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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83화 (83/128)

8장 - 이합집산

“내 휘하 계약자에 대한 건 운사에게 물어보면 될 거고 저 친구와 달리 난 따로 모임이 많은 탓에 먼저 떠나는 걸 양해해 주시게.”

“거 바쁜 척하긴!”

“친구 없는 자네와 달리 난 참여하는 모임이 많아. 지분은 과업 수행의 대가로 하는게 맞겠고 따로 소소한 법보 하나를 유성, 자네의 성좌 식별 주소로 보내 놓았네. 아까 언급한 선물일세. 지금 시점에서는 꽤 쓸만한 물건이니 잘 써줬으면 좋겠군.”

화담이 떠나고 전우치와 둘이서 남자, 왠지 모르게 좀 분위기가 편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게 서경덕이 떠나자마자 손님 있는 것도 신경 안 쓰고 긴 소파를 만들어내 드러눕는 게, 전우치는 누가 봐도 방구석 백수의 전형이다.

내 쪽에도 안락의자를 하나 만들어주길래 그리 앉았다.

“하여간 빡빡한 친구야. 그렇지 않나? 뭐, 그게 매력이긴 하지만. 화담에게 니가 주라고 하긴 했지만, 신선 체면에 나도 주지 않을 순 없겠어. 중복되는 건 피하는 게 좋을 테니 저 친구가 뭘 줬는지 알고 싶은데.”

“팔찌군요.”

“장신구라도 하나 사서 던져준 건가?”

그래서 장신구인가 하고 상세 정보를 봤으나 이건 장신구가 아니었다.

“아닙니다. 활이군요.”

유물은 아니었지만, 장비 등급은 특급 최상위였다.

이 정도면 간단한 선물이라던 것 치곤 크다.

다만, 특급임에도 특수 능력은 고작 세 개만 붙어있었는데, 그 내용이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수납, 그리고 불괴, 빈 특수 슬롯? 이런 건 처음 보는군. 여러모로 활치고는 특이한데.’

내가 과거에 보아온 고등급 활은 대개 보조로는 화살 소모를 해결해주고 공격 능력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에 이 활은 공격적인 기능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종류의 제약도 무시하고 활대를 수납하는 기능, 그리고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는 특수 기능이 붙어 있었다.

‘그래도 좋다. 솔직히 유물 이하의 장비에서 이만한 유틸성을 찾기는 힘들어.’

불괴와 수납, 좋은 기능이었다. 유틸적인 측면에서 이만큼 좋은 걸 찾기도 힘들어 보였고 주 장비를 구하는 동안 쓰면 충분할 것 같았다.

사격에서 방어로의 전환은 모든 궁사의 숙제 중 하나다.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게 최고지만, 어쩔 수 없이 방어에 돌입해야 하는 경우가 나오는 법이다.

불괴도 그간 무리한 기술로 활을 몇 번이고 부숴 먹었던 내 처지에서 보면 나쁘지 않다.

“오, 그걸 줬나? 화담이 꽤 크게 썼구먼. 제 계약자 중에도 활 쏘는 놈 있었을 건데 그 녀석을 안 주고?”

활을 꺼내 보이자 전우치가 감탄사를 흘렸다.

“좋은 겁니까? 편한 부분은 있지만, 딱히 공격적인 기능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좋으냐고? 너희 수준에선 엄청나게 좋지. 지금 시점에 저만한 물건을 주려면 점수도 엄청 소비해야 했을 건데. 저래 보여도 신물을 본떠서 만든 천계군의 보급용 법보라고.”

생각보다 거창한 배경에 내 시선이 막 손목에 착용한 팔찌로 향했다.

“그리고 공격적 기능이 없긴. 슬롯 하나 있을 텐데? 게임 보면 많잖나, 보석 같은 거 껴서 능력치 올리는 거.”

전우치가 말하는 건 이게 도대체 뭔가 했던 마지막 특수 슬롯인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는 그런 게 없지 않습니까?”

심지어 성좌 상점에도 그런 능력치 보석 따위는 파는 걸 본 적이 없다.

