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 설악산 전투
본대에 이야기를 전달하기 전에 확인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런데 어떻게 돕겠다는 겁니까?]
[잠깐만? 아, 히드라를 보낸다는데?]
그 말에 약간 김이 샜다. 트라바슈르 본인이 오겠다는 건 아닌 모양이다.
‘히드라라, 분명 도움이 되긴 되겠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감이 안 잡힌다. 바루나에게 조금이나마 빚을 지워둘 수 있는 만큼 성사시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실패한다고 해도 큰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다.
‘지휘부에서 받을지 아닐지는 반반이겠어.’
인간형 지성체와의 끈을 이어놓는다는 것에 주목하고 연구자에 가깝거나 정치적 성향상 외교적인 해결 가능성에도 손을 뻗어볼 생각이 있다면, 이 손을 잡는 것을 택할 것이다.
반면, 괴물을 전부 축출해야 할 적으로 보면서 일부의 적을 살려 보내서 혹시 모를 후환을 남긴다는 부분이나, 괴물이 인간의 뒤통수를 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면 거절할 것이다.
어차피 별 도움이 없더라도 이길 확률이 높았기에 김한성의 성격이 어떤지에 따라 판단이 갈릴 상황이다.
“항상 느끼지만, 사람 보는 눈 하나는 못 따라가겠어.”
내 말을 듣자마자 김한성이 내뱉은 말이었다.
“네?”
“현재 전투력 평가는 B급, 잠재력 평가는 잘 해봐야 A급 초입. 제법 판단력은 있지만, 특별함은 없다는 게 금성의 최종적인 그쪽 평가다. 다른 길드도 아마 대동소이하겠지.”
“그렇군요.”
“나름 도발일 수도 있다 생각했는데, 생각보단 담담하군.”
나는 그저 쓴웃음을 지어 보일 뿐이다. 오히려 기억 속에서 봤던 내 미래의 한계에 비해선 이미 충분히 과한 평가였다. 자기 객관화가 된다는 건 생각보다 쓰디쓴 맛이었다.
그리고 호수 속에서 튀어나오는 어인의 움직임에 대화가 잠시 끊겼다. 김한성은 흩어져 공사 중인 병력이 이동할 위치와 사용할 진형을 변하는 상황에 맞춰 지시해가면서 전황을 다시 안정시켰다.
“자신감인 건가?”
“그런 건 없습니다. 그저 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볼 뿐이죠.”
“김유성의 주변에선 상황이 그를 중심으로 흐른다. 묘하게 중심에서 벗어나서 티는 잘 나지 않지만, 항상 사건의 중심에 있으니 그 움직임을 놓치지 말고 모든 걸 파악해두라고 했었지.”
“중요한 겁니까? 보는 관점의 차이거나 우연이라 생각하는데요.”
살짝 뜨끔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회귀한 정보를 통해 사건을 좀 조정했을 뿐이다. 내 능력도 아니었고 별로 자랑하고 싶은 내용도 아니었다.
“중요하다면 중요하고 그렇지 않다면 아니겠지.”
김한성의 전장 지휘 탓에 대화가 중간마다 끊기긴 했지만, 다른 참모들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전력이 워낙 우위였던 만큼 대화의 시간은 자주 나왔다.
“살다 보면 주인공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을 한 번쯤은 만나게 되어 있다. 능력의 고하에 상관없이, 주목받든 받지 않든.”
누굴 생각하고 말하는지 알겠다.
“서이수 길마라면 확실히 그런 소리를 들을만한 사람이긴 하죠.”
“그래. 내겐 서 길마가 그런 사람이었고 그래서 여기 금성에 있지. 그리고 주인공은 주인공을 알아보는 법인가 보더군.”
“그건 좀 부담스러운 말인데요.”
김한성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내가 생각했던 전자도 후자도 아닌 결론이었다.
“내 생각만 말하자면 거절이다. 난 저 괴물새끼들이 싫어. 하지만 허가하지. 그녀가 길드에 손해가 가지 않는 한, 가능한 네가 하는 일에 맞춰주라고 언질해뒀으니 그에 따를 뿐이다. 단, 여기서 네가 가져가야 할 몫이 거의 없을 거다.”
역시 공짜는 없다는 거겠지. 나는 옆에서 같이 듣고 있던 지혜를 한 번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내 공적이 순전히 내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혜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죠. 이번 정찰 임무에서 제가 세운 공은 저걸로 전부 치르겠습니다.”
