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88화 (88/128)

8장 - 이합집산

허공에 떠오른 머리,

타오르기 시작한 공상수와 몽상수림

“어···.”

황은비는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황망한 목소리만 낼 뿐이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린 그녀는 제 마법이 강시후를 덮칠까봐 서둘러 시전을 끊어냈다.

바이올렛이 죽어서인지 공상수도 나왔던 벽면 공간으로 순식간에 빨려나가 사라지고 몽상수림도 보랏빛 마력이 되어 흩어지는 중이다.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도움을 받네. 미안하게 됐다.”

“이 정도는 ‘우리’가 예상했던 일이니 사과할 필요는 없어. 나도 저놈들은 흔적 잡자마자 바로 추격했으니까.”

“그런가? 내 생각보다 ‘우리’가 준비를 많이 한 느낌인데.”

“준비라···, 많이 하긴 했지.”

“그게 드림워커지?”

“이런 데서 대놓고 빌드를 말하는 건 실례잖아?”

“이 시점에 그 기술 트리를 찾아내는 게 더 이상한 것 같은데. 지금 당장 네가 유명한 것도 아니고 이번에는 유명해질 생각도 없어 보이는데. 아닌가?”

강시후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저 기술, 저 검은 공간을 사용할 수 있게 하는 특성이 강시후가 특급 각성자 중에서도 특별한 암살자가 될 수 있었던 근간이다.

기술명은 드림워커. 공간 도약 기술의 일종인데, 그 작동 방식이 특이하다.

대개 공간이동 기술 자체도 몹시 얻기 힘들고 드물지만, 그중에서도 저 드림워커는 희귀할 정도니 흔히 말하는 히든 특성이 있다면 강시후가 가진 것일 거다.

‘보통의 공간이동은 공격적으로 사용할 수가 없지.’

공간이동 기술이라는 건 작동하는 방식이 공간을 접어서 이동한다거나, 전우치처럼 세계를 속인다거나, 위상을 바꿔치기한다거나, 혹은 자신의 속도를 극단적으로 올려서 이동하는 방식이다.

당연하지만, 실제 공간이동이라 하긴 애매한 고속 이동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몹시 크다.

그 때문에 등급이 낮으면 발동에 걸리는 시간도 엄청나고 등급이 높더라도 그 여파는 장난이 아니다.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는 수준이지.’

그 모두는 우리의 세계 내에서 이뤄지는 일이고 그렇기에 공간이동이 일어날 경우, 그 주변에 벌어지는 영향을 고위 각성자쯤 되면 감각으로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다.

그래서 공간이동 기술이라는 건 대개 탈출기나 거리 유지를 위해 사용하는 게 보통이다.

‘정로(正路)였지.’

바른 길을 찾는다는 뜻, 특급 특성이다. 정확한 내용을 공개했던 건 아니지만, 빌드 연구가들에게 쓸데없는 연구 하지 말라면서 말해줬다던 것으로 안다.

이름만 봐선 정찰 임무에나 써먹을 것 같은 고유 특성으로 보이지만, 연구가들이 분석한 바로는 전투시 보법을 보조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각력이나 형세판단 같은 정신적인 것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안다.

‘화려하거나 신기한 고유 특급 특성들 사이에선 조금 심심한 느낌이지만, 드림워커 기술과 만나면서 암살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이동기가 된 거지.’

암살자의 은신이 강력한 것은 맞지만, 대부분은 한계가 있다.

‘감각 능력치에 잡히지.’

궁사의 동화가 가만히 있으면 감각 능력에 잘 안 잡히는 것과 다르게 암살자의 은신은 가만히 있더라도 감각에 잡힌다.

흔적을 남기거나 시각을 제외한 다른 오감에 잡히는 부분을 숨기지 못한다는 것도 치명적이다.

그래서 온갖 보조 기술이나 지역에 맞는 물품을 활용하기도 하고 특수한 유물이나 장비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빌런 놈 중에는 아예 작정하고 궁사 동화랑 암살자 은신을 동시에 익히는 놈들도 있으니까.’

침투는 은신으로 하고 그 자리에 대기하다가 지나갈 때 기습하기 위해 둘 모두를 익히는 거다.

