며 답을 내놓았다.

“···그것과 함께 일하는 것 자체가 역겹지. 그 요망한 것이면 분명 그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도선께선 결정적인 순간에 교주가 배신할 거라 보시는 거군요.”

“지금의 자네는 단편적인 정보일 뿐이겠지. 자네는 내가 몇 번을 따라왔는지 아는가?”

“모릅니다.”

“난 자네를 쉰 네 번을 따라왔어. 엔도 츠바사. 그 친구를 제외한다면 여기선 내가 가장 오래됐지.”

그게 의미하는 바에 내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못해도 멸망까지 10년을 잡는다고 치면, 눈앞의 노인은 그 과정에서 단 한 번도 중간에 죽지 않고 최소 오백 년을 넘게 버텨왔다는 거다.

그리고 한편으로 현실에서는 나이 차이가 좀 있지만, 엔도 츠바사와 교류가 있고 그가 거쳐온 세월을 존중하는지 도선은 그쪽을 친구라 생각하는 것 같다.

“지치시진 않으십니까?”

“난 아직은 괜찮아. 뭐, 그리 보지 않아도 안다네. 그쯤 되면 망집일 수도 있다는 것쯤은. 내가 그 고집으로 버틴다면, 엔도 그 친구는 검에 미쳐서 버텼지.”

“아, 아닙니다. 저는···.”

“걱정 말아. 자네를 탓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네. 노인 특유의 아집이라, 나도 언젠가 그것에 지쳐서 역으로 잡아먹히겠지.”

잠시 아련한 표정을 짓던 도선은 다 안다는 듯한 자애로운 미소를 띠며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려주었다.

그건 마치, 내가 순간적으로 그를 인간이 아닌 무엇인가처럼 느꼈다는 걸 이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교주란 것의 본질은 우리가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을 때, 망치겠다는 생각 하나만으로 이 여정을 따라올 수도 있는 것이야. 입으로 내뱉진 않아도 여기서 오래된 이들이라면 모두가 알지.”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자였죠.”

“그래. 내 감정적인 답의 결론을 말한다면, 자네가 말한 것이 그럴 수 있다 생각하네. 당시의 자네 결정과 다른 자네들에게 내가 그간 한 번도 토를 달진 않았으나, 단 일분일초조차 그것을 신뢰해 본 적은 없다.”

도선의 감정은 내가 원하던 것보다는 조금 더 교주에게 적대적이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제게 걸어 주시겠습니까?”

“알겠네. 내 자네의 감을 믿어 보지.”

그 말은 도선 본인이 직접 나서겠다는 뜻이다. 도선에게도 엔도 츠바사에게 느꼈던 그 정도의 실력이 있다면, 설령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바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우리는 군부에서 제안한 장소 중, 비제시 동쪽의 첸시 현, 그 남동쪽의 호수 지역을 선택해 자리를 잡았다.

현재 범정산에서 나온 요괴 군단에게 더 많은 공세를 받고 있는 곳은 귀주의 두 곳 주요 방어진인 쭌이현과 구이양시 중 남쪽에 있는 후자였다.

그리고 그 구이양시에 가까운 첸시현의 남쪽에 자리 잡는다면 차라리 요괴가 새어나올지언정, 의도적으로 몰이하긴 어려울 거라는 판단하에서였다.

그 외에도 비제시 남쪽의 나융현 동쪽의 길목이나, 구창 동쪽의 두 방어선 사이의 외딴곳 등 의도가 의심되는 것도 아주 종류를 다양하게 줬지만, 여기만 한 곳이 없었다.

“그만큼 적도 여기 준비를 많이 해뒀을 것 같긴 한데요. 역시 차선을 택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김민지는 영 뻔한 곳에 자리를 잡은 것 같았는지 불안해 보였지만, 그런 걱정은 애초에 의미가 없다.

“어차피 의미 없습니다. 어차피 적도 우리가 자리 잡은 뒤에 전력을 집중할 테죠.”

“그래. 그리고 그러면 차라리 우리에게 유리한 곳에 자리를 잡는 게 낫다는 거지. 군대와 거기 포함된 각성자 부대가 명령에 따라 조직적으로 몰이하는 거에 비하면 일개 조직이 할 수 있는 거엔 한계가 있으니까.”