“그래. 거기에 조건도 하나 붙여야 할 거야. 저 보스나 네임드급은 설령 항복한다고 해도 양보 못한다. 그 나가 왕이라는 괴물에게도 확실하게 말해두도록.”
“예. 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포르세티를 거치는 조금 귀찮은 과정을 거쳐 바루나에게 내용을 전달했고 곧 그에 대한 답이 돌아왔다.
[5분 정도면 도착할 거야.]
“위로 올라오면 안 됩니다.”
[다 전달해뒀어. 걱정하지 마.]
자칫 그 덩치가 올라오면서 저걸 다 부숴 먹으면 여태까지 진행한 작업이 다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히드라가 해줘야 할 건, 수면 아래서 기회를 계속 엿보는 나가들을 방해해주는 일이다.
그리고 잠시 후, 물 밖으로 나가들이 튕겨 나가거나 도망쳐나오는 광경이 보였다.
“그래. 왔나 보군. 그 지원이라는 게.”
잠시 수면 밖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히드라의 머리에 그때까진 중앙에서 미동도 없이 침착하게 주문을 외우던 나가 주술사의 입에서 처음으로 주문이 멎었다.
그리고 지팡이로 수면을 치면서 뭐라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물론, 나가의 언어로 말하는 통에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없었는데, 해석해주는 여신이 하나 있었다.
[빨리 신수를 치우라고 하는 중이네. 주술에 신수가 방해되는 모양이야.]
“히드라를 괜히 보낸 건 아니군요.”
[그런 걸 보면 나가 왕이 신경을 쓰긴 했네!]
그틈을 타서 공병대는 순식간에 우측면 호수 2미터 정도 위에 철골 구조물을 쭉 올린다.
그렇게 공간을 넓힌데다가 방해하거나 끌고 가는 나가가 없는 틈까지. 누가 봐도 절호의 기회다.
호숫가에서 나가를 막던 전위들과 여유 있는 예비대들까지 전부 달려들어 리치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좁혀나가기 시작했다.
위기를 직감한 리치는 아껴뒀던 유령화를 통해 자리를 벗어나려 했으나, 이미 몇 차례 사용한 저 기술의 약점은 이미 지휘부에 파악되어 있었다.
“왔어. 됐다! 직선 경로! 원주! 정호! 슐츠!”
김한성은 그 경로에서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급히 외쳤다.
앞선 둘은 안타깝게도 반응하지 못했지만, 펠릭스 슐츠는 자신이 경험 많은 A급 각성자라는 걸 증명하겠다는 듯, 정확히 리치가 멈춰선 위치를 바라보며 자리를 잡고 서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도 잘 아는 연계 기술명이 터져 나온다. 몸에 번뜩이는 스파크가 뭔지 잘 알고 있다. 이미 뇌명을 사용한 상태다.
1번에서 3번 기술까지는 기존의 것과 같다. 첫 기술은 검을 끌며 낮게 미끄러지면서 올려치는 기술, 두 번째는 전방으로 뇌 속성 섬광을 뿜어내는 범용성 좋은 기술이다.
‘저기서 세 번째가 찌르는 기술인 게 문제지.’
기술을 올려칠 경우에 결론은 대개 두가지다. 가르고 지나가면서 위로 올라가거나 아예 적의 방어를 뚫지 못하고 막히거나. 2번 기술은 무조건 전방으로 기술이 나가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3번 기술은 섬광을 뿜어내는 2번 기술의 반동으로 밀려난 상태에서 사용하는 연계기며, 기술명은 뇌속성 최종기술 중 하나인 ‘세트닝’이다.
거의 일격 필살에 가까운 찌르기 기술인데, 뇌 속성 기술 특유의 관통력으로 적의 방어를 뚫고 들어간 뒤에 뇌전 폭발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번개 구슬을 뿜어낸다.
‘문제는 저기서 원래 쓰던 네 번째 기술이 대놓고 쓰는 참격기라는 거지.’
물론, 어지간한 상대라면 그 세 방의 뇌속성 최종기급 연계기를 처맞고 경직조차 안 걸리긴 쉽지 않다. 당연히 펠릭스도 다음 기술을 준비할 시간은 충분하다.
다만, 그렇다고 오류가 없는 건 아니라는 것.
참격기 특성상 검을 들어 올려 내려치는 동작이어야 가장 위력이 강해지는데, 찌른 상태에서 검을 회수하고 다시 들어올려 내려치는 게 아무리 기술의 도움을 받아 신속하게 이뤄진다지만, 쉬울 수가 없다.
