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84화 (84/128)

8장 - 이합집산

지분 분배율이 가장 높은 숫자는 예상대로 김진수의 머리 위에 적혀있었고 뜻밖에 설연화가 두 번째였다.

그리고 류웨이, 송하민 순이다.

‘설연화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감을 못 잡은 건가? 특성 보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그래서 럭키 유지혜 같은 그런 이상한 빌드가 나왔나 보다.

“설연화로 받겠습니다.”

“음···. 난 웨이나 하민을 선택할 거로 생각했는데, 너무 자신감 넘치는 것 아닌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어려운 각성자를 제대로 키워내야 앞으로도 투자를 받으시지 않겠습니까?”

“뭐, 진수가 총체적 난국이긴 하지.”

그런 것치곤 뒤에서 두 번째를 고르지 않았냐는 소리다. 하지만 거기엔 따로 이유가 있었다.

“그쪽도 생각해 둔 건 있습니다. 다만, 제가 생각한 빌드라면 지분을 받는다고 해도 설연화에 비해서 많은 명성 점수를 받진 못할 것 같더군요.”

그들이 구상하는 용사파티 네 명 모두를 컨설팅해야 하긴 하지만, 이건 그 대가로 A급 잠재력의 각성자 지분 35%를 주는 거래다.

그것도 따로 내 명성을 투입하지 않는 거래였기에 컨설팅의 값어치에 비해 보상이 몹시 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전우치나 서경덕이 네 명의 소년 소녀들에게 추가로 내리는 과업들을 따라다니며 보살피긴 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그거야 지혜도 중간마다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일은 내가 주시했었듯 당연한 일이었다.

‘포르세티와의 첫 거래에 비하면 어느 정도 상호 간의 호의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계약이다.’

내가 이번에 새로 포르세티와 체결한 일전에 언급된 A급 계약과 비슷한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실망하게 해선 곤란하다. 넷 모두를 최소 준수한 수준 이상으로 키워낼 필요가 있다.

“우리 동생이 해낸 일은 그쪽 옆 신좌에게 전달받아서 본 게 있으니 이쪽도 믿고 맡겨 보는 걸로.”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전우치와 잠시 어떤 식으로 그 넷과 인연을 맺게 될지를 논의한 뒤, 방을 나서 현실로 돌아왔다. 물론, 곧바로 다른 초대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질녀가 말한 대로구나! 하계인이면서도 성좌라! 재밌는 놈이군!”

반겨주는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귀청이 터지는 줄 알았다. 북유럽 전신, 토르다.

“큰아버지, 호의 표시 같은 건 적당히 하세요. 알죠? 쟤는 진짜 성좌가 아니라서 그 손에 잘못 맞으면 죽어요.”

“넌 대체 날 뭐로 보는 거냐?”

“무식하게 힘만 센 바보 삼촌? 켁!”

까불다가 토르에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포르세티가 단말마를 내뱉으며 바닥에 그대로 처박혔다. 그리고 덩달아서 난 좀 불안해졌다.

“내가 로키 놈에게 좀 당했다고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란 말이다. 그놈이 지나치게 잔머리가 잘 굴러가는 거야.”

“뭐, 그건 인정.”

이런 건 흔한 일이라는 듯, 옷을 탁탁 털며 일어난 포르세티가 내게 윙크를 보냈다.

“어쨌건 난 소개해줬다?”

그리고 포르세티는 토르가 몹시 부담스러웠는지 바람처럼 사라졌다.

토르는 포르세티의 방을 이리저리 조작하더니, 사방이 탁 트인 저택으로 바꾼다. 그 밖 풍경으로는 나무하나 없는 넓은 대초원이 펼쳐져 있었다.

“요새 애들은 답답하게 산다니까. 거기 친구, 술 좀 하나?”

“···적당히 마실 줄은 압니다만. 그 기준이 신좌분들의 것에 맞는지는 모르겠군요.”

“말하는 꼴이 로키 같은 놈이로군.”

토르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걸렸다.

‘이게 그런 뜻이었군.’

그제야 내 성격이면 최선을 다해 호탕하고 대범한 척이라도 해야 할 거라던 포르세티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알겠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 말을 받아쳤다.

“그건 기분이 나쁜데요.”

