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 이합집산
황은비는 지금 시점에는 영웅 협회의 연수를 받는 유망주로, 수료를 앞두고 있었다.
‘점수가 모자라서 연수 수료를 못하고 대기 상태로 있다고 했나? 하긴, 헌터보다는 이쪽이 훈련 기간도 훨씬 길고 자격 요건도 갖추기가 어렵지.’
내가 알기로 이쪽 방면 공식 전형은 헌터 아카데미 교육을 이수한 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연수 지원자를 모집하곤 한다.
회귀 전 기억 상으론 한때 살기가 너무 팍팍해서 알아본 적이 있다. 하지만 결론은 첫 게이트 사고 탓에 서류 전형에서부터 잘렸다.
추가로 비정기적인 현역 헌터, 관리국 공무원 대상으로 공개 모집이 있으며, 아주 간혹 대중적 명성을 힘입어 특채로 뽑히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뽑힌 뒤, 3년의 교육을 마치면 그제야 예비 영웅 뱃지를 받는다.
저 모든 전형 중에서 연수가 대폭 생략되는 경우는 마지막 특채뿐인데, 그리 뽑히더라도 히어로 활동을 하면서 나눠서 그 3년 분량의 연수를 받기 때문에 크게 다를 건 없다.
‘거기에 등급만 높고 과정에서 시간만 보낸다고 다 히어로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정말 단순히 히어로가 받는 인기 혹은 품위 유지로 주어지는 것 때문에 영웅을 하려 하는 경우는 대부분 이런 과정에서 다 걸러진다고 보면 된다.
‘재난 현장에 시도때도없이 최우선 투입되고 인성 검사에다 정기적으로 봉사활동을 나가지를 않나, 예전 히어로 다큐멘터리 봤을 때 이게 정말 사람이 할 짓인가 싶긴 했지.’
심지어 저 예비 영웅에서 바로 히어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예비 영웅 단계에서 경력이 쌓이면 사이드킥으로 활동하게 된다.
영웅이라는 게 보통 혼자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각자 자기들의 팀이 있었다.
‘블랙처럼 중간에 자기 팀 다 흩어버리고 혼자서 움직이는 특이한 예도 있긴 하지만···.’
대개는 영웅 하나가 움직이면 그를 보조하는 사이드킥만 수십이다. 외부에선 조수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해당 업무를 보는 이들은 지원가나 사이드킥이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물론, 이 사이드킥 팀에는 저런 히어로 지망자만 있는 건 아니다.
어찌보면 사이드킥은 히어로 직속 선후배 관계와 비슷했기 때문에 그쪽 사이드킥이 들어오면 그 팀의 주인이 암묵적으로 후배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후보 영웅 사이드킥이 큰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좀 전의 이유로 팀에 이런 예비 영웅이 아예 없는 일도 있고 다른 정식 히어로, 외부 용병들, 각국의 관리국 출신, 일반인 등 구성원은 다양했다.
‘어쨌든 거기에서 사이드킥 활동 3년 이상에 세계 영웅 협회에서 관리하는 점수 요건을 전부 충족시키면 그때야 비로소 영웅 코드를 부여받으면서 정식 히어로가 되지.’
한마디로 지금 그녀는 간신히 영웅으로서 출발선 앞에 선 셈이다.
‘그건 그렇고 집이 잘 사는 편은 아니군.’
황은비가 사는 집은 나름 잘 사는 편인 강서지역이긴 한데, 본인 집은 아니었고 협회에서 내준 주택이었다.
아파트에서 부친을 비롯한 동생 둘과 함께 살고 있다.
그 사이 대문 앞에 도착해서 초인종을 눌렀다.
일전의 둘과 달리 미리 이야기되어 있었기 때문에 설득이나 어떤 식으로 대화를 시작해야 할지 생각할 필요는 없어서 마음은 편하다.
“누구세요?”
“금일 찾아뵙기로 했던 청수 길드의 김유성입니다.”
“아!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머리를 붉게 염색한 20대 여성이 나왔다.
내 속 나이가 어찌 되었건 현재 나하고는 동갑내기였고 인상도 몹시 털털한 인상이라 내 입에서도 편하게 말이 나온다.
“요청한 지원 건 수락하셔서 그와 관련해 계약서도 작성하고 어떤 분인지도 좀 파악하려고 왔습니다. 이건 방문 선물입니다.”
어린 동생들이 있다고 해서 좋아할만한 것으로 챙겨왔는데, 부친도 동생들도 한창 일하거나 수업할 시간이라 집에 없는 모양이다.
“네에-! 갑자기 길드에서 단독 지명이 들어와서 깜짝 놀랐어요! 선물 감사합니다!”
길드가 쌓아온 기여도로 받는 점수를 소모하는 것으로 히어로 지원을 요청할 수 있다.
