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66화 (66/128)

7장 - 설악산 전투

나가의 손에서 창이 떨어지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이 슬로비디오라도 틀어둔 것 마냥 흘러간다.

‘날붙이를 정말 못 쓴다더니···.’

놀랍게도 S급 네임드 나가가 던지고 있는 건 목창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은 문제도 되지 않을 정도로 그 기운이 몹시 흉험했다.

저 정도면 그저 목창은 나아가는 것을 거들 뿐, 실제로 쏴 날리는 건 창을 뒤덮고 있는 저 거대한 마력 덩어리다.

지난번에 만난 암살자, 김도유가 왜 저 네임드가 있는 곳에 들어가는 걸 미친 짓이라 말했는지 알겠다.

‘이건 고작 B급에서 막을 수준이 아니잖나.’

최소 A급 상위권 전위가, 좋은 장비를 떡칠하고 앞에서 막아줘야 하는 일격이다. 그리고 그런 것이 앞으로 세 번이 더 남았다.

난 선택의 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주시자의 눈을 써서 도망치느냐, 아니면 그걸 써 보느냐.

‘효율은 또 똥망이겠지.’

안다. 뻔한 이야기다. 다른 기술들이 그랬듯 명성 투척의 효율도 아주 끔찍할 것이다.

여태 별의 투자자 전용 기술들이 키우는 데 들어갈 점수보다 대략 한 단계 정도 높은 위력을 예상할 수 있었으니 대충 짐작하기에는 천만 정도를 때려 박으면 A급 기술 정도의 위력이 나올 거다.

‘1억 전부를 퍼부으면 가능성이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고작 유의미한 일격 하나 먹여본다고 그런 미친 희생을 치르느니 다 버리고 튈 것이다.

하지만 천 만 정도면 한 방 정도는 막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섰고 그 정도 소모로 여기 인원을 살리고 탈출기를 아낄 수 있다면 절대 나쁘지 않다.

‘한번 해보자. 잠깐은 시간을 벌어주겠지. 밀리는 것 같다면 그때 내빼도 늦지 않는다.’

마음을 정하고 작게 기술명을 중얼거리자 내 손이 있는 자리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B급 각성자 하나를 키워낼 수 있는 점수, 천만이나 되는 명성 점수를 빨아먹은 기술은 예전의 집중하지 않으면 기운조차 느껴지지 않던 그런 동전이 아니었다.

그러나 내 손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투입되는 금액에 따라 기술의 모습도 변한다?’

손바닥 앞, 허공에 생긴 마치 블랙홀 같은 구슬이 사방으로 검은 전광을 뿜는다. 그것은 1초도 안 되는 시간마다 한 번씩 맥동한다.

한 번 파장이 뿜어져 나갈 때마다 몸을 저릿하게 만드는 파동이 나와 주변 동료의 몸을 통과해갔다.

“저거···?

“뭐야?”

“특수 빌드인가···.”

내 옆을 스쳐 가던 헌터들이 반사적으로 한마디씩 흘린다.

그러나 그런 여유를 부릴 틈은 없다. 그러는 사이, 나가는 창에서 손을 뗐고 내 손도 빠르게 아래에서 전방으로 올라갔다. 모두 금방 내 쪽에서 시선을 돌리고 도망치는 데 집중했다.

올라간 손에 뻗은 손바닥 앞에 만들어진 포탄 같은 것을 확인했는지 놈의 시선이 이쪽으로 향했다.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친다. 놈의 눈은 부릅떠져 있었다.

물론, 서로의 생각을 파악하거나 관찰할 시간 따위는 없다.

나는 순간이동 하듯 지근거리까지 날아온 창을 보며 곧바로 구슬을 던져야겠다고 생각했고 시전 바는 내 의지를 따라 바로 사라졌다.

그렇게 손에서 떠날 줄 알았던 구슬은 슬링 샷이나 총알처럼 발사되는 것이 아니라, 안쪽에서 검은 섬광을 전방으로 뿜는다. 그리고 내 발은 동굴 바닥을 깨부수며 쭉 밀려났다.

뭔가를 느꼈는지 두 번째 창을 던지려던 나가의 동작이 변한다. 놈은 그걸 집어던지는 대신 회수하고 손에 들린 무기들을 일제히 회전시키기 시작했다.

놈이 선택하던 때, 우리를 향해 날아오던 첫 번째 창과 검은 섬광이 붙었다.

붉은 유성처럼 날아오던 나가의 마력 창과 맞부딪친 검은 섬광은 탐욕스럽게 집어삼키는 것처럼 그 겉면을 타고 흘러간다.

양쪽 벽면에는 괴수의 손가락으로 파낸 것처럼 패인 상처가 새겨졌다.

‘설마 이기나?’

특급 네임드가 쏘아낸 창은 명성 탄환의 힘이 버거운 건지 허공에서 더 나아가질 못했다. 그리고 허공을 점유한 채 한참 동안 이어진 대치에서 승리한 것은 놀랍게도 내쪽이었다.

