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92화 (117/128)

9장 - 질곡의 시간

던전 앞은 사람으로 가득하다.

현재 공략은 지지부진하다고 들었다.

물론, 그렇다고 나 같은 작은 길드 소속 임원이 내부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10대 길드와 헌터 협회에 의해 해당 게이트는 철저하게 관리되는 중이다.

최소 A급 현역 헌터 수십 명이 지키고 있는 곳을 고작 내 능력으로 아예 안 걸리고 들어갈 수 있을거란 생각은 하는 게 만용이다.

물론, 들어가고 나서야 몇 날 며칠이고 죽치고 있으면 되겠지만, 들어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관리국과 히어로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블랙과 관리국장은 흔쾌히 이 일에 나서주기로 했고 우리는 계획을 세웠다.

“이런 기회에 그 안에 밀어 넣을 사람들이 필요하긴 했다. 기회만 보고 있었거든. 증거는 없지만, 증언은 있었으니까.”

“증언이 있었습니까?”

“그래. 관리국이나 우리 히어로가 알까 봐 쉬쉬하고 있는 것 같은데, 게이트 내부에서 그 빌런 여자 분신이 돌아다니는 걸 봤다는 정보를 입수했지.”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건, 아마 캠을 전부 거둬가나 보군요.”

“쟤들도 바보는 아니니까. 나름대로 지들도 수색을 하긴 하나 본데, 혹시 모를 기습을 막는 수준의 수색인 것 같다. 당장 보스방 찾는 게 급하다 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모양이지.”

보스방 클리어 보상이 엘릭서인데, 아직 보스방조차 찾아내지 못한 상태다.

‘시간을 정해서 교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했나? 기가 찰 노릇이군.’

안에 숨어다닌다는 것 정도는 10대 길드도 안 것 같은데, 여러 길드가 얽혀서 시간에 쫓기다 보니 타란툴라를 신경을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거다.

10대 길드 중, 기권 의사를 표한 두 개 길드를 제외한 나머지가 돌아가며 공략을 진행 중. 공략 시간은 각 길드 당 하루로 합의했다고 한다.

하루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겠지만, 이 던전을 공략하기엔 지나치게 부족한 시간이다.

히든 던전의 크기는 지금 외부 공개가 되진 않았지만, 내가 알기엔 대형이다.

당연히 하루 가지곤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략해야 하고 기존에 공략해놓은 장소를 이동하는 시간에만 최소 절반을 소모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저 멀리 입구 방면에서는 시간에 늦었네 어쨌네 하면서 험악한 고성이 오가고 있다.

“하여간 이 적폐 새끼들 하는 짓이 다 그렇지. 합심해서 공략 진행하면 몇 주 내로 끝냈을 게이트를···.”

“엘릭서가 걸렸으니 어쩔 수 없죠. 거기에 한동안 동해안 사태도 해결해야 해서 서로 공략은 지지부진했을 텐데, 공을 세우려고 와선 견제하며 눈치만 봤지 않겠습니까.”

각 길드에서 소수의 최정예만 뽑아다가 가져다 놓은 게 지금 저 입구에서 진을 치고 있는 공략조들이다. 성과를 내는 게 당연한 실력자들이었고 그러니 저 험악한 분위기는 필연이다.

“어쨌든, 부탁하겠습니다.”

나는 대규모로 몰려온 관리국 직원과 히어로 사이에 슬쩍 숨어들었고 블랙은 껄렁한 자세로 입구를 지키고 있던 헌터 협회 소속 각성자에게 다가갔다.

우리를 힐끔 쳐다보며 긴장을 숨기지 못한 채 경계를 서던 그 유망주는 블랙이 다가감에 따라 안색이 점점 창백해졌다.

“머, 멈추시죠! 여긴 저희 헌터 협회에서 통제하는 곳입니다!”

블랙은 평소 성질대로 그냥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가는 대신, 제 옆에 서 있던 관리국 집행부장에게 슬쩍 눈치를 줬고 집행부장은 바로 앞으로 나서서 복잡한 법 조항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아니. 그···. 그게···.”

“모르겠으면 윗사람 불러! 내가 관리국 집행부장씩이나 달고 당신 같은 말단이나 상대해야 해? 아니, 뭐하십니까, 빨리 안 달려가고!”