반면에 드림워크는 지금 강시후가 보여준 것처럼 다른 차원으로 예상되는 장소에 게이트를 열어 몸을 숨기고 우리 세계로 문을 다시 열어 진입하는 거다.

‘그래서 감각 능력치로 잡을 수가 없지.’

그리고 지금 바닥에 구르는 머리의 주인, 저 바이올렛조차 전투 중에는 여파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우리 세계에 미치는 영향도 적다.

드림워크를 쓰는 암살자 빌드를 연구했던 연구원들 전원이 활용할 수 없다고 했던 이유는 그쪽 차원에서 우리 세계로 이어지는 올바른 좌표의 통로를 여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걸 계산할 수 있을 정도로 마법적 이론 토대를 세우려면 최소 몇백 년은 필요하다고 했지.’

강시후의 정로는 그걸 해낼 수 있도록 보조해주는 특성이기도 했다.

“두 사람, 긴장 풀지 말고 저 히어로 셋부터 수습해. 유성, 그쪽이 위험하지 않으려면 여기서 바론까지는 잡아야 하니까.”

“그래. 우리가 붉은달의 추적 대상이 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그래야겠지.”

“일어날 일이었고 그래서 기회가 온 김에 처리했지만, 지금 시점에 놈들과 부딪치는 건 좋지 않아.”

“저 빌런 집단의 시선을 영웅 협회라는 집단에 돌려야 한다는 거군요.”

몽상수림의 제압에서 간신히 풀려난 세 명의 히어로를 수습해 이쪽으로 다가오던 황은비도 무슨 뜻인지 알았는지 굳은 표정으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차피 히어로들이 처리했다는 것 자체는 저쪽도 모를 수가 없었다. 다만, 여기서 누가 놈들을 상대했는지는 내부 정보를 빼내지 않는 한, 알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여기 있는 B급 이상의 히어로만 넷에, 그쪽은 이런 괴물 같은 여자를 잡았는데. 바론 한 명을 못 잡겠소?”

“히어로 아저씨들. 방심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정면 승부 한다면야 당연히 이기겠지. 하지만 대한민국이 빌런 관련해서 블루 등급이라는 건 착각이야. 이미 놈들은 이 나라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어. 드러내지 않을 뿐이지.”

“그래서 그럼 지금 그 바론이라는 놈은 어디에 있지?”

“아마 이쪽으로 오고 있을 겁니다. 바이올렛이 죽었다는 건 놈은 모를 테니까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바이올렛의 머리와 쓰러진 몸에 향했다. 그 부릅뜬 눈은 제가 죽는다는 걸 도저히 믿지 못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 괴물이 이렇게 쉽게 죽어버리다니···.”

B급 히어로 하나는 묻지마 식의 고문을 당한 분이 쉽사리 풀리지 않는지 그리 말하면서 제 옆에 있던 바이올렛의 몸을 화풀이하듯 멀리 걷어차 버렸다.

나머지 두 히어로는 강시후에게 다가가 뭐라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그는 귀찮아하는 표정으로 그걸 쫓아버렸다.

“이봐요. 아저씨들, 히어로 할 생각 없으니 저리 떨어져요. 지금 내 성격이 히어로 할 성격으로 보입니까? 그보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나? 사람 나눠서 민간인들부터 대피시키셔야죠?”

“아, 그렇군. 놈이 혹시라도 인질을 잡으려 할 수도 있겠지.”

“너무 경황이 없어서 깜빡하고 있었어.”

“네 분이서 같이 움직이시죠. 네 명 정도는 있어야 혹시 놈이 대놓고 인질을 노리더라도 버틸 겁니다.”

“그쪽은. 둘이서 괜찮겠나?”

“여기 올 놈을 붙잡거나 추격하는 정도라면 우리로 충분합니다. 그보다는 외부에 포위망 구축하도록 연락부터 취해주시죠.”

여기 강남 서부는 관리국의 주 권역인 만큼 긴급 소집령이 떨어지면 수많은 관리국 각성자들이 이 주변을 포위할 거다.

내 말에 잠시 시선을 교환한 히어로들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돌아오지.”

어차피 지금 세 명의 히어로들은 절반의 능력치를 몽상수림에 빨리면서 일시적인 디버프로 전력이 급감한 상태라 제대로 된 힘을 낼 수 없다.

“붉은색이군···. 따라와.”

