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장 - 죽절산
인원 점검부터 시작해서 기관실, 엔진실, 유류창고 등 전투 시설을 점검하고 창고에 보관해둔 물품들까지 한 차례 다시 점검했다.
이후, 날아오른 뒤로 함선의 책임자로서 함교의 관제실에서 비행이 잘 이뤄지고 있는지 선장과 함께 지켜봤고 안정화될 때까지 계기판만 바라보며 쭉 대기했다.
정신적인 피로가 상당하다.
‘이제 좀 쉬겠어.’
여유가 생겨서 제자들 방에 찾아가 봤으나 노크를 해도 답이 없는 것을 보니 안에 있는 것 같진 않다.
‘하긴, 이제 막 시설을 개장했을 테니 한창 신나서 구경을 다닐 땐가?’
다목적 중형 함선인 청수호는 여객 수송선과 전투 비행선 사이에서 어느 정도 타협한 구조로서 실내의 편의시설은 있을 만큼 있었다.
아마 제자들의 놀 거리 정도는 충분할 것이다.
난 내부 인원들 위치 파악도 할 겸, 머리도 식힐 겸 해서 선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함교 아래, 갑판 쪽으로 나오자 야외에 설치된 훈련장이 반겨줬다.
안혜성이 이번 여정에 포함된 길드원 몇 명과 함께 조깅 트랙을 따라 운동 중인 모습이 보인다.
그들은 뛰다가 나를 발견했는지 손을 흔들어왔다.
“같이 운동하시겠습니까!”
“아니. 난 좀 피곤해서. 그보다 제자들이 어딨는지 찾으려는데 보이질 않네. 혹시 이쪽에 왔나?”
난간에서 경치 구경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왔는데, 그런 쪽으론 관심 없나보다.
“이쪽에선 못 봤습니다!”
함교 뒤편에는 지혜 취향인지 수영장을 만들어두긴 했는데, 이번은 장기 항해를 하는 만큼 물 낭비 탓에 아예 개장하지 않았기에 현재 그곳에는 아무도 없을 거다.
선베드가 있긴 한데, 벌써 거기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이 있을 것 같진 않다.
계단은 함선이 큰 편이 아니었기에 관제실 근처, 중심부에만 존재했다.
함교 뒤편 계단으로 돌아와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안내데스크에서 황은비를 상대 중인 길드 소속 승무원이 보였다.
황은비가 길드 생활하면서 미리 안면을 익혀놨는지, 꽤 친해보였다. 두 사람은 잡담 중인 것 같다.
“두 분, 대화 나누시는데 실례 좀 하겠습니다.”
“네, 전무님. 말씀하세요.”
“저도 괜찮아요!”
“두 분 혹시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애들 두 명 못 보셨습니까?”
“아! 그 애들이라면, 아까 오락실로 가던 것 같던데요?”
두 사람에겐 간단한 감사의 인사말을 건네고 헤어졌다. 계단을 타고 한층 더 내려간 뒤, 선미 방향으로 걸었다.
지금 내가 지나치는 중인 지하 1층 복도는 연회장, 클럽, 카페, 바, 도서관, 상점, 오락실 등의 휴게시설이 위치한 공간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얼굴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간 끝에 함미쪽 우측면에 있는 오락실에서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보드게임 중인 두 악동을 찾을 수 있었다.
“아주 놀 생각 만반이구나. 어쭈, 돈까지 걸고?”
내가 이 둘과 놀아주고 있는 세 명의 어른들을 슬쩍 흘겨보자 무표정을 유지 중인 한 명 말곤 전부 내 시선을 피했다.
그 철면피 한 명은 강소연으로, 옆의 어른들은 자기들 기함에 안 타고 굳이 우리 길드 함정에 탑승한 최서린 패밀리였다.
“아, 선생님. 진짜! 첫날이잖아요! 설마 저희 지금 훈련장 가는 거 아니죠?”
“그래. 그렇게 훈련하다간 탈 나! 애들이잖아?”
최서린이 슬그머니 그리 애들을 변호하고 들었다. 나도 딱히 애들을 잡으려는 건 아니다. 훈련 일정 정도나 알려주려고 찾은 것뿐이었다.
“저녁 훈련은 진행할 거니까. 저녁 먹고는 어디 싸돌아다니지 마라. 이거 직접 말해주려고 찾았다.”
“예썰!”
“그런데, 너희 둘. 진수 녀석 찾는다더니?”
“몰라요. 어디 숨어있는지 도저히 못 찾겠던데. 우리도 이거 3대 3하려고 찾았었다고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는 거 아니었어요?”
“짐작 가는 게 있다 뿐이지, 나도 진수가 어딨을지 정확히 아는 게 아냐. 그럼 난 가볼 테니 재밌게 놀아라.”
아마도 진수 녀석은 정비실에 있을 것 같다.
생존기술란에 있는 정비 계열 기술을 몇 알려줬더니 요 며칠 그거만 붙잡고 있더라.
그리고 내 예상대로 진수는 지하 4층의 정비실에 있었다.
