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19화 (105/128)

11장 - 죽절산

* * *

그렇게 유성과 일행은 제갈운을 대표이자 지휘관으로, 그 참모로 류웨이를 대놓고 밀어 넣었고 그걸 확인한 모략을 꾸민 측도 대응책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그···.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거 제갈가에서 뻔히 보고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계획대로 건드리기에는 제가 너무 티가 나는데···.”

[이야, 어처구니가 없는 수네. 그런데 대놓고 미친 짓을 하니까 수가 안 나는걸?]

“예. 저희 쪽도 받아보고선 몇 번이나 다시 연락했었습니다. 좀 어이가 없긴 했죠.”

[트집이야 잡을 수 있겠지만, 역으로 그 경우는 이쪽에서 선을 넘는 거겠지. 그런데 그냥 질러 보는 건? 아, 그 전에, 제갈가에서 개입한 건 확실해?]

“그렇지 않겠습니까? 상황에 따라서는 대를 이을 수도 있는 직계인데요. 급이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지만, 나름 자기 영역에서는 인정받는 편에 어쨌거나 각성자고.”

기본적으로 이 헌터 세계의 길드는 각성자가 이어받는 게 원칙이다.

인구 대비 각성률이 높은 편이고 대개 양쪽이 다 각성자인 부모를 뒀다면 열에 일곱은 자식이 각성하는 편이라지만, 반드시 각성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기에 대개는 집안, 집안이 무리면 가문에서 각성한 인원 중에 실력 있는 인물에게 물려주는 편이다.

그리고 그마저도 어려운 처지가 되면 그때는 데릴사위를 데려온다거나 길드 내 중진에게 길드장을 넘기면서 지분만을 가져오는 거다.

그리고 제갈운의 위치는 현재 제갈가에서 3순위 정도는 되는데, 그런 인물을 대놓고 밀어 넣었으니 이들을 제갈가가 주시하지 않는다고 보기가 오히려 더 어려웠다.

“그런데 그냥 질러보신다고 하심은···?”

[아예 우리가 그쪽하고 관계를 청산하는 걸 각오하고 한 번 대놓고 밀어붙이는 거 말이야. 뭐, 당연히 그만한 대가는 치러야지.]

“그렇군요. 시기랑 작전을 공유해주신다면야. 철저하게 준비한다면 이쪽도 한 번 정도는 가능은 하겠습니다.”

[그렇군. 한 번 정도는 무리한 작전을 지시하는 게 가능하단 말이지.]

“예. 뭐···, 그렇죠. 저쪽이 이번에 내민 수가 까다롭긴 하지만, 제갈가와 원수질 각오를 한다면야 제 직권으로 한 번쯤은 밀어붙일 수 있습니다.”

[음···.]

“그리 알고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아니야. 일단은 나도 고민 좀 해봐야겠는데?]

통화를 받은 이로서도 지금 휴대폰 너머의 인물을 맘대로 소모하긴 어려웠다.

쥐수염이 저자세로 나오고 있었지만, 조직의 규모 때문에 비위를 맞춰주는 것뿐, 일이 틀어진다고 맘대로 정리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쪽을 내 맘대로 소모하기에는 좀 빡세거든. 조직에서도 나름 그쪽을 쳐준다는 거니까 고맙게 생각하라고.]

“하하···.”

[뭐, 지금 확답은 어렵고 다시 연락해줄게.]

“얼마나 기다려야 합니까?”

[좀 걸릴 거야. 그냥 지금은 벌집 건드리지 말고 내버려둬.]

그렇게 쥐수염과의 통화를 끊은 인물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키보드에서 손을 떼곤 한 손으론 턱을 괴고 반대편 손으론 단검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은 정리하기엔 아는 게 너무 많아서 골치 아픈데.”

이런 놈이라면 당연히 뒷구멍으로 그들을 협박하기 위한 장치 정도는 수십, 수백 개를 만들어뒀을 거다.

