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 설악산 전투
하늘에서 쏟아지는 폭격의 굉음이 전투의 시작을 알렸다.
과거 몇 차례의 대격변조차 견뎌냈던 설악산에 자행되는 무참한 폭력에 과거 한국전쟁 이후 꾸준히 여기 아름다운 산을 채워왔을 고목들이 아낌없이 파괴되고 있다.
“본격적이네요. 이 정도 폭격이면 저 아래쪽에서도 저희 움직임을 눈치챘을 것 같은데?”
지혜가 그 파괴의 현장에서 눈을 돌리고 싶었는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과거의 기억 탓인지 난 저 광경이 반가웠지만, 딱히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긴 했다.
“상관없어. 어쨌거나 작전 보고는 올라갔을 거고 설악-오대 라인에서도 한창 공세 중일 거니까. 위에서 폭격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면, 오히려 마음이 급한 건 저기 산 아래쪽 어인들이겠지.”
“아래쪽은 구룡 전선이라더군.”
옆에서 우리 대화를 잠자코 듣던 김한성이 툭 내뱉었다.
“전쟁이 길어질 기미가 보이니까 정식 명칭을 부랴부랴 정한 모양이야.”
서이수는 아군 피해를 줄이겠다고 최전방에 나가 있던 터라 우리는 김한성 본부장 옆에 딱 붙어있었다.
“작전에 큰 문제는 없겠죠?”
“저 밑에서 삽질해서 대패하면 산 위로 올라오는 적 지원군을 상대하긴 해야겠지. 하지만 그럴 것 같진 않은데. 구룡 전선 쪽 병력은 여유가 있거든.”
난 고개를 끄덕였다.
“금화랑 대한이 전부 이쪽으로 왔었죠.”
“그래. 서울에서 가까우니까. 서울과 양양은 동해안에서 거리가 가장 짧아. 강릉은 요충지지만, 그쪽 방면에서 몰려오는 건, 경로 상 수도권에 들어가기 전에 원주에서 치악산 끼고 막을 수가 있지.”
어떤 적의 침공에도 서울은 뚫리지 않는다. 아직은 여유가 있는 시기니 아무래도 그런 상징성인 거다.
김한성은 전술적인 부분에 관심을 보이는 지혜에게 몇몇 자료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그쪽에서 고개를 돌린 나는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향했다. 작은 모래골에 대기하던 적 병력은 자신들에게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포격에 당황했는지 우왕좌왕하고 있다.
익숙한 전쟁의 맛. 지난번 성벽 위에서 적을 밀어내는 방어전, 그나마도 지혜 덕분에 순식간에 정리해버렸던 그런 시시한 교전 수준과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병력과 병력이 직접 맞부딪치는 원시적인 대규모 백병전이 벌어질 것이다. 기억 속의 몹시 익숙한 피비린내가 환상처럼 코를 스쳐 갔다.
“진형 유지하며 대기!”
“전방 너무 긴장하지 말고! 어차피 놈들이 먼저 달려올 거다! 별것 아니야! 우리 숫자가 배는 많다!”
분대장 역할을 맡은 고위 헌터들이 외치는 것처럼 나름 신병에 가까운 헌터들이 있어 대규모 전장에 긴장하는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전장 자체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없다.
저 멀리서 급히 언덕을 타고 돌진해오는 어인의 모습이 보인다.
달려오던 병력은 보호막이 순식간에 벗겨지고 폭격에 산산이 조각난다.
인간과 어느 정도 닮은 점이 있는 지성체가 순식간에 쓸려나감에도 공황장애 따위에 빠지는 병사는 아무도 없다.
‘대전쟁 말기에는 그런 것 통제하는 것도 일이었지.’
괴물을 피해 살던 피난민 2세대는 후기 쉘터에 들어와 징집된 후, 전쟁을 겪어보지 못해 전쟁 공포증에 걸리거나 군법을 어기고 탈영해서 사라진다거나 하는 일이 참 많았다.
그러나 지금 시점에는 괴물과의 전투는 이미 민간인들조차 일상이다.
