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68화 (68/128)

7장 - 설악산 전투

아군 진영에 다시 합류하는 건 순조로웠다.

히드라가 물길을 따라 빠져나온 장소는 아직 적의 영역권인듯 곳곳에 적 병력이 눈에 들어왔지만, 점봉산 방면으로 급히 이동하는 중인지 기본적인 정찰조조차 제대로 운용하지 않는 것 같았다.

예상하기로는 전쟁이 이미 시작된 것 같다.

나는 전선으로 향하기보단 본대를 찾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아군 군단의 군진은 한계령 삼거리에 지어져 있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이 주변을 이미 싹 밀어냈다는 소리다.

정찰대원 중 점봉산에서의 난리에서 가장 먼저 복귀한 것이 나였는지, 본부 건물에서 기본적인 보고 절차를 마치자마자 바로 군단의 간부진을 만날 수 있었다.

내부에선 한창 지도를 펼쳐놓고 회의 중이다.

아주 좋다.

할 말이 확실하게 정리돼서 좋다는 소리다.

“살아왔네. 다른 녀석들은?”

“작전을 들어갈 때까지는 살아있었으니 문제가 없다면 돌아올 사람은 돌아올 겁니다. 자료에서 이미 보고를 드렸듯 이성훈 대장은 사망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래. 아까운 사람이 죽었네. 사촌 동생을 구하려다가 그랬다지? 유수화 팀장에게 들었어.”

“유수화 팀장은 무사히 귀환했나 보군요.”

“네가 보낸 2팀원도 무사해.”

워낙 연달아 일이 터지다 보니 팀원들을 손에서 놔버린 느낌이라 걱정이 됐는데, 참 다행이다.

“이미 보고서에 내용 대부분은 다 있으니 쓸데없는 설명은 필요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전 제안을 올리고 싶습니다. 대장 대리로 이번 정찰 임무에서 임무를 수행했으니만큼, 그 직책으로 충분히 자격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든 임무를 자처해서 수행했고 그럴 자격이 있다는 건 인정하겠지만, 이 상황에서 뭘 제안하고 싶다는 거지? 아군 군단의 작전은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다. 난 여기서 쓸데없는 뭔갈 더하고 싶진 않은데?”

서이수의 옆자리에서 흘러내린 안경을 고쳐 쓰는 남자는 금성의 본부장을 맡은 A급 헌터, 김한성이다.

그는 거의 S급이나 다름없다는 평가를 받는 인물로 대전쟁 시기로 가도 안정적으로 A급 헌터일 것이다.

“한성! 들어는 보자고! 여러 의견을 들어둬서 나쁠 것 없잖아?”

서이수가 내게 발언을 허락했고 나는 곧바로 이 자리에 폭탄을 던졌다.

“여기서 이렇게 없는 적을 상정하며 체스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당장 점봉산으로 일점돌파를 해야 합니다.”

“그건 좀 흥미로운데. 이유는?”

나를 무시하며 저들끼리 이야기 중이던 간부진의 시선이 그제야 전부 내 쪽으로 집중되었다.

“전체 병력 상으로는 적당한 우세일 뿐이지만, 고위 전력의 평균에서는 압도적으로 우위기 때문입니다.”

“압도적이다? 그건 좀 이상한데. 유수화 팀장이나 네 보고서 내용에 따르면 놈들에게는 특급 네임드와 보스가 하나씩 있었어. 놈들 체급이 대개 우리의 두 배인 걸 고려하면 적어도 전력에서 세 배는 앞서야 해.”

“그런 동굴 같은 지형에서 특급 인간형 네임드는 특급 대형 괴수보다 까다롭다. 어떨 때는 특급 대형 보스급보다도 까다로울 때도 있지.”

발언권이 가장 강한 두 사람 외에도 원탁에 앉아있던 간부진 대부분이 보고로 올라온 정보를 가지고 각자 한마디씩 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말을 잠자코 들었다. 이들은 전부 상급자고 일단 전부 들어줘야 자존심이 상하지 않으니 혹 무작정 반대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돌파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점봉산의 보스는 나가족의 전술병기인 ‘정령군주’를 소환하려고 시도하는 중입니다. 그것을 위해 인간을 인신 공양하고 있고 시간이 지나면 구할 수 있던 사람들이 더 죽어나갈 겁니다.”