“뭐?”

“북구 신화 최악의 신 아닙니까.”

“으하하핫!”

거의 논타임으로 연달아 받아친 말에 토르는 술잔을 꺼내다 말고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이건 사전에 계산된 것이긴 했다.

포르세티가 만나기 전, 토르가 기분 나빠 보일 때 로키를 같이 패주면 한 번 정도는 기분이 풀릴 거라 했고 첫 인상부터 마이너스로 가고 싶지 않았던 난 그걸 시작부터 곧장 써먹었다.

물론, 나도 로키에 대한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신화에 알려진 것도 그렇지만, 내가 아는 미래에서도 다른 이들이 알게 모르게 빌런들을 슬그머니 후원하는 신좌였기 때문이다.

물론, 로키라고 인간을 아예 망하게 하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 보지만, 야심 때문이건 타고난 장난기 혹은 계략을 펼치기 위해서였건 그 신좌가 여기저기 민폐를 끼친 것도 사실이다.

“음, 취소하마. 웃음 뒤에 칼을 숨기진 않는 걸 보니 말투만 비슷하지 그 자식하곤 다르군. 정직하고 대범한 놈은 싫어하지 않는다.”

“그런데 당신들 사이에 로키의 평가가 그렇게까지 안 좋습니까?”

“그에 관해 이야기하려면 너희 역사에 기록된 것이 아닌, 진짜 우리 신화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토르가 건네는 술을 받으며 나는 그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우리 신화는 오딘, 나, 티르, 발두르. 그리고 굳이 따지자면 지금 지분의 양은 형편없긴 하지만 로키가 주역이었던 신화다.”

“역사가 중요하지 않은 건 알지만, 토르 당신은 오딘의 아들로 알려졌고 또한 후계자였던 것으로 압니다.”

“였던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으로 내가 후계자다. 난 아스가르드를 차지하는 경쟁에서 오딘의 최대 대적자였던 것과 동시에, 지금은 그의 가장 뛰어난 망치기도 하지. 신화를 합치는 과정에선 그의 양자가 되었고.”

토르는 오딘의 친아들이 아닌 모양이다. 그럴만한 구석은 사실 우리 역사로 전해진 북유럽 신화에도 어느 정도 암시가 되어 있긴 했다.

“그러면 지분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원래 전부 경쟁자였다는 겁니까?”

“발두르는 제외한다. 그는 오딘의 적자. 나머지가 그의 대적자였지. 나는 언제든지 오딘의 뒤를 노릴 수 있는 자리를 원했고 티르는 오딘의 먼 친척이라는 자리를 택해 신화 내에서의 안정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로키는···.”

“항복의 대가로 미미르처럼 오딘의 조언자 자리를 원했고 ‘오딘의 친구’라는 자리를 가지려 했지.”

“그건 참···, 애매하군요.”

토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친구란 것은 가족에 비하면 언제든지 쉽게 배신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닌가? 항장에게 주긴 이상한 자리다. 하지만 오딘은 놈의 재치와 꾀를 높이 샀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것에서만큼은 당신의 생각이 맞았군요.”

토르는 말없이 자신의 망치를 던졌다 받았다 하며 고개만 끄덕였다.

“라그나로크에서 증명이 됐죠. 그런데 그렇다면 라그나로크는 대체 뭡니까? 그 신화대로면 당신들은 존재할 수가 없는 게 아닙니까?”

“라그나로크는 성스러운 네 글자의 신화가 우리를 침략할 때 이야기가 각색된 것일 뿐, 실제 우리 신화의 결말과는 다르다. 물론, 그때 로키가 또 배신하긴 했지.”

로키의 지분이 엄청나게 낮은 이유를 그제야 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신좌 로키의 지분이 형편없는 것은 그런 중요한 때 모두를 배신한 대가를 치른 거군요.”

“그렇다. 또한, 라그나로크 이후 주신이 발두르로 묘사된 이유도 거기 있지. 유의미한 지분을 가진 자 중, 유일한 2세대인 그가 항복 후 협정이나 외교와 관련된 모든 것을 맡은 탓이다. 이는 우리 주신급 모두의 패배를 의미하지.”

“당신에게 그리 기분 좋은 이야기는 아니겠군요.”

