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08화 (94/128)

10장 - 비상

격변 이전만 해도 한 해에만 족히 수억 명의 사람이 해외여행을 나갔다고 하는데, 작금의 게이트 시대에는 주변국을 다녀오는 수준이 아닌 본격적인 장거리 해외여행이란 건 목숨을 걸고 해야 하는 일이었다.

사실 단순히 목숨만 거는 수준이 아니라, 돈도 엄청나게 깨지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안전한 해외여행이라는 건 정말 부자라 경호원으로 떡칠하거나, 고위 관료 혹은 정치인이거나, 본인이 고위 각성자라거나 같은 그런 유사한 경우 하나 정돈 해당이 되어야 했다.

대개 일반인들은 평생 한두 번 정도나 길드나 국가에서 운용하는 비행선에 타고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며 주변국으로 해외여행을 가는 편이다.

자주 가기는 어려운 게, 탑승 비용도 비용인 데다 현지에서 사고가 날 수 있기에 자격증이 있는 각성자 경호원을 반드시 태워야 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집단으로 가더라도 일정 인원 당 몇 명의 각성자를 포함하도록 헌터법에 지정 되어 있었다.

자국민이 언제 어디서 게이트 사고를 당하거나 괴물에게 습격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본이나 가까운 중국의 대도시 정도는 국가든, 사적으로 운용되는 여객선이든 정기선이 꽤 자주 있어 가격도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다만, 그 자리 역시 엄연히 한정되어 있었다. 집단이건 개인이건 외국에 나가야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기에 경쟁이 몹시 치열했다.

‘괜히 화물선 기장이나 승무원들이 그리 많은 월급을 받는 게 아니지.’

비행기가 지나다니는 항로의 공역을 최대한 정리하고 여객선과 화물선을 운용한다고 하지만, 한 해에도 몇 번씩 비행 괴수의 습격을 받아 비행기가 추락했다는 소식이 심심찮게 뉴스로 나오곤 했다. 생명 수당이 포함된 거다.

여객용 비행기도 어느 정도는 운용하긴 하지만, 대개 시간 급한 헌터들이 타는 경우다. 일정 등급 이상의 헌터라면 추락해도 죽진 않으니까.

‘떨어진 곳에서 살아 나오는 건 또 다른 문제긴 한데.’

헌터라도 비행기 추락의 여파에서 완전 자유롭지는 않다. 거기에 더해 추락지가 필드 한가운데거나 하면 생존물을 찍어야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낙하산 타고 무사히 지면에 내려앉았다고 해도 보급품 하나 없이, 서포팅이나, 짐꾼 등의 보조 전력 없이는 수십 일이 걸릴지도 모르는 탈출 기간을 홀로 살아남는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외에 민간인 여객선 탑승객이 있는 경우는 국가에서 지정한 안전 항로 판정을 받은 곳이거나, 사업 차, 혹은 개인적인 급한 일로 각서를 쓰고 여객선에 탑승하는 경우다.

그런 위험 탓에 중요하면서도 몹시 고부가가치인 화물을 수출할 땐 지금의 로텍처럼 대규모 비행선 선단을 구성해가며 전략적으로 수출하려고 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대규모 수출 선단이 이동하게 되면 그걸 털어먹으려는 빌런 조직의 습격이라거나, 망한 나라 출신의 해적선이 튀어나오기도 하는 만큼 호위선이 빵빵하게 된다.

그러면 그 보호를 받으려는 여객선, 마찬가지의 비슷한 용건이 있는 중소규모 기업 및 길드의 비행정까지 보호비를 지급하면서 따라붙으려는 법이다.

‘지금 우리 비행선 같은 경우겠지.’

이 장황한 이야기를 왜 하느냐면 내 꼬마 제자 아가씨들이 아주 신이 나서다.

이렇게 유럽까지 가는 비행선단이라는 게 아무나 탈 수 있는 게 아니다 보니 저 나이대 소년 소녀들이라면 감수성 폭발해서 신이 날 법도 했다.

