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 설악산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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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군단에 합류한 청수 길드원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무렵, 나 역시 멀지 않은 곳에서 화살을 쏴 날리며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적이 우리 후군 움직임을 포착하지 못했다! 이 전투는 이미 이긴 거나 다름 없어! 옆구리를 친다!”
그리고 그 앞에는 지휘조차 내팽개친 채, 아군을 독려하며 검을 빼 들고 전방에 친히 나서 어인들을 학살 중인 김한성이 있었다.
그만큼 당장 지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좋은 상황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김한성의 말대로 어인들은 두 개 군으로 벽을 세워 놓고 그저 스쳐만가려던 아군 후열의 존재 자체를 아예 몰랐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군을 둘로 나누는 선택을 했다. 절반은 우회해서 모래골을 지원하는 병력, 나머지 절반은 끝에 튀어나온 아군 벽을 부수려는 거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놈들이 부수려던 늘어선 아군 우측 끝에는 늘어선 두 진형의 정예들이 모조리 모여있었다. 당연히 이러면 일은 더 쉬워진다.
‘뒤를 걱정할 필요가 없겠는데.’
기존에는 아군 후군이 돌파하려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적 모루가 망치로 전환하지 못하게 시간을 벌고 그 사이에 작은 모래골의 적 병력을 무너뜨린 뒤에 반전하려는 계획이었다.
원래라면 돌파하고 나서도 추격해올 적 병력을 신경 쓰며 움직여야 한다.
지금은 적이 오판을 했으니, 아예 제대로 된 부대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궤멸 내지 패주하게 만들 생각인 거다.
아군 옆구리를 치려던 어인들은 역으로 측면에서 돌아치는 아군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쓸려나가는 중이다.
다만, 그런 적 군단에도 눈에 띄는 모습은 있다. 키는 4미터에 약간 못 미치는 정도, 전신이 근육질로 이뤄진 거대한 어인이다.
등에 튀어나온 상어 지느러미와 유연하게 뒤로 뻗어있는 거대한 꼬리를 제외한다면 리자드맨과 느낌은 비슷하다.
다만, 큰 힘이 없고 가늘고 긴 느낌인 리자드맨의 꼬리와는 달리, 바다를 헤엄치는데 직접 사용하는 신체부위라서인지 경로에서 놈을 저지하려던 헌터들이 꼬리에 얻어맞고 하늘을 날 정도였다.
이곳 전투에서는 그나마 가장 위협적인 놈이 측면이 붕괴하는 걸 알았는지 예비대로 보이는 나가들과 함께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저게 그 상어 네임드군.”
쉴 틈 없이 검을 휘두르면서도 전황은 계속 보고 있었는지 김한성이 가래침을 바닥에 탁 내뱉고는 인상을 구겼다.
“저걸 바로 대응을 못 하나? 하도 많은 길드에서 각출해오다 보니 각 부대 사이 공조가 제대로 안 되는 모양이군.”
놈의 돌진에 제대로 대응할만한 각성자가 튀어나오지 못하면서 그쪽 방면 진형이 움푹 우그러졌다.
못해도 C급 괴물 재질로 만들어진 방패를 그대로 우그러뜨리는 악력과 일격에 C급 각성자의 머리를 터뜨려버리는 무지막지한 괴력.
그 위용에 순조롭게 적을 무너뜨리던 후열 군단이 처음으로 주춤했다.
“그러면 문제 있는 것 아닙니까. 내버려둡니까?”
“저놈이랑 주변 예비대가 발악해봐야 대세에는 지장 없어. 잠깐 당황했어도 저쪽에 A급도 놔뒀고 B급들은 많으니 곧 알아서 처리하겠지. 하지만 확실히 이쪽으로 부를 수 있다면 더 좋긴 하겠군.”
김한성은 그러면서 나를 바라봤다. 혹시 뭔가 보여줄 게 있다면 보여달라는 것 같다.
아마도 여기서 내 강화 기술이라는 걸 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대기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여기서 쓸 생각은 없었다.
난 대신 아군 대열을 뛰어넘어 이쪽으로 돌파해오는 상어 어인 놈을 향해 전진하면서 화살에 시위를 걸었다.
당연히 더 멀리서도 쏠 수 있지만, 저 정도 급이 되는 어인이 지금 능력치론 잘 해봐야 B급 수준인 선레이지에 이쪽으로 위협이 잡힐 것 같진 않았다.
‘저 등급쯤 되면 내 화살 한 방 정도는 마력 보호막만으로도 무시할 수 있겠지.’
화려한 빛을 내며 날아간 화살이었지만, 예상대로 아무런 타격조차 주지 못했다.