불쌍한 경계병은 집행부장이 그리 무표정하게 법 조항을 말한 뒤, 안색을 확 바꾸면서 압박을 가하자 결국 버티지 못하고 저 멀리 주둔지로 달려갔다.

“가시죠.”

“어, 잠시만요! 기다리셔야···.”

옆에 서 있던 다른 경계인원이 뭐라 하든 말든, 관리국 요원들과 히어로들은 경계병이 부르러 간 책임자가 오기도 전에 일단 들어가고 봤다.

‘오늘 지나가면 이 유망주들은 상급자에게 제대로 깨지겠군.’

지금처럼 한 명이 떠나버리면 혼자 힘으로 틀어막는 건 불가능하다. 몇 명의 요원들이 남은 경계병 하나를 둘러싸 길을 막고 슬쩍 피해서 전부 내부로 들어가 버리는 거다.

여기서 뚫리면서 쥐어 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두 명이 함께 입구를 틀어막고 버텨야 했다.

헌협 쪽에서도 작은 명분을 잡고 이쪽을 공격해 밀어내면서 넓은 곳으로 들어치기 전에 난장판으로 만들어 진입을 막을 텐데, 이렇게 넓은 곳으로 쉽게 들여보내 줬으니 쉽게 해결하긴 그른 거다.

“잠깐, 저거 블랙 아냐?”

“하필 저 인간이···.”

그렇게 히어로들이 안으로 진입하자 주변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10대 길드 소속 헌터들이 황급히 포위하듯 이쪽으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예상대로 길드장급은 없나?”

“그거 다 확인하고 들이친 거잖습니까.”

“혹시나 했지. 한 놈도 없는 걸 보면 지금 이 적폐 자식들 엄청 바쁜가 보네.”

“뭐, 그럴만한 게 터졌으니까요.”

주둔지 중앙에 마력이 집중되면서 무시무시한 압박이 몰아치는 험악한 분위기임에도 블랙이나 집행부장, 관리국 요원들 모두 표정이 몹시 여유로웠다.

“겨우 이 정도면 이거 그냥 이대로 다 제압하고 내부로 들이쳐도 되겠는데?”

“뚫는 거야 어렵지 않을 것 같긴 한데, 나갈 때 저놈들이 막무가내로 나오기라도 하면 뒷수습이 어려우니 자제해주시죠. 대충 지금 가장 가까운 석대성 위치상 세 시간 정도니까, 내부 진입하기엔 빠듯합니다.”

앞을 가로막아서는 이들은 블랙이 압박하고 전위를 앞세워서 몸으로 뚫고 들어간다.

그렇게 파죽지세로 밀고 들어가던 관리국의 전진은 범상치 않아 보이는 일단의 무리가 협회 임시 본부로 보이는 건물 앞쪽에 대거 튀어 나오서야 멈췄다.

“김수철! 이게 뭐 하자는 짓이냐!”

“아니. 뭐긴 뭐야. 수사하러 온 거지.”

“하, 지난번 그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없으니 헛수고 말고 돌아가지? 납득하고 돌아가는 것 같더니. 또 이러는 건 정말 싸우자는 거냐?”

“하하. 김우진, 네가 대표로 나서는 건 또 신선하네. 그런데···. 네가 지금 여기 남은 녀석 중에 가장 높은 직책이냐? 그 말에 책임은 질 수 있고?”

블랙이 하도 자신감 있게 나오자 김우진 헌터는 일단 한 걸음 물러났다.

“하, 좋아, 일단 들어는 주지.”

“이거 쓸데없는 짓 같은데. 내가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그냥 상급자 불러라.”

“지금 여기서 가장 직책하고 등급 높은 게 나다. 말해봐, 뭔데?”

“내가. 아니 우리가 제보를 하나 받았는데···.”

블랙이 눈치를 주자 집행부장이 곧장 문제의 녹음 내용을 틀었다. 그 소리를 듣던 김우진 헌터의 표정이 팍 일그러지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어떤 병신 같은 게···.”

“오, 그거. 인정하는 걸로 해도 돼냐?”

