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06화 (92/128)

10장 - 비상

몇 시간 후, 먼저 도착한 쪽은 김수철이었다.

그를 마중하러 나온 날 보곤 블랙은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자, 이몸 등장.”

“장비는 챙겨 오셨습니까?”

“어. 풀 세팅했다. 나도 따로 협회에 신청해서 기록 한번 읽어보고 왔는데, 이거 절대 만만한 게 아니겠던데? 나야 최악이라도 크게 다치진 않겠다만, 넌 괜찮겠냐? 오늘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말이지.”

나도 큰 문제는 없을 거다. 블랙은 예전 설악산에서 같이 전투했을 때의 나로만 기억하고 있어서, 내가 급격히 강해졌다는 사실을 모른다.

이렇게 별의 강화 시 능력치가 상승한 건 전우치 쪽과 포르세티와의 새 계약으로 두 가지 수치가 특급에 도달한 덕분인지라, 최근의 내 급성장을 자세히 아는 사람은 드물긴 했다.

“변신 빌드를 타지 말라는 건, 권고사항일 뿐이라서. 내용 성실하게 작성해서 신고하면 괜찮을 겁니다.”

내 말에 블랙은 갑자기 흠칫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뭔가 내 일거리가 늘어날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런 변신 빌드와 변신하려는 대상의 위험도를 생각해봤을 때, 가능한 특급 영웅 파견을, 정 힘들면 관리국의 고위 각성자 여럿이라도 붙이려고 할 거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면 가장 먼저 세계 영웅 협회에서 생각할 사람이 누군진 뻔하다.

“와! 정말 히어로 블랙?”

“그래. 내가 그 유명한 히어로 블랙이다. 그러는 넌, 그 문제아라는 녀석이 맞냐?”

“아, 문제아···.”

김진수는 나와 함께 안으로 들어선 김수철을 보곤 거의 연예인 영접한 듯한 반응을 보였지만, 블랙이 다짜고짜 내뱉은 문제아 취급에 시무룩해졌다.

“뭐, 작은 골칫거리를 가지고 있는 건 맞잖냐. 그리고 난 이유가 뭐건 간에 사고 치는 놈은 별로 안 좋아하거든. 인식을 바꾸고 싶으면 앞으로 직접 증명하라고.”

“그러면 선생님. 이제 시작하면 되는 건가요?”

“아니. 오실 분 한 명 더 있어.”

“누구···?”

“우리 영감님.”

내 말을 가로챈 블랙이 말하는 사람이 북진의 정상철 길드장이라는 걸 알게 되자 김진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SNS로 직접 찾아보거나 혹은 X튜브 영상, 뉴스에서나 보고 듣던 사람들을 보게 되니 신기해 하는 것 같다.

더불어 그런 사람을 부를 수 있는 덕분인지 나를 보는 눈빛도 꽤 부담스러워졌다.

“정 길드장님 오시기 전에 간단하게 점검이나 하자.”

“네. 트리거는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전에, 트리거에 앞서서 조심해야 할 게 뭐라고 했지?”

“제가 망가지는 것 같으면 차라리 정신을 놓으라고.”

같이 망가지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인격 주도권이 반대편이라면, 정신적인 위험부담은 주도권을 잡고 있는 쪽이 불리하다.

숨어있는 쪽은 조금 더 오래 버틸 수 있다.

“그래. 그 다음이 트리거. 복습하자면, 이중 인격 특성에서 인격이 바뀌는 이유는 전부 그 때문이다. 인격 전환이 계속되면서 너도 모르는 사이에 끊임없이 전환의 촉매가 늘어나고 있지.”

“그걸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하니, 특정 조건에서는 반드시 바뀐다. 그렇게 생각하라고 하셨죠.”

“그래. 그렇게 트리거를 타협해서 나머지는 네가 원치 않는 상황에선 인격 전환이 발동하지 않게 조절하고 동시에 통제할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좁혀 놔야 하는 거다.”