집안에 다들 개인 냉병기 정도는 다 보관해두는 세상, 도시에는 일정 지역마다 화기보관소가 자리 잡고 있다.
소집 경보가 발령나면, 괴물들 지겹다며 모두 냉병기 챙겨 들고 거기 보관해둔 자기 무기부터 찾으러 달려가는 시대였다.
인간이 괴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도 그때완 몹시 다르다.
‘그래서 더 아까운 거지. 인류가 수십 년에 걸쳐 완성해둔 대 괴물 체계가 순식간에 붕괴해버린 거니까.’
이런 정예화 된 군대와 전쟁에 익숙한 민간인 징집병도 대전쟁의 어느 순간부터는 거짓말처럼 없어졌다.
아포칼립스 세상이 되어 쉘터를 세우고 사회를 복구하며 사람을 모아서 징집하면 잘 싸우지 않겠느냐고 생각하지만,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런 무너진 사회는 어떻게 수습을 하더라도 절대 지금 같은 군사국가를 전쟁 수행능력에서 절대 따라올 수가 없다.
그 군사능력에 비견되는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신정국가 처럼 돌아가던 사이비의 광신도 쉘터뿐이었다.
그 생각을 할 때 쯤, 갑자기 머릿속으로 뭔가 알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더듬어봐도 그 근거가 뭔지 알 수가 없었다. 뭔가 기억이 비어있는 느낌이다.
난 고개를 젓고 생각을 다시 이어갔다.
‘불평할 처지는 아니었지만, 같이 싸워본 경험상 그건 그것대로 단점이 크지. 어쨌든 본격적인 아포칼립스 상태 되면 잘 해봐야 정예화한 게릴라 부대가 한계야. 절대 국가 체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유지해야 한다.’
군율은 사회가 강제하는 것이다. 전쟁이 끝난 뒤 돌아갔을 때, 나를 제재할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군율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게 가족이라는 압박이던, 연금 같은 복지던, 강력한 군대가 성립하려면 사회가 필요하다.
그게 무너진 아포칼립스에서는 이기심과 각자도생이 최우선이 된다.
‘그래. 질리도록 겪었지.’
그래서 국가가 남아있던 시절, 각 국가의 영웅 중 살아남은 사람들을 한데 끌어모아서 결사대까지 짜야만 했던 것이다.
‘적 우두머리가 쓰러지고 적이 수습하지 못해 공세가 주춤한 틈을 타 여러 쉘터를 묶어 국가를 다시 성립시키고 과거와 같은 체계를 잡을 시간을 벌기 위해서.’
물론, 내가 회귀의 이유를 모르는 것처럼 그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 내 눈앞에는 국가가 무너진 뒤로는 볼 수가 없던, 수천과 수천이 부딪치는 전장이 펼쳐지려고 한다.
* * *
그 전열의 최전방에 선 청수 길드의 E급 전위, 이지하는 산속을 방황하는 늑대들처럼 질서없이 달려오는 어인 보병을 보며 자신의 방패를 굳게 쥐었다.
‘할 수 있다.’
이지하는 자신이 있었다. 요즘은 항상 그랬다.
물론, 인생 자체에 자신이 없던 시절도 있었다.
그가 각성할 때의 등급은 등급 외.
각성 잠재력은 최대 E급 판정을 받았다.
사실상 헌터로서 제대로 살아가긴 힘든 등급이다. 물류 협회 교육과정에서도 받아주지 않던 처참한 현재 등급 탓에 짐꾼으로 커리어를 쌓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나름 각성자라고 불법으로 게이트 짐꾼이 될 필요는 없었지만, 이쪽 길도 엄연히 그런 종류의 자격증, 명함이 필요한 법이다.
결국, 이지하가 흘러들어가게 된 직장은 지방 공장의 관리직이었다. 그나마 내국인인데다 그 짧은 명함이라도 헌터는 헌터라고 받을 수가 있던 자리다.
‘사실 그게 그리 마음 편한 일은 아니지.’
그런 곳에서 관리직으로 일하다 보면 불법체류자나 난민의 절규를 코앞에서 보게 된다.
