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61화 (61/128)

6장 - 동해안 사태

멸망으로 치닫는 세계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

근거 없는 직감이란 없다.

뭔가 놓친 것 같다면 분명 어딘가 그 기반이 되는 지식이나 무엇인가를 본 것이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머릿속을 맴도는 것이 뭔지 알아차리긴 쉬웠다.

이 동해안 사태에서 판정승을 거둔 어인이 이후 한반도에 쭉 일으켰던 사건의 목록을 살펴보면 된다.

‘21세기 왜구들이 따로 없지.’

사소한 게릴라나 약탈을 위한 침공 같은 걸 일일이 따지고 들면 한도 끝도 없다.

동해안을 뺏긴 뒤, 대한민국은 과거 역사 속 여말선초 세기말이 어떤 느낌이었을지 아주 뼈저리게 겪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과거엔 그 원흉 중 하나였던 옆 나라도 함께 겪는 훈훈한 세기말이었다.

‘지진, 화산. 마지막이 소환수였나? 이 경우에는 마지막이겠군.’

그리고 나는 그중에서 임팩트 있던 걸 고르라면 저 세 가지 사건을 고르겠다.

처음에는 자연적인 지진인 줄 알았지만, 그게 인위적인 지진이라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된다. 그런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다면 어인 쪽도 소소한 피해라도 보는 게 정상이다.

‘공교롭게도 3차 대규모 부산 침공 직전에 지진이 일어난 것도 그렇고 대치하던 것들이 일제히 공세를 펼쳤던 것도 그렇고 놈들은 예상했다고 봐야지.’

또, 저 망할 놈들이 제주도를 점령하고 한라산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때서야 한국도 동해안 사태 때 넘어온 보스 중에 자연재해를 인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놈이 있다는 걸 알았다.

사태 초기에 주술사는 죽여 놨어야 했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건 뒤늦은 후회였다.

그 폭발로 우리나라와 중국은 화산 겨울을 겪으며 유난히 추웠기에 나도 아주 잘 기억하고 있었다.

화산재로 오염된 하천이나 호수의 물이야 정화해 먹으면 됐지만, 땅을 전부 갈아엎는 건 어려웠다. 토양이 산성화 되어 농사는 싹 망했다.

‘그해 농사 망하면서 물가 상승이 꽤 컸지. 정부에 고용돼서 사재기 단속이랑 배급소 경비를 했었고.’

아직 경력이 짧던 시절이라 한동안은 그걸로 그런대로 먹고 살 수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해로를 사용할 수 없는 시대에 물류의 중심인 항공 수송의 길이 막힌 것이다. 그건 나중에 결사대 정보부에서 알았다.

‘뭐, 비행 괴수가 그 기간엔 우리나라를 전혀 찾지 않은 걸 생각하면 마냥 단점만 있던 건 아니었지만.’

한국은 전국의 비공정을 일부를 제외하면 싹다 징발해서 수입, 수출품의 수송에 투입해야 했고 수입과 수출 대부분을 중국을 통해야 했던 탓에 당시 경제적으로 몹시 큰 손실을 봤다.

어인 놈들이야 그런 복잡한 것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겠지만, 의도치 않게 무역과 물류까지 마비시킨 셈이다.

그 외의 사소한 것을 말하자면, 고위 각성자들이 주요 도시에 방어막을 수시로 펼쳐야 했고 화산재로 인해 전국민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도 했다.

이 문제가 해결된 것은 1년 정도 지난 후였는데, 동북아시아의 세 국가가 최정예들을 움직여 반 억지로 제주도를 수복하고 공동 수비대를 배치함으로써 간신히 끝났다.

중국 측에선 당시 전투 자료의 폐기를 원했기에 영상 자료로는 보지는 못했지만, 건너 듣기론 적대적 화염 정령이나 뭍에서 치고 올라오는 거대 괴수들로 끔찍한 전장이었다고 한다.

내버려 두면 계속 화산을 터뜨릴 것이 뻔하니 수비대를 배치해야 했고 이후, 무인도 수준의 제주도에 배치된 각성자들은 열악한 인프라에 거기에 유배지라는 별명을 붙였다.

이 두 가지 사건이 간접적으로 우리나라를 공격했던 것이라면, 마지막으로 언급한 소환술은 놈들이 다섯 번째로 부산을 노릴 때, 성동격서로 수도권 방면으로 보냈던 전략 병기다.

‘앞에 두 사건은 지금 쓰긴 애매하지. 지진은 자신들이 준비가 안 된 건 둘째 치고 그때와 다르게 코앞에서 대치 중이니 이상한 행동을 하면 이쪽도 바로 대응한다.’

화산은 애초에 한라산에서 한 짓이니 여기서 할 리도 없을 뿐더러 놈들도 벌써 그 정도까지 한반도에 대한 정보 수집이 되어있진 않을 것이다.