“유물 슬롯. 그건 유물을 끼워 넣는 자리야.”

“···유물, 슬롯 말입니까?”

그런 기능이 있는 장비는 처음 들어본다.

“거기에 유물 넣으면 해당 유물의 기능 3할이 추가될 건데. 중상위 유물까지는 넣을 수 있겠지. 최상위 유물은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커. 신물은 그게 아무리 단단해도 터지니까 혹여 억지로 넣으려 들진 마라.”

“그렇겠죠. 장비 등급에 붙은 불괴라는 것은 같은 단계 내에서만 통용되니까요.”

“그렇지. 불괴라 되어있다고 명장급 법보를 유물급 법보 막는데 들이대면 부러질 수 있어.”

동양쪽 성좌들은 일반 장비들을 명장급이라 부르는 것 같다.

“난 그만한 건 못 주니까 그리 부담스럽게 보지 말라고.”

“하하···.”

물욕이 좀 겉으로 드러났는지 전우치는 내게 심술궂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둘 중의 하나. 골라봐.”

전우치는 소파 앞 책상에 물건 두 개를 꺼내 집어던졌다. 하나는 화담 것과 비슷한 팔찌였고 다른 하나는 돌돌 말린 비단 두루마리였다.

시선이 자연스럽게 장신구로 보이는 팔찌에 먼저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그건 화살통이다. 귀찮게 등 뒤에서 화살 끄집어내거나 할 필요 없이 손바닥 위에 바로 나오는 거지. 약간 법력도 저장해둘 수 있고? 솔직히 그리 비싼 법보는 아니야. 내겐 너무 기대하진 말라고.”

그 말대로 대단한 물건은 아니지만, 실용적인 기능이 몇 가지 들어있는 좋은 장비다.

“그런데 이쪽은 두 개군요?”

“그거 푸른 실로 묶인 건 펼치지 마라?”

내가 비단 두루마리를 묶은 끈을 풀려고 하자 전우치가 급히 그리 내뱉으며 설명이 이어졌다.

“쌍둥이 족자라는 건데. 내 신통으로 만든 물건이고 족자를 걸어놓은 다른 쪽으로 넘어갈 수 있지. 펼치는 순간부터 지속 시간은 한 시간 정도. 시간이 지나면 힘이 다해 내부 공간이 무너질 거다.”

“그런 식이면 급한 상황에서 쓰긴 어렵겠습니다.”

족자 속으로 들어가고 나오는 시간이 있으니 범용성은 지난번 직업 특성으로 인한 순간이동보다 떨어진다.

“아니. 그럴 때도 쓰려면 쓰지. 넌 내가 누구라 생각하냐? 내가 바로 도사 전우치라 이말이다!”

전우치의 손가락이 가볍게 허공을 휘젓자 화려한 건축물이 그려진 족자의 형상이 허공에서 피어오른다.

그 먹으로 된 족자에 그려진 그림 속에선 전우치의 손짓에 따라 먹물이 터져 나오며 구름 위에 솟아 오른 산들이 늘어선 절경의 축소판을 펼쳐 보였다.

“이건 그냥 환영이지만, 족자를 펼치면 그것도 지금 보여준 것처럼 될 거다. 당연하지만, 너는 여기. 내가 가리킨 곳에 있는 저택으로 바로 이동 될 거고 뒤쫓아 오는 놈들은 입구에서 이 산을 싹 뒤져야겠지.”

“이 안에서 시간이 다 가면 어떻게 됩니까?”

내 질문에 전우치는 씩 웃었다.

“어떨 것 같냐?”

“뭔진 몰라도 뒤쫓아오는 자들에게 좋은 건 아니겠군요.”

“이건 공간을 축지로 접고 그 사이의 세계를 속이는 절진 이거든. 현실의 그 사이의 공간 어딘가에 멋대로 튕겨 나갈 거다.”

분명 좋은 물건이다. 하지만 난 고개를 갸웃했다.

“작은 보상이라기엔 지나치게 좋은 물건 같은데요. 이거 뭔가 하자가 있는 것 아닙니까?”

“···뭐.”