‘이거 내 생각보다···.’

강력하다. 물론, 저쪽에서 사용한 것이 제대로 된 장비가 아니다. 네임드 나가에겐 여러 페널티가 걸렸고 저게 고작 평범한 공격에 가까운 건 감안을 해야겠지만, 그래도 거의 일반적인 S급 기술에는 필적하는 것 같다.

‘명성 천만이면 특급의 힘에 약간 못 미치는 일반 기술 하나인가. 당연히 자주 쓰지는 못하겠지만···.’

당장 능력이 안 되는 상태에서 구명을 위한 수로는 유효할 것 같다.

여전히 기운은 뻗어 나가고 있지만, 힘을 다 쏟아냈는지 구슬은 어느새 내 손바닥 앞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보며 발걸음을 돌렸다. 다른 각성자들은 이미 저 멀리 빠져나가고 있다.

나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뭐라 고함을 친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 갈림길에서 꺾어 도망치기 전, 잔여 명성의 섬광에 대응하는 나가의 모습이 시야 너머에 스친다.

놈은 그 여덟 팔을 모두 휘두르는데 그중 단 하나의 무기도 서로 거슬리지 않도록 자신의 창을 회전시키며 철벽처럼 전방을 막아내고 있었다.

‘진짜 괴물 맞네.’

나가가 휘두르던 그 보잘것없는 목창들은, 제 주인의 인도에 따라 코앞까지 날아온 검은 죽음의 빛을 회를 뜨듯 잘라낸다.

그리고 그 잘라낸 것을 하나씩 주변으로 쳐내고 있었다. 그건 거의 신기에 가까운 기예다.

‘그리고 저게 특급 인간형.’

지난번 마주친 해룡도 특급이었지만, 그건 대형 괴수라서 기량에서 완전히 압살당한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었다. 좀 버거운 괴수의 레이드를 한다는 기분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인간형 특급은 보스도 아니고 네임드인데도 받게 되는 감상이 다르다. 감상을 뒤로하고 한참 도망치자 멀리서 나가가 추격해오는 소리가 귀에 잡힌다.

나를 제외하면 다들 은신 상태였으니 선택지가 여럿이었다.

왔던 길 방향으로 쭉 돌아나간 나와는 달리 다른 헌터들은 생존률을 올리기 위해 이리저리 뒤섞여 얽혀있는 여러 통로로 흩어져서 달아났다.

그래서인지 네임드의 목표가 내 쪽은 아니었다.

저 정도 되는 괴수가 날 놓쳤을 리는 없으니 내가 보여준 것 때문에 수를 줄여놓지 못할 바엔 차라리 다른 쪽을 추격해서 최대한 죽이고 빠져나가는 이들은 밖의 병력이 추격하게 하려는 것 같다.

한참을 달려 트라바슈르가 있는 연못으로 돌아오자, 허공에서 나와 같은 방향을 택했던 일부 헌터들이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갔던 일이 안 풀린 모양이로군.]

“나가라자. 빠져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실력으로는 도저히 상대하기 어려운 자가 하나 있습니다.”

[그런가? 타즈샤르를 호위할 전사를 많이 뺄 수는 없었을 테니, 강자 하나가 남았었겠군. 그것이 활을 쓰더냐?]

“아닙니다. 창을 던지더군요. 감각이 좋은지 백 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은신을 발견하는 자인데, 아십니까?”

트라바슈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감각이 좋은 것이 아니다. 내가 짐작하는 놈이라면 은신을 간파하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지. 타즈샤르의 옆에 있고 창을 쓰며, 은신을 간파한다면 축복받은 대전사. 티안슈겠군.]

“도망칩시다! 다수의 간수에게 쫓기는 중이요!”

두 갈래로 나뉘어 떠났던 반대편 길에서 급히 이쪽으로 튀어나오는 각성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뒤에서 쫓아오는 수많은 기척은 내 감각에도 잡혔다.

“이성훈 대장은 어떻게 된 겁니까!”

내가 본대의 A급 각성자를 발견하고 소리치자 그가 우울한 눈동자로 고개를 저었다. 반응을 보니 그는 이미 죽은 것 같다.

[더 기다릴 순 없겠군. 가자!]

그의 말대로 이제는 운에 맡겨야 할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트라바슈르는 내 목덜미를 붙잡곤 뱀 특유의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으로 히드라의 위에 올라탔다.

‘그런데, 이 덩치가 나갈 수 있나?’

거대 괴수가 다니기엔 길이 좁지 않을까 했는데, 괴수가 택한 길은 동굴 방면이 아니라 연못 밑바닥 쪽이었다.

뒤늦게 그 광경을 봤는지 각성자들이 돌아서 연못 속으로 들어오려 했지만, 나가 왕은 한 차례 기세를 뿌리곤 그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지적했다.

