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 죽절산
“오딘이 정말로 그렇게 말했다고요?”
“그래.”
“···이번 회차는 정말 특이점이네요.”
“메이링, 북구 신화에 대해 따로 아는 게 있으면 말해줬으면 하는데.”
지금의 나는 알 수 없는, 메이링이나 회귀자들만이 아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일단 진짜 잘 싸우죠. 개인 단위로 잘 싸우는 것만 따지면 서구의 모든 신화 중 최강일걸요? 가짜 설화인 아서왕 전설도 실상은 켈트 신화에 큰 영향을 받은 건데···.”
“그리고 그 켈트는 로마가 갈리아인이라 부르던 자들이지.”
지금 직접 본 것처럼 하는 이야기는 빙의나 강신했을 때를 본 것이리라.
“거기에 북구 신화는 게르만족이죠. 게르만인은 로마 개입 전까지 갈리아인을 쥐잡듯이 팰 정도였고 로마 절반을 무너뜨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으니까요.”
“아마 신화 싸움에서 일시적이나마 북구 신화의 큰 승리가 있었다.”
“네, 몰아낸 게 아니라 정착, 동화된 걸로 묘사된 걸로 보아 기독교 쪽도 그리 정정당당한 수법으로 재역전한 건 아니었을 거라 봐요. 그건 그렇고 거기에 이후 노르드 바이킹들까지 생각하면 또 유럽의 공포였잖아요?”
“노르드 역시 실상 북게르만의 분파지.”
“다시 쓰인 역사는 결국 행성 통합까지의 신화 싸움에서 아브라함계 승리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데, 그 역사의 큰 패배를 살펴보면 게르만인으로 묘사되는 북구신과의 싸움이 절대로 쉽진 않았다는 거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실제 신화와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내용에서 어렴풋하긴 해도 자연스럽게 보이는 건 있는 법이다.
전쟁에 강하다는 장담은 못하지만, 적어도 ‘전투’ 수준의 단위에서 기본적으로 북구 신화만큼 강력한 신화는 흔치 않다는 의미기도 했다.
역사상으로 봤을 때 별다른 역사적 이야기 없이 순식간에 몰락한 그리스 신화나 조용하고 서서히 무너진 이집트 신화를 생각해본다면, 북구 신화의 특이점이 두드러진다.
그들은 역사에서 차지했다는 영토의 부유함이나 규모에 비해선 놀라울 정도로 요란한 싸움을 벌이다 무너졌다.
‘그건 아마도 악조건 속에서 그만큼 잘 싸웠다는 말이겠지.’
시기적으로는 아마도 아브라함 계통 신화가 중동, 그리스, 이집트의 신화를 무너뜨린 뒤 싸운 것일 공산이 컸다.
“다른 건?”
“켈트 신화와는 거의 하나나 다름없을 정도의 동맹이에요. 이상하게 그렇더라고요? 솔직히 역사상으로는 바로 옆인데다 그리 처맞았으면 원수여야 하는게 아닌가?”
“작은 것들끼리 힘을 합치는 건 흔한 일이니 이상할 건 없잖아. 근처에서 부대낀 묘사이니 어느 정도 유사성과 교류가 있었을 것도 고려해야 하겠지.”
그리고 말은 안 했지만, 같은 적에게 몰락했다는 동질감도 당연히 있긴 할 것이다.
“그렇다는 건, 켈트 신화 역시 참전을 거의 안 했다는 말 같은데.”
“맞아요. 그리고 그쪽에 오딘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분명해요. 애초에 켈트 신화 자체가 신적 존재는 있는데 뭔가 체계적으로는 완성되지가 않은 신화라. 마치, 힘이 부족해서 미처 마무리를 짓지 못한 것 같죠.”
“켈트 신화가 어쩌면 북구 신화의 분파였을 가능성이 있단 뜻이군.”
“발키리와 전쟁의 여신들의 유사성이라던가, 북구 신과 얽히는 바니르 신족이 이들이라는 말이나 여러모로 묘한 것들이 있긴 하죠. 이번 회차, 그들의 참전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면 꽤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북구 신화에 대해 메이링이 아는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그건 그만큼 모인 정보가 없다는 말이기도 했다.
“사실 신이 적극 개입하겠다 선언한 적 자체가 제가 알기로도 몇 번 없어요.”
“그 말은 반대로 몇 번은 있었다는 말이군.”
“제가 동료일 때는 단 한 번, 그리고 들은 것으로 미루어보아 전체로 따지면 일곱 번 있었죠. 물론, 저스티스는 제외하고요. 하지만 그것도 지금처럼 신화 단위로 개입하겠다는 말은 처음이네요.”
“그 개입했었다는 신좌는?”
메이링의 말에 따르면 적극 개입해왔던 일곱은 차례로 프로메테우스, 라파엘, 세경천녀, 니르리티, 엔키, 오로치, 마지막으로 태백금성이었다.
