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11화 (97/128)

11장 - 죽절산

내 프로필에 대해 정영하에게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 제갈민은, 영하 형의 설명에 의례적인 감탄사를 터뜨리며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정영하군. 그런 자잘한 부분까지는 몰랐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 음···. 도움이 됐다니 다행인데요···.”

정영하는 지금 자기가 왜 이런 분위기에 끌려오게 된건 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떨떠름한 얼굴이다. 정말 이 자리가 몹시 어색해 죽을 것 같다는 표정이었다.

정영하도 눈치는 빠른 타입이라 상황을 보니 자칫 내게 해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걸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정말로 도움이 됐습니다. 성격, 성향 같은 사적 정보를 파악하는 데 있어 지인의 평가나 근처에서 보는 사람의 대화라는 건 많은 도움이 되지요.”

그리고 제갈민의 그 강조에 정영하는 똥 싼 표정이 되어 슬그머니 내 시선을 피했다.

“그래서. 소개를 받았잖나, 그럼 자네는 대체 뭘 하고 싶은 건가?”

“정작 제가 듣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선 아무 이야기가 없었습니다만.”

그렇게 살짝 끊은 제갈민이 이어 하는 말은 충격적이었다.

“옆 나라에 침입한 세계 최대 범죄조직과의 다툼이라거나, 그 과정에서 나타난 정체불명의 등급을 무시할 정도 재능의 소년 암살자. 한국의 정계 재편. 그 모든 과정에서 이 청년이 연루되거나 해냈던 일. 이종족과의 교류까지. 그 많은 사건 중 어떤 것도 나오지 않았잖습니까?”

그리고 제갈민이 나른한 표정으로 그리 낮게 말한 내용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받아들이는 상황만 다르다 뿐이지, 주변 세 사람도 마찬가지였는지. 셋 모두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고 있었다.

“그런 소개는 본인이 해야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김유성군?”

“대체 그걸 당신은 어떻게 아는 겁니까?”

“당신은 아무래도 당신 휘하를 잘 관리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단서를 잡은 상태에서 그렇게 요란하게 움직이게 내버려두면 바보라도 그 대상에 관심을 가지는 법이니.”

“애매하게 말 돌리는 걸 좋아하시는군요.”

내 재촉에도 제갈민은 의미 모를 미소만 지으며 말을 돌렸다.

“지금 확실치 않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가장 먼저 물어야 할 것은 그것이겠습니다. 김유성군. 당신이 머리입니까? 아니면 대리인입니까?”

“그게 무슨···.”

“독대를 했으면 좋겠는데. 여기 두 분, 그리고 정영하군도 자리를 좀 비켜주셨으면 합니다.”

“그럴 순 없네! 우리가 받은 임무는 이자의 경호야! 무슨 일이 벌어질 줄 알고?”

“두 분. 설마, 제 신분으로 그 정도도 보장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갈민은 몹시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두 사람을 압박했다.

“아니. 그건···.”

무려 한 성의 수장급의 능력을 의심한 거나 다름없는 상황이 된 거다. 그에 답할 말이 궁했는지 두 도사는 말을 흐리며 날 바라봤는데, 난 그들의 난처함을 덜어줄 겸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혹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두 분께선 먼저 저희 함선으로 가 계시죠. 충징으로 가는 동안 대화할 시간은 많을 테니까요.”

“그거야. 뭐, 그렇지.”

“하지만 주거민. 자네가 행사가 끝난 뒤 그자의 무사 복귀를 책임져야 할 걸세.”

“그야 여부가 있겠습니까. 선배님. 여기 산동 내에서 제 손님이 다치는 건 저희 가문의 체면 문제도 있습니다.”

가볍게 포권을 해 보인 주거민을 뒤로하고 두 도사가 청수호로 떠났다.

“그럼. 정영하군, 요청한 건은 전부 이쪽에서 양보하는 것으로 하지요. 다만, 지금의 자리는 배려 부탁하겠소.”

머리를 긁적이며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머뭇거리던 정영하에겐 제갈민이 저런 양보하는 듯한 말을 건넸고 그 확언을 들은 정영하는 두 손을 모으며 입모양으로 ‘미안, 진짜 미안’이라는 말을 남기고 멀어졌다.