그래야 똥통이 터지는 게 더러워서 건드리질 못할 테니까.

물론 그들 조직 특성상 손해를 볼지라도 지를 때는 지르지만, 그걸 중간관리자급인 그가 결정할 건 아니다.

그는 잠시 직접 가서 처리하는 것과 저놈의 입을 다물게 하는 비용에 대해 고민해보다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어느 쪽도 어려워. 턱도 없겠군. 그보다 그런 변방에서 그년을 일방적으로 몰아붙일 만한 재능이 나오다니. 이래서 세상일은 알 수가 없다니까?’

그 바이올렛이 본단에 가서 무릎까지 꿇어가며 요청한 사안이라 12인 위원회에서 척살 허가가 떨어졌다.

기한은 무제한. 바이올렛이 죽거나 그녀에게 붙은 척살대가 전멸하기 전까진 한국이라는 국가를 계속 괴롭힐 것이다.

그 원흉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성에게 이번 수작을 걸려고 했던 건 붉은 달 측이었다.

지금 그들을 물 먹인 한국엔 척살단이 대규모로 입국 준비를 하는 중이다.

척살대와는 별개로 시후라는 이름의 암살자를 회유 혹은 처리하기 위해 최고간부진도 둘이나 포함된 상태.

그렇기에 남자는 그쪽에 뭔 일이 생길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그곳에는 엔도 츠바사라는 규격 외의 대인전 스페셜리스트가 역으로 그들을 노리고 있었지만, 불과 몇 개월 사이 그가 세계 최대 범죄집단에서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상식을 초월하는 괴물이 되어 있는 것은 상정하기 힘든 일이다.

‘그래도 오랜만의 전면전이니 재밌기는 그쪽이 재미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현재 척살대 외의 다른 지역 조직원들은 바이올렛의 요청이 오면 개인 판단하에 참여 여부를 결정하라는 위원회의 전언을 받았다.

남자도 바이올렛으로부터는 연락을 받은 차였다.

거기에 평소 선배 알기를 우습게 알며 고압적이던 게, 저자세로 나오는 것이 기분이 썩 나쁘진 않았다.

‘단지 그게 합류 요청이 아니라 중국 쪽으로 도망치는 쩌리들을 뒤늦게 파악했는지 처리해달라는 거라 문제였지. 뭐, 그래도 나름 블랙 그 녀석이 포함되어있으니 건드릴 만은 한가?’

할 일도 없겠다, 건방진 꼬맹이에게 이참에 빚 하나 미리 받아두는 셈 치고 참가를 했는데, 상대가 걸어온 수 싸움에 갑자기 흥이 올랐다.

‘기껏해야 국내 급에 잘해봐야 간신히 지역 급을 만족하는 목표물이라 여겼는데 말이야. 간만의 세계구급 사냥감일지도 모른다. 놓칠 순 없지.’

저 중에 그나마 까다로운 상대인 블랙은 활동과 실력 자체는 세계구급인데 워낙 혼자 움직이고 독고다이 같은 성향 탓에 영향력 자체는 지역 급도 못 되는 대상이다.

그래서 쉽게 쉽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상대 대응이 제법이었다.

상황을 보니 지역급이 아니라 세계구급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대가 하나 정돈 포함된 것 같다.

“자, 오랜만에 가치 있는 사냥감을 잡을 시간이다.”

보통 사람보다 비정상적으로 긴 혀가 그 단검의 칼날을 타고 올라간다. 혀끝의 쇠 맛을 느끼며 남자는 앞으로의 격돌을 기대하곤 킬킬거렸다.

다만, 이번 일에 끼어든, 그리고 끼어들려는 자들은 붉은달 뿐만이 아니었다.

이들의 생각처럼 일이 단순하게 돌아가진 않을 터였다.

* * *

[인도의 어느 비처]

한없이 자애롭다 느껴지는 음성이 기이한 힘으로 만들어진 흐릿한 화면 너머에서 들려온다.