“아니. 어느 할 짓 없는 얼간이가 헛소리를 했냐는 뜻이었어. 여기 분란 많은 거, 설마 관리국에서 정보 다 받아보면서 모르는 건 아닐 텐데? 일이 잘 안 되니까 아무도 먹지 못하게 하려는 그런 수작일 거다.”

“그래?”

“여긴 아무 문제 없어. 그런데 히어로씩이나 되면서 설마 이것 하나 가지고 여기까지 찾아온 건 아니겠지?”

“글쎄다. 나는 우리가 여길 한 차례 수색하는 데는 이 증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

블랙은 머리를 한 차례 긁적이더니 정색하며 기세를 내뿜기 시작했다.

“하, 이거 성격 죽이려니 더럽게 힘드네. 야, 김우진. 까불지 말고 네 상급자인 이남준이건 가까운 곳에 있는 길드장급이건 불러. 1분 1초가 아까운 우리 귀한 시간 낭비시키지 말고!”

그렇게 블랙, 김수철이 한 걸음 내디뎌 코앞까지 다가서자 김우진은 급격히 높아진 압박에 반사적으로 반걸음쯤 물러나려다 이를 악물며 버텼다.

“아, 부하들 다 보는 앞에서 같은 기수 동기에게 처맞는 더러운 꼴을 겪고 싶냐? 설마 우리 학창 시절처럼 너랑 내가 아직도 같은 급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지?”

“···해보시든지.”

“세게 나오시는데···.”

분명 이쪽이 상대적으로 정의로운 입장인데 양아치 같은 분위기인 블랙 때문인지 우리가 악의 집단이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만 하시죠. 김 본부장님. 이건 우리 선에서 해결할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치하는 두 사람 옆에 새로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그녀는 우리가 알기로 석대성 쪽 이사로 기억하는데, 이 문제를 가능한 한 빨리 해결하려는지 아예 부하를 시켜 통신 장비를 들고 오게 하는 중이다.

그렇게 일촉즉발일 것 같았던 분위기는 소강상태가 되고 금화 길드쪽에서 통신을 연결해서인지, 문제의 인물인 석대성이 화면에 등장했다.

[······.]

“이봐, 석대성. 왜 말이 없어. 어디까지 들었냐?”

[네가 와서 깽판 치고 있다는 것까지. 무슨 일이지? 이 이야기는 지난번에 끝난 거로 아는데.]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니까. 김우진 이 자식은 결국 두 번을 말하게 하는군.”

집행부장이 다시 테이프를 틀자 석대성의 표정도 살짝 굳었다.

“굳이 설명 안 해도 너 정도면, 알지?”

[하고 싶으면 하던지. 아무것도 안 나오면 나중에 뒷일은 네가 감당해야 할 거다.]

“평소 같으면 바로 이죽거리면서 내 속을 뒤집어놓으며 조목조목 따졌을 녀석이. 상황이 안 좋은 건 아나 보지?”

[지금 서울에 이수 녀석이 가져온 그거. 네 작품이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잖아? 시간 끌지 말자고. 난 그런 건 관심 없어. 내게 중요한 건 지금 내 히어로 임무를 마무리할 수 있느냐 없느냐다.”

[원하는 걸 말해. 설마 너도 고작 한 번 수색해서 증거를 잡는다고 장담하진 못하겠지.]

“오늘 수색은 한 차례 진행하긴 할 거다. 나도 기대는 하지 않아. 혹시 모를 흔적 정도를 찾는 선에서 그치겠지만, 그래도 의미가 없진 않겠지.”

[그렇게 압박해봐야 내 입으로 내놓는 건 하나도 없어. 다시 말하지만, 원하는 걸 말해. 제안하는 건 너다. 이쪽은 그걸 받아서 안건에 올려 회의까지 거쳐야 하는 처지니 뭔가를 제시할 형편이 못 돼.]

“히든 던전의 출입구에 히어로와 관리국 요원을 배치할 거다.”

[답지 않게 강하게 나오시는군?]

“고작 이 정도로?”

블랙은 여유롭고 석대성은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는 것만 봐도 누가 유리한지는 적나라하게 보인다.