말은 저렇게 했지만, 그야 내게 인맥을 소개해주고자 호의로 한 행동이고 그렇게 미안할 일은 아니다.

그저 정영하가 내게 호감이 있기 때문에 불편한 상황에 이바지한 바가 약간 있다는 생각에 저러는 것뿐이겠지.

“자, 그럼. 방해꾼은 전부 사라진 것 같군요.”

어느새 연회장에는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다.

이게 자기 함선도 아닌데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건, 적어도 이 산동 내에서는 이 남자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거겠지.

“그래서. 이런 독대 자리까지 만들면서 그쪽은 뭘 원하는 겁니까?”

“김유성군. 이쪽은 다 알고 찾아온 겁니다. 고작 몇 개월 전의 일이었죠. 난 몹시 기이한 것을 눈치챘습니다.”

제갈민은 대체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내 표정을 마치 시치미 떼지 말라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었다.

“굳이 내 입으로 듣겠다면, 말하지요. 동아시아의 강국인 일본, 한국, 중국에 이어 인도, 중동, 유럽을 거쳐 미주에 이르기까지. 이 나조차 무시하기 힘든 거대한 영향력을 갖춘 조직이 갑자기, 전조조차 없이 만들어졌습니다.”

“······.”

난 걸리는 게 많았기에 잠시 침묵했다. 그가 말하는 게 회귀자들의 조직이라는 걸 적어도 지금 시점의 내가 모를 순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확답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심지어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우리 가문의 눈은 중원 전체에 뻗어 있습니다. 물론, 이 넓은 중원의 사소한 것까지 모든 걸 아는 건 아니지만. 그런 단서를 잡아낼 정도는 되지요.”

“···제가 뭐가 대단해서? 그건 착각 아닙니까?”

제갈민은 낮게 코웃음을 쳤다.

“그런 의미 없는 반문을 하시오? 누군가는 그런 자잘한 사건들에서 어떻게 그걸 엮어내느냐고 묻겠지만, 그런 작은 조각들을 모으다 보면 의외의 것이 보이는 법입니다.”

“그럼. 당신이 날 만나려고 한 건···.”

“단순히 외부의 조직일 뿐이라면 이리 무리해서 만나려 들진 않았을 텐데. 그들 중에 조금 전의 명교 교주나, 중국의 5분지 1을 통제하는 지도자 곤륜 도선도 있었지요. 나로선 아국의 3분지 1을 움직일 수 있는 조직에서 중요시하는 자가 누구인지, 봐둘 필요가 있었네.”

거기까지 말한 제갈민은 눈에 힘을 주곤 내게 다시 물어왔다. 그의 눈에는 조금 전까지 보이던 가식이나 미소는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니 다시 묻지. 그쪽이 이 조직의 지도자가 맞소?”

“만약, 그렇다면?”

나는 지지 않고 그걸 그대로 받아쳤다.

당장에 내가 무슨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강시후의 말에 따르면 그게 딱히 거짓도 아니니 나로선 꿇릴 것이 없었다.

그렇게 정면으로 맞선 내 눈을 한참이나 쳐다보던 제갈민은 고개를 갸웃하더니 짧은 탄식을 터뜨렸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군.”

“···무엇을?”

“그쪽이 정말로 곤륜의 도선이나, 저 명교의 신녀를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라는 그 사실 말일세! 그걸 누가 믿겠나? 누구에게 물어봐도 다 믿기 힘들지 않겠나?”

“그럼 당신은 믿는 겁니까? 그걸? 그 말대로 누가 믿겠습니까?”

“난 내 눈으로 본 것만 믿지. 그런데 거짓을 말하는 눈이 아니라면, 믿을 수밖에. 대단한 사기꾼이거나 그게 아니라도 그런 연기가 가능한 자네를 대리인으로 쓴다면, 그 주인이 비상한 인물임은 틀림없겠지. 그래서···.”

한 차례 끊은 제갈민의 표정은 조금 전과 달리 마치 사업가의 얼굴처럼 담담했다.

“그래. 그렇다고 친다면 그런 거대 조직의 수장이 이 중국에는 무슨 일이지? 우리가 다음 차례인가?”

“확답을 원하시는군요.”

