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18화 (104/128)

11장 - 죽절산

내가 전달한 정보를 들은 유럽행 선단 연합지휘부의 판단은 당연하겠지만, 여럿으로 갈렸다.

“그래 봐야 우리가 그 명령을 들을 이유는 없지 않나? 그럼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네. 그냥 씹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냐?”

내 말에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역시 무대뽀 정신으로 무장했다는 게 딱 어울리는 최서린이었다.

심상치 않은 사안인데도 어떤 위기감도 없는 저 표정을 보니 역시 세계구급 빌런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건 알겠다.

그래도 근래 A급으로 올라섰다니 자신감을 보일만은 했다.

“그 말은 맞지만, 타국 한복판에서 대놓고 각을 세우는 게 우리에게 그다지 좋아 보이진 않은데. 여론 압박도 생각해야 할 것 같고 은근히 지저분하게 굴 것 같은 예감이란 말이지.”

“정영하씨는 정신 차렸다더니,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요.”

금성 쪽 선단의 지휘를 맡은 김민지 제 3 본부장이 상황을 고민하는지 생각에 잠겨있다가 정영하의 말을 듣곤 피식 웃더니 대견하다는 듯이 거들어주었다.

“아니. 내가 아무리 막나가도 이 정도 상황판단은 했다고? 거기에 중국 이 자식들 삐지면 아주 오래간단 말이야. 이걸로 우리 회사에 불이익이 가면 우리 아부지는 또 내가 중국에서 사고를 친 줄 알 거고.”

“아, 머리가 돌아간 이유가 그쪽이었나요? 담판 짓고 가업 잇는 건 포기했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아닌가 봐?”

“아니···이야기가 왜 또 그렇게 되냐?”

물론, 이런 식의 반응이 나오는 건 당연히 예상했던 바다.

“여론 자체는 대응은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리 말하면서 내가 바라본 쪽은 김수철 쪽이었다.

“그래. 중국 전체가 우리를 압박해도 대응 자체는 영웅 협회가 있으니 충분히 할 수 있지. 입장을 선전하는 정도야 가능하다. 그리고 상황을 보니 김유성 너도 여기 인맥이 있는 것 같던데?”

“예. 그렇죠. 이쪽도 그쪽을 통해 반격 정도는 가능합니다. 대신 그랬다간 기 싸움 하다가 쫓겨나듯이 인도로 떠나게 될 게 문제죠.”

거기까지 말하자 다들 그게 뭐가 문제냐는 표정이다.

“아무래도 여러분께 상황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릴 필요가 있겠군요.”

“뭐가 더 있습니까?”

“예. 우선, 지금 충징에 모인 전력을 고려했을 때, 만약 우리가 빠질 경우, 극단적으로 말하면 동북아시아와 인도 아대륙이 단절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 음···.”

내가 던진 말 한마디만으로도 상황을 파악했는지 금성의 김민지 본부장은 입을 ‘헤’벌렸다가 그걸 손으로 가리며 침음성을 흘렸다.

“그거 미묘한 문제네요. 음, 그렇다고 치면? 아, 그러네. 기싸움을 했다간 타국의 지휘권에 간섭하고자 했다는 문제가 되는 거군요?”

“예. 포장에 따라 군사적 간섭이 될 수 있죠.”

아까 이야기한 대로 시행해서 여론 힘싸움을 하는 순간, 아예 중국 측 작전에서 배제된다는 뜻이다.

아예 지원을 포기하거나 우리끼리 중국측과 마찰이 있을 걸 각오하고 단독 작전을 벌이거나인데, 여기 모인 이들을 다 합치더라도 중소규모 길드 수준일 뿐인데다 결정적으로 뭔가 하기엔 보조 전력이 없었다.

‘용병 역할이란 게 그런 지원 전력은 건 당연히 현지에서 고용이나 협조받을 것을 가정하고 움직이는 거니까.’

그 말에 모두가 이게 생각보다 단순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런 구도를 이 그림을 짜낸 자들이 지금 상황을 의도한 거라면 아주 잘 짜인 함정이다.

“빠른 논의를 위해서 제 생각부터 말하겠습니다. 이걸 무시하고 움직였을 때의 리스크부터. 당연히 금성과 로텍이 가장 많은 리스크를 지겠지만, 이 여정에 참여한 모든 길드는 대외 이미지 손상을 각오해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겠죠. 대놓고 우리 문제는 아니라지만, 대륙 단절의 원흉 중 하나라는 오명을 피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중국 측에서도 국수주의적인 자들은 우리를 악역으로 만들길 서슴지 않을 거다.

국내 여론도 마냥 좋지만은 않을 거다. 지금 금성의 개혁에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 당장 아군이라도 주도권을 뺏어보고자 하는 집단은 널리고 널렸다.

“둘째로 우리 여정의 복귀로가 아주 고될 수 있습니다.”

“그렇군요. 중국이건 미국을 통해 돌아오건 그 길이 그리 편치는 않겠네요. 당장 길이라는 문제뿐만이 아니라, 일이 꼬인다면 그쯤이면 전 세계에 다 소식이 퍼졌을 테니···.”

