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62화 (62/128)

7장 - 설악산 전투

몸이 피투성이일 뿐, 유수화의 팔 절단면은 은신처에 남겨둔 힐링팩을 썼는지 지혈되어 있다.

다만, 그것만으로는 치료하기 어려운 다른 부상이 더 있는지 우리를 보고도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했다.

“내 꼴이 말이 아니게 됐네.”

“어떻게 된 겁니까?”

“그보다 난 양양 쪽 상황부터 듣고 싶은데? 뭐, 대충 예상은 가지만.”

“양양에 적 군단은 없습니다.”

나는 곧장 캠의 데이터 칩을 꺼내 은신처에 남겨둔 재생 장치에 꽂아서 그녀가 볼 수 있도록 틀었다.

“그렇겠지. 전부 여기 설악산에 있으니까.”

“본대는 궤멸한 겁니까?”

“궤멸만 말한다면 예스. 다 죽었냐고 묻는거면 노. 그보다 여기 은신처 들어오면서 봤지? 그거 혹시 다 죽이고 들어온 거야?”

이 한계령 삼거리 주변을 말하는 거면 어인이 쫙 깔렸다. 그래서 지금 파티원 전원이 엄청난 의문을 품고 숨어든 참이다.

이런 상황에 뭘 건드리고 싶지가 않았기에 은신을 사용했고 김지성도 융통성 있게 그에 동의했다.

“아뇨. 뭔가 심상치 않아 보여서 전원 은신이나 동화 사용해서 들어왔습니다.”

“그건 잘했네.”

그 말이 의미하는 건 뻔하다.

“추격당하고 있군요. 대체 뭘 하다가 이렇게 된 겁니까?”

전부 정찰 임무를 쭉 맡아온 베테랑들이다. 그런 팀이 제대로 도망조차 치지 못해서 흩어져 달아났다는 말인데, 뭔가 무리한 게 아니라면 이건 도저히 말이 안 됐다.

“설악산에 사람이 대규모로 잡혀 있어.”

“아니. 설마 그걸 구하겠다고 들어간 겁니까?”

그녀는 내가 어처구니가 없어 하는 건 아랑곳하지 않고 뭔가 더 설명할 것이 있는지 침착하게 말을 이어갔다.

“뭔가 제물로 쓰려는 건지 점봉산 쪽에 끌려가고 있었는데, 따라가 보니 어인 놈들이 계곡 따라 설악산 내부에 동굴을 뚫어놨더라. 우리가 본 돌 나르면서 건설하던 그 모습은 전부 산에 건축하고 있던 거야.”

“버릴 건 버려야 합니다. 본대를 구성한 선배들이 그걸 모르는 분들은 아닐 텐데요.”

잠시 침묵으로 두 팀장 간에 이뤄지던 대화가 끊기자 잠자코 있던 김지성이 툭 내뱉는다. 뭔가 근거가 있었으니 덤벼든 게 아니냐는 뜻이다.

그 말대로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사람 목숨이야 당연히 구하고 싶은 게 당연하지만, 그 많은 민간인을 여기서 전부 구해낼 방법은 없다.

오히려 구한다고 뭔가 하면서 인제 군단이 구하는 것보다 더 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런 건, 곧 벌어질 군단 간의 승부에 맡겨야 하는 거다.

김지성에게 고개를 돌린 그녀가 내뱉었다.

“가능성도 일리도 있었으니까.”

“가능성이요?”

“그래. 포로로 잡혔을지는 몰랐는데 각성자들 전부 안 죽이고 가둬뒀더라. 일단, 뭔가 수작을 부리기 위해 사람을 붙잡아 두는 건 분명하잖아?”

그게 뭔가의 제물이라는 건 누구라도 쉽게 연상할 수가 있다.

“각성자와 사람들 풀어줘서 혼란을 일으키면 놈들 의도를 분쇄할 수도 있고 충분히 탈출할 수 있다고 본 거지. 물론, 반대한 사람도 많긴 했는데 그럴만한 사건도 있었어.”

“아! 그건 뭐 때문이었을지 짐작이 갑니다.”

김지성이 탄식을 터뜨렸다.

“그래. 거기 있더라. 우리 대장 사촌 동생. 아니, 거기서 그걸 어떻게 말리냐고.”

“그렇겠죠. 누구라도 두고 가고 싶지 않았을 겁니다.”

“따로 지시는 없었습니까?”

