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 비상
최종적으로 결정된 출발 날짜는 2주 뒤, 우리 비행선에 탑승하는 인원은 서른 명을 조금 넘었다.
비행선을 운용할 기장을 비롯한 승무원도 탑승해야 했고 청수 길드에서 추가로 지원해주는 각성자도 몇 명 태우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게 회의가 얼추 마무리되자 정영하가 먼저 내게 다가왔다.
“여~, 동생! 오래간만이다?”
“그러는 그쪽은 여전하시군요. 건너 듣기론 좀 진중해졌다고 들었는데.”
“내 사람 상대하는 데, 공적인 곳도 아니고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
“이번엔 로텍에서 사업차 가는 겁니까?”
“그렇지. 독일에서 신소재 하나, 신무기 하나. 그렇게 발견되었다는 첩보가 들어와서. 확인차 가는 거야. 이런 중요한 일에 포함될 수 있다는 건, 이 몸도 그간 나름 아부지한테 신뢰를 회복했다 이 말이지.”
이제 자신이 쓸모가 있다는 걸 어필하는 듯, 살짝 연극조로 과장된 자세를 취해 보이는데 뜻밖에 잘 어울렸다. 사람이 좀 꺼려지는 면도 있지만, 미워하기도 힘든 특이한 타입이다.
그리고 신소재라면 짐작이 가는 게 있었다. 벌써 그게 나올 때가 됐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 그건 기밀 아닙니까?”
“어디 가서 떠들고 다닐만한 놈 아니잖냐, 너?”
“뭐, 그렇죠.”
“가서 사실 여부 먼저 확인하고 괜찮다 싶으면 보고 올릴 거야. 아직 확실치도 않아. 뭐, 난 그런 김에 겸사겸사 해외여행도 좀 하고? 마침 너하고 민호 녀석도 이번에 떠난다기에 선단 합류하려고.”
“받아준다는 말은···.”
“어쭈? 거절은 거절할 거다.”
“하하···.”
선단 규모가 커지면 혹시 모를 습격에 대비하기도 쉬워지고 해적이나 빌런의 습격에 대응하기도 좋다. 알게 모르게 들리는 지역에서 대우가 달라지는 점도 있기에 나쁠 게 없다.
로텍 정도면 세계적으로도 이름값이 있는 기업이니 그것만으로도 이점이 있다.
그래서 나도 마지막은 농담으로 한 말이었다. 정영하와는 그 후 신변잡기에 대한 가벼운 대화를 나눈 뒤, 2주 후의 재회를 기약하며 헤어졌다.
“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냐. 주최자인 내가 다 무안하게.”
정영하와 대화하는 사이 연회장의 대부분이 각자 볼일을 보러 떠나서 내부에는 저 멀리 떨어져 잡담을 나누는 몇과 강시후 뿐이었다.
내가 부르자 그제야 강시후가 팔짱을 풀고 벽에서 몸을 일으켜 이쪽으로 다가왔다.
“뭐라도 좀 먹지그래?”
“점심은 먹고 왔으니 됐어. 일은 잘 흘러가는 모양이네.”
“붉은 달 쪽은?”
도망친 바이올렛을 말하는 것이다.
“놓친 것 같아. 지금쯤이면 한창 중국이나 미국으로 도망치는 중이려나. 하지만 괜찮아. 이런 구도가 펼쳐진다면 놈들이 들어온다 해도 일망타진할 기회가 될 테니까.”
“이런 구도라···.”
“그래. 한국을 서이수와 그 그룹이 장악하고 중국과 일본 양국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지금 그림말이야. 길지 않은 편인 내 경험으로도 이 정도면 아주 잘 풀린 편에 속해.”
강시후는 길지 않은 경험이라는 알 듯 말 듯한 말을 남겼지만, 그것에 대해 물어봐도 대답해줄 것 같진 않았다. 나는 호기심을 삼키며 그에게 용건을 물었다.
“그래서. 오늘은 무슨 일이야?”
“떠나기 전에 소개해줄 사람들이 있어. 안면만 익히는 수준이겠지만, 대장이 세계로 나가는 시점에 일부라도 누가 외부의 아군인지 알고 있는 건 중요하니까. 우린 각자 할 일이 바쁘니 그쪽이랑 이렇게 동선이 겹치는 순간이 흔한 건 아니야.”
그리고 그런 묘사에서 난 그 소개해줄 두 사람이라는 게 강시후와 같은 회귀자들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따로 약속을 잡아 놨어. 따라와.”
강시후를 따라 이리저리 서울 골목을 첩보 작전하듯 움직여 도착한 곳은 서울 외곽 필드 근처의 어느 허름한 폐가였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기로 했는데. 아직 도착 못한 건가?”
“대체 누구길래 이런 복잡한 경로를 거쳐야 하는 거냐?”
“우리야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늘 만날 두 사람은 지금도 중요한 인물이야. 괜히 우리를 만나는 게 들키면 저쪽이야 별문제 안 되겠지만, 우리에게 문제가 될 확률이 커.”
