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105화 (91/128)

10장 - 비상

그리고 난 이 녀석에게 그 선택에 따른 문제를 모두 설명해줘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면 제가 뭘 해야 하죠? 지금 남아있는 점수로 알려주시는 특성부터 먼저 익히면 되는 건가요?”

“그래. 하기로 한다면 그렇게 시작하게 되겠지. 그 전에, 넌 알아야만 해.”

“···뭘요?”

“이게 위험한 일이라는 것.”

“방금 하신 것 외에 더 위험한 게 있나요?”

난 말없이 들고 온 가방을 찾아서 몇 가지 자료를 꺼내 쥐여주었다. 그걸 본 김진수의 안색이 굳었다.

“그래. 좀 보기 안 좋지?”

“···생각했던 것보단요. 이 정도면 심한 건가요?”

“다행히 그게 보통.”

물론, 전혀 다행이진 않다. 내가 가장 먼저 김진수에게 쥐여준 건 거미화를 선택한 각성자의 변신 형태였다.

“상대적으로 조금 나은 것도 있긴 하지. 원숭이 정도로 가면 그래도 인간과 유사점이 많으니 좀 추한 정도의 선에서 끝날 거다.”

거미 변신이라고 해서 모 히어로 영화의 거미 인간이라거나, 영화 도중의 괴물적인 변형된 형태 정도를 생각하면 섭섭하다.

‘그 영화는 괴상하긴 해도 인간의 형태는 유지하고 있기라도 했지.’

일단, 가장 먼저 눈이 여덟 개다. 팔과 다리는 사라지고 양팔 자리에 무기화 된 거미의 앞다리 두 개, 하체가 변형되어 거미 다리 세 개는 그쪽에 달리게 된다.

머리카락이 없는 대머리라는 건 그냥 사소한 거라 여겨질 정도의 역변이다.

그나마 인간과 유사한 점이라면 얼굴의 형태는 그나마 갖추고 있다는 것. 그 정도 뿐. 변신 빌드는 누구나 괴물이라 생각할 거라는 건 그런 의미다.

그 자료를 심각한 표정으로 보던 김진수는 한참 침묵하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다.

“더 보여주세요.”

“그래.”

1차적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동물 형태로 변신했던 경우를 전부 확인한 후, 김진수가 깊게 한숨을 쉬었다.

“하나같이 외형이 만만한 게 없네요.”

“그래도 포유류 동물은 대체로 변신 형태 중에선 그나마 나은 편에 속하지.”

아까 말한 거미보다 낫다는 것들 대부분이 포유류고 대부분 빌런들이 선택하는 것도 우리에게 친숙한 포유류 동물 쪽으로 변신하는 거다.

다만, 이족 보행의 인간적 형태를 유지하면서 그 근력이나 육체적 특성을 가져온다는 건, 자연스럽게 그 기준을 맞추기 위해 육신이 기괴하게 뒤틀릴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흔히 매체에서 보게 되는 웨어울프, 웨어베어 같은 것과는 그 기괴함의 수준이 차원이 다르다.

아예 이족 보행을 포기하고 동물에 가까운 모습을 유지하는 특성을 타면 형태 자체는 좀 낫다.

다만, 반대로 그런 상태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문제인데다 평시와 변신 때의 괴리감이 엄청나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런 빌드를 탔다가 해당 변신 동물 수준으로 지능이 퇴화한 경우가 있었지.’

무엇보다 인간의 힘이란 건 기술에서 나오는 거다. 저리 외견 하나를 생각하고 인간형을 포기할 경우 기술 선택지가 무진장 제한된다.

그리고 우리 인간이 상대할 건 애초에 그런 야수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괴물들이다.

단순한 야생성은 결국 힘의 논리에 굴복하기 마련, 그걸 극복하는 것이 인간의 협동과 쌓아 올린 기술인 만큼, 고려할 가치도 없는 일이다.

“이 중에 사람들에게 그나마 거부감이 덜한 선택이라면, 여우나 늑대 정도겠죠.”

김진수의 말처럼 그나마 늑대인간이라는 건 민간인들도 흔히들 한 번쯤 들어본 내용이다.

모습에는 좀 거부감이 있더라도 홍보를 잘하거나 첫 단추를 잘 끼우거나 하면 변신하는 아군이라는 느낌으로 받아들이긴 할지도 모른다.