[물속에서 나가를 이길 자신이 있다면 따라오도록. 신수는 절대 자격 없는 자를 태우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상태의 짐이 들고 지키며 나아갈 수 있는 짐덩이는 고작 해봐야 이자 하나뿐이지.]

헌터들은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곤 밖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 말은···. 연못 통로에도 나가들이 있군요.”

이쪽도 나가는 길이 편치만은 않겠다.

[우리 종족은 물속이 뭍보다 친숙하니 당연한 일이다. 그러고 보니 너희 인간들은 물속에서 숨을 쉴 수 없었지. 나갈 동안 참을 수 있겠느냐?]

“얼마나 걸립니까?”

[모른다. 짐이 신전 설계도를 본 것도 아니지 않으냐? 알 수 없지.]

각성자가 버틸 수 있는 한 호흡이 보통의 사람에 비해선 엄청나게 길긴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다.

물속에서 전투라도 벌어지면 아껴둔 산소가 순식간에 사라질 수도 있는데,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 물속에 무작정 들어갈 순 없다.

그럼에도 트라바슈르가 나를 들고 온 것은 내게 방법이 있을 거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잠시 후, 공간을 찢고 기묘한 장신구 하나가 내 손에 떨어졌다.

바로 목에 걸고 보석을 누르자 주변의 공기를 순식간에 빨아들인다.

“가죠.”

나는 그리 말하곤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곧장 물속으로 잠수한 히드라가 나가나 어인들이 공사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지하수로를 헤엄쳐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여기저기로 뚫려있는 구멍 속에서 나가나 어인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놈들은 바로 달려들지는 않았지만, 나가라자의 모습을 보고도 뭐라 소리칠 뿐, 두려워하는 기색이 아니다.

일부 지휘관으로 보이는 이들이 앞장서고 쐐기 형태로 거리를 유지하며 우리 뒤쪽에서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꼴을 보던 나가 왕은 모골이 송연해지는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리 오랜 세월 군림했건만, 백성이 짐을 잊어가나 보군. 그래. 짐의 권위도! 공포도 말이다!]

순식간에 헤엄쳐 신수의 머리 위로 올라간 트라바슈르가 가볍게 툭툭 치자 히드라가 헤엄치던 걸 그만두고 멈춰서 나가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 모습에 쭉 따라오던 나가들도 일제히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나를 허공에 던져 둔 나가의 왕은 뒤편에서 반대로 흘러오는 지하수의 흐름을 향해 손을 뻗었다.

[우리 나가는 물속에서 가장 강하다! 연자여, 너는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을 것이다. 너희 인간들이 절대 우리를 물 속에서 이길 수 없는 이유를!]

아니. 그건 아주 잘 알고 있다.

그 부산 대침공 때, 서울 방면에 보낸 전략 병기가 오히려 주공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간 방어전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그걸 막으러 갔던 상위 랭커들이 그 물바다 속에서 하루아침에 증발해버렸기 때문이다.

트라바슈르가 휘젓는 물의 움직임이 점점 광포해진다.

그리고 코앞에서 지켜보게 된 그 모습은 장관이었다.

물의 흐름은 소용돌이치다가도 변덕스레 한쪽을 몰아치는 물속의 태풍이 되기도 하며, 어떨 때는 수압의 칼바람이 되어 몰려있던 나가나 어인들의 뼈를 가르고 살을 찢는다.

일부 주술사로 보이는 나가들은 자신 앞의 물의 흐름을 건드려 그걸 흘려내고 있지만, 트라바슈르가 다루고 있는 힘의 크기와는 비교가 안 된다.

정면에서 붙었다면 이쪽이 상대조차 되지 않았을 숫자였다.

하지만 지친 표정의 나가 왕이 연주하듯 건드리던 물의 흐름을 놓았을 땐 수많은 나가가 기절한 채 물의 흐름을 따라 흘러가거나 벽면에 부딪힌 채, 대부분 전투불능이 되어 있었다.

[더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아라!]

그 위용을 겪자 버텨낸 해류족들도 머뭇거렸다. 그렇게 히드라가 여유롭게 몸을 돌리고 내 몸을 다시 붙잡은 트라바슈르도 통로 방향으로 돌아서려던 그때, 멀리서부터 엄청난 속도로 뭔가 날아왔다.

[하하, 우리의 겁쟁이 왕이시여! 어딜 그리 급히 가시렵니까?]

그건 화살이었다. 물을 때려 그 경로를 비껴낸 트라바슈르는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그는 히드라를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고 히드라는 이전과는 비교되지 않는 속도로 달리 필사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나가의 왕이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며 내게 경고했다.

[티안슈와 타나리사 남매다. 방금 병력은 짐의 힘을 빼기 위해 미끼로 쓴 것이다. 저들 정도 되는 전사의 합공은 지금처럼 맨몸으로는 힘들지.]

거기에 지금처럼 힘을 쓴 상태로는 더 어렵다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안다.

[네놈을 지킬 수 없을지도 모른다. 빠져나가는 동안 긴장을 늦추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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