“짠! 이거 보이지? 서린 언니랑 하린 언니하고 찍은 거 올리니까 SNS 터지려는 중! 같이 유럽 여행 간다니까 다 부러워 죽으려 하네. 히히.”

“이 배신자! 같이 찍어놓고 왜 너만 먼저 올려? 사진 보내주고 같이 올리기로 했잖아!”

“베-. 넌 저 비행선 사진이나 찍어서 올리시지!”

“야-씨! 설연화! 너 거기 안 서?”

그 광경을 옆에서 같이 바라보던 김수철이 힘 빠지는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애들은 항상 힘이 넘치는구먼. 진짜 피곤해 뒤질 것 같아. 저 꼬마 아가씨들, 또 내 얼굴 보면 같이 사진 찍어 달라고 성화겠지. 대체 왜 저 나이 땐 힘이 넘치는 걸까?”

“그거야 공인인 히어로의 숙명 아닙니까?”

블랙은 선글라스에 캡모자를 푹 눌러 쓰곤 비행선 난간에 몸을 거의 내맡기다시피 하고 있었다.

거의 반으로 접힌 수준이라 난간에 빨래가 걸려 너덜거리는 것 같다.

“그보다 솔직히 좀 놀랐는데요.”

“뭐가? 내가 너희 따라가기로 한 거? 아니면 진수 녀석?”

“둘 다긴 한데, 굳이 따지자면 진수 쪽이겠죠. 전자야 슬슬 그럴 때라 짐작은 했습니다.”

슬슬 블랙도 국제 영웅 협회에 자기 활동 보고하러 갈 때가 되지 않았나 싶긴 했다.

붉은달의 바이올렛이나 타란툴라는 놓친 게 거의 확실해 보이지만, 거미는 보스만 빼곤 궤멸시킨 상태고 붉은달도 한 명을 격살한 걸 강시후가 김수철에게 거의 떠넘기다시피 해서 할 말은 있을 거다.

그가 세계구급 평가받는 히어로인 만큼, 주기적으로 활동 보고하고 그쪽에서 주최하는 대회의에도 참가해야 하니 슬슬 본부에 갈 때가 됐다.

“히어로가 되겠다는 녀석이고 나도 나름대로 저 녀석에 대해서 따로 계획하고 있는 게 있어서 말이다. 아마 너도 짐작은 할 거야.”

“확실히 그림이 나쁘진 않죠.”

“그래. 저 녀석. 그 미친 식인종 놈 대항마로 그림이 나쁘지 않아. 내가 정부랑 관리국 설득하느라 바빠서 정작 저 녀석 선생인 네 동의를 구하는 걸 깜빡했네. 하지만 난 네가 딱히 거절하진 않을 거로 생각하는데.”

“뭐, 솔직히 저 혼자선 좀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 거부할 이유도 없긴 합니다.”

“그래. 네 생각도 그렇다니 다행이다. 그런데 그걸 하려면 국제 영웅 협회에다 내 계획을 설명하고 이 녀석의 가능성을 보여 준 뒤에 지원을 받을 필요가 있어.”

“지금 여기서 제게 그 말을 하신다는 건, 제 자료를 달라는 말이겠죠?”

“물론, 나도 그런 자료가 몹시 값나가는 기밀인 건 아는데···.”

난 고민할 것 없이 김진수에 대해 계획 중인 빌드에 대해 정리해둔 서류철을 그에게 던져주었다. 그걸 잡아챈 블랙의 입이 씩 호선을 그렸다.

“오···쿨한데? 절차가 귀찮긴 하겠지만, 내가 따로 보고 올리고 제 값은 치를 수 있는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고마우시다면 그간 졌었던 빚 좀 갚았다고 생각해주시죠. 아시다시피 이게 아직 성과가 나지 않았으니 어디 보여줄 수준도 아니고요.”

“나도 알아. 당장 지난주에도 그 괴물딱지 너랑 내가 직접 상대했잖냐.”

“이런 일에 시기가 중요하다는 것 정돈 잘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

그때, 두 제자 아가씨들이 날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어. 이런, 난 들어가 본다?”