“이제 충격은 좀 가신 것 같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자.”

김진수는 정신적인 피로가 심한지 두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으며 고개만 짧게 끄덕였다.

“어···.”

“이건 좀 나아 보이냐?”

“그렇네요.”

“첫 번째는 스트라고이 변신 형태. 신화 속 뱀파이어라고 이야기하면 이야기가 쉽겠지.”

“그런데 뱀파이어 하면 좀 귀족적인 느낌 아닌가요? 하지만 이건···.”

앞에를 싹 다 보고 나니 양반일 뿐이지, 이것도 아주 괴악하기는 마찬가지다. 쭉 찢어진 거대한 입과 거대하고 살벌한 송곳니, 움푹 들어간 눈은 그저 시작이다.

“그래도 이건 견딜 만은 할 것 같은데요.”

팔부터 다리까지 쭉 이어진 피막과, 마치 전신 근육 조직이 다 드러난 것 같은 육체에 전신에 돋아난 기괴한 반점들까지. 이쪽 역시 누가 봐도 괴물이다.

하지만 앞의 워낙 기괴한 괴물들을 봐서인지 김진수는 그나마 좀 낫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옷이라도 입으면 어떻게 커버가 될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턴 그런 외형적인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마저 다 읽어봐라. 그리고 이야기해.”

스트라고이 자료를 끝까지 다 읽었을 때, 김진수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앞선 것과는 피해 규모가 차원이 다르네요.”

앞의 빌드들에도 당연히 사고 사례는 전부 있었다.

하지만 몇몇 고위 빌런이 변신해 사고를 친 게 아닌 이상, 그 대부분은 사람 몇 죽이고 히어로나 각국 관리국이 금방 제압하는 선에서 끝난다.

하지만 지금부터 나오는 특수 신화계통 빌드들은 변신 조건은 까다로운 주제에 피해는 천문학적이다.

“그래. 당시 스트라고이 변신 빌드를 시도했던 빌런이 자아를 잃고 폭주해서 자기 조직원들을 모조리 찢어버리고 한 도시를 궤멸시키는 데 걸린 시간이 불과 7시간. 그것도 모자라서 A급 주제에 특급 히어로 둘을 죽였지.”

사상자 37만, 도시 하나가 죽음의 땅이 된 아주 기념비적인 빌드 사고 사건이다.

외부에는 게이트 사고라고 알려졌지만, 일부 헌터 빌드 연구가들 사이에선 쉬쉬하면서도 그 위험성을 경고하는 의미에서 인맥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자료를 전부 다 읽어보면 너도 알겠지만, 이런 변신 대상은 인간보다 배는 강한 육체와 정신력을 지녔어.”

“그 말은, 변신이란 게 단순히 힘을 가져오는 게 아닌 거군요.”

“그래. 변신하고자 하는 대상을 자기 육신과 정신에 소프트웨어 설치하듯 덮어 씌우는 거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의 많은 부분이 대체되는데, 특성 몇 개와 기억, 이성으로 억눌러야 하지.”

급도 안 되면서 제한 조건만 간신히 만족한 덕인지 고르곤 변신을 시도할 수 있었던 어떤 빌런은 변신하고 3초 만에 몸이 터져나가며 죽었다.

하지만 그 변신 순간만으로도 주변 반경 3백 미터 이내의 생명체 전부를 돌로 만들어 버린 사고도 있다.

각국 A급 이상 서포터 영웅들이 재난 현장에 파견되며 전부 치료하긴 했지만, 그건 과거의 역대급 빌런 테러 사건 중 하나로 잘 알려져 있다.

‘죽는 일인데 그걸 고의로 테러하려고 누군가 시켰는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그런 걸 보면 빌드 전문가도 재능을 위험하게 쓴다면 나름대로 위험하지.’

김진수는 진지한 얼굴로 나머지 자료도 천천히 살폈다.

“이건 전부 실패 사례뿐이네요. 성공한 경우는 없나요?”

“신화급 괴물로 변신에 성공하고 그나마 정신을 유지하고 살아있는 경우는, 그래. 전 세계를 다 따져봐도 단 한 명만 있지. 그게 정말 제정신인지는 둘째치고 말이다.”

“왠지 누군지 알 것 같아요.”

빌런에도 순위가 있는데, 현 세계 빌런 1위로 평가받는 놈이 딱 저 경우에 해당한다.