그렇게 히어로들이 떠나고 둘만 남자 강시후가 먼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특성?”

“그래. 바론이 이상함을 눈치챈 것 같아. 이런 특정하기 쉬운 상황에서는 항상 정확한 편이니까.”

그렇게 건물 밖으로 함께 뛰쳐나가 바론을 찾던 도중 갑자기 강시후가 제자리에 우두커니 멈춰 섰다.

“뭐지? 왜 갑자기 길이 이렇게···.”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냐?”

“설마? 아, 빌어먹을!”

잠시 뭔가 심각하게 고민하던 강시후가 이를 악물더니 등 뒤로 꿈길을 만들어내며 뛰어든다.

날 혼자 뻘쭘하게 남겨둔 그가 꿈길을 열어 돌아온 건 정확히 몇 초 후였다. 그 허탈한 표정은 내게도 뭔가를 짐작하게 했다.

“사라진 거냐?”

“그래. 죽지 않은 것 같아. 빌어먹게 까다로운 년이라 한 번도 죽여본 적이 없었는데, 저딴 죽은척 하는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어. 망할···.”

“강시후. 바론, 혼자서 죽일 수 있겠냐?”

“가능은 할 것 같은데. 왜?”

“다행이군. 바이올렛의 말대로면 놈은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낙상을 좀 입었을 거다. 그냥도 이길 수 있다면 네가 충분히 죽일 수 있겠지. 나는 히어로팀에 가볼 생각이야. 그 이유는 아마도 너 역시 알 것 같은데···.”

“히어로팀? 아···. 그건가?”

내가 기억하는 빌런 바이올렛의 성격대로면 제 몸을 걷어찬 그 B급 히어로를 내버려둘 리가 없다. 돌아가는 길에 반드시 죽이고 가려고 하겠지.

그리고 물론, 그건 그 여자의 ‘몸 상태가 정상일’ 경우다.

“오지 않는다는 건.”

“그래. 어떻게든 찾아내고 추격해서 죽여야지.”

“그 짐덩이들 데리고 지금 실력으로 나 없이 되겠어?”

“놈들이 천년만년 블랙을 땅에 붙잡아둘 수는 없어.”

“···그래. 지금은 그 꼴통 아재가 있지. 충분하겠네.”

강시후와 헤어진 뒤, 난 그 대화로 알게 된 걸 머릿속에 정리했다.

‘이건 나더러 일부러 들으라고 한 것 같은데···.’

이상한 점이 한 가지 있었다.

‘내가 아는 대로라면 강시후와 블랙 사이에는 조금의 접점도 있을만한 건덕지가 없다. 하지만 헤어지기 직전 저 발언은···.’

이게 의미하는 게 분명하다면 지금의 내 회귀에는 뭔가 엄청나게 거대한 비밀이 숨어있다.

이건 단순하게 과거로 돌아온 것이 문제가 아니다.

‘단순히 내 착각이거나 녀석의 말 실수일지도 모르지만, 내가 생각하는 게 맞다면···.’

강시후의 존재가 의미하는 여럿의 회귀 가능성은 ‘고작’이라고 부를 정도의 진실이 내 회귀 속에 존재할 가능성이 있었다.

뭐가 됐든, 가능한 한 빨리 다음 기억을 열어야만 한다.

‘그걸 여는 시기는 아마 유럽에서가 되겠지.’

새로 키우게 된 여섯 명이 이름을 떨치기 시작할 무렵. 토르의 각성자 오스카가 명성을 떨치기 시작할 때. 그때 쯤이 되면 1억 정도는 쉽게 쓸 수 있는 상황이 될 것이다.

* * *

[10분 전...]

바이올렛은 얼마 전 만났던 그 건방진 여자가 허언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음과 동시에 약 0.364초 후에 제 목이 날아갈 거라는 것도 그 찰나의 순간에 알 수 있었다.

‘당장 죽지는 않는다. 죽지는···.’

그녀는 생명 계열 술사다. 그리고 네크로맨시와 초목을 다루는 생명 계열의 특성상, 그 빌드 트리 안에 수도 없이 각성자를 유혹하는 구명 수단에 눈길 한 번 정도를 안 줘본 적 있는 술사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목이 날아가는 상황에서 살아 돌아오는 술법 따위는 그 수많은 구명수단을 가진 생명 계열에서도 그리 흔한 부류는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술법을 하나 익히고 있었고 칼날이 자신의 목에 닿기 전, 서둘러 입술을 움직여 그걸 발동을 시켰다. 그러니 당장 죽진 않을 것이다.

