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20화 (106/128)

11장 - 죽절산

제자들을 데리고 금성 팀에 합류하니 김민지 본부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화를 요청해오기에 응했다.

“들려오는 걸 보면 동해안 사태랑 상황이 비슷한 것 같네요.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 몇 번 조언했더니···.”

“그와 관련해서 중국 길드들에서 금성 측에 계속 연락이 오나 보군요.”

“네. 제게 자문해오더군요. 그런데 딱히 해줄 말이 많진 않아서요. 몬스터의 구성도 다르고 겪은 일화에 관해서 이야기 해주긴 했는데, 그게 다니까요.”

동해안 사태가 그랬던 것처럼 댐에 해당하는 게이트가 터지면 전쟁에 가까운 전면전이 되는 법이다.

“역시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그거겠죠.”

“네.겉보기엔 게이트가 터져 필드화 하는 경우와 그리 달라 보이진 않지만, 기존과는 다르게 인류가 공격할 기회가 전혀 없죠.”

“그나마 지성체가 있어도 전투 수준이었고 조직화하는 경우가 드물었다는 걸 고려하면, 특이하긴 합니다.”

”네. 인간이 반드시 수비하는 처지가 되고 그 규모는 전쟁 이상이에요. 이런 게이트가 계속 터진다면···.”

동해안 사태가 처음 발생한 지역은 강릉이었고 해당 지역을 수복하고 감지 능력에 특화된 조사팀이 파견되어 그 흔적을 확인하고 내린 결론은 ‘게이트에 진입하자 바로 필드로 터졌다’였다.

그리고 몇몇 성좌에 의해 알게 된 정보를 소위 ‘전문가’라며 풀어낸 이들 때문에, 한국 고위 각성자나 군부, 정치권 사이에는 동해안 게이트가 특별했다는 것 정도는 밝혀진 상태다.

그리고 아직 중국 측에는 그런 정보가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는데, 이 정보가 공유되자 이번 죽절산 게이트도 동일한 사태였다는 게 당시 최초 현장에 있었던 각성자들 통해 보고가 되었다.

“후-, 과연 이게 의미하는 바가 뭘까요?”

“어렴풋이 짐작은 하시지 않습니까?”

눈 앞의 여자도 그 답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쪽은 지나칠 정도로 침착한 느낌이네요. 사실 출발하기 전에 당신에 대한 자료는 받아봤는데, 아주 깨끗하더군요.”

“서 길드장님이 뭐라 하십니까?”

아마 이쪽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서이수가 나와 협력하는 것과는 별개로 나에 대해서 그녀에게 따로 조사하라 말한 것 같다.

“저희도 눈이 있으니까요. 그쪽이 심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건, 처음 산동에 들렸을 때부터 느꼈어요. 지금 저 멀리서 거리를 지키며 서 있는 두 중국인 실력자도 그렇고 만나고자 하는 인물들이 하나같이 거물인데.”

“정작 제 과거는 깨끗하다는 말이군요.”

“그래서 저희는 당신이 어디선가 정체를 숨기고 한국에 숨어든 어떤 거대 조직원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죠.”

과거 신변잡기 정도는 금방 확보하리란 건 예상한 바다.

물론, 서이수 정도 되는 인물은 내 정체에 대해 알 자격이 있다.

실제로 두 번째 기억 속의 초기에는 같이 회귀했던 인물이기도 하고 북쪽으로 진군할 때, 기억 속 정보에 의존한 최적의 전투를 벌이기 위해선 그녀의 전폭적인 협조가 필요할 테니까.

하지만 그게 지금은 당장은 아니었다. 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미묘한 웃음만 지어 보이며 김민지 본부장의 질문을 넘겼다.

“음, 마음대로 생각하라 이거군요.”

내가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려 바라본 곳에는 대나무 요괴를 상성도 맞지 않는데 무수한 얼음 창을 날려 시원시원하게 쪼개버리는 최서린과 인형 다수로 전면을 막고 안전하게 하나씩 처리 중인 제자들이 있었다.