“그렇지. 여기를 때렸다가 거길 두드려야 정비 크리티컬이 나올 확률이 높아.”
“네. 네!”
다만 뜻밖의 인물과 함께였는데, 그 사이 청수 길드의 이사이자, 협력회사의 대표 자리를 받아들였던 한유림 장인이었다.
이번에 길드에서 유럽에 갔다온다니 그쪽과 교류하고 싶다면서 따라붙었다.
“대표님. 제자들은 어쩌고 혼자 계십니까?”
“아. 자네인가? 뭐, 첫날이니까 그 녀석들은 놀라고 했지. 그러는 자네야말로 여기까진 뭐하러?”
“여기 진수 찾으러 왔습니다. 그러는 대표님께서도 여행 느낌 내시면서 좀 쉬시지 여기까지 와서 일하십니까.”
“됐어. 이쪽으로 가기로 했으니 최고 자리를 노려봐야지. 그보다 이 녀석은 나 같은 생산 직군은 아니겠지?”
“그렇죠.”
내가 확언하자 한유림이 입맛을 다셨다.
“끈기 있고 성실한데다 애가 싹싹한 게 가르치는 맛이 있는데···.”
난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한 명인이 어지간히 진수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떻게 안 되겠느냐는 말인데, 전우치와 계약을 생각하면 절대 안 될 말이다.
진수 정신 수양 좀 하라고 시킨 일인데 적성에는 꽤 맞았던 모양이었다.
“진수 넌 여기 하늘 위에서 사고 터지면 진짜 곤란하니까 주변에 사람 없으면 가능한 실내 훈련장 근처에서 생활하고 절대 혼자 돌아다니진 마라.”
괜히 진수 침실을 실내 훈련장 코앞에 붙여둔 게 아니다.
“어. 근데 지금 감호 중이신 관리국분 한 명 계세요!”
그제야 한구석에서 내게 어색한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이민호의 모습이 보였다.
“너도 오랜만이다. 지난번엔 대화도 제대로 못 나눴네.”
“그러네요. 형.”
“그쪽 일은 할만하냐?”
“뭐, 관리국 공무야 뻔하잖아요? 요새 좀 매너리즘에 빠지려고 해서 새로운 일도 겪어볼 겸 자원했습니다.”
“유능한 부하 빼간다고 캔디 히어로가 싫어했겠는데.”
그 히어로 이야기가 나오자 민호는 몸서리를 쳤다. 잠시 민호와 잡담을 나누다 진수에게도 다른 둘과 동일하게 저녁 훈련 일정에 대해 말해준 뒤, 나도 한숨 자기 위해 침실로 향했다.
한 차례 꿀 같은 낮잠을 자고 저녁을 먹은 뒤, 실내 훈련장에 제자 셋을 데리고 모였다.
저 멀리 명상실에 들어가 있는 신수빈이나, 뒤편에서 다른 히어로들과 3대 1을 하는 중인 블랙이라거나, 저녁 훈련을 진행하는 각성자들을 배경으로 우리도 팀 훈련을 진행했다.
“설연화! 커맨드 똑바로 안 지키나?”
인형 하나의 머리가 내가 변칙적으로 손으로 집어 던진 화살에 날아감과 동시에 절반가량의 나무 인형이 한 방에 무너졌다.
“아씨! 그건 반칙이잖아요!”
“괴물이 널 봐주면서 싸울까!”
연화가 급히 지휘할 인형을 다시 만들었지만, 강령에다가 링크를 다시 부여하는 시간이면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 틈을 타서 가속해 진입한 내가 진수를 제압해 한쪽에 던져두고 나머지 둘을 상대하게 되자 가드를 잃은 진형의 균형이 순식간에 무너졌다.
“연화야. 공격은 하민이가 하고 마지막 한 명 합류하기 전까지는 주로 수비 연계에 집중하라고 몇 번을 말하냐.”
“아씨. 공격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니까요? 내가 지금 링크 유지하기도 벅차 죽겠는데, 뭔 놈의 공격을 한다고!”
그런 설연화에게 찍은 영상을 다시 돌려보며 인형들의 몇 가지 움직임을 지적해주자 급 조용해졌다.
그걸 옆에서 함께 지켜본 송하민이 담담하게 팩트폭행을 했다.
“공격명령 수정 안 한 것 맞네.”
“아니. 이거 내가 한 게 아님. 아무튼, 아님. 아니! 그거 전투 상황을 하나하나 다 파악하고 명령어까지 하나하나 언제 다 수정해주고 앉았어요!”
“연화는 섬세함이 너무 부족해. 내가 하면 잘할 자신 있는데.”
“너야 프로게이머였으니까 이런 전략 게임 같은 거야 당연히 잘하겠지!”
영술사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던 설연화에겐 ‘영매’라는 특성이 있다.
특이하다면 특이하고 흔하다면 흔한 그런 특성인데, 설연화의 경우는 그 등급이 높아서 일시적으로 신좌의 힘까지 불러낼 수 있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원래는 자기 내구도와 회복력을 극단적으로 올리는 특성을 타서 자기 몸에 신좌의 힘을 강림시킨 뒤, 폭발적인 한방 공격력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활약했었다.