그 말대로 복귀로의 위험은 둘째치고 그 시선이 아주 불편할 거다.

“마지막으로 여정에서의 특정 집단들의 습격이 있습니다.”

“집단이요? 뭐, 빌런 집단이 우릴 노린다는 첩보라도 있나요?”

“먼저 정체를 모르지만 지금 중국에서 우리를 노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넓은 위협으론 한국에서 자존심을 구겼던 붉은달이 체면을 세우기 위해 습격할 수 있죠. 무엇보다 미국에는 석대성이 있다는 걸 기억하셔야 합니다”

“아, 그러네요. 틀어지더라도 미국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경로에 석대성이 있군요. 분명,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일로 독이 잔뜩 올랐을 건데.”

붉은달이나 중국의 적에 대해선 고개를 갸웃하던 금성 측도 석대성의 이름이 나오자 심각해졌다.

그제야 우리 선단에 대해 적대적이게 변해 있을 국제사회의 분위기와 그 문제점에 대한 나의 의견에 진심으로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거기에 중국측의 호의 덕분인지 아직까진 만나지 않았던 해적들도 있죠. 어느 쪽으로 향하던지 최소 두 집단에서 셋 정도의 대대적 습격을 대비해야 할 겁니다.”

“그냥 무시하고 지나가면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협조를 받지 못한다. 김유성, 넌 그걸 말하고 싶은 거냐?”

“히어로라고 국가의 압력에 마냥 자유로운 건 아니라는 건, 수철 형이 누구보다 잘 알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정보를 알고도 여기서 목숨을 걸 수는 없는 노릇이지. 네가 마지막으로 말한 저 집단들이 분명 높은 확률로 우릴 노리는 놈들일 거다. 그리고 이게 그것들이 만든 잘 짜인 함정이라면?”

이걸 잠시 피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말이다.

“김유성. 내가 그리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이런 음험한 계략을 짜는 놈들을 자주 상대해본 경험상, 준비된 함정은 피하는 게 좋아. 실추된 명예는 언젠가 되찾을 수 있어. 하지만 죽은 목숨은 돌아오지 않는다고.”

물론, 블랙은 당연히 그런 말을 할만했다.

그는 히어로 활동 초기, 지금은 무너졌으나 당시 세계구급 조직이었던 황금여명회의 계략에 자기 사이드킥이 전부 몰살당했던 사고를 겪었다.

“무슨 걱정인지는 압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이 이쪽에 마냥 불리한 것만도 아닙니다.”

“무슨 뜻이야?”

“조금 욕을 먹을지도 모르겠지만···.”

오면서 나도 따로 생각한 것이 있었다. 당연히 여기서 가장 큰 위협은 저쪽에서 미친척하고 군부 지휘권을 통해 밀어 넣어버리는 그 압박이다.

우리를 억지로 귀주의 해당 부대에 밀어 넣은 건 우리를 노리는 그자들의 손이 닿는 지휘관이 거길 통제하고 있다는 거겠지.

물론, 우리는 외부인이니 억지를 부리기도 좋고 아주 만만할 수도 있다고 본다. 분명, 그렇게 쥐고 흔들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인질이 있죠.”

“갑자기 웬 인질?”

여태까지 이런 대화의 밑밥을 깐 것은 이걸 밀어붙이기 위해서였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의 남녀 셋을 이 앞으로 들이밀었다.

“이번 게이트 사태 참여는 여기 이 둘을 대표로 해서 참가하도록 하죠.”

내가 일행 앞에 대표라고 지정한 둘은 이번에 받은 제자, 류웨이와 자기가 왜 지금 우리 사이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는 맹한 표정의 제갈운이었다.

“아니, 이 손님들을 앞에 최전선에, 그것도 우리 대표로 내세우자고요?”

“어, 야. 잠깐만, 유성아. 이거 맞냐?”

당연한 일이었지만, 일행의 입에선 떨떠름한 의문사나 당혹의 말이 내뱉어졌다.

이런 전투가 벌어진다면 당연히 이들은 후방인 충징의 안전한 곳에 두다가 인도로 갈 때나 다시 합류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지금 내 의견은 이들을 아예 우리 대표로 내세워서 전투가 벌어질지도 모르는 곳에 데려가자는 거다.

“뭐야, 그게 뭐가 문젠데? 중국 놈들이 우리를 총알받이로 세우거나 수작 부릴 것 같으니까 함부로 못 세우게 하자는 거잖아. 괜찮은 의견 아냐?”

“아, 누님 제발 입 좀···. 다들 그, 상식이 좀 모자란...음...으로 본다니까요?”

마지막 대화는 누군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당연히 이건 미친 소리였지만, 나는 나를 지지하는 최서린의 말을 두둔했다.

“아뇨. 최서린씨 말이 맞습니다. 지금처럼 미친 척하고 나가는 게 도리어 좋은 방법일 수가 있습니다. 어차피 여기 남는다면 결국 우리는 정면돌파를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김유성 너는 아예 포기한다는 선택은 하지 않겠다는 것 같은데, 맞냐?”

“어차피 그거 수철 형 성격에도 안 맞잖습니까.”

“뭐, 그렇긴 한데.”