“자, 그걸 안다면 들어라!”

토르가 잔을 높이 들며 또 귀청 떨어질 정도의 소리로 외쳤고 난 쓴웃음을 지으며 그 커다란 잔을 원샷해야 했다.

‘이 술···. 장난이 아닌데?’

어지간한 술은 다 무시하는 각성자의 육체인데도 신들의 술이라는 건 고작 두 잔 마셨을 뿐인데 머리가 핑 돌며 슬쩍 몸이 휘청인다.

물론, 그만큼 맛있는 술이긴 했다. 전우치가 준 것도 나쁘지 않았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

내가 단번에 마시는 걸 보곤 마음에 들었는지 토르가 호탕하게 웃으며 내 어깨를 가볍게, 정말 가볍게 툭 쳤는데, 그 가벼운 손길에 나는 대여섯 바퀴를 그대로 옆으로 굴러야 했다.

제 손을 슬쩍 바라본 토르가 멋쩍게 웃었다.

“이거 사내가 그렇게 허약해서야 쓰겠나?”

“당신이 지나치게 센 겁니다. 최소한 허리띠라도 좀 풀고 말씀하시죠? 당신의 메긴기요르드는 북구 신화에서는 유명한 신물 아닙니까?”

“그래서 엄청 살살 쳤잖나. 뭐, 그럼 이거 풀고 맘껏 칭찬해줘 볼까!”

“사양하죠.”

난 바로 정색했다.

“그리고 망할 로키 놈 때문에 난 내 신물은 절대 몸에서 떼어놓지 않아. 내가 그놈에게 속은 게 한두 번이어야지!”

내가 슬며시 그의 옆에 다시 앉자 토르는 잔을 쭉 채워주었다.

“그래. 그래도 고작 하계의 인간 몸으로 이걸 마시면서도 나름 호탕하게 굴려는 모습은 맘에 드는구나. 나랑은 좀 결이 다른 것 같지만, 오딘 같은 전사가 될 자질은 있어 보이는군. 그런 전사도 필요한 법이지.”

“비교 대상이 너무 과분한데요. 그보다 제게 맡기실 전사가 있어서 만나자고 하셨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랬지. 그러면 일단 그 이야기부터 해볼까? 내가 네게 맡겨보고 싶은 건 이 녀석이다.”

꽤 대단한 유망주가 나왔다.

‘오스카 웨슬리. 토르 정도 되는 신좌면 특급 잠재력 각성자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는 건가.’

노르웨이 출신이고 훗날 특급에 도달하는 각성자다. 고작 10대의 나이인데도 벌써 A급. 이 정도면 내가 뭘 건드리지 않아도 무난하게 특급까지 클 거다.

“솔직히 이 정도 각성자라면 굳이 제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크게 티가 날 것 같지도 않고요.”

“맞다. 대충 키워도 당대의 대영웅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놈이지.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고작 그 정도가 아니다. 과거 아스가르드에서 이 토르가 그랬던 것처럼,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위대한 전사로 키우길 원해.”

충분히 그럴만한 재능이긴 하다. 알려지기엔 인성도 모난 것 없이 훌륭했고 그 최후도 영웅적으로 장렬했다.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희생된 영웅이지.’

주 무기는 토르와 같게 망치를 다룬다. 다만, 한손 둔기고 투척해 박살을 내는 게 상징적인 묠니르와는 다르게 양손 대형 전투 둔기를 다룬다는 점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너는 내가 그 정도도 모를 거로 생각하는 건가? 이 토르도 오딘처럼 인간 시절에도, 지금도 수많은 전사를 키워냈다. 내가 키운다면 어느 정도까지 클지는 이 머릿속에 전부 들어있어.”

“제가 그 예상을 뛰어넘도록 키우길 원한다는 말이군요.”

“내가 전력으로 키운다면 당대 전사 중 스물 내에 들 것이다. 넌 이 녀석을 세계에서 세 손가락 내에 들만 한 전사로 키워내라.”

내가 고민하느라 잠시 뜸을 들이자 토르가 곧장 얼굴을 들이대며 입매를 비틀었다.

“뭐야, 자신 없나? 쫄?”

최악 최강의 도발기에 내 이마에도 슬며시 핏줄이 돋았다.