김진수는 어느 순간 정신을 잃으며 바뀐다고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소한 걸로도 인격의 스위치가 돌아가고 약한 트리거로 인한 전환은 그 저항성으로 인해 원래대로 돌아오는 스위치가 바로 다시 눌러서 순식간에 돌아오는 것 뿐이다.

그래서 티가 나지 않는 거다. 그렇기에 이중 인격 특성의 조절은 인위적인 스위치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게 된다.

“그래서 네 인간일 때의 첫 번째 트리거가 뭐랬지?”

“시야에 괴물이 보이면.”

“괴물이 보이면 그때부턴 네 다른 인격의 시간이다. 이건 네가 다른 인격에게 반드시 줘야 하는 양보다. 그쪽도 상시로 광기에만 먹혀있는 게 아니고 통제하기 힘든 자신의 광기와는 별개로 생각이란 걸 한다.”

“오? 그래? 이건 또 특이하네.”

블랙도 내 설명을 꽤 흥미롭게 듣는 모습이다.

“이중인격 특성 제어법이란 게 일반적으로 잘 알려져 있진 않죠. 그래. 그러면 두 번째는?”

“제가 ‘괴물로 변하면’입니다!”

“그래. 이 트리거가 핵심이지. 그래서 변신 초기에 발동 취소를 시켜가면서 계속 그걸 연습한 거다. 그리고 넘겨주는 마지막 세 번째는?”

호위하던 이들이 덕분에 고생을 많이 했다. 다른 인격이 취소하지 않으려는 걸 강제로 발동 취소를 시켰어야 했으니까.

“한 달에 한 번, 방공호 같은 격리장소에서.”

“그럼 그 세 개가 전부냐? 아까는 많은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아니요! 선생님이랑 점검한 바로는 더 많은데, 절대 허락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 세 가지 경우 빼고는 어떻게든 되찾아오려고 싸워야 한다고 했고요.”

“그래. 그래서 반드시 돌아오는 트리거를 설정하게 연습했지.”

내가 지긋이 쳐다보자 김진수가 입으로 그 트리거를 내뱉었다.

“빌런이 나타났을 때랑 위기에 빠진 민간인이나 동료가 있을 때.”

“거기에 하나가 더 있을 텐데.”

“···스스로 죽을 위기라고 판단될 때.”

“그 마지막 건은 주도권을 잘 넘기려 하지 않겠지. 반면에 넌 심리적으로 넘기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절대 그래선 안 된다.”

“그게, 선생님. 그런 상황에선 저보다는 그쪽 인격이 더 낫지 않을까요?”

난 고개를 저었다. 절대로 그렇게 생각해선 안 된다.

그리고 내가 뭐라 답하기도 전에 그에 대한 핀잔은 블랙이 주었다.

“이 녀석 안 될 놈이네. 히어로가 되겠다는 놈이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면 쓰냐?”

“어···.”

“영웅이란! 자신의 신념을 믿는데서부터 시작하는 거다!”

블랙의 선언에 충격 받은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내가 지적, 설득하기 위해 했을 말보다는 저게 훨씬 나아 보였다.

물론, 난 절대 저런 소년만화 같은 대사는 절대 못 해준다.

“블랙의 말과는 조금 다른 측면이지만, 어쨌건 결국은 직접 훈련받는 건 말을 들어 먹는 ‘김진수’쪽이다.”

이미 그 말이 마음에 와 닿은 듯했기에 난 마무리를 짓는 선에서 나머지 조언을 건넸다.

“중요한 건가요? 어차피 기억을 공유하는 같은 사람이라고 하셨던 것 같은데.”

“같이 배운다고 하지만, 몸으로 직접 배운 너. 직접 배운 적 없고 몸이 아닌 장면으로만 기억할 그쪽 인격. 그중에서 누가 더 그 상황에 대응을 잘할지는 뻔한 이야기지.”