이지하는 그들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쨌거나 사람이고 그런 모습을 보게 되면 안타깝긴 했다.
최소한의 법적 보호와 복지 혜택은 받는 내국인 신분과는 달리 이들에겐 어떤 혜택도 제공되지 않는다.
산업재해, 근로시간 제한, 작업 환경보장 등의 복지는 전부 한국인 신분을 가진 사람에게만 보장되는 것이다.
다만, 국가에서 기업가들에게 최소한의 제약을 걸어 놓은 것이 바로 계약서고 구청에 가져다가 항의하면 사업이 정지될 수도 있기 때문에, 월급만은 보장해줄 뿐이다.
‘난 꼴에 헌터라 보통 사람보다는 강하다고 그런 사람들 처리하는 일을 한 셈이지.’
몇 푼 안 되던 그의 월급에는 그런 사람들의 눈물이 담겨있던 셈이다. 물론, 난민이나 불법체류자에 대한 여론은 좋지 않다. 그건 이지하도 마찬가지다.
‘뭐, 그러니 매정하게 그런 쫓아내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거지만.’
한국이건 아직 질서가 유지되는 어떤 나라건, 빌런들은 태반이 이런 무국적자 출신이다.
거기에 자국민들의 일자리를 뺏으며 최소의 고용 환경만 보장되게 만드는데 기여를 한다.
‘솔직히 빌런 같은 부분은 악순환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솔직히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여기저기서 나라가 무너지거나 위태롭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세계적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보편 인권은 언젠가 괴물을 다 몰아내고 생각할 일이다.
한반도라는 좁은 공간에 사람이 너무 많았다. 얼마 전, 집계상으론 수도권 인구가 비시민을 합쳐 3천만을 넘겼다고 한다.
인구가 많아야 국가 면적당 각성자 비율이 올라간다. 각성자가 늘어나고 대도시의 치안과 안정도가 올라간다. 반대급부로 지방의 치안은 떨어지지만, 뭐든지 대가가 있는 법이다.
그런 계산 탓에 사회에는 악영향인 걸 알면서도 불법입국을 크게 제지하지 않고 난민 신청도 받긴 받는다.
난민은 그나마 불법체류자보단 낫긴 한데, 초등 교육이 제공되는 것과 경쟁률 빡센 국가 토목공사에 투입될 수 있고 내국인과 결혼하면 영주권이 나오는 것만 다르지, 그것 말곤 그게 그거다.
‘그놈의 20년 군 복무는 그때까지 살아있는 경우가 드물다고 하니까. 그건 빼고.’
다만, 불법체류자건 난민이건 각성 뒤 신고하면 군에서 3년 복무할지를 묻고 시민권을 줬다.
이건 길드에 위임하느냐 군에 입대시키느냐만 다를 뿐이지 국가별로 전부 비슷한 제도가 존재한다.
‘각성 비율이 절대 낮진 않으니까. 그런 신분 상승의 여지를 열어 놓는 정도가 한계인 거지.’
진실이 어떻던 간에 그는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다.
어쨌건 이지하의 인생은 그랬다. 그런 스트레스 받는 일에 주 6일, 10시간 근무. 월급은 몹시 짜고 가끔 일요일에도 불려 가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이런 세상에서 연줄도 없고 머리도 좋지 않은 것 치곤 나름 성공한 셈이었다.
그의 처지에서 이보다 좋은 직장을 찾는다면, 억지로라도 게이트 물류업자 일에 붙어서 온갖 욕을 먹어가며 어떻게든 레벨 올려서 F급까지 찍거나 군에 입대하는 방법뿐이다.
그것도 아니면 헌터라는 점을 어떻게든 살려서 범죄조직의 간부를 노리는 수밖에 없다. 범죄조직원들은 어떻게든 끈끈하게 서로 키워준다고 하니까.
세가지 길 모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일이었고 이지하는 고작 지금보다 두 배, 세 배쯤 나은 삶을 살아보자고 목숨까지 걸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다가 죽을 거로 생각했다.
‘사실, 절대 들을 일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성좌의 목소리를 들었다. 절대 들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목소리였다.