“태백금성이라면···.”
“네. 이번에 유성 씨가 언급했던 인물이죠. 그가 정말로 뭔가 하고 있다면 이유는 하나에요. 일전 회차의 유성씨와 했던 맹세 때문이겠죠.”
“맹세?”
“네. 무슨 맹세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때의 유성씨가 말해줬어요. 태백금성은 앞으로의 모든 회차에서 우리의 존재를 아는 한, 반드시 우리를 도울 것이다. 그렇게 맹세했다고요.”
“그게 그 태백금성 본인은 아닐 텐데?”
“태백금성이 스스로 그렇게 여기지 않을 신좌인 거겠죠. 그러니 자신 있게 맹세를 했을 테고요.”
그리고 명단에는 내가 알아야 할 인물의 이름도 있었다.
“궁금한 게 있는데. 교주, 넌 그 세경천녀의 본명이 뭔지 아나?”
그건 전우치가 편지를 전해달라며 지금 찾고 있다는 상관의 이름이었다. 내 질문에 메이링이 웃었다.
“그걸 유성씨가 물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한국 신화의 인물인 건 짐작이 가긴 해. 어쨌거나 전우치가 말을 안 해줘서 말이지. 그런데 막상 전폭적으로 도운 신좌라 하니 그냥 우연한 만남을 기다리며 넘기기엔 좀 그렇군. 그래서, 대체 누구길래?”
“유성 씨도 자청비라고 하면 알아들을 수 있겠죠?”
“아···!”
듣고 보니 전우치의 묘사 그대로인 여신이긴 했다.
다른 신좌 중 프로메테우스야 충분히 그럴만한 인물로 보이고 야마타노오로치의 경우, 엔도 츠바사가 설득해냈던 경우라 했다.
“그런데 명단에 좀 심상치 않은 신좌가 껴있는데.”
그 외의 특이점으로는 라파엘과 엔키가 있었다.
“모르겠어요. 저도 그 대천사의 도움을 받았다는 회차가 가장 궁금하거든요. 지금 누구도 그 회차의 기억은 없지만, 동료에게 전해지는 것으로 들었을 땐, 그때가 유일하게 승리에 가장 근접했었다는 말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아마도 그 진실의 기억은 거의 후반부까지 가야만 열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엔키 정도면 모르긴 몰라도 거의 주신격이었을 텐데.”
“네. 주신의 동생으로 나오니 최소한 인도 신화의 로카팔라 위치는 됐겠죠. 하지만 메소포타미아 신화는 아주 크게 패배한 신화에요. 당시 상황을 알 순 없지만, 그리 큰 도움이 되진 않았을 거라 봐요.”
“어쨌든, 이번 회차가 다른 때와 비교하더라도 특이하다는 거군. 저쪽의 논의가 끝나면 계약을 진행하는 걸로 하면 되겠어.”
“오딘이 예외라 선언했으니 이런 흐름을 다음 회차에 반영하긴 힘들겠지만, 저도 나쁜 상황은 아니라고 봐요.”
이번 일에 대한 상담은 거기까지였다.
“내가 가 있는 동안 죽절산 쪽 상황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지?”
“그게···. 유성씨가 대화하러 간 사이에 결론이 조금 이상하게 났어요. 그래서 도선도 항의하다가 이리 달려오는 중이고요.”
“자세히.”
거기서 뭔가 일이 틀어졌다는 걸 직감했다.
“유성 씨도 알다시피 죽절산이 열리는 입구는 두 군데고 항상 변하지 않죠.”
“알아. 만봉림과 범정산이지. 상황을 보아 이번에는 범정산이었던 것 같은데.”
“맞아요. 그러니까 저도 좀 무리해서라도 저희 명교의 영역권으로 넣을 생각을 했던 거죠.”
만약 만봉림이었다면 운남성 근처다.
명교의 세력권에서는 지나치게 멀어서 어려웠을 거다.
“현재 호남성 길목을 전부 틀어막고 있고 충징이야 중국 각지에서 지원을 오고 있으니 뚫릴 염려는 없어요. 다만, 이제 막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는 구이양시나 그 위쪽 쭌이현, 후방 보급을 담당하는 비제시는 위험하죠.”
“그래. 언제든지 뚫릴 수 있겠지. 설마 우리를 최전선으로 보낸 건가?”
“그건 아니에요. 원래 유성씨와 그 일행이 갈 곳은 자오퉁이었어요.”
그 말에 난 지도를 확인했다.
“운남성에 있군.”
“원래 그 남쪽 쿤밍을 통해서 두 갈래 길을 통해 버마로 가니까요. 그쪽 길목을 지키다가 안전하게 떠나시라는 거였고 그게 저희로서도 외교적 문제가 안 되는 편이니까.”