‘결국, 뭔가 한다면 이번에도 소환수다. 정령군주급 전략병기.’

그 전략병기에 악몽 같은 경험을 했던 한국에선 그걸 물리친 후에 군주급 정령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해수로 이뤄진 그 초거대 정령은 인류가 산을 이어 만든 거점방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한 구역 전체를 물바다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고, 정령 자체의 힘도 굉장하다.

필드를 바꾸는 놈이다. 인간에겐 몹시 불리한 전장을, 반대로 어인이나 나가와 같은 수생 생물에겐 홈그라운드나 다름없는 전장을 만들어준다.

‘양양에 있던 게 그 나가 주술사일 수도 있겠어.’

물론, 재해를 일으키면 오랜 시간 잠잠했던 걸 고려하면 소환하는 대가가 작지 않을 거란 것은 분명하고 이번에는 준비 기간이 짧으니 대단치는 않을지도 모른다.

“2팀장.”

“말씀하시죠.”

내가 생각하는 사이에도 대화는 계속 진행되는 중이다.

“자네 의견은 어때? 우리가 여길 조사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 뭔가 생각중인 것 같길래 묻는 걸 미뤘는데, 지금 의견이 정확히 반반으로 팽팽하게 갈렸거든.”

“어떤 식입니까?”

그에 대해서는 1팀장 유수화가 답했다.

“가장 주된 쟁점은 본대가 올 때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양양으로 갔다오느냐 그러지 않느냐에요. 저는 안전하게 양양을 보고 오는 쪽을 선호하는데, 제 선택으로 정확히 반반이 됐네요. 선택권이 2팀장한테 넘어간 셈이죠.”

“대장님 의견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난 여기를 조사하고 움직이자는 의견이지만, 어떤 쪽이든 상관은 없어. 애초에 다수결로 정하자 말한 것도 나였으니 반반 갈렸다고 내가 결정해버리는 건 모양이 좋지 않지.”

“팀을 나누면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 조사 시간이 꽤 오래 걸릴 것 같으니까. 설악 동남부에 군단급이 빽빽하게 자리를 잡고 있으니 양양까지 뚫고 나가는 것도 일이고.”

일리가 있다. 정찰대장의 말은 기존 임무와 달리 상황이 변했고 이곳에 군단을 치우는 건 필수가 됐으니 오히려 이 군단의 허실을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겠냐는 말이다.

반면, 1팀장인 유수화나 반대편을 지지하는 간부진은 지금의 모든 추측을 확신으로 바꾸려면 일단 양양에 가야 확실해진다는 것이고 양양 방면으로 피해 없이 뚫고 가려면 본대의 힘이 필요하다는 의견인 거다.

‘여기서 둘 모두를 선택할 순 없겠지.’

무엇보다 시간에 맞게 양양 방면으로 뚫고 내려가려면 그 과정에서 적과 마주치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정찰 병력이 관측되는 순간, 적의 경계태세가 삼엄해질 것은 뻔하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내가 입을 열었다.

“적들이 뭔가를 꾸미고 있다면 점봉산 방면에서 하고 있을 겁니다.”

“근거는 처음 것과 같고.”

“예. 설악-오대 라인을 돌파하려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만한 힘이 필요하죠. 그런 뭔가를 하는 여파를 숨길 수 있을 리가 없습니다.”

“우리가 뭔가 대응하기 전, 가능한 목표와 가까운 장소에서 써야 한다는 거군.”

“그렇겠네요. 설령 그게 즉시 발동하는 종류의 것이라 해도 전장 전체에 영향을 주려면 사거리를 고려해서 북쪽보다는 가능한 남쪽에서 쓰려고 할 테니까.”

“그게 의미하는 바는 한참 돌아가야 하겠지만, 한계령 삼거리 방면으로 후퇴했다가 북동쪽 사선으로 이동한다면 적을 마주칠 확률이 적다는 의미입니다.”

“2팀장은 양양에 좀 기울어진 것 같은데, 맞나?”

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최초 명령은 양양 상태의 확인이다. 지금까지의 추론이 일리가 있고 정찰대장 판단하에 작전을 변경하는 것도 문제는 없지만, 모든 정찰 임무는 할 수 있으면 직접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단, 병력을 나누자는 이야기군. 그렇다는 건, 2팀장은 시간을 맞출 자신이 있단 말이겠지?”

인제 군단은 미술관과 갈직교 방면에 주둔하는 것처럼 적을 기만해야 하므로 그곳에서 진지 공사를 한 뒤, 병력 일부를 남겨두고 올라올 예정이다.

단순 거리상으로는 20km 정도고 그 정도는 초인이 아니라도 하루면 넉넉하게 주파하지만, 짐꾼들과 공병들이 양양에 방어진을 건설할 보급품을 몇 번이고 옮겨가며 이동해야 하기에, 시간이 꽤 소요될 것이다.