“세 손가락이 가능할지 고민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제가 키우면 다섯 손가락 내로 들게 할 순 있습니다.”

“그럼 한 잔 더 해라. 다섯으로 낮춰주지.”

“좋습니다.”

그리 내뱉으며 나는 곧장 토르가 내민 잔을 받아 원샷했다.

“3등으로 해 보이죠. 어차피 뭐가 됐든 20등보다만 위로 올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주량은 나쁘고 배짱은 좋군.”

그런 말을 어렴풋하게 듣던 도중에 필름이 끊겼던 것 같다.

얼마 뒤, 옆에서 누가 볼을 찌르는 것 같은 감각에 다시 깨어났다. 정신을 차려보니 토르 옆에는 수많은 술통이 비워져 있고 나는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뭘 또 그렇게 백부님 분위기에 휘말려서 그 미친 꿀술을 넙죽넙죽 받아먹었대?”

“머리가···.”

“아플 리가 없잖아. 신들이 양조한 술인데.”

“그렇군요.”

신기하게 숙취가 하나도 없었다. 내 볼을 찌른 건 포르세티였던 모양이다.

“뭐가 이리 길어지나 했네.”

“술 좀 깼나? 혼자 대작하게 하는군. 저 녀석은 술 받을 듯 말듯 하면서 뺀질거리기나 하고.”

“···이제 멀쩡합니다.”

“내 전사단의 현자가 되어볼 생각 없나? 이 말은 하고 가려고 기다렸다.”

이게 뭔 말인가 싶어 포르세티를 슬쩍 봤으나 포르세티는 내 쪽을 보는 게 아니라 토르를 향해 무시무시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다.

“꿈 깨세요. 백부. 이 녀석은 내가 제일 먼저 찍었으니까.”

“뭐야. 오랜만에 한 번 어울려 볼 테냐? 아직 네가 내 상대가 될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줘터지더라도 해보고 물러나야죠?”

포르세티의 하늘하늘한 옷 위로 곧장 갑주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토르 역시 입고 있던 천 옷 위에 갑옷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대체 현자가 뭡니까?”

갑작스러운 상황에 휘말린 내가 화제를 바꾸려고 시도했고 두 신좌는 좀 절박해 보였을 내 표정을 보더니 김 샜다는 표정으로 손에 형성되던 각자의 무기를 흩어버렸다.

“힘자랑 하는 거 보여준다고 하는 짓에 당사자를 보내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두자니 휘말리겠군.”

“그렇네요. 현자는 전사단의 대스승을 말하는 거야. 너도 땀내나는 남정네들로 가득한 큰아버지 전사단보다는 상큼하고 귀여운 애들로 가득한 내 전사들이 나을걸?”

“사나이들의 우정이야말로 진정 값어치 있는 것이지! 사제간의 끈끈한 연결고리와 멋진 모험! 그리고 만찬!”

신들의 보는 눈은 비슷한 것 같다. 이름만 다르지 아까 받은 제안과 같다. 난 이번에도 전우치와 서경덕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네 처음이라는 것만 기억하라고!]

“어차피 걱정하시는 그런 종류의 일은 없을 겁니다.”

토르와의 만남 때문에 좀 걱정이 됐는지 포르세티가 첫 인연을 들먹이는 걸 들으며 현실로 돌아왔다.

‘이제 만나러 가야 할 황은비에 김진수, 설연화, 류웨이, 송하민, 거기에 토르의 웨슬리까지. 그 잠깐 사이에 할 일이 많이도 늘었군.’

따로 유망주들을 더 찾아다닐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안혜성과 신수빈에다 지금 언급한 저 여섯만 데리고 다녀도 해외로 나갈 용병 파티를 꾸리기엔 충분하고도 넘친다.

‘설연화의 빌드가 서포팅이 된다고는 하지만 따로 전문 서포터는 없으니 능력 있는 서포터를 하나 구하긴 해야겠어.’

그건 한국을 떠날 때 서이수에게 연락해보면 될 것이다.

그쯤해서 내가 내보낸 나비의 날갯짓이 일으킨 태풍이 다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은 모른 채, 나는 다음 목표인 황은비를 만나러 발걸음을 옮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