처음 가르쳐준 대로 약점 공략하면서 무난하게 잘 상대하고 있다 싶어서 눈을 돌리려는데, 그런 내 눈에 괴물들 사이의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죽각귀 중에 저런 색상의 괴물이 있던가?’

묘하게 불편해 보이는 움직임, 보통의 죽각귀 같지 않은 검게 물든 색상과 더 묘한 것은 그런 검은 빛 아래 기이하게 잠깐씩 보이는 번들거리는 보랏빛이었다.

‘그래. 그렇군. 마치 뭔가로 물들여놓은 것처럼···.’

동시에 거의 반사적으로 내 머릿속에는 맹독으로 테러하는 걸 즐기는 어떤 빌런이 한 명 떠올랐다. 그리고 제자들이 막 무리 사이에서 튀어 나가는 그 죽각귀를 발견하는 것도 거의 동시였다.

“어? 하민아! 저기 레어몹 있다?”

“뭐? 어디?”

“저기 검은색 달려오는 것 안 보여?”

“그러네. 색이 좀 특이하네? 경험치 더 주려나?”

순식간에 팔목에서 활대를 만들어내고 바로 시위에 살을 건다.

적중당한 죽각귀가 폭발함과 동시에 그 여파까지 증발시켜버리려면 아스트룸 같은 필살기급 공격을 쏴 날려야 하는데, 그럴 시간이 없다.

‘만약 두 번째를 열지 않았다면 여기서 태반은 죽었겠군.’

터지고 난 다음엔 늦는다. 그저 소리쳐서 범위에서 피하기엔 늦었다. 저것에 피해를 보지 않으려면 가장 적합한 기술로 대응하거나 방어막을 겹겹이 펼쳐야 했다.

‘특급 각성자가 제약을 가지고 쓰는 기술이다.’

모습을 드러낸 상황에서는 즉석에서 만들어 쓴 적은 한 번도 없었다는 걸 감안하면, 즉각적으로 쓸 수가 없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런 제약을 감수하고 익히는 기술이라는 건, 당연히 가성비가 좋기 마련이었다.

‘그 규모를 생각하면 A급 아래 기술로는 제어조차 어렵다.’

적합한 기술을 판단하고 그 여파를 계산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서부터, 두 번째 기억에서 얻은 경험으로 크게 성장했다는 걸 느낀다.

시위를 건 내 화살 주변으로 광풍이 몰려든다.

풍계 마궁수 빌드를 탔을 때 익혔던 기술, 스톰 룰러를 사용해 화살에 제압을 위한 바람을 실었다.

갑작스러운 거대 기술이 펼쳐지는 파동에 뭐 하는 거냐는 시선이 몰렸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쏴 날렸다.

그런 시선을 신경을 쓸 틈은 없었다.

필살기급 아래 단계 기술 중에 유성이 가진 가장 빠른 기술이었지만, 지금 상태면 화살이 도착하기도 전에 연화의 나무 인형이 저걸 건드릴지도 모른다.

간발의 차이로 연화의 인형에 부딪히기 전, 화살이 먼저 닿았고 보랏빛 독무가 폭발함과 동시에 바람 폭탄 역시 터졌다.

그냥 사방으로 터져나가려는 독기 폭탄과 다르게 제압 목적의 스톰 룰러는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가 넓은 막을 만들어내며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쳤다.

바람 사이로 조금씩 빠져나간 독기에 아래 땅이 검게 물들고 식물들이 모조리 시들어가자 그제야 상황의 심각함을 느꼈는지 모두가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그에 대응해낸 내게 자연스럽게 시선이 몰렸다. 알아봤으니 그 위험성도 내가 알리라는 판단이다.

“다들 반경 500m 이내로 접근 금지. 누구 짓인진 짐작이 갑니다.”

“저런 걸 쓰는 건 그 코브라 놈뿐이지.”

그새 본진에서 마력 파동을 느끼고 급히 온 것인지 하늘에서 독수리 소환수의 다리에 매달려 날아온 블랙이 바닥에 내려섰다.

“그러면 우릴 노린 건 그 빨간 놈들인가? 예상은 했지만, 제대로 비위를 건드렸나 보군.”