[우리가 그걸 쉽게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리고 너희가 공략할 때, 헌터 협회 직원 하나와 당일 공략을 진행하는 길드의 길드원 한 명의 동행 하에 공략된 지역에 한해 수색을 진행할 거다.”

[두 번째는 들을 가치도 없는 이야기다.]

“핫! 석대성. 지금은 말을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네 능력이 아까워서 이야기해주는 거지만, 관리국이 칼을 빼 들었어. 이것도 우리가 작정하면 빌런 은닉으로 엮을 수 있다는 것, 알고 있겠지.”

석대성으로선 저 말도 갑자기 세계적인 이슈가 터져버린 현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그냥 흘리긴 어려울 거다.

그렇기에 블랙의 말에 한참 유심히 그의 눈을 바라보던 석대성은 이내 입을 열었다.

[입구 주변 지역 정도의 수색이나 던전 출입구의 인원 배치 정도는 받아들일 수 있다. 네가 원하는 수색은 지금으로부터 여덟 시간, 반나절 정도는 내 직권으로 즉시 허락하지. 하지만 두 번째는 역시 들어줄 수 없겠군.]

이런 답이 돌아올 건 오기 전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두 번째 조건을 들어주게 되면 관리국 쪽에서 자연스럽게 공략 지역의 지도를 그리고 정보를 취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관리국이 손을 들어주는 길드가 엘릭서를 차지할 가능성이 커지지. 그건 여기 모인 10대 길드 중 그 어디도 바라지 않는 상황이다.’

내분이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지금 내부에 빌런이 들어와 있는 상황이기에 한 번 관리국이 명분을 잡으면 끝장이다. 자칫 이 히든 던전 자체가 관리국에게 넘어가는 수가 있었다.

나나 블랙이나 이것까지 통과시킬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안 했다. 그저 이 정도를 강요하려 들 정도로 관리국이 지금 자신감에 넘친다는 것만 보여주려는 거다.

“그-래?”

[이유는 너도 알 텐데. 그 빌런이 정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라고 빌런이 있으면 잡고 싶지 않아서 안 잡는 게 아니야. 일이 다 끝나면 알아서 협조할 거다. 관리국은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중립을 지켜.]

“이쪽도 마찬가지다. 너희가 직무유기하고 여기서 죽치고 있는 게 아니꼬워서 그러는 거지. 너희에게 따로 악감정이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야.”

[결론은 너희가 오늘 수색을 하는 여덟시 간 내로 보내겠다.]

“뭐, 그래. 좋아. 그러면 오늘은 그 정도 선에서 만족하도록 할까?”

석대성은 이쪽이 작게 양보하면서 마무리되어 결론이 나자 블랙이 꼴 보기도 싫은지 작별 인사도 없이 먼저 통신을 꺼버렸다.

“들었냐?”

“···그래. 가라. 하지만 시간은 칼같이 확인할 거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쪽도 오늘 공략 예정이었던 길드 통해서 감시를 붙일 생각이고.”

그렇게 지나쳐가는 우리 뒤로 김우진 삼정 본부장이 부하들을 불러 지시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금 관리국, 히어로 인원이랑 숫자 확실히 파악하고 감각 수치 높은 인원 총동원해서 혹시라도 무슨 수작 부리는지 전부 확인해서 내게 보고해!”

예정에 없이 바빠진 상황에 여기저기서 헌터들의 적대적인 시선이 날아오는 게 느껴진다. 그게 따갑지도 않은지 블랙은 즐거운 듯 콧노래를 부르며 웃었다.

“아주 애쓰는군. 하지만 그것도 쉽진 않을 거다.”

“관리국도 이 작전에 당장 가용한 관련 유물과 각성자를 총동원했으니까요.”

관리국장의 말처럼 관리국과 히어로들은 전혀 이런 걸 예상못한 이들과 달리 유물이면 유물, 관련 각성자들이면 각성자, 지금 이들의 감각을 속일 이들까지 철저한 준비를 하고 왔다.

거기에 나만 이 안에 남는 것도 아니다.

증거를 수집할 히어로 몇 명과 관리국 요원도 몇 명 더 안에 남을 것이다. 그렇게 일단의 히어로, 관리국 요원들과 함께 나는 문제의 히든 던전 안으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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