예정상으론 이틀 뒤에 한계령 삼거리를 지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늦어도 그때까지는 정보를 습득해서 돌아와야만 했다.

“이곳에서 쓸 전력이 걱정이신 거라면, 김지성 부팀장에 두 팀의 C급 각성자들만 주시죠. 하루 내로 양양을 확인한 후에 돌아오겠습니다. 정말 적이 양양을 비웠다면 이들로도 안쪽을 살피는 일이 그리 어렵진 않을 겁니다.”

나는 제안을 올렸고 이제 결정권은 이성훈 대장에게 넘어갔다.

아마 시간은 빡빡할 거다. 양양까지 최단 거리로 간다고 해도 마찬가지로 20킬로미터가 넘는다, 북쪽에 적 경계가 삼엄하지 않다고 해도 아예 없진 않다.

그걸 다 피해 가며 돌파한 뒤, 그래도 적이 병력 일부는 남겨놨을 양양의 상태까지 확인해야 하는 일이다. 밤을 지새운다고 해도 하루라는 시간은 몹시 빡빡하다.

“좋아. 2팀장의 말대로 병력을 나눈다. 단, 2 팀원들 인원은 그대로 가는 것으로 하지.”

“돌발 상황에 대응하려면 팀 구성은 유지하는 편이 좋겠죠.”

이성훈 대장이 결정을 내리자마자 나는 그에게 가볍게 경례를 붙인 뒤, 곧장 팀원들에게 돌아갔다.

팀으로 돌아와 회의 결과를 알리곤 곧바로 짐을 챙기러 가자, 바로 옆에 달라붙은 김지성이 고개를 짧게 흔들었다.

“하루라, 엄청난 운이 따라주지 않는 한은 현실적으로 시간에 맞추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만···.”

“위성 사진이나 비공정의 보고서로 미루어보아 양양의 적 주력은 양양 종합운동장에 자리 잡고 그곳에서 진지를 건설했다고 했죠.”

“그랬죠.”

“그리고 그 북서쪽에 있는 아파트 위로 올라간다면 놈들의 진지는 내 사거리 내에 들어옵니다.”

정확히는 버프를 사용한 내 공격 범위 내에 들어온다는 소리다. 내가 생각하는 쪽은 넓게 퍼져서 근거를 찾고 정보 수집을 하고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홀로 잠입해서 쏜 뒤에, 반응 지켜보고 튈 생각입니다. 지금은 일단 혼자만 알고 계세요.”

내 말에 김지성의 얼굴이 미친놈을 본다는 것처럼 변했다.

하지만 난 내 추측도, 실력에도 자신이 있었다. 그 아파트에서 설악산까지는 약 8km 정도 거리다.

도주로는 미리 잘 봐둬야 하겠지만, A급 능력치에 지금 장비라면 온갖 방해를 받더라도 버프가 끝날 때까지 그 거리의 절반은 도주할 자신이 있다.

처음엔 경악하던 김지성도 내가 별것 아니라는 듯 담담한 표정을 계속 짓고 있자, 진지하게 생각에 잠겼다.

“가능하겠군요.”

난 고개만 끄덕였다. 그도 내가 아까 회의장에서 고민하면서 내렸던 같은 결론에 도달한 거다.

“애초에 그쯤까지 시간 내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양양 주력이 빠져나갔다는 거겠죠. 그렇다면 화살은 그저···.”

“그 증거를 본대에 확인시켜주는 용도일 뿐이죠. 적의 추격이야 붙겠지만, 그게 큰 문제는 아닙니다.”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

어차피 적에게 우리가 행한 모든 행동에 대해 보고가 들어갈 시점에는 인제에서 출발한 군단도, 남하하는 북진도 이미 전투를 벌이고 있을 거다.

* * *

그렇게 반나절의 강행군을 거치고 아침 해가 떠오를 때쯤, 노란빛으로 물든 유성이 새벽녘의 하늘을 가르며 양양 종합운동장의 정중앙에 떨어져 내렸다.

폭발의 흔적이 만들어낸 거대한 크레이터, 그 위로 흩날리던 모든 파편은 탄화되고 녹아내린다.

아무 저항도 없던 그 장소의 침묵이 말해주듯, 양양에는 S급 보스도, 그 어떤 네임드들도 남아있지 않았다.

“따라서 설악산에 있는 놈들이 양양의 적 본대입니다. 복귀하죠.”

중간 기점인 동해 고속도로 방면에서 대기하던 팀원들과 합류한 뒤, 곧장 설악산으로 도주했다.

그러나 합류 장소였던 한계령 삼거리 방면의 은신처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는 팔이 하나 날아간 유수화 1팀장만이 피투성이가 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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