제대로 활용하기엔 이것저것 제약이 많이 붙고 전투력이야 좋다지만, 헌터들이 일하는데 바로 옆에서 히어로가 같이 있거나 지켜보고 있으면 은근히 불편하므로 자주 활용되진 않는다.
‘정말 급한 거 아니면 거의 부르는 경우는 없지. 브레이크 같은 것 터져서 도저히 못 막겠다 싶을 때, 대규모로 팀 단위 지원 요청하는 게 대부분이고.’
그나마 고등급 빌런에게 노려질 때 경호를 위해 히어로를 요청하는 경우가 단독 지명할 상황이긴 하겠다.
‘거기다 저 점수로 할 수 있는 게 그것뿐만이 아니라서.’
국가로부터 각종 지원금과 보급품을 타내는 데 쓰이기도 하고 수송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점수가 많이 쌓이면 국가 예산으로 지역에 공공시설을 짓게 할 수도 있었고 특히 저 점수가 게이트 입찰에 중요해서 길드들이 함부로 낭비하지 않으려 했다.
그 탓인지 이걸 좀 쓰겠다고 하니, 지혜가 답지 않게 날 따라다니며 정말 필요한 건지 세 번이나 되물었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 우리 길드가 꽤 점수를 많이 벌었고 거기에 그 과정에서 내가 벌어온 점수가 작지 않다는 걸 지혜도 알고 있었기에 밀어붙이자 결국 허락을 했다.
‘프로필 확인하고 뒷조사를 좀 해보는 것 같긴 했지만.’
황은비의 잠재력이야 확실하니 이렇게 인연을 쌓아두면 나쁠 건 없다.
생각은 거기까지. 다시 눈앞의 히어로에게 집중할 때다.
“예. 흔히 있는 요청은 아니긴 하죠.”
“네. 저희 히어로들도 이런 길드 지명은 점수가 아주 커서···.”
“그렇죠. 정부와 영웅 협회로서는 길드가 보유하고 있는 점수를 틈날 때마다 깔 필요가 있으니까요.”
“에···. 노골적이시네요.”
황은비는 괜찮은 유망주로 평가받고 있다.
예전 자신이 짜 놓은 빌드가 있다며 강소연 빌드나 짜 달라던 최서린과 비슷한 과로 외부에서 받은 평가와 훗날 최종적으로 찍은 등급 차이가 한 등급 이상이 났던 경우다.
‘현재 잠재 예상 등급은 지금 기준으로 A급. 하지만 실제로 찍은 건 대전쟁 기준 턱걸이 S급이다.’
지금 현재 등급은 대전쟁 기준 C급, 지금은 B급에 아슬아슬하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러면 전 어떤 일을 하나요?”
“당분간은 길드에서 구경만 하셔도 됩니다.”
“구경이요?”
애초에 그런 목적으로 요청한 거다. 지금 지혜는 바쁘게 돌아다니며 인원을 충원하는 중이다.
당연하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문제가 발생했고 앞으로도 발생할 것이다. 그리고 내 의도는 간단했다.
‘코앞에 돌아다니는 히어로가 하나 있으면 주먹 나갈 거 욕설로 바뀌고 욕설 나갈 게 같이 나가서 술 한잔 걸치는 걸로 끝나기 마련이지.’
길드에 상주하는 히어로가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소한 다툼이나 헌터들이 저도 모르게 지역에 미치는 피해 같은 것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히어로가 자기들 다툼에 괜히 휘말린다거나 하면 말 그대로 대형 사고기 때문이다.
‘아무렴. 지역 민심은 중요하지.’
지혜 역시 히어로가 있고 없고의 전후 길드 상태를 확인하게 되면 알아서 적당한 점수를 소모하는 선에서 히어로 파견을 요청할 거다.
“심심하시면 길드 게이트 공략 도와주셔도 되고요.”
“네. 연수원 졸업하려면 그런 실적도 쌓아야 해서요. 아, 차라도 한 잔 내와야 하는데!”
“일단 계약부터 마무리하시죠. 이건 제가 헌터 협회에서 받은 거고 황은비씨도 분명 영웅 협회에서 하나 받으셨을 텐데···.”
“넵! 가져올게요. 잠깐만요!”
그리고 그때, 갑자기 집의 전기가 나가버렸다.
‘···이건.’
아파트 여기저기서 불만과 당황, 빡친 외침이 들려온다.
“갑자기 전기가 왜 나갔대? 따뜻한 걸로 내오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네요.”
겨울인데 냉장고에서 주스를 따라오게 된 황은비가 그리 투덜거리며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난 괜찮다며 그녀가 내민 잔을 받아서 내용물을 들이키려다가 흠칫했다.
갑자기 등골이 시리며 싸늘하고 불길한 예감이 목덜미를 스쳤다.
물론, 위험의 근거는 따로 없다.