“빌런 위험 등급 1위. 식인종 데니스. 맞죠?”

“그래. 그 빌런 놈은 만티코어 변신을 했지. 단순히 지금보다 사람을 더 잡아먹고 싶다는 그런 이유로 말이야.”

“미친놈이네요.”

붉은달 소속은 아니다. 미국 A급 잠재력 각성자 출신인데, 아무리 녀석들이 미친놈들이라도 저런 사람 잡아먹는 놈과 같이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붉은달이 세계 최대 빌런 집단이지만, 내부에 1위나 2위를 데리고 있진 못했다. 붉은 달의 수장은 3위였다.

저것도 특급 각성자 둘 정도는 혼자서 찜쪄먹는 괴물이지만, 성향 탓에 집단을 이루지는 못하기에 위험도는 다른 재해급 빌런에 비해선 좀 떨어진다.

토벌하려 드는 히어로 집단을 상대할 순 없다.

그러다 보니 인간 모습으로 낙후 국가를 돌아다니며 사람을 잡아먹다가 가끔 발견되거나, 간혹 도시를 습격해서 피해자를 만들고 사라지거나 한다.

“그러면 전 어떤 변신을 하게 되나요? 느낌이 저런 괴물은 아닐 것 같은데.”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그저 넌 이게 어떤 상황이 되건 네가 한 선택의 책임이라는 것을 알고 각오하면 되는 거다.”

“···예. 해야죠. 이것 말고는 제겐 방법이 없는 거니까.”

난 고개를 저었다.

“다시 말하지만, 네 꿈만 포기하면 제어할 수 있다. 선택지가 없는 게 아니야. 네가 이걸 선택하는 순간, 난 그 어떤 핑계도 허락하지 않을 거다. 이건 어쭙잖은 끌려가는 각오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좀 잔인하면서도 단호한 말에 김진수는 깊게 한숨을 쉬곤 멍한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봤다. 아마 생각할 게 많겠지. 정말 각오가 됐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리라.

잠시 후, 김진수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겠습니다.”

난 바닥에 널브러진 자료들을 집어넣고 서류철 세 개를 꺼냈다.

“왼쪽부터 가장 어려운 것에서 그나마 쉬운 것까지. 순서대로다.”

내가 김진수에게 건넨 건 순서대로 코아틀, 천구, 두억시니였다. 전부 빌런이건, 변신 빌드 초기건 최소 한 번은 시도되었던 적이 있다는 특징이 있다.

저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코아틀은 좀 특이한데, 1차 대격변 초기 멕시코 출신 주술사 한 명이 시도했다 실패했으나, 주변에는 피해를 주지 않고 그대로 변신만 해제되며 사라졌다.

‘주술사만 백치가 되고 끝났지. 한 번 실패하면 끝이라는 게 문제지만, 그 위험도는 그래도 좀 떨어지는 편이다.’

변신 빌드에 대한 기록을 보면 대체로 신수 혹은 중립적인 신화적 종족들은 실패해도 큰 피해를 끼치지는 않는 편이다.

그 이하는 시도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죽어버리진 않았는데, 천구, 일본에서는 텐구라고도 하는 이 고양이인지 너구리인지 모를 괴물은 그나마 무난하게 시도해볼 만한 경우다.

요괴와 신수 사이 어딘가의 존재라 정신을 끝장내버리진 않았다. 변신의 후유증이 좀 남았지만, 해당 각성자는 이후로 변신을 시도하지 않으면서 무난하게 살아있다.

나는 그 내용을 담담하게 이 녀석에게 말해주었다.

“그래도 이 앞의 둘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네요. 그러면 선생님은 제게 두억시니를 추천하고 싶은 거군요.”

두억시니, 도깨비와 야차 사이에 존재하는 요정이다. 이쪽도 오래 버티진 못했지만, 단순하게 통제만 따지면 성공한 사례가 있다.

“공통점을 알겠어?”

“이 셋에 공통점이 있나요? 어, 그러고 보니 뭔가 좀 이상하긴 하네요. 왜 하필 두억시니죠?”

김진수가 말한 대로 왜 하필 두억시니인가다.

사실, 두억시니를 선택하기엔 더 좋은 선택으로 도깨비가 있었다.

“이 셋은 전부 선한 면이 있는 존재지만, 동시에 파괴적인 전승이 있지.”