놈은 손날로 활대를 후려쳐 바닥에 떨궈버리고 내 쪽을 힐끔 노려보더니 자기 할 일을 한다.
‘이 정도 기술로는 신경도 안 쓰인다 이거지. 하지만 이건 어떨까?’
동전 크기의 명성 점수가 손가락에 잡혔다.
이 기술, 뜻밖에 자주 쓰게 된다.
그리고 난 저 너머의 네임드를 향해 연달아 무차별적으로 투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얻어맞은 놈이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봤다.
아마도 별것 아니라 생각한 것이 마력 보호막을 뚫고 몸에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 아주 거슬리겠지.’
타격은 없지만 신경을 아주 거슬리게 할 수 있는 종류다. 물론 대형 괴수라든가 지성이 동물 수준인 놈에게는 먹힐 가능성이 낮다.
하지만 놈은 나가만큼은 아니어도 인간에 가까운 상당한 지성체고 아무렇지도 않게 보호막이 뚫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난 놈의 신경을 더 거슬리게 하고자 투입하는 명성 수치를 갑자기 확 늘려 집어던졌다.
그래봐야 5점 정도 전지던 것을 잠깐 방심하는 틈을 타 급소를 향해 100점 정도 날린 것이지만, 그게 의미하는 바가 뭔지는 알아차렸을 것이다.
손바닥 만한 크기의 원판이 날아오자 상어 네임드가 잠깐 멈춰 서더니, 방패 하나를 뺏어 들어 이쪽을 향해 집어 던졌다.
하지만 그 행동에 정작 오라는 놈은 안 오고 나가 몇 명이 내 쪽으로 원거리 공격을 쏴 날리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당하던 아군 부대도 대응하는지 B급 정도로 보이는 전위 여럿이 함께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대체 언제 터지는 거냐?’
멀리서 쏟아지는 원거리 공격을 곡예 하듯 피하면서 틈틈이 계속 동전을 집어 던졌지만, 원하는 것은 터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역시 실전에서는 쓸 게 못 되나. 그래도 C급 정도의 지성체 보스라면 제법 먹힐 것 같긴 한데.’
지난번처럼 급박한 상황이나 지금처럼 도발 용도로나 기대해볼 만한 수준이다. 아군 전위들도 그새 유리한 전황을 살려 차분하게 좁혀 들어오는 게 보인다.
하지만 상어는 뛰어난 사냥꾼답게 약간의 피해를 받는 걸 감수하며 한쪽을 우직하게 뚫고 나간다. 포위망이 좁혀지는 걸 기민하게 막아냈다.
그리고 다음으로 놈이 포위망을 벗겨내려던 그때, 동전에 얻어맞은 어인이 갑자기 휘청거렸다.
‘드디어 터졌나? 망할 독립시행 같으니···.’
기댓값은 분명 1%니 100번이면 한 번은 터져줘야 할 텐데, 족히 200번은 집어던진 것 같은데 그제야 한 번 터졌다. 확률이란 건 역시 믿을 게 못 된다.
놈이 내쪽으로 몸을 홱 돌렸다. 저 멀리서도 느껴지는 포식자 특유의 살기에 몸이 찌르르 떨릴 지경이다.
‘그래. 보통은 마력 보호막 덕분에 저항하는데, 그 효과를 거의 못 받지.’
네임드 정도 되면 자연적인 마력 보호막의 저항으로 몸 안으로 파고드는 제어기의 기운을 떨쳐낸다.
하지만 이 웃기는 기술은 그걸 완전히 관통해낸다.
자연 보호막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의식해서 마력을 집중해 떨쳐내거나 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얕보다가 대비하지 못한 상태에서 저 기절이 발동하면 정신력이나 순수한 육체의 내구력만으로 저항해야만 한다.
그러나 저런 인간형으로 분류되는 소형 네임드는 아무리 단련을 하고 강한 육신을 지녔다고 해도 기본적인 육체의 저항과 방어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나는 곧바로 뒷걸음으로 뛰기 시작했다.
놈이 몸을 낮춘 채,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진다.
하지만 나도 믿는 것이 있었다.
“견제기인가? 처음 보는 기술이군.”
내가 도발에 성공하면 본대에서 바로 대응해줄 거라는 믿음이다. 지휘부 인원들도 놈이 내 방향으로 뛰는 순간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비슷합니다. 뒤는 맡기겠습니다.”
지난번 해룡 보스전 때 한 방 먹여서 벌었던 엄청난 명성 점수의 맛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화살로 한 번에 A급 네임드를 죽일 수 있다면 모를까, 지금처럼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상황에서 기회를 낭비하고 싶진 않았다.