“음···.”

“곧 돌아올 정찰대원들도 똑같이 보고할 겁니다. 혹 제 입을 막는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네 입을 막고 우린 못들은 거라 하더라도 돌아오는 사람들이 같은 보고를 한다면 결국 지금 보고도 재조명되겠지. 뭐, 그럴 생각도 없지만.”

약간 도발에 가까운 내 발언에도 간부진의 표정은 담담해 보였다.

‘금성 쪽은 대충 이런 분위기인가?’

몇몇 중견 길드의 길드장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금성이 과반수였는데 대체로 냉정하고 침착한 분위기다.

지금도 그저 전술병기와 정령군주라는 말에 혹 게이트에서 비슷한 사례가 있는지 자료를 찾아보는 몇몇 참모들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건 필요성일 뿐. 그런 무모한 돌격을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있을 텐데? 나중에 비난을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건 국난이고 우리는 가능한 최선의 작전을 펼칠 필요가 있다.”

“한성이 말은 이미 상철 아저씨하고 강릉 본군에 사후보고에 가깝게 도박수인 작전을 하나 던진 상황이라는 거야. 원래 이런 도박은 한 번은 성공할 수도 있지만, 여러 번 반복되면 실패하게 되어 있거든.”

”그렇기에 변수를 최대한 배제하고 안전하게 공략하는 거다. 네가 말할 이유가 그게 전부라면 우리가 작전을 바꿀 이유로는 불충분하지. 정찰대에는 S급이 하나만 잡혔지만,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며, 전력을 보존하는 데 집중하고 침착하고 안전하게 전술을 운용한다.

‘딱 내가 원하는 인재들인데.’

여기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대전쟁 때는 이미 죽고 없는 사람들이라는 게 아쉬울 정도로 훌륭한 자세다.

그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도박수에 가까운 시도를 연발하면서 인류가 결정적인 패배를 하게 된 전투가 분명 몇 번씩이나 있었다.

김한성의 말대로 실제로 지하에 S급 네임드가 하나 더 있었으니, 지휘부의 판단은 정확하다.

혹여 정찰대가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하고 돌아왔어도, 이런 자세라면 내버려둬도 이곳의 적 군단 만큼은 전부 괴멸시키긴 했을 것이다.

다만, 전략병기의 소환이라는 변수를 고려하면 어찌 돌아갔을지는 모르겠다.

“현재 점봉산에 남은 적 고위 전력은 A급 네임드 둘에 특급 보스 하나뿐입니다. 그나마도 특급 보스는 우리가 제때에 들이친다면 선택을 해야겠죠.”

타이밍 잘 맞춰서 공격한다면 정령 소환이 이뤄지는 도중에 보스에게 들이칠 수도 있다. 그럴 때 보스가 온전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그 정도는 여기 있는 모두가 충분히 알 수 있다. 내 입에서 나온 폭탄발언에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옆에서 펜을 돌리던 다른 간부 하나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그 선택이라는 건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적 전력이 그것뿐이라는 건 무슨 말이지? 올린 보고서에 빠진 것이 있단 뜻인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확한 방법은 밝힐 수 없지만, 점봉산 지하에서 특급 네임드 둘을 죽였습니다.”

그 방법까지 알리려면 내 직업과 트라바슈르와의 상세한 대화까지 전부 밝혀야 한다.

“김유성. 당신이 잠깐은 A급에 달하는 힘을 낼 수 있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특급 네임드 둘은 도저히 믿어주기가 힘들군.”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 있던 ‘규격 외’로 분류해야 할만한 보스급 나가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그의 도움을 받아서 죽인 겁니다.”

“규격외급?”

“스스로를 ‘나가의 왕’이라 밝혔고 잠입 도중에 구해낸 헌터들과 대화까지 시도했던 걸 확인했습니다.”