나는 유수화 팀장에게 대장으로부터의 전언을 물었다.

“이성훈 대장이 혹시 너희에게 남겼을 만한 전언을 말하는 거면 그런 건 없어. 그저 일 틀어지니까 각자도생하라는 게 마지막 명령이고.”

“그렇다면 여기 살아남은 정찰대는 제가 지휘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뭔가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군요. 우선 유 팀장님께서 습득한 정보부터 말씀해주시죠.”

그렇다면 현재 정찰대의 진퇴는 내가 결정해야 한다.

1팀장과 나는 같은 직급이니 기본적으로는 둘이 토의해서 결정해야 하지만, 그녀는 전투력이 급감한 상태고 휘하 병력도 지금은 없다.

즉, 2팀이 현 정찰대의 주력이 되었으니 정찰 본대의 대장이나 부대장을 다시 만나지 않는 한, 여기 모인 부대 운용의 결정권은 내게 있었다.

“목표였던 특급 보스 존재는 직접 확인하진 못했어. 하지만 아마도 있겠지. S급으로 추정되는 네임드 한마리랑, A급 최상위로 예상되는 놈을 셋이나 확인했으니까.”

그 말을 듣자마자 김지성이 나를 바라보며 재촉했다.

“팀장님. 고민할 게 있습니까? 이 경우는 본대로 돌아가는 게 답입니다.”

“김지성 부팀장. 은신과 동화를 이미 사용했으니 어차피 우린 여기 꼼짝 없이 세 시간은 잡혀 있어야 해. 내가 양양에서 한 짓을 생각해봐.”

가장 대기시간이 긴 팀원의 은폐 기술의 재사용 시간이 돌아올 때까지 세 시간이 남았다. C급을 일단은 여기 두고 간다면 두 시간 정도 필요할 것 같은데, 시간이 슬슬 아슬아슬할 거다.

양양의 적들도 어쨌거나 이쪽에 전령을 보낼 테니까.

“···곧 주변 경계가 더 삼엄해지겠군요.”

만약, 은신을 쓰지 않고 우리가 이 은신처를 빠져나가게 되면 유수화 팀장은 높은 확률로 죽는다. 그걸 유수화도 잘 아는지 그녀는 우리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기책으로 복귀 시간 맞춘 건 아주 훌륭하긴 한데, 과격한 수단을 쓴 탓에 발목이 잡힌 거네.”

내 캠 영상을 봤으니 그녀도 뭘 말하는지는 안다.

“그 발목 잡는 당사자라 좀 미안하긴 한데, 여기서 ‘나는 괜찮아’ 같은 말을 하면서 희생하면 멋지긴 하겠지만, 나도 살고는 싶으니까. 좀 봐줘.”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대의라는 명목으로 죽일 생각은 없습니다. 고작 두 시간을 벌겠다고 그런 짓을 하는 건 누가 봐도 심한 짓이니까요.”

그 두 시간은 유수화가 전해주는 정보를 확인하고 침착하게 회의하는 시간으로 써먹는 수밖에 없다.

“대장. 지금 점봉산 방면으로 가시려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 부팀장, 현주 그리고 민석까지. 넷은 점봉산으로 갈 겁니다.”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만···.”

김지성이 의문을 제기하는 것처럼 정상적인 판단은 이대로 쭉 후퇴해 본대를 끌고 오는 것이 맞다.

다만, 난 작전이 성공한 뒤를 생각한다면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지금 확실하게 사망했다는 A급 레인저 한 명을 제외한다면, 저기 고립된 A급 베테랑만 넷이다.

그중에는 전위와 서포터 둘에 암살자가 하나 있고 아직 죽지 않았다면 B급도 다수 있다. 여기서 죽어버리기엔 너무 아까운 전력이다.

그러니 병력을 나눌 것이다.

“양양 점거한 뒤에 방어전이 길진 않겠지만, 포위된 형세입니다. 적도 바보가 아니라면 강릉에는 형세 유지할 병력만 둘 거고 설악-오대 전선에서도 퇴각해서 양양부터 되찾으려고 하겠죠.”

“그때 생존을 위해서 지금 좀 무리한다. 큰 틀에서 보면 일리는 있군요.”

“어차피 여기서 살아나가서 본대에 합류해봐야 양양에서 밀리면 다 죽습니다. 또한, 적 첩보망이 지금 넓게 펼쳐지고 있는 만큼, 돌아다니고 있는 네임드만 조심하면 적진 내부가 오히려 안전할 수도 있고요.”