김수철은 저 멀리 스톰 룰러의 효과가 끝나자마자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독무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은 류웨이를 노린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이걸로 조금 유리해졌다. 이건 빼박이니까 증거자료 협회에 제출하면 바로 히어로 소집 가능해. 위험했지만, 이걸로 놈들에게도 타임어택이 걸린 셈이니 나쁜 흐름은 아니지.”

하지만 상황은 블랙이 예상한 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지원할 수 없다고? 그걸 보고도?”

[그게, 지금 갑자기 빌런 놈들이 날뛰기 시작해서 주변 지역에 여유가 없소.]

반대편은 정말 미안하다는 표정이었다.

“주변이 어렵다면 멀리서라도 끌어와야 할 것 아냐.”

[그게, 지금 충징이나 운남성, 호남성 전역에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빌런들이 천지란 말이오. 아무리 그놈 잡는 게 중하다곤 하지만, 일단 당신네들 전력도 약한 건 아니잖나. 히어로의 최우선은 민간인이니까.]

“하-, 우리가 중국인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블랙. 그건 말이 좀 심한 것 같소만? 그쪽이 누차 설명한 덕에 거기 누가 합류해있는지 우리도 모르는 바는 아니잖소. 그 두 사람 역시 우리 자국민에 요인이기까지 하지.]

“···상황이 좀 많이 꼬이는 느낌이라, 내가 흥분을 좀 했다. 미안해.”

그 퉁명스럽지만, 이해는 한다는 듯한 답변에 정신을 수습한 블랙은 얼굴을 쓸며 사과했다. 저쪽도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안다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쁠 만한 말이다. 심하긴 했다.

[우리도 최대한 빨리 사태를 해결할 거고 하는 대로 지원을 보낼 거요. 다만, 지금 상황에 조언을 좀 하자면 그런 놈들이라면 이 기회를 노릴 거라 상각하오.]

“이 기회를 노린다고? 이게 왜 놈들의 기회지? 지금처럼 모습을 드러내서 요란하게 시선을 끈다는 건, 그저 단기 승부를 보겠다는 말 아닌가?”

[명분.]

“아···! 그런가!”

나는 그게 말하는 사실에 눈을 부릅떴다. 이건 군부에게도 무리 없이 우리를 옮길 명분이 된다.

[그 옆의 유명인사는 금방 눈치챈 모양이군. 당신네들이 있는 곳은 어쨌거나 귀주성이고 최전선이요. 그리고 비제시는···.]

“최전선의 주 보급로였지. 이런 빌어먹을···.”

보급로의 안전을 핑계로 우리를 어디론가 옮기려 들 거란 말이다. 그런 핑계로 옮기는데, 아예 후방으로 보내달라는 말은 하기가 어렵다.

나나 반대편 중국 상위 히어로가 조금 전 눈치챈 것을 블랙도 알아듣곤 나지막하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주 뻔한 짜고 치는 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을 준비했다면 막기 어렵소. 내가 그 빌런 놈이고 군부에 첩자가 있다면 명분으로 쓸 거요. 놈이 이리 모습을 드러낸 건, 미리 준비해둔 유리한 곳에서 승부를 보고자 함이겠지.]

“그래. 자신이 있으시단 말이군. 나를 상대로 말이지.”

그런 통화가 끝나고 채 반나절이 가기도 전에 군부로부터 빌런들의 목표가 우리인 것 같으니 지금 비제시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는 정중한 요청이 들어왔다.

그리고 우리 수뇌부는 그 장소를 두고 곧장 회의에 들어갔다.

“마치 우리가 다른 장소를 요구할 걸 알았다는 듯, 그걸 차단하면서 여러 장소를 제시하네요.”

“그래. 이리 선택지를 줬는데 반발하지 말라는 거겠지.”

“하나같이 애매하군요.”

“그리고 공통점은 몰이당해도 이상할 게 없는 위치라는 거야. 김유성. 네 인맥이라는 중국측에선 얼마나 자본 지원을 받을 수 있지?”

그 말에서 김수철의 의도를 바로 읽었다.