난 그제야 깨달았다. 앞서 말이 길었지만, 제갈민은 그저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고 내게 확답을 받고 싶었던 거다. 이 중국에 무슨 평지풍파를 일으키려고 온 건지,

그 과정에 제갈 가문에 해가 될 게 있는지. 만약, 그렇다면 가만있지는 않을 거라는 것까지.

난 그의 우려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마찬가지로 담담하게 답했다.

“그저 거쳐 갈 뿐입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좀 실망인데.”

갑자기 실망이라니 이건 또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아, 마음에 담아두진 말게. 아국의 상황이 너무 답답해서 푸념을 좀 해본 거니까.”

“그건 또 무슨 뜻입니까?”

제갈민은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뜬금 없는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 게이트 시대, 지금도 어딘가에선 인류의 끝없는 발전과 수복. 그리고 장밋빛 미래를 이야기하지만, 난 이게 대재앙의 전조라는 걸 직감할 수 있어. 자네는 별이 운다는 말을 들어봤나?”

“들어본 적 없군요.”

“내 증조부님께서 한 말일세. 게이트 시대는 지구가 끝장나는 게 아니냐던, 자연재해가 끊이지 않던 그 해에 벌어졌지. 돌아가신 내 증조부는 명확하게 그걸 명시하며 기록해두셨네. 진짜 말세가 오는 줄 알았다더군.”

제갈민이 하는 말의 의미는 이 시대 자체가 재난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라는 뜻 같았다.

“갑자기 등장한 신화 속의 신들, 역사 속의 영웅, 위인들. 심판. 1차 대격변은 온통 그런 이야기로 가득했던 혼세였어. 수많은 가짜 예언자들이 사이비 교주 행세를 했지.”

그의 말에 갑자기 머리를 뭔가 둔중하게 치고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내 반응에 상관없이 뭔가를 회상하며 제갈민은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 세계 위에 세워진 시대가, 아무리 잘 버티고 잘 헤쳐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해도 정상적일 리가 없잖은가? 그런 시대에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지고 세계를 선도해야 할 아국은 이런 전통의 민속놀이나 즐기고 있지.”

“아, 민속놀이···.”

그 자조적이고 조롱에 가까운 단어가 중국이 찢어져서 서로 물어뜯는 지금 상황을 말하는 것이라는 건 바보가 아니면 안다.

“뭐, 수백 년마다 내전을 벌이는 건 아국의 전통 아니던가? 외부 위기에 어거지로 통합했다고 하나 이런 어중간한 결속 가지곤 차라리 속 시원하게 찢어지고 다시 통합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러니. 그래서.”

다음 말은 그가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알겠다. 이번에 한국을 뜯어고친 것처럼, 중국에도 그래 주려고 와준 게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표정을 보니 말해주지 않아도 알겠어. 하기야 외부인에게 나의 소열제를 기대하는 건 무리였나? 나도 참, 나이 들어서 주책없는가. 어불성설이로군.”

“그건. 하고 싶어도 능력이 안됐습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그리 답하자 침묵이 흘렀다.

내 말이 뭔가를 건드린 것처럼 그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는 뭔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침묵을 깬 것도 제갈민쪽이었다.

“재밌군. 약간의 기대. 약간의 실망. 그리고 호기심인가? 하기야 이리 나이가 든 것을. 잠든 용이 나라는 법은 없겠지. 자네 여정에 사람 몇을 데려가고 또 보호를 해주게.”

“무작정 그런 무리한 조건을 들어 드릴 순 없습니다.”

“그래 준다면, 내 호의와 더불어 지원을 약속하지. 어떤가?”

제갈민은 그 내용도 말해주지 않고 무작정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그와의 대화에서 문득 얻은 한가지 큰 힌트 탓에 난 쉽사리 거절의 말을 내뱉지 못했다.

결국, 주저하던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요구는 자기 자녀와 그 경호 인력을 태워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와의 대화에서 얻은 힌트는 ‘예언’이라는 단어였다.

‘난 대체 이걸 왜 간과하고 있었을까?’

찢어진 곳에서 오는 다른 종족들처럼, 그런 예언이라면 지구에서도 얼마든지 존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단연 그중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것은 ‘아브라함’ 계열 종교의 예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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