“네. 피곤해 보이는데, 좀 쉬시죠.”

그들이 비행선으로 뛰어 올라오는 걸 본 블랙은 재빨리 선실 안으로 도망쳤다.

“선생님! 진수 어딨어요?”

“하여간 걔는 같이 다니자고 해도 맨날 어디 숨어있다니까? 좀만 자신감 있게 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진수 쓸데없이 힘들게 하지 마라.”

이 두 아가씨 모두 이름 있는 신좌가 고르고 고른 만큼 집안 배경도 괜찮은 편이고 각자 한 외모 하는 녀석들이라, 사춘기인 진수의 정신건강에 몹시 안 좋더라.

만나서 자기소개 후에 저 친화력 만땅인 애들이 옆에 착 달라붙으니까 얼굴 빨개져선 말까지 더듬었다. 그걸 또 이 녀석들은 재밌다고 키득댔지.

“걔는 뭐라고 해야 하지? 딱 그거 같아.”

“잘생긴 찐따?”

“응응! 그래서 어울리지 않게 반응 재밌잖아, 그치? 그 갭이 귀엽다니까?”

“그건 그러네♣”

이 녀석들, 진수에 대한 평가가 많이 박하다. 귀여운 애완동물처럼 보는 느낌이다.

난 이 천방지축 악동들에게 얼핏 이성적 환상을 가진 것 같던 진수에게 애도를 표했다. 그 녀석이 이 아가씨들과 연애를 하기엔 첫 단추를 아주 잘못 끼운 것 같다.

“어쨌든! 앞으로 한참 동안 우리끼리 놀아야 할 건데, 동기끼리 돌아다니면서 사진이나 같이 찍으려고요!”

같이 찍는 게 아니라 전용 사진기사가 필요한 거겠지.

“너희야 상관없지만, 진수는 당장 SNS 타서 얼굴 팔리면 골치 아파질 수 있다.”

“뭐 이렇게 하지 말란 게 많아요! 꼰대 같아! 선생님도 찍지 말라고 하고? 진수도 안 되고?”

“연화. 그만. 선생님이 하지 말라시는 덴 이유가 있겠지.”

슬쩍 내 눈치를 본 송하민이 연화의 옆구리를 툭 찌르며 제지했다. 눈치도 빠르고 알아서 윗사람에게 맞출 줄 아는 성격이라 이 파티 중심은 당장은 하민이가 잘 잡아줄 것 같다.

앞으로 합류할 류웨이 녀석도 지켜본 바론 상당히 믿음직스러운 성격인 것 같았으니 팀워크 같은 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 와중에 ‘이러다 또 SNS 금지당할 수도 있어. 선생님 기분 읽기 힘들잖아’라며 속삭이는 걸 보니 지난번에 내가 갑자기 폰 압수한 게 좀 타격이 크긴 했나 보다.

이 녀석들, 그 덕분에 지난번 연회장에서 사진을 한 장도 못 찍었다고 발작하긴 했었다.

“그럼 저희 들어가서 쉴게요!”

내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쳐다보고 있자 폰을 등 뒤로 숨기며 눈치를 슬쩍 보더니 고개를 꾸벅하곤 선실 쪽으로 뛰어들어갔다.

문이 열리고 뛰어들어가는 방향을 보니 블랙의 선실 쪽인데, 중간에 저 악동들에게 휩쓸리지 않길 빌어줬다.

“이거 사고 나면 절대 안 되는 거 알죠? 곧 상장하는데 주가 떨어지는 것도 문제고 이번 운항에 저랑 아빠랑 돈도 엄청 투자한 거 알죠?”

그렇게 한 명이 가니까 또 다른 한 명이 온다.

이 항해 준비를 진두지휘하던 지혜 녀석이다. 내용은 몇 번이고 신신당부했던 거라 난 그 지겨운 잔소리를 슬쩍 한 귀로 흘렸다.

“수빈이랑은? 한동안 못 볼 텐데.”