더 반박할 게 있느냐고 묻자 김지성은 고개를 저었다. 보는 관점의 차이인만큼 팀장인 내 결정권을 존중하겠다는 거다.

“갈 때 등선대 방면의 은신처는 피해요.”

듣고 있던 유수화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거기 생선 대가리들이 한창 수색 중일 거니까. 우리 팀이 그쯤 도망치다가 흩어졌는데, 살았다면 거기 숨어들었을 거라서.”

“그건 좀 곤란하군요.”

등선대가 위험하다면 한 번에 십이폭포의 은신처까지 가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근방에 집중된 병력을 회피해가며 통과하기에는 거리가 꽤 멀다.

“그래서 주전 폭포에 은신처 하나 더 지었어요. 등선대 남쪽으로 돌아서 주전, 십이 폭포에 지어둔 은신처 이용해요. 또 십이, 옥녀 폭포 사이 경로 중간쯤에 하나, 옥녀 폭포에 하나, 점봉산에 옆에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지어뒀죠. 다만, 옥녀쪽은 피하고.”

“거기도 누가 들어갔습니까?”

“전위랑 서포터들. 대장이 신호탄 쏴서 숨으라 했으니까 들키지 않았다면 여전히 거기 있을 건데, 정 일 틀어져서 위험하다 싶으면 거기 들어가서 함께 농성하는 것도 방법은 방법이겠죠.”

유수화는 추가로 지은 은신처 위치나, 적 동굴을 발견한 위치를 지도에 전부 표시해줬다.

“그러면 정리는 됐군요. 진입조에 포함되지 않은 두 사람은 흩어져서 설악로 따라 본대로. 1팀장님은 여기 계시다가 두 사람이 끌고 온 본대와 합류한 뒤. 캠 영상 브리핑하시면 될 겁니다.”

“그래야겠죠.”

적 영역으로 침투할 생각인 만큼, 여기서 B급 아래는 짐이다. 따라서 아까 호명되지 않은 두 명의 C급 레인저들은 전부 바로 복귀해서 보고하는 역할을 줬다.

우리는 확보한 정보를 토대로 작전 지도에 침투 및 퇴각 경로를 그렸다.

은신한 채 흘림골을 따라 살짝 돌아서 주전 폭포와 십이폭포 은신처로. 그 두 은신처에서 상황을 본 뒤, 지켜보는 눈이 없다면 은폐를 풀고 재사용 대기시간을 기다린다.

이후 은폐를 푼 채로 기동하고 점봉산 근처에 도달하면 놈들 동굴이 나올 텐데, 그 근방에서 다시 은신과 동화를 쓰면서 기동할 것이다.

“저흰 먼저 가겠습니다.”

“무운을 빌어요.”

두 시간 뒤, 우리는 유수화의 배웅을 받으며 점봉산 방면으로 스며들었다. 은신처 밖으로 빠져나오자 서너 명씩 조를 이룬 어인들이 주변을 순찰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등급이 낮은 놈들이라 은신 기술을 파악하진 못하는 모습이다. 양민석과 장현주를 전방에 앞세우고 내가 중앙, 김지성이 후방을 맡았다.

유수화의 말에 따르면 이곳 설악산에서 상대하게 될 네임드급 이상의 적은 A급에선 암살자 계열의 문어 어인과 근육질의 전사형 상어 어인, 그리고 파놓은 동굴의 내부 길목을 막고 있다는 히드라가 있다.

S급은 칼을 여덟 개 든 전사형 나가로 그 감각에 은신이 잡히면서 파티가 괴멸했다고 한다.

거의 백 미터 이상 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눈치채고 창을 집어던졌다고 하니 감각 능력치가 전사치곤 기형적으로 높은 것 같다.

‘마지막은 주술을 사용하는 중일 주문계 나가겠지.’

한계령 삼거리를 지나서 주전 폭포 방면에 거의 다 왔을 무렵부터 괴물의 수가 급증했다.

그리고 그걸 피해 가면서 주전 폭포의 근방에 도착했지만, 수중 동굴 속에 있는 호수 은신처는 이미 적에게 발각되었는지 그 안에 어인들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십이폭포]

그 짧은 헌터와치 메시지가 내가 내린 명령 전부였다. 그리고 도착한 십이폭포 방면의 절벽 은신처에는 선객이 한 명 있었다.