“그러지. 유물은 여기서 쓰고 싶진 않은 모양이군. 대기시간이 꽤 긴 모양이야.”
“아마 양양에 갔다 온 내용과 지금 걸로 예상하셨겠지만, 하루쯤 걸립니다. 여기서 사용하면 보스를 상대할 때는 쓰지 못하겠죠.”
“그래. 짐작은 했다.”
그리 말하는 김한성의 얼굴에 살짝 만족스러운 미소가 어린 걸 보면 오히려 내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 금성 길드의 목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소한 정보 하나하나가 모여서 실질적인 전투력 평가가 이뤄지는 거니까.
‘방심할 수가 없네.’
이제 이 전장도 더 볼 것은 없다. 상어 어인이 겁대가리 없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순간, 놈의 운명은 결정됐다.
그래도 C급 전위는 일격에 박살을 내버리고 B급도 이기진 못하지만 뚫고 지나가던 놈 답게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박살내며 위협적인 모습으로 돌파해 온다.
거추장스러운 걸 모두 쳐낸 놈은 마지막으로 자신을 가로막고 선 지휘부의 정예들을 향해 포효를 내질렀다.
푸른 마력이 담긴 손날을 휘두르며 양옆에서 몰려드는 헌터들을 쳐내며 돌진해온다. 그리고 그런 어인을 향해 김한성은 마주 달려나가며 대검을 마치 투척 도끼 던지듯 집어던졌다.
‘무기를?’
소용돌이치며 날아가는 검, 그걸 그대로 쳐낸 어인이 충격에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런 놈을 향해 김한성은 발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검!”
아니, 날아오르며 어딘가를 향해 외쳤다.
그리고 그걸 이미 보고 있었다는 듯, 황금빛 빛줄기가 먼 곳에서 뻗어와 바닥에 박힌 검 손잡이를 잡아 하늘로 던져 올린다.
허공에서 자신의 대검을 잡아챈 김한성이 그대로 허공에서 몇 바퀴 회전하며 그 속도와 회전력 등 모든 에너지를 끌어모아 어인의 정수리를 향해 내려찍는다.
쾅! 포탄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 그리고 바람이 쓸려나가는 소리가 이어진다.
나를 비롯해 주변 근거리의 모두가 비틀거릴 정도의 충격파가 퍼져 나가며, 거대한 흙먼지가 그 광경을 보던 이들에게 밀려들었다.
먼지가 걷히고 거칠 것 없이 전진만을 반복하던 어인이 처음으로 한쪽 무릎을 꿇은 모습이 드러났다.
잠시 고개를 흔들던 괴물은 자리에 내려앉은 김한성을 밀어내려는 듯, 무릎을 펴며 팔을 휘두르려 했다.
그리고 어떤 기수의 최고 재능 소리를 듣던 검사는 그리고 그 힘을 그대로 역이용한다.
힘에서 밀리는 것을 안다는 듯, 저항하지 않으며 빗겨낸 뒤, 어인의 한쪽 팔만을 노려 땅으로 밀어내는 부드러운 동작. 이어 반대편 빈 팔이 자신에게 내질러지기 전 머리를 들이받았다.
얼굴을 찌푸리며 톱날 같은 이를 드러내곤 으르렁거리는 상어를 향해 김한성도 삐뚜름한 표정으로 씩 웃어 보였다.
먼지가 걷히고 그 광경을 본 아군에게서 함성이 터져 나온다.
이미 어인의 주변에는 김한성 외에도 공간을 좁힌 채 각자의 무기를 겨눈 전위들로 빽빽하다.
바닥을 쓸며 김한성의 대검이 올려치며 휘둘러지는 걸 시작으로 일방적인 폭력이 고립된 어인에게 퍼부어졌다.
이 정도로 유리한 상황이라면 네임드급이던 보스급이던 놈이 살아나갈 길은 없다.
그 뒤로 쭉쭉 밀려나던 적 전열이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둘로 나뉘었던 적의 모루 중, 우리가 덮쳤던 측면이 결국 패주해 사방팔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하자 김한성이 헌터 와치를 눌러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에 후군 전체가 적을 추격하다 말고 멈춰 섰다.
“남은 건 본대 쪽에서 처리하라 해.”
헌터 와치의 통신 기능을 켠 그가 텅 비어버린 적 본진으로의 진격을 선언했다.
“우리는 이제 점봉산으로 간다.”
돌아서는 지휘부의 뒤로는 화살, 창, 무기 따위가 잔뜩 꽂힌 상어 어인의 시체가 박힌 무기로 인해 제대로 눕지도 못한 채 쓰러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