“광기도 통제하지 못할 놈보다는 이성 있는 쪽이 낫다. 거기 문제아. 나는 네가 히어로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된다고 한다면 앞으로 네가 상대할 빌런들이나 괴물이 고작 이성 잃은 짐승 하나 요리 못 할 것 같냐?”

진수는 군기가 바짝 들어서 침을 삼켰고 블랙은 그 모습을 보곤 신이 났는지 히어로의 마음가짐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그 사이 격벽 문이 열리며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준비는 다 끝났나? 조금 늦었구먼.”

“아, 영감님 오셨네.”

“고 녀석은 왜 군기가 바짝 들었냐? 김수철이, 너 이 삐딱한 녀석, 애한테 뭐라고 했나?”

“아, 이 녀석 우리 쪽이라니까 영감님은 신경 꺼요. 하여간 그놈의 인재 욕심은. 그냥 내 후배가 될지도 몰라서 미리 정신교육 좀 한 겁니다. 군기는 너무 부조리 같잖아?”

“정신교육 하니께 니 히어로 되고 나서 첫 파견 때 생각나는구먼. 뒈질뻔한 거 구해놨더니 질질 짜던 게 엊그제 같은데, 요샌 애들 군기를 잡는 걸 보니 우리 수철이가 많이 컸구만?”

“아니! 이 영감님이? 그 이야기는 또 왜! 그리고 거기서 내가 뒈질뻔한 게 아니잖아! 그리 말하니까 내가 개찌찔해 보이는데, 이 녀석들 오해할 소리 좀 하지 마쇼!”

“어쭈? 김수철이? 말대꾸?”

그 살살 놀리며 도발하는 듯한 말에 블랙의 입에서 이 갈리는 소리가 났다.

“영감님. 몸이 근질거리시나 본데, 좀 이따 끝나고 여기 말고 밖에서 봅시다. 밖에서.”

“거 밖에서 붙으면 뭐가 달라지고? 얍삽하게 치고 빠지기나 하다가 ‘무승부로 하지 않을래?’하고 바쁘다는 핑계 대면서 도망칠 것 아니냐!”

두 사람 사이의 종합 전투력은 둘째 치고 이런 좁은 공간에서 붙으면 기습이건 뭐건 블랙이 일방적으로 얻어터지는 모양이다.

저 자신감 넘치는 히어로가 대놓고 꺼릴 정도니 역시 한국 최강의 무투가라는 별명이 허명이 아니다.

분석가들의 평가론 예전 전성기 때라면 현 격투가 세계 1위를 다투는 중국의 권왕이나 인도의 아가사와 붙어도 충분히 이길 만하다고 한다.

하지만 하필이면 정작 젊은 시절의 전성기 때는 당시 대격변을 종결시키던 미국의 캡틴이 격투가 계열이라서 비교 대상이었다.

거기에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미국의 옛 캡틴을 1위로 치는 사람이라도 1차 대격변 중심 영웅 중 하나였던 중동의 알-가파르를 공동 1위라던가, 동급이라고 예우해주는 경우가 많다.

‘격투가나 순수 검사 계열에 괴물들이 많지. 대체 어딜 봐서 저게 세계 3위 밖으로 밀려야 하는 실력이냐.’

하지만 어찌 되었건 결국, 정 길드장도 역대 세계 격투가 순위에선 아무리 잘 쳐준 경우라도 3위 밑으로 항상 밀렸다.

“그래서 난 뭘 하면 되나? 대충은 듣고 오긴 했다만.”

“그간은 변신 단계에서 때려잡아서 제대로 변신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변신 이전 상태에서도 특급 각성자 주력기 급 위력은 누적시켜야 변신이 풀려서···.”

“완전히 변신해버리면 제압할 수 있을지 짐작이 안 간다는 말이구먼. 그래서 뭐로 변신한다는 거냐?”

“영감님. 자료도 안 보고 오셨어? 텐구로 변신한다잖아.”