‘류웨이도 포텐이 낮은 편이 아닌데 그 탓에 류웨이가 이 녀석 지키느라 제힘을 못 썼지. 그 녀석 빌드는 돌격대장으로 활약해야 하는 빌드야. 따라서 이 녀석이 자력으로 버틸 수만 있으면 선택지가 배는 넓어진다.’
물론, 인형사 빌드는 엄청난 멀티태스킹 능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타고난 공간감각이라거나 전술능력 따위가 필요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엄연히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는 거다. 사실 이 팀워크 훈련은 사실상 연화를 위한 훈련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팀웍 훈련은 여기까지. 샤워실 가서 씻고 자든지, 위에 사우나 가서 늘어지든지 알아서 하고 내일 아침에 늦지 않게 야외 훈련장으로 나와라.”
“네···.”
그렇게 저녁 훈련을 마치고 해산하려는데 폰이 울렸다. 발신자는 한창 다른 한편에서 로텍의 함선을 타고 날아가고 있을 정영하였다.
[동생, 나야!]
“예. 형. 무슨 일입니까?”
[일정상 칭다오에서 하루 쉬잖아?]
“그랬죠. 그런데 산동이야 잠깐 거쳐만 가는 거니 거기서는 각자 함정별로 알아서 관광하거나 쉬기로 했던 것 아니었습니까?”
[그거야 그렇게 진행하면 될 거고 이건 이쪽 개인적 용무. 우리 기함에서 그쪽 지역 유지 초대해서 친분 다지려 하는데, 동생도 참가하는 게 어때?]
“상류층 파티 같은 겁니까?
[뭐, 그렇지? 대부분 헌터들이니 복장 제한은 크진 않겠지만, 그래도 유럽에서 활동할 때 쓰려고 가져온 예복 정도는 입어주는 게 좋겠지.]
이게 나쁜 기회는 아니겠지만, 그리 내키지는 않았다.
”그런데 반대쪽 주최자는 어딥니까?”
[제갈가.]
생각보다 거물급과 만남이 잡혔다.
“제갈가면 산동성 최대 규모 길드가 아닙니까? 로텍이나 금성 정도면 모를까, 제 명성 수준에서 제대로 소개받기엔 급이 안 맞을 텐데요?”
[뭐, 그렇긴 하지. 그래도 이쪽에서 비비면 아예 불가능하진 않아. 그런데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그쪽에서 어떻게 알고 있는지 동생을 딱 지명하기도 해서 말이야. 유성 동생이 정 싫으면 내가 말은 잘해둘게.]
그 말에 난 직감적으로 나를 만나고 싶다는 사람들이 곤륜에서 합류하겠다던 사람들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기서 거절하더라도 어떻게든 따로 합류하긴 하겠지만, 이유 없이 바람 맞힐 필요는 없다.
“···아닙니다. 참가하죠. 혹시 인원 제한이 있다거나, 파트너가 있거나 해야 합니까?”
[뭐, 인원은 그쪽 핵심 인물 대여섯 명 정도? 파트너는 당연히 있는 편이 좋겠지?]
“네. 알겠습니다.”
[파트너 구하기 힘들면 말하고. 대충 내 지인 중에 한 명 붙여줄게.]
“그건 괜찮습니다. 정 힘들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대충 황은비한테 부탁해서 데리고 가면 되겠지. 그리 전화가 끊어지고 폰을 집어넣는데, 아직 주변 인기척이 사라지지 않은 걸 깨달았다.
“너흰 안 쉬고 뭐하냐?”
“선생님! 저! 그런 파티! 꼭! 가고 싶은데!”
“······.”
두 악동들이 몹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게 무언의 압박을 넣고 있었다.
“어. 음···. 저도요?”
진수마저도 옆에 두 악동을 곁눈질하며 살짝 기대에 찬 표정을 하는 중이었다.
“뭐, 그래. 꼽사리 껴 가는 정도야 어렵진 않겠지. 다만, 들어가기 전 폰은 압수다.”
“아···. 그럼 자랑을 못하잖아요!”
“너흰 이게 놀러 가는 건 줄 아냐. 이런 만남은 대개 기밀이다. 제멋대로 유출하면 결례야. 문제가 되면 나중에 보복당할 수도 있어.”
“그래도! 안 올리고 간직하기만 할게요!”
“내가 잘도 너희를 믿겠다.”
그리 말해도 계속 왕왕 대는 겁대가리 없는 녀석들의 머리를 손날로 한 대씩 후려쳐주자 그제야 잠잠해졌다.
그 와중에도 비행선은 구름을 가르며 바다 위를 날았다.
바다 위는 몹시 위험한 만큼, 순번을 정해서 번갈아가며 경계태세를 유지하던 비행선들은 저 멀리 산둥반도가 보이기 시작하자 그제야 비상경계태세를 풀었다.
저 멀리 보이는 끝없이 펼쳐진 광활한 대륙, 중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