전우치가 슬쩍 딴청을 피우는 걸 보니 뭔가 문제 있는 물건이 맞다.

“그리 큰 문제는 아닌데, 현실에서 족자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면 작동을 하지 않을 수가 있어.”

“대체 그 거리가 얼마길래 그렇습니까?”

“5리 정도? 그 거리를 넘어가면 신통이 요상하게 뒤틀리더라꼬?”

5리면 2km인데, 그 정도 거리는 솔직히 순식간이다.

잠시 추적자를 가둬둘 수 있다는 것 빼면 효용성이 영별로다. 그거론 잠시 위기만을 벗어날 뿐, 멀리 도망치기도 힘들다.

또 그 5리라는 거리를 급박한 상황에 짐작한다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괜히 족자 꺼내 쓰려다가 시간만 낭비하는 수가 있다.

“···큰 문제잖습니까?”

“아니. 그래도 너희가 들어가는 그 게이트에서는 잘 작동한단 말이다. 그 통로랑 밖은 거리가 아무리 떨어져 있어도 지근거리로 취급된다고.”

난 그 말에 멈칫했다.

“혹하지?”

“생각해보니 그렇게 본다면 쓸만하군요. 혼자만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족자 안, 네가 순간이동 한 저택에 들어가면 안에 내가 만들어놓은 내부 지리도가 있을 건데, 거기에 보면 들어온 놈들이 다 표기되니까 저택으로 전송해주면 된다.”

족자를 내려놓고 잠시 고민하던 나는 전우치에게 시선을 돌렸다.

“둘 다 주시면 안 됩니까?”

“거 딱 도둑놈 심보 아니냐?”

“얼마면 됩니까?”

둘 다 상점에는 따로 없는 물건인 것이 딱 봐도 전우치가 직접 만든 것이다.

화살통도 게이트 내부건 어디건 공간적 제약을 무시하는 기능이 있었고 그런 기능은 별의 상점에서도 필터링하고 찾아봐도 일반 장비 급에선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탐나나 보구먼? 하긴, 내가 그거 등급 낮추느라 힘 좀 썼지. 그러면 너 나랑 따로 일 좀 하자.”

“일이요?”

전우치가 요청한 일이란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다른 성좌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좀 사소하다면 사소한 것이었다.

“사인이요?”

“게임. 재밌잖냐?”

“뭐, 보는 재미가 있는 건 맞습니다만, 제가 알기론···.”

그러고 보면 전우치의 방은 거의 절반 정도가 게임방이었다. 하지만 게임 스포츠는 수십 년 동안 쭉 하락세를 탄 종목이고 내 인식으론 흔한 비주류 스포츠 종목 정도의 느낌이다.

물론, 스포츠로서가 그렇다는 뜻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여가에 취미로 게임을 했고 게임 산업 자체는 여전히 전망이 나쁘지 않다.

“너희랑 달리 우리는 맨날 보는 게 그런 거야. 너희 투닥거리는 인생 드라마 보는 거야 재미있지만, 그건 반 쯤은 우리 직업이기도 하고 당연히 모든 성좌가 쉴 때까지 같은 일을 하고 싶어하진 않는단 말이다.”

“···그렇긴 하겠군요.”

현실에서는 게임 스포츠 방송이나 X튜브 콘텐츠는 현실의 게이트 공략이나 각성자들이 펼치는 경기들 따위에 밀려서 흔하디흔한 스포츠 종목이 되어버렸다.

격변 전에는 피지컬을 중시하는 게임이 유행했다면, 지금은 오히려 대전략 같은 긴 시간을 요구하는 장르의 게임 방송이 더 선호된다.

격렬한 건 헌터나 히어로들 활동으로 충분히 보고 있다 보니 깊게 생각할 수 있고 잔잔하게 머리 굴리는 걸 보는 걸 오히려 선호한다는 소리다.

전우치가 요구한 건 자기 옷에 그런 게임 중 오래된 유명 게임에서 톱을 찍고 있는 어떤 민간인 프로게이머의 사인을 받아달라는 것이었다.