이번 말만큼은 충격적이었는지 몇몇 간부진이나 정부 소속인 군 장성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까지 했다.

“그런 신분의 지성체 괴물이 우리에게 대화를 시도했다고!”

“너무 크게 생각할 건 아닙니다. 단순히 탈출을 위해 저희를 이용하려 했을 뿐, 갇힌 우리에서 벗어나자 꽤 고압적이게 굴면서 대화도 거부했으니까요.”

“이것도 마찬가지로 돌아오면 똑같은 증언을 들을 수 있겠지?”

그 추궁에는 난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적의 적은 아군이다. 뭐, 그런 거네.”

서이수는 깔끔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 나가가 특급 둘을 죽인 거고?”

“비슷합니다. 거기에 거기 있던 A급 대형 괴수 하나에 타고 빠져나갔죠.”

“그러면 그 나가는 지금 어딨어?”

“저희 탈출을 도운 뒤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특급 둘을 죽이는 과정에서 설명하기 힘든 건, 제 성좌님과 좀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만 보고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우리의 승리 후,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 과정에서 애매한 점이 있겠지만, 저 정도 설명이면 대부분은 수긍하고 넘어갈 거다.

“그래서 조금 희생이 있더라도 고위 전력을 앞세워 쐐기진으로 점봉산으로 직행하자는 말을 한 거네.”

“적에겐 지금 거기에 맞설 장수진이 모자라니까요.”

“그러면 특급 보스전하고 암살자 하나만 상정하면 되겠는데. 그치?”

“그렇겠죠. 그 암살자도 우리가 뭉쳐서 전진하면 어쩔 수 없이 돌아올 겁니다. 그럼 정리해보죠. 정찰대가 수집한 정보로는 예상되는 적 진형은 이런 식이겠죠.”

김한성 금성 작전본부장은 지도에서 적 보스로 여겨지는 말 몇 개를 치운 뒤, 익숙하게 적 병력을 재배치했다.

“그 정도로 적 고위 전력이 부족하다면 포위 섬멸은 배제합니다. 그 상태에서 시간을 벌고자 한다면 아군 쐐기 돌파를 항상 염두에 둬야 할 테니 적 병력은 전열을 세우기보단, 길을 조금씩 내준 채 거점방어를 할 겁니다.”

적이 지형 상 유리한 거점을 쥐고 그냥 통과하면 군단의 옆구리를 끊겠다고 위협할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진형에서 작은 모래골 방면이 적의 비수군요.”

지도를 본 내가 추임새를 넣자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강을 끼고 수비하다 밀고 올 아군의 옆구리를 치려는 작은 모래골의 적 2 군단이 비수죠.”

“등선대 앞쪽 십이담 계곡에 모여서 아군을 저지하겠다는 거네. 일부러 후퇴하는 척하면서?”

“일부러는 아니죠. 실제로 밀리는 게 사실이니까. 저쪽도 나름 필사적일 겁니다. 추가로 점봉산에서 특수부대를 운용할 수 있습니다. 그 경우, 필례로 방면에서 전진하는 아군 좌측 지휘관을 기습하는 저격수나 소수 기병대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 진형대로면 없는 병력 가지고도 어떻게 모루랑 망치가 되긴 하겠네.”

“예. 그게 최선이죠. 다만, 이것도 이딴 급한 상황에서조차 침착하게 전장을 넓게 볼 수 있는 지휘관이 있다는 가정하에서입니다. 병력 우위를 잡고 여유 있게 군을 운용 중인 우리하곤 아마 상황이 많이 다를 겁니다.”

“만약 A급 암살자가 온다면 특수부대 쪽이겠군?”

옆에서 군 장성도 한마디 보탰다.

하필 그가 상대적으로 적 병력이 적은 좌측을 맡고 있었고 그런 암살에 가장 취약한 비각성자 지휘관이기에 발견되었다는 암살자가 거슬리는 것 같다.