그리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변을 묵직하게 포위하며 압박해오는 기세에 난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전부 현역 A급 이상의 암살 계열 각성자다.’
그 누구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주변에 그런 실력자 수십이 은신해있다는 걸 나도 이젠 아슬아슬하게 눈치챌 수 있었다.
“시후? 그런 꼬맹이 모습으로 만나는 건 처음 같은데. 매번 다 커서보다 보니 말이지. 그런데도 그 뚱한 표정을 보니 누군지 바로 알겠는걸. 그래서. 너 맞니?”
“나 맞아.”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강시후가 짧게 서로에 관한 확인을 한 후, 폐가 벽 뒤에서 유카타를 입고 검집을 쓸고 있는 날렵한 인상의 남자 하나가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그래. 그런 것 같더라. 그러는 이쪽은 그리운 얼굴이네. 피곤해서 푹 삭은 얼굴이 아닌 걸 보니 신선한걸?”
나도 모르는 얼굴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각성자니까. 만나는 것 자체로 우리가 더 위험하다는 게 무슨 말인지도 잘 알겠다.
“엔도 츠바사. 신선조의 수장이시군요.”
“그 존댓말도 여전하네.”
일본의 세력구도는 3강 체계다. 신센구미, 노키자루, 츠치미카도의 3대 집단이 대표적인데, 한국이 헌터 길드끼리 대립하는 것에 반해 이들은 대립하기보단 연합하는 형태다.
다수의 집단이 나뉘어 이해관계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관리국과 군부로 대표되는 중앙정부가 이 민간 집단을 통제하려고 시도하면서 끊임없이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일본 관리국은 우리를 비롯한 보통의 나라와는 성격이 아주 다르지.’
일본 관리국은 사실상 정부와 군부의 헌터 사조직에 가깝다.
그래서 히어로가 활동하기 아주 안 좋은 나라로도 유명했다. 그게 일본 출신의 히어로가 별로 없는 이유고 일본 국내에서만 활동하는 히어로가 없다시피 한 이유기도 했다.
일본 영웅 협회는 국가 지원을 거의 못 받다시피 해서 한국과 비교하면 거의 허름한 탐정 사무소 느낌이었다.
그래서 일본에서 활동하는 일본 출신의 히어로들은 국가적인 문제는 저 3강과 언론, 그리고 세계 헌터 협회의 힘을 빌려 가며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거긴 아직도 군국주의의 잔재가 남아있는 거지.’
굳이 정의의 편을 따진다면 민간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니,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에 따라 일본 재계와 언론은 거의 반반으로 나뉘어서 서로 싸우는 중이니, 한 집단으로 뭉쳤다 보긴 어렵다.
앞서 3강 체계라 말했지만, 실제론 정부와 민간이 대립하는 양강 체계라고 보는 편이 맞다.
그리고 그런 일본에서 이 엔도 츠바사라는 인물은 신센구미, 우리말로 하면 신선조라는 무사 집단의 수장이자, 일본 최강의 검사라 불리는 남자였다.
“여기 츠바사 형이 왜 선별됐는지는 대장도 감은 잡힐 거야.”
“그래. 일본도 문제가 많으니까. 아마도 그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겠지.”
“뭐, 이쪽은 잘 되어가고 있어. 알다시피 자세한 건 아직 말 못하지만? 그리고 이리 흘러가고 있는 걸 보니 한국도 잘 되어가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러면 우리 측에서도 일본 정부 측보다는 민간 측과 협조해야 한다는 거군.”
“뭐, 대장이 신경 쓸 필요까진 없을 거야. 이쪽도 이쪽 나름대로 계획이 있으니까. 오늘은 시후가 부른 것도 있고 지원 요청을 받고 입국한 김에 얼굴이나 볼까 해서 인사차 들렸어.”
“이제 얼굴은 익혔으니까 더 중요한 용건 없으면 꺼져요. 시간 없어. 메이링 아줌마도 만나러 가야 해.”
강시후가 그에게 꺼지라는 말을 하는 순간, 주변에서 가해지는 무수한 무형의 살기에 난 식은땀을 흘렸다.
“우리 시후는 참 매번 변함없이 까칠하네. 그게 좋긴 하지만.”
몹시 초탈한 분위기의 검사다.
엔도 츠바사는 그런 느낌이었다.
잠시 뭐라 말 걸기 힘든 그런 분위기로 저 필드의 먼 산 방향을 바라보던 그는 허무한 듯한 한숨을 내쉬곤 고개를 돌려 내 눈을 빤히 들여다봤다.
“유성. 난 지쳤어.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러니 이번에는 꼭 성공해줬으면 좋겠다.”
“···무슨 뜻인진 모르겠지만, 온 힘을 다하죠.”
그런 모습에서 문득 이 남자가 내 오랜 동료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난 갑자기 목이 메는 것 같은 느낌을 삼키며 침착하게 그렇게 답했다.