“편지는 딱히 급한 게 아니니까 인연이 닿으면 전달하려 노력해주면 된다. 차피 나도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으니 네게만 맡길 일도 아니지.”

“···그런데 편지에 적힌 수신자가 누굽니까? 세경천녀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봅니다만.”

정보부에서 엄청나게 신화 계보도를 외웠던 나도 모르는 이름이다. 천녀라는 걸 미루어보아 선녀 중 하나인 건 알겠는데, 누군지는 정확히 알아야 전달할 것 아닌가?

“그런 왈가닥이 있다. 일 내팽개치고 도망친 최악의 상관이···. 너도 만나면 편지만 전달하고 얽히진 않는 게 좋을걸? 만나게 되면 바로 편지가 반응할 거니 알아보는 건 걱정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일 이야기를 하시죠.”

전우치는 곧바로 네 명의 각성자 프로필을 내게 꺼내 보였다.

“전부 준수한 잠재력이군요.”

넷의 잠재력은 A급에서도 상위권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잠재력을 다 채우면 대충 키우더라도 S급 소리를 들을 거고 빌드에 따라서는 대전쟁 시기로 가더라도 S급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법한 인물들이었다.

“정말로 이 중 한 명의 지분을 주신다는 겁니까?”

이름을 모를 법한 인물들이라는 말과 달리, 이 중에는 내가 이름을 들어본 각성자가 둘이나 됐다.

‘영술사 설연화, 동양 성좌 중 하나가 그 뒷배일 거라 여겼는데 계약한 성좌가 화담 서경덕이었나?’

강신 기술에 몰빵한, 동양 쪽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특이한 빌드로 몹시 유명했다.

‘하지만 동시에 빌드를 제대로 타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었지. 확실히 애매하긴 해.’

한마디로 표현해보면 스펙 좋은 언 럭키 유지혜다. 지혜처럼 키우는 조건이나 그런 게 엄청 까다롭거나 하진 않은데, 한방 기술 ‘쾅’쓰고 조루가 되는 건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다른 하나도 서경덕의 계약자였는데, 설연화와 오랜 시간 붙어 다녔던 것만 봐도 예상이 가긴 했다.

‘신수기사 류 웨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중국인이고 블랙처럼 소환수를 다루는데, 블랙처럼 소환물의 등급을 쭉쭉 올리기보단 마상 전투 쪽에 집중한 빌드를 탔었다.

‘반면에 전우치 쪽 각성자들은···.’

특이하다. 프로필의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봐야만 했다.

‘이렇게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감이 안 오는 경우는 처음인데.’

잠재력 하나는 대단하긴 한데 문제가 아주 많다.

솔직히 좀 사기당한 기분이다.

하나는 프로게이머 출신 여성 각성자로 이름은 송하민, 능력치 분배가 좀 특이했고 다른 하나는 김진수라는 친구로 이쪽은 빌런이 안 된 게 용하다 싶을 정도의 특성과 배경에 빌드를 어떻게 타야 할지조차 어려워 보인다.

나이는 전부 16세로 몹시 어렸다.

결론만 봐도 전우치보다는 서경덕 쪽이 각성자는 좀 더 잘 키운 것 같긴 하다.

“그런데 이거 괜찮은 것 맞습니까? 분명 제가 아까 들은 게 착각이 아니라면 화담 선생님께선 인성도 능력도 준수한 친구들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요?”

“착각 맞아.”

“······.”

“뭐, 그 정도면 충분하지. 다 착한 애들이야. 그리고 그때 난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나마 그게 자기 각성자들 말하는 줄은 아는 모양이다.

“그래서. 어떤 녀석 지분을 가져갈래?”

“얼마나 주실 수 있는 겁니까?”

전우치는 네 사람의 프로필 위에 숫자를 적어주었다. 그리고 네 명에게 줄 수 있는 지분 수치가 전부 다 달랐다.

‘그리고 이게 아마도 전우치와 서경덕이 생각하는 이 친구들 가치의 역순이겠지.’

숫자가 큰 쪽이 성좌가 생각하기에 가장 키우기 어려운 각성자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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