“텐구? 천구다, 이놈아. 우리나라나 저짝 놈들은 멀쩡하게 천구라 부르는데 뭣 때문에 왜놈 걸로 불러?”

“아니 씨···. 영감님. 자료 좀 읽어. 천구가 어딜 봐서 그런 포악한 괴물 느낌이야. 거기에 알아보니까 천구라는 건 별로 유명하지도 않드만. 이 녀석 변신해서 ‘천구 변신한 거에요!’하면 뭘로 변했는지 사람들이 알아듣긴 할 것 같아요?”

“거 잡소리는 됐다. 시끄럽고! 거기 뺀질이 3호기! 그럼 준비한 거나 꺼내봐라. 한 번 부딪쳐 보자!”

몹시 저렴한 표현에 난 할 말을 잃었다. 설마 블랙하고 동급 취급을 받은 건가?

“뺀···질이.”

자동으로 떨떠름한 목소리가 내뱉어졌다.

“뭐냐. 불만이냐?”

그런 내 옆을 자리를 잡으러 스쳐 가던 블랙이 복화술 수준으로 낮게 속삭였다.

“영감님, 딸내미 채 가려는 것 같은 놈들한테만 저런다. 이수 쪽은 명준 형이랑 나 다음이니까. 나름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면 될걸?”

“다 들린다! 이놈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자리나 잡어!”

“하여간 쓸데없이 귀만 좋아가지곤···.”

상대적으로 전투력이 떨어지는 블랙이 뒤편, 정 길드장이 정면에 자리를 잡았다.

“진수, 가 보자. 다른 것 생각할 필요 없이, 그간 훈련한 대로 변신 발동하고 이때는 넘어가는 게 당연하다는 느낌으로···.”

변신을 발동시키자 진수가 몸을 쉽사리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서 있는 자리 주변에서 흐느적거렸다.

마치, 영화에서 사람이 좀비가 되려고 하면 딱 저럴 것 같은 모습이다.

이미 변신할 때의 그것부터가 심각하게 괴이하다. 누가 저걸 봐서 화려하고 멋있는 변신이라 할까?

그래도 저기까지는 익숙하다. 저 상태에서 요원들과 함께 기술을 퍼부어 원 상태로 돌리고 내상 치료를 했었지만, 지금은 완전 변신을 시킬 거라 지켜보는 중이다.

변화가 시작됐다. 피부가 붉게 변하고 코가 길어지기 시작한다.

다리가 변형되어 역관절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새의 것처럼 변했고 전신에선 붉은 털이 자라기 시작하고 허리는 반쯤 굽어 간다.

“으으으-아아아악!!”

그리고 그 상태에서 김진수가 견디기 힘든지 있는대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곧이어 머리에 뿔 하나가 솟아 오르면서 얼굴 주위로는 갈기가 자라나고 머리카락은 급격히 길어진다.

동시에 굽은 등 뒤의 날갯죽지에선 두 장의 날개가 뻗어 나왔다.

괴물의 모습이긴 하지만, 그나마 이런 특수한 변신의 특성상 보통 변신처럼 극히 혐오스럽거나 하진 않다.

딱 인간 아닌 게 인간 같은 모습을 취한다고 느낄 정도의 위화감과 불편함이다.

눈은 위아래로 양쪽 합쳐 총합 네 개. 붉게 쭉 찢어진 눈 속의 기이한 문양을 지닌 눈동자는 네 개가 전부 따로 움직이며 주변 환경을 살피고 있다.

“뭐야, 이거. 바로 통제된 건가?”

그리고 블랙의 그 말에 텐구화한 김진수가 즉시 반응하는 게 내 눈에 잡혔다.

“조심···!”

“뺀질이!”

고양이가 털을 세우는 것처럼 순간적으로 드러난 부분의 털이 곤두서고 텐구가 시야에서 사라졌다.

‘은신 능력도 있나?’

그리고 그런 생각이 채 끝나기도 전에 뭔가 뚫리는 소리와 함께 너구리를 닮은 날개 달린 괴물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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