“걔랑 뭘요? 우리 아직 딱히 물고 빨고 하는 사이도 아닌데?”

“그건 수빈이가 실망하겠는데?”

“걔도 알 걸요? 나한테 자기 없는 동안 심심하면 클럽에 가서 놀라던데.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제가 그럴 시간이 어딨어요?”

“성격은 잘 맞아?”

“아주 잘 맞아요. 결혼하는 것까지 고민할 정도? 사생활에 쓸데없이 터치 하지 않는 것도 좋고 똑똑해서 자주 도움되는 것도 좋고요. 빌드 전문가로선 진짜 천재적이라 꼭 붙잡아두고 싶은 매력도 있고? 다만, 쓸데없이 자기 고집 센 건 좀 마이너스죠.”

유지혜는 신수빈에 대한 할 말이 많았는지 물꼬가 터지자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그러니까 저 말을 해석하면 나한테 신수빈 고집 좀 꺾어달라는 거다.

“그 녀석 성공할 거야.”

“수빈이 하는 거 보면 결국 성공할 거라는 것 정도는 바보 아니면 알아요. 저도 실패할 거라며 설득한 적은 없어요. 문젠 재능에 집중하는 것만큼 성과가 나는가죠. 쓸데없는 노력을 한다는 느낌이 너무 강해요.”

“지혜야, 곧 개개인의 전투력이 중요한 시대가 올 거야.”

지혜는 내 말을 듣자 잠시 침묵했다.

“그거 평범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내가 입을 다물고 있자 지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대격변이 또 와요? 이번엔 주기가 너무 빠른 거 아닌가?”

“네가 그렇게 물어보면 내가 예언이라도 하는 것 같잖냐.”

“아니었어요? 유성 오빠, 여러 성좌분들에게 정보를 받는 것 같았는데?”

거의 확신을 담아 하는 말에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지난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야. 수빈이가 오래 살아남으려면 개인 전투력은 반드시 갖춰야겠지. 그런 시대인 이상, 녀석이 자기 사단의 육성보다 직접적인 실력을 갖추는 데 집중하겠다는 걸 막을 이유는 없어.”

“오빠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막을 수도 없겠네요.”

난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정보를 약간 풀어주었다. 지혜는 내가 돌아오고 처음으로 컨설팅한 녀석인만큼, 좀 각별한 면이 있었다.

“어쨌건 출항 준비는 다 끝냈어요. 그거 알려주려고 왔어요.”

“그래. 길면 반년쯤 후에나 보겠네.”

“그리 긴 시간은 아닐 걸요? 이쪽도 금성이나 북진 밑에서 동해안 공략이나 북진하다 보면 바쁠 거니까.”

“이쪽은 맡긴다.”

“진짜 최악의 경우라도 비행선은 날려 먹지 마요, 전무님? 진짜 큰일 나니까!”

“넌 무사히 돌아오라는 말을 참 살벌하게도 한다.”

선실에서 지혜 목소리를 들었는지 신수빈이 내 옆에 다가와서 지혜에게 핀잔을 줬다.

“시끄러워 신수빈! 이 항해에 돈이 얼마가 들어간 지 알기나 해?”

그리 잔소리가 다시 시작되려는 찰나, 출발할 때가 됐는지 이번 항해의 키를 잡게 된 금성의 기함이 시동을 걸면서 안내 방송이 울려 퍼졌다.

[지금으로부터 30분 뒤, 출항하겠습니다. 각 함정의 장은 탑승자 최종 점검을 시작해주시기 바랍니다.]

그 출발 신호에 지혜는 평소의 도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전무님, 빨리 선장님이랑 같이 인원 확인하세요.”

마침 선장 역시 그 소리를 듣곤 갑판으로 나오는 중이다.

지혜는 바로 계단을 타고 내려가더니 우리를 향해 잘 다녀오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곤 멀어졌다.

선장과 함께 기내를 돌아다니는 짧은 인원 점검 시간이 지난 뒤, 금성의 기함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걸 시작으로 김포에서 백 수십 척에 달하는 비행선들이 일제히 비상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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