하지만 이런 기분은 기억 속, 정찰대의 B급 각성자 김유성이 자주 느끼던 것이었다. 일종의 사선을 넘으며 얻은 직감이다.
‘지금 이게 정말 뭔가 있는 거라면···.’
게이트 발생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이 아파트의 내부는 혹시 모를 빌런 같은 것과 싸우기엔 너무 궁사에게 불리하다.
전력이 될 수 있는 황은비가 옆에 있고 그녀가 전투 마법사 계열이라곤 하지만, 그녀 역시 근본은 주문계 히어로. 중거리에서 강한 거지, 초근접 상황에 처하면 제 힘을 내기 힘들 확률이 높다.
“잠시···.”
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 곧장 베란다로 달린 나는 창문부터 열어 재꼈다.
‘다행히 단지 안쪽이 보이는 장소군.’
나는 세밀하게 아파트 주변을 쭉 살폈다.
‘이상한데.’
이상했다.
확실히 그랬다.
여긴 히어로의 가족이 사는 연립주택이다. 특별한 이유 없는 문제가 생겼다면 밖에서 상황을 파악하려는 사람이 와야 정상이다.
하지만 한참을 주변을 둘러봐도 상황을 확인하려고 오는 사람도, 건물에서 나가는 사람도 아무도 없다. 난 품 속에서 뭔가를 꺼내 베란다 구석에 집어던진 뒤, 이번에는 서둘러 정문으로 향해 문부터 열었다.
“왜 그러세요?”
“···은비씨. 나와보시죠.”
“아, 이건···?!”
“빌런의 습격입니다. 히어로에 대한 개인적인 보복이건, 아니면 테러건, 이만한 범위에 이런 결계화를 시도할 수 있다면 최소가 A급 빌런입니다.”
문을 열고 확인한 복도에는 줄기줄기 벋은 넝쿨이 온통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나는 곧장 그녀에게 되물었다.
“이 시각에 이 집에 있을만한 히어로가 몇이나 됩니까? 그리고 이 아파트 동의 가장 강한 히어로는 누가 있죠? 여기 아파트의 경계 등급이 어떻게 됩니까?”
“그게, 아. 저는 아직 현역 히어로가 아니라서···.”
“분명히 여기도 당직 히어로가 있을 텐데요? 은비씨도 그 예비 명단에는 포함되어 있을 것 아닙니까!”
“으, 죄송해요! 어차피 선배분들이 그럴 일 있으면 직접 알려주실 거기도 해서 못 외웠어요.”
지금 이 아파트에서 쉬고 있을 사람이 누군진 모르겠지만, 당직 히어로는 이런 히어로 가족이 사는 연립주택이라면 반드시 한 명 이상 대기한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등급이 A급 이상이기를 빌어야겠는데.’
그리고 우리가 서 있는 복도 위쪽에서 비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 지금 위에!”
“아무래도 위에서부터 쓸고 내려올 생각인 것 같군요.”
비명이 들리자 여기저기 복도의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괴상해진 복도 공간을 보자 비명과 고함이 난무한다.
“저희도 내려가야 하지 않을까요?”
“아뇨. 여기서 대기해야 합니다.”
“네? 왜요? 사람들을 지켜야 하는 것도 있고 저희만 여기 남아봤자···.”
“히어로 연수 때 공부를 열심히 하시진 않은 것 같군요.”
“윽···.”
찔리는 게 있는지 황은비가 움찔했다.
“하나, 적이 위에서부터 쓸고 내려오기 시작했으니 이 동의 당직 히어로가 있다면 위로 올라오면서 다른 히어로들이 있다면 데리고 올라올 겁니다.”
“아!”
“그리고 둘째로 전투가 벌어지는 곳에 민간인, 그것도 히어로의 가족이 섞여 있으면 히어로는 제대로 된 힘을 내기 힘든 반면, 빌런은 도발하거나 잔뜩 신을 내기 좋습니다.”
“확실히 그렇겠네요. 하지만···.”
황은비의 말을 끊었다.
“마지막입니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는데, 아래로 가봤자 나갈 수가 없을 겁니다. 그러면 1, 2층쯤 되면 사람들로 가득 차서 운신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겠죠.”
그게 우리가 여기서 멈춰야 하는 이유였다.
그 외에도 습격의 목표가 뭔지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잠시 대기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빠져나가거나 방에 틀어박혀서인지 어둡고 조용한 복도 너머로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상황에 발소리가 여유 있고 안정적이라는 건, 놈이 빌런이라는 소리다. 누구냐?’
이런 테러는 회귀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다. 그렇다는 건 이건 내가 일으킨 일로 말미암은 나비효과라는 뜻이다.
다만, 상대가 거미 같지는 않았다. 그 녀석들은 이렇게 화려하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어둠 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빌런을 봤을 때, 내 몸은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놈이 왜 여기서 나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