“예. 아버지. 예정보다 몹시 빠릅니다.”

[성좌가 뭔가 얕은수를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그들로선 사타니엘이 오기 전, 아버지를 끌어내 없애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 게임에서 그것만큼 점수가 큰 것이 없으니까요.”

아자젤의 힘이 다른 셋 중 둘에 비하면 약한 편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아자젤은 오랜 시간 혼자일 수밖에 없고 다른 기사들에 비하면 악조건이다.

그러니 이 일에 그리 적극적이진 않을 성좌들로서도 일확천금을 위해 충분히 욕심을 내 볼만 했다.

[그리 단정 짓지는 마라. 그저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다.]

그리 말하면서도 아자젤은 이게 단순한 우연일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기엔 사안이 너무 컸다.

[순서가 뒤틀리는 것만으로도 가능성은 크게 요동친다. 과거 단탈리온은 이대로면 저 인간들이 멸망하고 그분께서 우리에게도 기회를 주실 거라 했으나, 그건 그의 예지대로 갈 경우만이다.]

“예. 반드시 그때가 오기를···!”

[언제든지 상황에 개입할 준비는 해뒀느냐?]

“저야, 이미 인간들 사이에 녹아들었으니 어려울 것은 없습니다.”

네팔렘의 외형은 좀만 손보면 인간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그건 각성자로 인간 사이에 스며들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특징이었다.

물론, 모두 타락해버린 탓에 천사나 성인 따위를 배후성으로 둔 각성자라면 곧바로 눈치채겠지만, 그렇게 알아챈다고 해서 멋대로 그들을 죽여버릴 만큼 인간 세상의 법이라는 게 만만하지는 않다.

[이 기회에 인간들 사이 연계를 끊어버릴 수 있다면 상황이 더 좋게 흘러갈 수도 있겠지.]

“그 말씀은···.”

[그래, 남쪽의 예언자와 북쪽의 예언자를 움직여라. 그것들로 시선을 가리고 지금 수작을 부리는 성좌가 누군지 파악해봐라. 그렇게 이 게임에서 일찍 탈락하고 싶으시다면야, 그렇게 만들어 드려야지.]

그렇게 유성을 노리는 적들이 있었다면 아군도 있었다.

“아니, 천마왕씨. 진짜 이거 맞냐? 내가 열래서 열었는데, 이거 솔직히 자살 행위 같은데? 우리 성좌님 전적이 전적이라 도저히 믿지를 못하겠다.”

[흐흐, 자칭 혈마라는 놈이 이제 와서 쫄리느냐? 세상의 이치란 전부가 아니면 그냥 뒈지는 거다! 으하하핫!]

“애들 다 죽어나가는데?”

[크흐, 그런 쫄다구가 아무리 많아 봐야 곧 다가올 난세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느니라. 믿을 건 오직 너와 나뿐. 그러니 너를 믿는 나를 믿어라!]

“아주 신이 나셨군. 뭐, 나도 상관은 없는데. 뒤는 확실한 거겠지?”

이렇게 모든 세력을 잃어버리면 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이들이나 경쟁자들이 그를 가만히 둘 리가 없다.

혈마 본인도 막연히 혼자 헤쳐나갈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당장 중국을 벗어나는 것부터 막막한 건 사실이다.

[태백금성이 우리 뒤를 봐준다고 했으니 걱정할 필요는 없다. 분명 때가 온 것이 틀림없어. 너는 걱정하지 마라. 이야기 속에서 몇 번이고 소모품처럼 쓰였다만, 이번에는 네 녀석에게도 어떤 역할이 있을 것이다.]

귀주성의 어딘가에서 멸문 직전까지 몰린 어떤 교단의 주인과 그 주인의 지나치게 유쾌한 배후성은 위험한 신좌와 그 부하긴 했으나 어쨌거나 아군이었다.

