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15화 (101/128)

11장 - 죽절산

원래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적이었던 리 메이링이 이쪽에 합류함으로써 내가 얻은 가장 큰 이득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답은 뜻밖에 단순했고 어렵지 않다.

그건 어떤 성좌와도 계약되어있지 않은 무수한 각성자들이다.

‘성좌들이 각성자를 움직여서 하고자 하는 건 그들의 신앙 수급원인 인류와 그 역사가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 동시에 휘하 영웅이 명성을 떨쳐 이 모든 것이 끝난 후, 자신의 격을 올리려는 거겠지.’

반면, 거짓 예언자인 원래의 리 메이링이 추구하는 것은 인류의 패배와 몰락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성좌와 계약한다면 그들과의 계약이나 절대 명령권 때문에 그를 수행할 수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호남을 지배하는 명교 세력권 출신 각성자들은 적어도 호남성에서 활동하는 한, 그리고 명교의 후원을 받는 한에는 절대 성좌와 계약을 맺지 않는다.

‘거짓 예언자의 조직을 확정하는 가장 확실한 근거 중 하나가 저것이지.’

그런 암묵적인 규칙은 외부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워낙 거대한 조직이다 보니 몇 번씩이나 회귀를 겪다 보면 결국 알게 되는 법이다.

물론, 조직 전부가 비 계약자인 건 아니다.

명교나, 마찬가지로 거짓 예언자의 조직인 사황교만 예로 들어봐도 외부 각성자도 종종 모집하는 만큼 군데군데 그런 각성자들을 섞어가며 위장을 했다.

다만, 그들의 조직 내에서 위로 올라가려면 성좌와의 연을 끊어야 한다.

흔치는 않지만, 성좌와의 최초 계약 기간인 3년에서 5년 정도가 지나고도 명교에 남아서 위로 올라가고자 하는 사람 중에 성좌의 요구를 무시하거나 듣지 않거나 하면서 태업을 해서 억지로라도 계약을 끊으려 하는 경우도 일부는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유성씨와 연결된 성좌는 누구예요?”

“포르세티.”

“포···뭐요?”

그러고 보면 포르세티는 그 17회차 중에 단 한 번도 연결되어본 적이 없는 성좌였다. 교주가 이렇게 반응하는 것도 그래서겠지. 특이하다면 특이한 경우다.

“오딘의 손녀라고 하면 좀 인지도가 있나?”

“아하? 음···.”

“그거 알고 감탄사 터뜨린 건 맞아?”

내가 코웃음을 치자 멋쩍은 웃음을 지은 메이링은 뒤로 빠져서 나 몰래 슬쩍 뭔가를 보곤 뭔가 묘하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교주, 포르세티 여신은 우리가 함께하면서는 한 번도 걸려본 적이 없는 신좌였나?”

“그렇죠? 좀 묘한 성좌랑 연결됐네요. 흘러가는 그림을 보면 나쁜 그림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오딘은 의심병이 심해서 별로인데···.”

“오딘이랑은 성격이 한참 달라. 종종 하는 짓이 애 같고 푼수 같이 굴기는 하는데, 아예 멍청한 것 같진 않고 어떨 때는 똑 부러지는 면도 있어.”

“하지만 그거랑 별개로 호불호만을 말하자면 전 불호네요.”

“이유는?”

“그건 유성씨 본인이 더 잘 알지 않아요?”

난 침묵했다. 그건 포르세티와 연결되는 한 신좌 때문이겠지.

“저스티스.”

“네. 어떤 신들과 만나더라도 서로 이용할 뿐이라 생각하는 유성 씨가 유일하게 모든 걸 바쳤던 여신이니까. 듣기로 열여섯 번째 회귀에서 겪었던 일 때문에 열일곱 번째도 방전이 온 거잖아요?”

“하지만 그게 지금의 나와 같진 않잖아?”

“아뇨. 기피 1순위는 맞아요. 우리도 저스티스랑 유성씨가 긴밀하게 연결이 되면 그 회차는 망했다고 생각할 정도니까. 엮인 회차는 높은 확률로 터져요.”

교주의 그 찌푸린 표정과 말투에서 그런 경우가 꽤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왜지? 그 정도로 대단한 신좌인가?”

“솔직히 딱히 대단한 신은 아닌데. 다만, 사람마다 이상향이라거나 혹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게 있는 법이니까. 유성씨에게는 저스티스가 그런 신이었던 거겠죠.”