“자네들은 어쩌다가 여기까지?”

간부진에 속해있던 중견 B급 각성자 차성현이다.

“혼자십니까?”

“한 명 더 있어. 먹을 만한 걸 찾아본다고 나갔지. 그 친구가 약재나 나물 같은 거 잘 찾거든. 여기 보스가 뭘 준비하는지 모르니까 인제 군단이 무조건 이긴단 보장이 없잖나. 우린 한동안 여기서 버티면서 상황을 볼 생각이었어.”

여기서 조금 더 버티다가 적 병력이 목적을 이뤄서 경계가 느슨해지거나 아군이 밀고 들어오면 그때 빠져나갈 생각이었나 보다.

우리 목적을 이야기하자 그는 좀 결정하기 괴로운지 미간을 구겼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날 부끄럽게 만드는군.”

“그렇게까지 생각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전 인제 군단이 여기선 이길 거라고 봤을 뿐이니까요. 다음인 양양이 걱정되었을 뿐입니다.”

하지만 먹을거리를 가지고 돌아온 암살자, 김도유는 고개를 저었다.

“너무 무모한 짓이야. 그 미친 나가 전사를 겪었으면 그런 말 못 하지. 차성현. 너도 겪었으니 뭐라고 말 좀 해줘 봐라. 이 청년도 김지성이나 다른 녀석들도 여기서 죽기엔 아까운 목숨이야.”

“여기 차성현 헌터께도 말씀드렸지만,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강요할 수 있는 직책도 아니고요. 그러면 김도유 헌터께선 여기를 지켜주시죠. 일이 틀어졌을 때, 퇴로인 은신처가 발각되는 걸 막을 사람이 있어서 나쁠 건 없습니다.”

“···알겠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곤 은신처에 남아있던 보존 식량이나 물품들을 최대한 챙겨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십이 폭포에서 은폐 기술을 기다린 뒤, 옥녀 폭포 방면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아찔한 일이 몇 번이고 벌어졌다.

적 순찰대를 몇 번 처치했고 그걸 깨달은 어인들이 포위망을 좁혀오는 것의 구멍을 계산하며 빠져나가기를 몇 번.

거의 반나절이 지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본대가 들어갔다는 동굴 근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저긴가.’

주변과 동화한 채 바라보는 동굴의 모습은 유수화나 중간에 만난 두 사람에게 들었던 그대로다.

인간형에 가까운 정예 어인이나 나가의 비율이 크게 높아졌고 여기저기 쇠기둥에 단체로 묶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각성자들은 전부 동굴 안쪽에 가둬놨는지 밖에 있는 건 전부 민간인들이다.

그리고 벌써 자신들 양식의 건축을 하고 있는지, 동굴 위 벽면에 조각하는 중인 어인들이 보이는데, 그 규모가 몹시 웅장했다. 마치 신전 같은 것을 짓는 것 같다.

‘문제의 나가 전사는 안 보이긴 하는데, 경계가 빡빡하군.’

한 번 침입이 있었기 때문인지 경계가 삼엄하다. 감각에 안 걸리고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 같았기에 나는 일단 후퇴 지시를 내렸다.

‘분명, 여기저기로 뻗어있었다고 했지.’

내부의 동굴이 미로 같았다는 걸 미루어보아 통로가 다른 곳에도 있을 확률이 높았고 어차피 동굴 중앙 지역을 차지하고 앉았다는 그 히드라를 피해 동시다발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려면, 통로 전부를 확인해봐야 했다.

그렇게 반나절 가까이 주변을 수색해서 우리는 입구 네 군데를 추가로 찾아내고 멈췄다.

그리고 진입하기 전, 점봉산의 은신처에 모여서 작전을 약간 수정했다.

“진입할 모두의 생존 가능성을 올리려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여기서 은신 대기 시간을 기다린 뒤, 본대가 찾았던 동굴 방면으로 가서 이목을 끌어줘야 해. 누가 하겠어?”

“제가 하죠.”

김지성이 손을 들었다.

자칫하면 S급 네임드 나가 전사를 상대해야 할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니 팀원인 민석에게 미루지 않고 부팀장으로서 솔선수범하겠다는 거다.

김지성의 은신 시간을 기다리는 마지막 휴식 시간이 지난 뒤, 팀원들은 흩어져 각자 담당한 동굴로 향했다.

나도 위장 기술을 쓴 채, 내가 담당한 점봉산 북서쪽의 동굴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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