‘속여야 산다. 그럼 계산을···.’

저만한 재능이다.

자칫 그런 구명수단이 있다는 걸 눈치챌지도 모른다.

그리고 경험 부족으로 저 천재 소년은 눈치채지 못하더라도 묘하게 베테랑 같이 느껴지던 애매한 재능, 저 경호 대상도 거슬리긴 매한가지다. 조심해야 한다.

그녀가 몸을 움직여 뭔가 조치할 수 있는 시간은 딱 거기까지였다. 잘린 머리카락들 일부와 함께 목이 하늘을 난다.

머리를 잃은 몸은 피분수를 뿌리며 추하게 허우적댄다.

바이올렛은 제 목을 날려버린 소년의 모습을 허공에서 빙글빙글 도는 와중에도 눈을 부릅뜨고 바라봤다.

그리고 그와는 별개로 잠시 분노하는 것도 잊고 머릿속으로 감탄을 터뜨렸다.

‘참 아름다운 궤적이야···.’

그녀 자신이 당하는데도 참으로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암살이었다.

유일무이하고 특수한 걸로 보이는, 기척을 감지할 수 없는 이동기와 더불어 말 그대로 암살에 특화된 타고난 재능이다.

수많은 천재가 모인 붉은 달에서도 저 정도면 분명 다섯 손가락 내에 들 것이다.

‘좋아. 지난번 겉멋만 든 건방진 년은 한 번은 봐주기로 하자.’

거짓말은 안 했으니까.

‘그리고 저 천재는···.’

아군이 되지 못한다면 반드시 죽여야 한다.

곧 머리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불쾌한 감각과 함께 뒤늦은 육신의 통증이 그녀의 뇌를 때렸다.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굴욕감과 통증이었다.

자동으로 가사상태에 돌입하기 시작하지만, 그건 그저 시간을 최대한 늦출 뿐이다.

숨을 쉴 수 없는 고통과 목의 절단면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아픔, 제 목숨을 바람 앞 등불처럼 내놓고 적의 실수를 기다려야 하는 자존심 상하는 상황까지.

이런 일을 겪을 일 자체가 없던 그녀로선 쉽사리 참기 힘든 굴욕이었다.

하지만 바이올렛은 어떻게든 견뎠다. 표정관리를 해서 경악의 표정을 그렸고 그러는 와중에도 아직 제 뜻대로 움직이는 외부 마력과 마법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수습한다.

‘저 버러지가! 반드시 죽여버린다!’

물론, 중간에 어떤 버러지 같은 히어로 때문에 그런 처절한 노력이 깨질 뻔한 순간도 있었다.

제 몸이 그 자리에서 튕겨 나가면서 육신 아래 슬며시 깔아 남겨두었던 몽상수림의 잔해가 드러났을 땐, 당장 떨어져 없는 심장이 철렁할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린 천재도, 묘하게 거슬리던 그 보호대상도 결국 그 위화감은 눈치채지 못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몸 아래쪽 몽상수림을 흩어버리는 바람에 떨어진 몸이 다시 맞닿는 데는 시간이 예상보다 좀 더 걸렸지만, 어쨌건 그녀는 다시 살아났다.

“···이 굴욕은 절대 잊지 않아. 그래. 기뻐하거라. 내게 이런 굴욕을 안겨준 건 너희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테니까.”

그녀는 섬유질로 꿰맨 자국이 남은 자신의 목을 슬며시 쓸어본다. 아직 쓰라린 고통이 목에서 느껴지는 걸 보니 완전하게 붙지 않았다.

‘숨을 곳이 필요해.’

그녀는 페널티가 강한 생존기를 발동한 여파가 찾아오기 시작해서 여기저기 삐걱대며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한 몸을 이끌고 비척대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회복하면, 내가 회의에 무릎을 꿇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여기로 돌아온다.’

부하들을 이끌고 믿을만한 선배들을 데리고 이 비루한 변방의 국가를 초토화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강시후가 꿈길을 타고선 그 자리에 돌아온 것은 바이올렛이 그리 떠난 지 3분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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