“요새화하려는 겁니까?”

“그래. 아예 요새를 짓고 그걸 기반으로 버티다가 정 안되면 비공정 타고 탈주해야지. 이런 곳에서 죽어줄 순 없으니까.”

“임무를 줘서 떼어내 위협하려 할 텐데요.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두면 뺏으려 들 수도 있습니다. 거기에 한곳에 틀어박혀 있는 게 더 위험할 수도 있어요.”

이번 반박은 김민지 본부장이다. 하지만 블랙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래도 우리는 요새를 지어야 해. 노리는 건 결과가 아니니까.”

“그게 무슨···.”

블랙은 모두가 놓치고 있는 걸 짚었다.

“짓고 있는 동안에는 안전하니까. 그걸로 시간을 끌며 핑계도 댈 수 있겠지.”

“아! 어쨌거나 우리는 손님이니, 우리가 노력하고 있었고 불합리한 명령이라는 증거만 있다면 대전략이 아닌, 전투 수준의 일이라면 항명도 어느 정도는 배 째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이군요?”

“그래. 놈들이 가라는 곳 중 요충지가 아닌 게 있겠어? 이유 없는 곳에 보냈다간 후에 문제 될 게 뻔한데? 그리고 그런 곳에 요새를 짓는데, 나쁠 리가 있나.”

“상대도 우릴 움직이는 데는 근거가 필요하다는 거고 무리한다는 건 목을 걸어야 한다는 거군요.”

“거기에 우리가 전멸할 상황이라 못 가겠다는데 지들이 어쩔거야.”

그 말대로 현장 지휘관의 판단은 어느 정도 존중하는 게 암묵적인 원칙이다.

“그러면 그걸로 가보죠.”

당장 동쪽에서 전력으로 막고 있는 중인 교주는 어렵겠지만, 제갈운이나 곤륜 도선의 힘을 빌린다면 요새를 짓는데 들어갈 지원 정도는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을 내리자마자 우리 행동도 빨랐다.

우리 설명을 들은 제갈운은 곧장 본가에 연락했고 제갈민은 자기쪽 군부 라인을 통해서 군부 쪽에서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압력을 넣으면서 호위대 외에도 지원부대 역시 보냈다.

[알겠네. 이쪽도 사람을 좀 빼보도록 하지. 하지만 시간은 좀 걸릴 테니 몸조심하게.]

곤륜 도선도 근방 인맥을 동원해 요새를 지을 짐꾼들을 보냄과 동시에 따로 특공부대를 보내주기로 했다.

[섭섭한데요, 유성씨? 도선한테만 연락하고?]

“나는 네가 여유가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예 몇 명 정도 보낼 여유는 있답니다. 지금 유성씨가 특급까지 활성화하지 못한 능력치가 힘이랑 민첩이었죠? 그쪽 인원으로 보낼게요?]

“부탁한다.”

마지막은 교주, 그녀는 포르세티와 선계약을 하라며 무려 특급 잠재력의 각성자를 빼주겠다고 했다. 가릴 처지는 아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유성과의 통화가 끊어지자마자 메이링은 입가에 살짝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흐음···. 확실히 기회가 오긴 했는데. 여기서 모험을 하느냐, 마느냐란 말이지?”

생각에 빠진 채 명교 본단의 교주전에서 혼자 춤을 추던 메이링은 침대에 뛰어들고는 중얼거렸다.

“그래. 역시 이럴 땐 역시 내 감을 따라야겠지. 유성씨야 또 질색하겠지만, 모름지기 훌륭한 반려라면 미래를 보고 내조를 하는 법. 뭐 이것도 다 유성씨를 위한 거니까.”

드러누운 채, 유성을 호위하러 갈 두 사람을 불러들인 메이링은 그들에게 지시를 적은 옥간을 건넸다.

“이런 기회에 못 넘어선다면 그에겐 자격이 없는 거겠지. 그래. 영웅의 자격이.”

그리고 그 마지막 말을 하는 메이링의 눈매를 아마 누군가가 봤다면 눈동자에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그 소름 돋는 무정함에 몸서리쳤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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