“그래. 그래 줘. 이것도 참 데자뷰 같은 장면이네. 시후. 지금 대장이 몇 번째지?”
“아직 두 번째도 못 연 것 같아.”
“일은 잘 풀리는 것 같은데, 타이밍은 늦네. 뭐, 실패만 없다면 그만큼 눈덩이가 더 구를 테니까 나쁘진 않나?”
“오랜만에 봐서 반가우니 계속 대화하고 싶은 건 알겠는데, 나 바쁘다고!”
“알겠다. 알겠어! 간다니까?”
강시후가 빡쳤는지 집어 던지는 단검들이 근처에 닿지도 못하고 일정 범위 내에서 전부 굴절되며 주변으로 튕겨 나간다.
마치 염동력 빌드 기술이라도 쓰는 것 같다. 그런 초능력이라도 발동하는 것 같지만, 난 그게 아니라는 걸 곧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소리였다.
집중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마찰 소리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에 내 눈은 엔도 츠바사가 들고 있는 검으로 향했다.
안력을 집중하자 잔상처럼 검집에서 미세한 1~2센티 정도의 검날이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흐릿하게 잡혔다.
지금 저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검압을 발생시켜 단검을 주변으로 모조리 빗겨내는 것이다.
엔도 츠바사는 뭔가 더 할 말이 남은 것 같았지만, 강시후가 보내는 무시무시한 눈초리의 재촉에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나왔던 폐가 방향으로 다시 돌아섰다.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는가 싶더니 고개만 살짝 돌려서 깜빡했다는 듯이 씩 웃으며 무서운 말을 건넸다.
“아. 맞다. 대장! 혹시 일하다 방해가 되는 게 있다면 언제든지 나한테 연락해. 닌자들 보내서 싹 다 몰살시켜줄 테니까. 뜬금없이 등장하는 닌자는 최강이라고?”
목을 슥 그으며 말하는 그 심각한 내용과는 다르게 몹시 장난스러운 얼굴이었다.
그 갭이 어처구니가 없어서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내 표정도 슬쩍 풀려버렸다.
“여기 전개가 이상하게 흘러가면 고민해보죠.”
“그래그래. 갑자기 닌자가 나와서 몰살시키고 사라지는 것보다 재밌는 전개가 또 있을 리 없지. 우리 애들, 내가 잘 키워놨으니까. 꽤 볼 만할 거야.”
“아, 맞다. 형! 그 닌자들 곧 써야 할지도 몰라. 어쩌면 붉은달 놈들이랑 여기서 한바탕 붙을지도 모르거든? 가능하면 당분간은 절대 한국 쪽에 개입할 것 같이 굴지 말고 비즈니스적인 느낌을 유지해줘.”
“아, 그래? 그러면 북진 영감님이랑 한판 붙는 건 나중으로 미뤄야 하나. 그래도 잘하면 간만에 몸 좀 풀겠네. 우리 쪽 정부 놈들은 계속 음험하게 굴어서 카구라만 노났고 난 슬슬 지루하던 참이었거든.”
그렇게 짧고도 강렬한 만남이 끝나고 그와 함께 주변을 메우던 압박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저게 세계 최강급인가? 이건, 정말 엄청나네.”
“어차피 저 정도 급 몇 명은 이미 상대하고 있잖아?”
“아니. 굳이 따지자면 느낌이 좀 달라. 마치 대전쟁 시기 선두에 섰던 그 영웅들···.”
날이 잔뜩 서 있던 그 시절 세계 최강자의 일각을 보는 기분이었다.
내가 말을 흐린 건 옆에 있는 이 녀석도 그런 일각 중 하나였던 건 마찬가지라, 좀 얕보는 식으로 들렸을 것 같아서였다.
무슨 말인지 아는지 강시후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뭐, 그렇겠지. 저 형은 지금도 전성기인데다 그간 쌓인 경험이 장난 아니니까. 지금 나도 이 상태에서 붙으면 꿈길 타고 도망치는 것도 못하고 죽을걸?”
“···그래. 너도나도 빨리 성장해야겠다.”
시후 녀석이 날 재촉하려는 게 의도였다면 확실히 먹혔다. 실제로 저런 세계 최강의 일각이 동료였다는 걸 체감하니까 뭔가를 주저하고 있을 수가 없다.
그리고 엔도 츠바사와의 만남으로 잔뜩 기대치가 올라간 상태로 만난 두 번째 인물.
중국 쪽 군벌 중 하나이자, 동시에 명교의 교주인 메이링은 우릴 만나자마자 다짜고짜 울먹이며 도와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시후! 우리 쪽 큰일 났어! 흐어어엉!”
“아니. 이 아줌마야! 내 옷에 코 풀지 말고 무슨 일인지 말을 해!”
“하하···.”
개판이었다. 그리고 왠지 중국 쪽 일정이 몹시 피곤해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