“예. 그 외에는 상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장군님도 그리 걱정하실 필요는 없을 겁니다. 상어 어인은 우릴 저지하는 최전방 돌격대에 배치될 것이고 김유성 팀장이 말한 대로라면 적 암살자는 점봉산의 주술사를 지킬 테니까요.”

“왜지?”

“여태 조사된 적의 사회를 보면 철저한 계급 구조인데, 어인 중 강자라고 해도 엄연히 나가 지휘관의 명령을 받아야 할 처지죠.”

“아, 그러니 개인 판단으로 단독 행동은 없다는 거군.”

“예. 제가 소환을 준비 중인 나가 주술사라면, 그 정도 수준의 암살자는 점봉산 주변을 경계시켰을 겁니다.”

문어 대가리를 한 체스말이 점봉산으로 이동한다. 예측이지만 아마 정확할 것이다. 소환을 준비중인 나가 주술사로선 지금 가장 급한 정보가 시간이다.

자신이 소환을 마무리할 수 있을지, 그만둔다면 언제 그만둬야 하는지 그 정확한 타이밍을 알려면 그나마 믿을만한 전력을 주변 경계에 쏟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역할에 가장 알맞은 건 발견되었던 A급 문어 어인이다.

“김유성 팀장. 들어온 김에 중간에 확인한 아군 전력, 그리고 흩어져 도주한 인원들의 예상 경로들을 좀 지도에 표기해주시죠.”

“알겠습니다.”

결정을 내린 지휘부의 판단은 제비처럼 빨랐다. 김한성과 서이수는 군을 총 셋으로 나눈 뒤, 대부분의 병력을 사선으로 쭉 늘어서는 진형을 펼쳤다.

그리고 군 병력은 중간으로 옮겨서 포격을 퍼붓게 하며, 그 두 줄의 벽 옆으로는 아군 최정예가 세워지는 벽을 따라 전진을 준비시켰다.

‘이러면 정보와 진형에서 먹고 들어가는 구도다.’

이렇게 사선으로 진형이 세워지면 적 본대는 전환해서 망치가 되어 사선 끝부터 공격하고 작은 모래골의 비수가 역으로 모루가 되어야 한다.

이러면 작은 모래골 방면의 적 병력이 분명히 먼저 무너진다. 이쪽은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로 싸우는데 비해, 모루역할을 하려던 적 본대는 늘어져 있었을텐데 그걸 일순간 모으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설령 어렵사리 모은다고 해도···.’

그런 기미가 보이면 결사대로 벽을 타고 이동하던 아군의 최정예가 목표를 전환해 모인 적의 옆구리를 치면서 진형을 파괴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적 심장부를 향해 출정하면서 서이수는 이번엔 나하고 지혜를 총지휘부의 말석에 포함시켰다.

“자, 레이드 지휘부 경험도 해보면 꽤 재밌을 거야! 잘 가르쳐줄게. 물론 지금은 군대지만, 게이트 공략 지휘부도 어차피 이거랑 크게 다를 건 없어.”

“마스터. 레이드 지휘는 원래 대부분 제가 하지 않습니까?”

“저 말대로 나야 보스 레이드가 시작되면 최전방이겠지만,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김한성 본부장이 잘 가르쳐줄거야.”

옆에서 김한성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바라봤지만, 서이수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그냥 씹었다. 그런 길마의 허세가 하루 이틀이 아닌지 다들 그러려니 하는 표정이다.

“저희야 거절할 이유가 없죠.”

안전하며, 경력에도 엄청난 도움이 되는데다 공헌도까지 높다.

이런 걸 거절하면 바보다.

물론, 레이드 지휘부는 언제든 예비대나 특수임무를 맡아서 조를 이뤄 보스전에 참가해야 하긴 했지만, 워낙 전력에서 앞서는 전투다.

긴장하거나 무리하지만 않으면 될 것이다.

특공대라기엔 좀 큰 병력이 보급품을 챙기고 진격할 준비가 끝나는 것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후 펼쳐진 전황은 정확히 김한성이 예견한 대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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