“오셨구려, 이계의 대신좌여.”

“마치 지금 이 시점에 정확히 내가 올 것이라는 걸 안 것처럼 이야기하는군.”

태백금성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한 수 두시겠소?”

그저 긴 수염을 쓸더니 허허롭게 웃으며 그리 제안할 뿐이었다.

서구 신좌가 하기엔 몹시 어울리지 않는 놀이였지만, 오딘은 자신 앞에 놓인 백색 바둑돌을 집어들었다.

* * *

유성은 알 수 없는 많은 일이 뒤에서 벌어지고 있었지만, 그들이 자리 잡은 방어진은 폭풍의 눈 속에 들어온 것 마냥 몹시 평온할 뿐이었다.

“와, 선생님 그러면 저희도 이제 ‘실전’해요?”

류웨이를 데려가는 상황에 다른 제자들을 두고 오자니, 형평성이 맞질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데리고 왔다.

다만,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지 마치 놀이처럼 여기는 듯한 설연화의 말에 유성이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눈을 똘망똘망 뜨며 ‘나는 몰라요?’하는 표정이다.

평소같으면 어머니에 빙의해 잔소리를 퍼부었겠지만, 유성은 그 넉살좋은 표정에 그저 웃고 말았다.

두 번째로 얻은 기억 덕에 설연화라는 헌터가 직접 데이기 전까진 말이 소용없는 타입이라는 걸 이젠 잘 알고 있다.

“여유가 있으니 몇 번 정도는 하겠지. 다른 근래에 셋은 맛만 보겠다만, 연화는 이번에 제대로 레벨링을 할지도 모르겠구나.”

“앗! 와, 그럼?”

“네 빌드는 다수전에 특화되어 있으니 그 기여 점수로 어느 정도 레벨링이 되긴 하겠지.”

독립심이 강한 연화는 빨리 레벨링을 해서 돈도 벌고 한 사람 몫을 하고 싶어했다. 그게 사춘기인 설연화의 역린이다.

아는 정보가 많아지니 사람 대하기가 쉬워지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그러면 저희 뭐 상대해요?”

죽절산의 괴수의 중심은 대개 수인 형태의 요괴나 마수들이다. 특히 사자와 호랑이 등 고양잇과 괴수가 많았다.

그 외에도 인면수라거나 교룡, 강시, 대나무 요괴 등 중국 신화나 과거 선협 소설 속에서나 보던 괴물들이 하나둘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그 정점으로는 궁기가 있지.’

사흉중 하나, 소와 호랑이가 섞인 기이한 괴물로 급만 따지면 신수와 비견할만한 괴물이다. 이미 그런 게 나타난다는 것부터가 대한민국 같은 변방의 맥을 막아놓은 ‘말뚝’과는 차원이 다르다.

당연하지만, 당장 움직이진 않을 것이다. 궁기가 움직일만한 상황이 되려면 그만한 제물을 바쳐야 한다. 그마저도 상당히 약화한 채로 보게 될 것이다.

대개 중국이 마지막이 되는 경우는 무조건 보게 됐지만, 이번에는 안 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야! 요 아래 무리에서 떨어져나온 요괴가 있다는데, 너희도 가볼래?”

제자들에게 이번 게이트에서 확인되어 이쪽에 자료를 보낸 괴수들에 대해 교육을 하는데, 최서린이 와서는 그런 제안을 건넸다.

“결정권자는 접니다만.”

“당연히 너 들으라고 한 소리지.”

잠시 제자들을 보니 진수 빼고는 다 조금씩은 기대하는 모습이다.

“금성에서 가는 겁니까?”

“어. 이쪽에 정식으로 지원 요청 왔어. 이 정도는 딱히 음모를 꾸미는 건 아닐 것 아냐? 아직 괴물 군단이 여기까지 오려면 멀었고?”

“알겠습니다. 가보죠.”

금성 주력과 같이 가는 거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