“거기에 그 조직은 이미 역량을 동원해서 주변 일대에 난장판을 치고 있기도 하죠. 그런데 정찰 나가셨다더니. 벌써 돌아오신 겁니까?”

블랙은 미묘한 표정이었다.

“어디 좋은 정보라도?”

“혈교 말이야.”

“네. 말씀하시죠.”

“분명 군사회의에선 아마 멸문했을 거라 하지 않았었나?”

“단순히 귀주성 내 혈교 영역을 말하는 거면 물론 쑥대밭이 됐겠죠. 따로 지원 요청이라거나 외부에 연락 온 곳도 없고요. 그 말대로 전멸했거나 아니더라도 한창 남쪽으로 퇴각 중이지 않겠습니까?”

“아니야. 내가 진원지 정찰한다고 가봤는데, 뭔가 묘한 걸 발견했어. 지나가다가 멀리서 본 거라 정확한 건 위성 사진을 요청해야 더 확실해질 것 같긴 한데, 이 녀석들 자기네 요새에 틀어박혀서 막고 있는 거 같아.”

“···저걸?”

마침, 우리 요새 상황실에 설치해둔 TV에서는 최전방에서 벌어지는 전투 상황이 그대로 찍혀서 중개되는 중이다.

그리고 그 기가 질리는 장면은, 산지를 가득 메우고 달려드는 요괴들과 중국의 각성자들이 최전선에서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선을 형성하고 전면에서만 막고 있는 저기가 지금 저런 상황인데, 완전히 포위당해서 쉼 없이 공격받고 있을 길드의 요새가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

“말이 됩니까?”

“그런데 되니까 그놈들이 살아있는 거 아니겠냐.”

“솔직히 애초에 이 상황을 알고 미리 준비한 게 아니고서야.”

“그건 그쪽하고 직접 만나봐야 알겠지. 어쩔까. 내가 가볼까?”

적진 한복판이라 보통 각성자로는 힘들겠지만, 동해안 사태에서도 그랬듯 특급 각성자이자 비행 계열의 스페셜리스트인 김수철이라면 그쪽과 직접 접촉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 전에 충징의 작전 본부에 알려서 연락 시도부터 해보죠.”

“그리 버티는데 구원 요청 한 번 안 했던 걸 생각하면, 그쪽은 별로 통화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이는 것 같다만···, 그게 정상적인 절차긴 하겠지.”

그리고 우리가 보낸 보고를 충징의 작전 본부로부터 받은 군부에서는 그대로 씹었다. 대놓고 김수철이 잘못 본 거고 그럴 리가 없다는 거다.

“위성 한번 찍어보면 그만일 일을···.”

“이게 외부에 밝혀져 좋을 게 없겠지. 이러면 아무래도 곧 그놈들이 오겠는데.”

빌런 조직의 습격이 코앞으로 당겨졌다는 걸 모두가 직감적으로 느꼈다.

“여러모로 운은 따라주는 것 같군요. 저쪽 군인들 처지에선 아니면 협상을 하든지 해서 우리 입을 막아야 할 테니까요.”

“가장 쉬운 건 이미 계획된 습격을 앞당겨 살인 멸구를 하는 거고? 적어도 우린 군부가 썩진 않았는데, 여기 중국은 아주 개판이구만?”

“하하···. 저희도 이런 연합 작전만 아니라면 이렇게까지 개판이 나진 않습니다. 아무래도 지금 중국 내 모든 세력이 모여있다 보니 책임을 떠맡지 않으려 하는 것 같군요. 그래도 이걸로 확실한 건 있죠.”

제갈운의 말에 이 자리에 모인 다섯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건을 듣고 바로 따로 협상을 걸어오는 장군들은 적어도 중립이거나 아군이란 말이겠지.”

“네. 첩자를 군에서 걸러낼 기회입니다. 사전에 이야기된 대로 그쪽은 저희 제갈가에서 맡겠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뒤의 밤부터 세계 최대 범죄조직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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