17회차가 가끔 내뱉은 한숨과 회상에서 가장 자주 나왔던 신의 이름, 정작 그 17회차에는 절대 만나려 하지 않았지만, 그 임팩트만큼은 그래서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 신좌를 사랑했었나?”

“우린 모르죠. 유성씨도 모를 거고. 사랑이었을지, 아니면 동경이었을지? 하지만 확실한 건, 우리 계획에는 짐이라는 거죠. 유성씨가 이성적 판단을 하는데 방해가 되니까.”

그쯤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를 태운 차량이 명교 본단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래도 그게 첫 만남이 아니라면 그저 피하면 그만이라. 자, 저희 명교의 자랑인 본단에 오신 걸 환영해요?”

산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거대한 성형 요새다.

올라가는 길에 지어진 빼곡한 아파트 단지나 각종 건물은 한 길드의 성이 아니라 무슨 요새라는 테마로 지은 계획도시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분명 내 기억 속에 여길 뚫은 적이 있었다는데, 이게 가능한 이야기인가?”

“에이 저도 처음이 아닌데. 그때가 어땠는진 모르겠지만, 당연히 발전이 있지 않았겠어요? 그리고 이렇게 지어놓아 봤자 매번 박살이 나는데 뭐.”

“그보다 페가수스를 찾는 건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지금 말은 돌려서 말하기 위해 페가수스라고 내뱉었지만 실제로는 첫 번째 기수를 찾는 것이다.

회귀자들 사이에서 ‘그것’에 대해 정한 암호였다.

예언을 시작하는 흰 말의 기수, 땅의 짐승을 이용해 사람을 죽이는 힘을 지닌 자. 혹은 괴물들의 아버지. 정확히는 대악마 아자젤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 대악마가 방주를 연결해 괴물을 불러들이고 1차 대격변을 일으킴으로써 예언이 시작되는 것. 즉, 예언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내 질문에 교주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 사건 때문에 그래요? 아직 내가 돌아선 걸 모른다고 한다면 적어도 한 번은 접촉해왔을 거에요. 여기 중국에는 없는 게 분명해.”

“그게 사황과 만났기 때문이라면?”

“후후, 그 대악마가 내 배신을 알았다면 당장 최우선으로 저부터 죽이러 왔겠죠. 그리고 그러면 제가 모를 리 있겠어요? 여기서 만날 수도 없었을걸? 저도 비상 호출했을 거고요. 그리고 그랬다면 다들 전부 자기 일 내팽개치고 여기로 모였겠죠.”

“하긴, 백기사가 발견되면 그게 최우선일 테니.”

난 고개를 끄덕였다. 거짓 예언자들은 제 목숨이 위험하면 반드시 계시를 받는다.

그런 힘이 있는 게 아니었다면, 우리 회귀 패밀리가 시우 키우기에 집중한 뒤 여기저기 보내기만 해도 어지간한 거짓 예언자로 판명된 놈들 대다수를 금방 죽여버릴 수 있었을 거다.

회귀를 했다고 해서, 우리 편으로 돌아섰다고 해도 그 능력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메이링의 육신은 여전히 거짓 예언자로 예비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우리 편으로 계속 있을 수 있었다면 그건 어떤 방법인지는 모르겠으나 이후 벌어질 ‘선별’을 뭔가 수를 써서 피한 것임이 틀림없다.

“뭐, 다른 곳에서 단서를 찾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의 눈과 귀도 세계에 흩어져있는 만큼 유성씨가 직접 찾아가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겠죠.”

어쨌거나 아직 이리 여유가 있을 때 백기사를 찾아 없애둬야지만 안심할 수 있다. 묵시록의 기사가 한자리에 모이는 경우, 절대 막을 수가 없다.

각 기사들은 항상 함께 다니진 않지만, 모두 인간이 대적하기 어려운 힘을 하나씩 가지고 있으며 일정 범위 내에서는 그 아우라를 함께 적용받는다.

‘그래도 아직 이 땅에 도래한 건 백기사 단 하나뿐.’

그리고 두 번째 기수, 붉은 말을 탄 ‘군단을 이끄는 자’는 대전쟁 시대를 열면서 등장할 것이다.