“애초에 이미 하겠다고 하고 승낙까지 하고 온 마당에 이제 와 뒤집는 것 자체가 큰 리스크입니다. 저들이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게 한 이상, 명분도 마땅찮고요.”

“그래. 우리를 이리저리 돌리면서 음험한 수작이나 부려오겠지.”

“그 돌리려는 수작부터 원천차단하자는 겁니다. 놈들은 자신들이 드러나지 않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하려는 계획이겠죠. 그리고 그리 둬서는···.”

“그 선을 타고 올라가기는 어렵다는 말이겠지. 그럼 놈들이 무리해서 움직일 수밖에 없게 만들고···.”

“수철 형과 이쪽에 우호적인 중국측, 그리고 히어로들이 그 뒤를 파는 겁니다.”

류웨이의 집안도 여기 중국에서 아예 힘이 없는 집은 아니다.

거기에 제갈가의 직계까지 합쳐지면, 당연히 그들은 각 가문의 중요 인물들이니 압력을 행사할 명분이 생기고 지휘관이라는 작자도 우리를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어진다.

그들이 지휘관으로 있는 우리를 함부로 부리기에는 운신에 큰 제약이 온다는 뜻이다.

물론, 저쪽에서도 이 놈들이 미친게 아닌가 싶을 거고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볼 것이다. 당연히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일 뿐이지만, 저들이 어쩔 텐가?

그러다 보면 우리를 내버려두든지, 아니면 무리해서라도 수작을 부리든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선 미친 짓이겠지만, 우리의 활로는 거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알지? 이 손님들과 우리는 아주 느슨한 연결일 뿐이다. 그들이 역으로 이들을 노릴 수도 있어. 이쪽도 일이 틀어지면 큰 타격을 입는 건 마찬가지야.”

“당연히 이들은 가장 안전한 곳에 두고선 우리도 전력을 다해 지켜야겠죠. 설마 다들 자신 없는 겁니까?”

내 말에 몇몇이 웃음을 흘렸다. 다들 자기 실력에 대한 자부심은 충분한 이들이다.

“뭐, 보이지 않는 적보다는 보이는 목표를 지키는 게 편하긴 하죠.”

“아무 정보도 없이 빌런 놈 은신처를 찾는 것보단 오는 놈을 상대하는 게 몇 배는 쉽긴 해.”

거기까지 진행되곤 대화가 끊겼다. 모두가 생각할 거리가 많아 보이는 표정이다. 그리고 조용해지자 그때까지 듣고만 있던 제갈운이 입을 열었다.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지금 난감한 일에 휩쓸린 것 같은데요?”

“물론, 미리 의견을 물었어야 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런데, 이미 다 들으셨을 텐데요. 돌아가실 겁니까?”

“음···.”

제갈운은 말을 흐렸다. 우리, 정확히는 나를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지 이걸 거절하면 어떤 문제가 생길지 고민하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한편, 류웨이는 내 말을 알아들은 것 같긴 했는데, 잠시 심각한 표정을 짓더니 지금은 거의 체념한 표정이다.

아무래도 급하게 화담과 대화를 나눈 것 같다.

그로선 자기 목줄을 쥔 배후 성좌의 명령이 걸린 일이라 거부하기 힘들 것이다.

당장 준비 안 된 그를 최전선 전면에 세우겠다는 것도 아니었고 어쨌거나 우리에게 최선을 다해 지키겠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으니까.

그리고 잘 생각해서 뒤집어 보면 어디까지나 잘 풀릴 경우의 이야기겠지만, 이건 그들에게도 일종의 경력이 되기도 했다. 다만, 역시 문제는 제갈가 쪽이다.

“삼촌과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저 혼자 결정할 사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한마디만 전해주시죠.”

“뭐라고 전하면 될까요?”

“그날 제게 했던 말이 진심이라는 걸 증명해달라. 그리 전해주시죠.”

중국을 정말 생각하는 이라면, 이걸 그냥 넘겨서는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더욱이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제갈민으로선 일이 틀어져도 잃는 것은 작다.

반면, 이쪽은 내게 빚을 지우는 건 물론이고 내게 보낸 두 사람이 값진 경험을 쌓는 건 기본이다.

거기에 일이 잘 풀리면 중국의 외교를 망치려는 자들을 발견해내고 저지하며 지원한 것이 자신들이라는 홍보도 가능했다.

그리고 헤어진 지 잠시 후, 제갈운은 굳은 표정으로 중국 대륙 반대편의 제갈민의 답을 가져왔고 그쯤 우리측에서도 지금 당장은 내 의견에 따르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

“삼촌께선 그쪽을 믿겠다고 하시더군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실망시키지 않겠다고 전달해주시죠.”

“네. 다만, 란이는 가문 호위전력과 함께 후방에 뒀으면 한다고 하십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죠. 그런데 그 본인께선 괜찮으십니까?”

“가문 덕에 호의호식했으니, 이럴 때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지요. 잘 부탁하겠습니다.”

그렇게 저쪽 보이지 않는 반대편의 적이 내민 음흉한 패에 우리는 시작부터 조커를 내미는 것으로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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