코아틀이야 메소아메리카 신화의 신수로 그 신화가 그렇듯, 그 자체가 몹시 파괴적인 속성을 하고 있다.

천구 역시 신수 쪽 설화로만 따지면 선한 존재지만, 일부 변질한 신화가 일본 쪽에 남아있는 걸로 보아 악한 성향은 분명 일부 존재한다.

거기에 두억시니야 야차까지는 아니지만, 순수하게 요정에 가까운 도깨비보다는 몹시 독하고 악한 면이 있는 존재다.

“김진수. 변신 빌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정신적인 싱크로다.”

성향이 얼마나 잘 맞는가가 가장 최우선 되어야 한다.

훗날 변신 사례들이 모이면서 확정된 사실이다. 다만, 그게 밝혀졌다고 해서 자신과 완벽하게 맞는 싱크로를 가진 존재를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면에서 기본적으로 광기를 가지고 있는 김진수의 두 번째 인격 상태라면 일반적인 신수는 받아들여 봐야 반발만 일어날 거다.

반대로 순수한 악성 괴수 종족을 써봐야 김진수만 망가질 뿐이다.

변신하고자 한다면 여러 차례의 시도로 역으로 인간이 자신의 정신 상태를 해당 존재에 맞춰야 하는 거다.

그렇다면 어쨌건, 성향이 선과 악 혼돈에 가까운 종족을 선택해야 한다.

그중 여태껏 시도되고 그나마 탈이 없던 것, 동시에 김진수가 무리 없이 제약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은 저 셋 말곤 없었다.

“대부분 빌런들이 시도하는 빌드라 이런 선악 혼돈에 가까운 종족으로 시도하려는 생각 자체를 거의 안 해. 그런 사례가 거의 없다는 뜻이지.”

변신 빌드를 종종 타는 빌런 쪽에서는 정신적 싱크로에 대한 게 이미 암암리에 알려진 게 분명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한결같이 그리 악하다고 알려진 종족들로만 변신하진 않을 테니까.

신수, 마수급이야 당연히 위험해서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한 등급 낮다고 할 수 있는 요괴 따위로의 변신 시도는 충분히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거냐. 선택의 기회는 한 번뿐이다. 한 번 선택하는 순간, 변신할 존재의 등급을 내릴 수는 있어도 올라갈 순 없어.”

“···천구로 하겠습니다.”

“최소한도의 빌드를 타려면 앞으로 좀 바쁠 거다.”

김진수의 남은 점수나 상태 정도는 이미 전우치에게 받아서 가지고 있다. 빌드를 타기에는 절대 충분한 양이 아니었기 때문에, 끌고 다니면서 레벨을 올려줘야 한다.

애초에 특수 빌드니 만큼 해당 전투 직업 레벨도 올려야 했으니 사냥 다니는 건 필수였다.

인맥을 동원해 관리국에 손을 써서 요원들 보호 아래 필드에 김진수의 레벨을 올리러 다니면서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최소한의 빌드를 찍었다.

[어. 뭐냐. 웬일로 먼저 전화를 다 하고?]

“블랙씨. 도움이 좀 필요해서 연락했습니다.”

[뭔데?]

“근접전에 능한 특급 히어로가 한 명 필요합니다. 입이 무거운 사람이면 좋겠고 정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A급 관리국 요원 혹은 히어로 다수라도 상관은 없습니다.”

[지금 시점의 한국에서? 그거 더럽게 어려운 부탁인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확실히 특급 각성자를 빌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난 결국 그에게 사정을 설명했다. 블랙 정도면 입이 무거우니 어디 가서 떠벌리고 다니진 않을 것이다.

“도와주시면 이 빚은 나중에 꼭 갚겠습니다.”

[이거 흥미로운데···. 어쨌거나 히어로 지망자라는 거 아니냐. 내 후배가 될지도 모르는데, 내가 가는 건 어때?]

“여기 공간 특성상 당신만으론 조금 위험할 것 같은데요.”

[방공호 내부라고 했었나? 확실히 내 장점을 살리긴 힘들겠는데. 그러면 북진 영감님이랑 같이 가면 되지 않겠냐? 그 영감님도 입 무거우니까. 어쨌거나 협업 중인 동지고?]

난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철 길드장 정도의 무투파라면 괜찮을 것도 같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