“지금은?”
“비제시.”
거리상으로는 엄청난 차이도 아니고 가는 데 걸리는 거리도 멀지 않다. 물론, 최전방도 아니다. 보급부대인 후방인 건 마찬가지.
다만, 이게 문제라는 이유를 난 금방 깨달았다.
“이러면 소속이 달라지는군.”
고작 30km 정도의 거리로 배치되는 소속부대가 달라진다.
“그렇죠. 이러면 자오퉁과 다르게 귀주에서 직접 전투를 벌이는 군단의 통제를 받게 되니까요. 한 번 그렇게 편성이 되어버리면 저나 도선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아요.”
“그래. 교주 당신이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건 호남성의 군단뿐이니까.”
“네. 명분이죠. 당장 최전선이 아닌 원난성 일개 지휘관 정도야 저나 도선이 어렵지 않게 갈아치울 수 있고 문제가 되어봐야 쉽게 무마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당장 최전선에 그렇게 개입하게 되면···.”
아무리 메이링이나 도선의 지위가 높다 해도 훗날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는 말. 곤란하다는 뜻이다.
문득, 중국에 나를 붙잡아둘지도 모른다고 메이링의 수작을 조심하라던 시후의 말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혹시 이것도 이 여자의 수작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차라리 네가 있는 호남성에 합류하는 건?”
“그거야 유성씨도 안전하고 저도 좋지만, 대국적으로는 그리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요?”
속내가 어떻든 이런 얄팍한 떠보기에는 안 걸린다는 건가?
“당장 유성씨네 그 병력이 빠지면 인도쪽에서 오기 전에 막아낼 수 있을지 애매하거든요? 원래 저희 생각은 두 곳에서 막아보다가 안 되면 천천히 후퇴하면서 시간을 벌고 비제시쯤까지 밀리면···.”
“그때 우리가 지원을 간다는 거였군.”
“네. 그런 구상이었어요. 아무리 늦더라도 2주 정도면 버마에서 1차 지원군이 오겠죠.”
“그럼 남쪽의 쿤밍 방어야 어렵지 않을 거고.”
“네. 희생이야 좀 있겠지만, 이 기간에 귀주 내에 어떻게든 붙잡아두고 인도측 지원이 오면 필드야 최대한 압축시킬 수 있어요. 그 이후에는 상시로 경계해야 해서 귀찮겠지만, 필드란 건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으니까.”
“이게 우리를 노리는 계략일 가능성이 있겠군.”
“저희를 노린 수작일 지도 모르고요.”
그 경우는 차라리 낫다. 그냥 교주가 내게 접근하는 걸 보고 어떤 조직에서 던져본 정도일 거니까. 그냥 별다른 막는 것 없이 비제시로 간다면 흐지부지될 것이다.
다만, 정말로 뭔가 뒤쪽에서 수작이 벌어지고 있는 거라 이를 드러내서 우리를 잡기 위해 비제시로 밀어 넣은 거라면 생각보다 위험할 수도 있었다.
“유성씨, 어쩌실 거에요?”
“금성이나 다른 쪽에서는?”
“아시겠지만, 별다른 반발은 없죠.”
당연하지만, 그들은 이곳 사정을 잘 모른다. 어쨌거나 똑같이 후방인 이상 별문제야 있겠냐 싶어하겠지.
중국이 아무리 막나가도 미치지 않고서야 잠깐 지나가는 자신들을 최전선에 투입할까 싶기도 할 것이다.
결국, 내가 이 사실을 알리고 모두와 함께 영향력을 발휘해 배치되는 위치를 바꾸던가 직접 부딪쳐서 헤쳐나가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황이 좋아보이진 않는데.”
“그렇죠. 타국의 위기에 재는 모습을 보인 전례를 남기는 게 훗날 세계 정부에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 유성씨에겐 좋진 않으니까요.”
“그러면 직접 부딪쳐보는 수밖에 없겠지.”
“자신감이 넘쳐 보이네요.”
“너나 도선의 도움도 있을 거고 준비할 시간 정도는 충분히 있을 테니까.”
나름대로 늘어난 실력도 시험해보고 싶은 것이 있었고 그 정도의 준비시간은 중국의 거두인 회귀자 동료 둘이서 충분히 벌어줄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번에 여기 충징에서 새로 합류한 제자, 류웨이에게도 자기 나라를 돕는 것에 빼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그리 좋지 않은 선택이다.
협잡이건, 방해가 있건 마냥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뚫어내야 한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해요. 도선한테도 그렇게 전달해둘게요.”
계약을 위해 다시 찾기는 해야겠지만, 일단은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함대로 복귀하기로 했다.
거부하지 않는 것과 별개로 모두가 철저한 준비를 하기 위해선 이 사실을 알 필요는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