어차피 더 나아질 것 없는 삶이다. 밑져야 본전이라 생각했고 퇴근 후, 그리고 주말마다 임무를 내리는 성좌의 명령에 따라가 봤다.
저 윗동네 사는 헌터들에 비하면 임무 최종 보상이라고 주는 것도 보잘것없는 잠재력에 걸맞은 애매한 특성과 장비를 줬지만, 성좌가 신경을 써준다는 건 그래도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길로 직장을 때려치웠다.
‘길드에 왔을 때, 확신했지.’
그 과정 중간에 성좌가 가입하게 했던 길드, 청수에는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이 길드에 오게 된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알았다. 그들의 성좌는 뭔가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이지하가 등급 외라는 처참한 판정을 벗어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등급이 모자란 탓에 성좌는 주로 군에서 저급 헌터들에게 주는 자질구레한 하청을 수행하게 했는데, 꾸준히 빌드 올려가며 성실하게 일하다 보니 자투리 괴물도 잡고 성좌의 보상도 챙기며 조금씩 성장을 할 수 있었다.
어쨌거나 받아준 길드가 있어서 소개받을 수 있는 일이긴 했지만, 아예 이런 방면의 헌터 일자리가 있는지조차 몰랐던 이지하로선 그 자체가 신선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군에서 슬그머니 등급 재측정과 입대 권유를 받았다.
‘내가 D급이 될 수 있다고?’
놀랍게도 잠재 등급 판정이 올라가 있었다. 키워준 성좌나 길드를 배신할 순 없었기에 군의 권유는 거절했다.
그리고 전쟁이 터졌고 그는 지금 여기 있었다. 목숨을 걸고 있지만, 과거에 위험한 선택을 피했을 때와는 뭔가가 달랐다.
‘그래. 난 할 수 있다. 와라, 생선대가리들아!’
믿음이 있었다. 뭔가 계획을 가지고 있을 성좌가 그를 못 이길 싸움에 밀어 넣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자신이 실수만 하지 않는다면 분명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방패!”
추가로 이어진 원거리 공격들을 운 좋게 피하고 우리 방향으로 달려오는 어인을 보곤 분대장이 짧게 외쳤다. 그는 E급 헌터다.
이지하는 주변에 같이 배치된 군인 각성자와 함께 일제히 방패를 들이밀었다.
방패 상단에 주문제작해 설치한 투명한 재질의 괴수 가죽을 통해 고등어를 닮은 어인놈이 자신을 향해 정면으로 달려온다는 걸 알았다.
이를 악다뭄과 동시에 뭔가 내리치는 충격, 그리고 우직하게 힘으로 밀어오는 압력이 느껴진다.
당장 그의 능력치보다 한 등급 높은 일반 괴물이었기에, 버텨내기 좀 버겁다.
“이지하! 계속 밀어! 옆에는 뭐해! 같이 도와!”
혼자서 상대할 땐 밀렸지만, 옆의 방패가 놈을 압박하며 같이 밀어내자 결국 세 명분 헌터의 힘을 버티지 못한 E급 어인이 뒤로 밀려나며 중심을 잃고 허우적댄다.
“됐다!”
옆 동료의 외침을 신호로 호흡을 맞춰왔던 세 사람은 약속한 것처럼 방패 사이를 살짝 벌렸다.
뒤에 서 있던 공격 임무를 맡은 전위 둘이 장창을 내질러 어인의 급소를 찔러간다.
간신히 치명상을 피한 어인은 이쪽이 안되겠다 싶었는지, 다른 곳을 노렸으나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두 번의 행운은 없었다.
그렇게 밀어내느라 약간 앞으로 나섰던 대열로 다시 복귀해 앞을 바라보는데, 분대장이 뭔가 위로부터 지시를 받은 모양인지 앞으로 나섰다.
“다 무기 들어! 대열 유지하면서 전진할 거니 옆 동료 상태 잘 확인하고! 자, 그럼 우리 최강 7분대, 준비됐으면 가자! 저게 다 돈이다!”
분대 중앙에서 검을 뽑아들고 함성을 지르며 돌진하는 분대장을 따라 그도 고함을 지르며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