자연적으로 동작을 흘러가게 하려면 마력을 방출해서 강제로 동작을 취하게 된다.
‘처음에야 그게 정상인줄 알겠고 범상치 않은 기운이 터져나가니 나름 폼도 났겠지.’
그 상황에서 나름 최적의 경로를 찾아가겠지만, 이게 정상적인 동작이 아니라 무리해서 자세를 잡는다는 걸 펠릭스 본인이 충분히 경험이 쌓이고 감각이 올라가면서 잘 알게 된 거다.
반면 아드리비툼은 일시적으로 육신과 정신을 초가속하는 형태의 최종기다. 그를 위해 꽤 값비싼 특성까지 찍어야 했지만, 뭐가 됐든 대응할 시간적 여유는 충분하다.
‘거기에 공격선이 요구하는 검의 흐름도 합당하지.’
내가 수정한 연계 빌드를 따라 세트닝을 써 리치가 급히 짜 올린 방어기술과 보호막을 대부분 걷어낸 펠릭스의 몸이 마치 진동하듯 흔들리고 일순간 환영처럼 주변에 분신 같은 그림자들이 흩어진다.
‘대략 8할? 엑스트라는 실패군.’
주변으로 터져나가는 마력량을 어림짐작해보면 대충 성공한 공격선이 얼마인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저 정도면 충분하다.
모든 동작을 마쳤는지 일순 주변 시간이 멈춘듯한 펠릭스의 초가속 상태가 풀리고 눈을 부시게 만드는 백광이 터져나간다. 얇고 세밀한 백색 뇌검이 리치의 몸을 수십 번은 가르고 지나갔다.
회수한 검 끝을 한 차례 올려다본 뒤, 폼나게 검을 회전시켜 회수하고 돌아선 펠릭스의 뒤편으로 리치의 몸이 가루가 되며 흩날리는 광경이 보였다.
그는 약간 지쳤는지 깊게 한숨을 내쉬며 호흡을 고르곤 본대 방향을 바라봤는데, 그쪽을 바라보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엄지를 들어 올리며 씩 웃어 보이는 모습에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똑같이 화답했다.
리치인 이상 죽은 건 아니겠지만, 북쪽의 아크리치도 부하 하나를 한동안은 쓰지 못할 것이다. 어쨌건 여기선 퇴장했으니 자연스럽게 우측의 구조물은 터져나간다.
우측에 몰려있던 공략조가 좌측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망령군주가 나가를 보며 뭐라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가 쪽에서도 언성을 높인다.
[재밌네. 이 상황에서 서로 깎아내리네.]
“어디든 사는 게 다 그렇겠죠.”
먼저 입을 다문 것은 나가 주술사 쪽이었다. 꽤 의외인 부분이라 내가 고개를 갸웃했는데, 그에 대한 설명은 포르세티가 계속해주었다.
[나가 주술사는 아직 시간이 필요한데, 저 악령 군주는 육신을 잃더라도 도망치면 그만이거든.]
“죽는 게 아닙니까?”
[그간 너희는 죽인 줄 알았겠지만, 북쪽의 저놈 주인인 리치를 죽이는 수밖에 없어. 신비의 이론적인 부분이 모두 사라진 지금 하계의 너희 기술로는 저 정도의 고위 영혼을 소멸시킬 방법은 유물 정도뿐이거든.]
“지금 저 상태도 유령 아닙니까.”
[저건 영체. 엄연히 영혼과는 달라. 어쨌든, 그건 됐고 그러니 지금 우위에 서 있는 건 악령군주 쪽이지. 저 나가한테는 잠깐 버텨주는 것도 아주 크니까. 그리고 지금 보니까 뭔가 결심한 것 같네.]
포르세티는 아주 흥미진진해 보이는 목소리였고 그 목소리에 나는 왠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뭘 결심했다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역겨운 냄새가 나는 오수가 호수 중앙에서 위로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나가 주술사가 원래 쓰려던 걸 포기하고 주문을 비틀었어. 너희 대전략 상으로는 성공이겠고 당장은 위기겠네. 힘내렴! 응원할게!]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이는 물의 색에 난 지혜를 붙잡고 추격해오는 오수를 피해 동굴 밖을 향해 달렸다. 이런 밀폐된 곳에 있으면 익사한다.
“후퇴해! 후퇴!”
다들 서둘러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빠져나가는 헌터들 뒤로 호수가 있던 자리 위로 오수와 연결된, 흉측하게 생긴 물의 정령이 솟아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