첫 회차 때의 등장 위치는 부산이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최고위 전력을 일순간에 증발시켜버린, 일전 구멍이 뚫려있던 네 글자. 그 악마의 이름은 사타니엘이다.

가진 권능은 우리가 ‘전쟁군주’라 이름을 붙인 것으로 말 그대로 전쟁이라 명명될 수 있는 모든 것에서 힘을 얻는다.

‘열에 아홉은 부산에서 튀어나오지. 그때까지 리치를 못 치우면 리치가 밀고 내려오는 것 때문에 놈은 거의 무적이다. 그러면 그때까지 뭔 짓을 해놨던지 대한민국이 결국 100% 붕괴하니까.’

시후가 메이링에게 리치가 최우선이라 몇 번이고 강조했던 건 그래서다. 사타니엘도 나온 직후에 물리치는 것이 가장 깔끔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두 번째 기억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정보도 딱 거기까지로, 이후 더 간 회차가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머지 두 기사가 어떤 악마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메이링의 집무실까지 올라간 뒤, 나는 그녀가 건네는 자료를 집어들었다. S급 잠재력 여덟, A급 스물일곱에 B급부터 E급까지는 세기가 힘들 정도다.

메이링은 내 시선에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할 일이라는 거겠지.

“유성씨, 아직 계약할 성좌를 바꿀 수는 있어요? 그리고 어지간해선 우리 동양 쪽의 성좌들이 이 거래에 대해선 더 값을 잘 쳐줄 거고?”

“괜찮아. 이번 신좌는 나름의 신의가 있는 신이었고 충분히 값을 잘 쳐줄 테니까.”

그리 단언한 나는 포르세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포르세티님. 잠시 대화할 수 있겠습니까?]

[어? 어. 무슨 일이야?]

[큰 거래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회귀에 대한 것을 제외한 뒤, 적당히 각색한 설명을 다 들은 포르세티는 잠시 말이 없었다.

[뭐?]

[설마 처음부터 다시 말씀드립니까?]

[유성! 내가 아무리 친구들한테 푼수떼기라 놀림을 받아도 신을 놀리면 못써!]

목소리가 좀 화가 난 것 같은 게,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생각하나 보다.

[제가 이런 일로 포르세티님을 속여서 뭘 얻겠습니까.]

[아니, 잠깐잠깐잠깐! 그럼 그 계약자가 하나도 없다는 게, 3천 명이라는 게, 진짜라고?]

[그건 C급 이상만이었고 D급이나 E급까지 계산하면 그 열 배는 넘습니다.]

또 한참을 아무 말이 없다. 아무래도 포르세티에게 뇌 정지가 온 것 같다.

하기야, 그런 전력 3천 명이면 어지간한 국가의 최대 길드 수준 전력인데, 그게 주인이 한 명도 없다는 게 어이가 없겠지. 나라도 그러겠다.

“그런데 유성씨. 보니까 첫 특성은 강화를 선택한 것 같던데?”

“그래. 이걸 알았으면 나도 당연히 십시일반을 택했겠지.”

십시일반이 올려주는 게 아무리 만분의 일이라고 해도 일순간 D ~ E급 약 3만 명이 추가되면 충분히 쓸만하고도 남는다.

장단점이 있다곤 하지만, 그럼에도 순식간에 십시일반의 존재감이 매력적으로 변해버리니 특성을 다시 찍고 싶은 심정이다.

“뭐, 어쩔 수 없죠. 나도 딱히 그게 나쁜 선택이라는 건 아니에요. 적어도 그거 가지고 초반에는 제대로 굴렸을 테니까. 한국 쪽 일이 잘 풀린 건 그거 때문인가 보네. 그래도 이번은 뭔가 일반적이진 않네요.”

“평소와는 많이 다른가?”

“대개 보통은 그 여럿에게서 능력 가져오는 걸 택하는 편이고 틀어져도 대개 보통은 능력 한 가지를 확정으로 올리는 걸 선택했는데, 이번 회차는 뭔가 참 특이하네. 대체 한국 쪽에서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

그 사이 포르세티에게서 방 초대가 왔다.

“잠깐 올라갔다 온다.”

“그래요. 뭐, 아직 유성씨 하나 빠져서 문제 될 건 없을 테니까.”

그리고 포르세티가 만들어둔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곳엔 그녀뿐만 아니라 안대를 한 신좌 한 명이 함께 앉아있었다. 북구의 주신, 오딘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