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 동해안 사태
정찰대는 총원 25인으로 구성되었다.
각 팀은 7인 1조로, 11인으로 구성된 정찰 본부를 양 날개에서 호위하며 전진한다. 본부는 A급이 다섯일 정도로 무력에 집중되어 있다.
보통 전쟁 급으로 거대 게이트가 생기거나 필드 수복을 목적으로 군사작전을 하게 될 때, 지금처럼 정찰 본대가 직접 움직이는 일은 드물다.
‘본대는 휘하 정찰팀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큰 틀에서 종합하는 역할을 하지.’
물론, 종종 적의 정찰대를 정리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동하기는 하는데 그것도 본대 인원 모두가 출동하는 경우는 드물다.
지금처럼 정찰 본대와 함께 움직인다는 건, 작전 범위가 넓으니 현장에서 즉각 판단하겠다는 뜻이다. 상대 정찰대나 취약한 진지는 파괴해가며 침투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기도 했다.
본대는 암살자가 없었고 전위가 한 명 포함되어 있었으며, 서포터도 셋 있다.
이런 형태의 편제는 게이트 공략하듯 전위가 막고 진형을 갖춘 상태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지속 전투를 벌이는 구도를 상정하는 것이 아니다.
‘정찰조가 파악해온 정보를 바탕으로 적 진형을 기습, 돌격과 진형 파괴에 특화된 전위가 들어가 상대 진형을 부순다.’
그리고 서포터들 역시 폭발적인 순간 방어나 버프, 그리고 회복에 특화된 이들로 구성되어 홀로 들어간 전위를 보호하고 궁사들을 온 힘을 쏟아내 가며 지켜낸다.
‘철저하게 화력을 뿜어내 일순간 몰살시켜 버리는데 특화된 편제.’
이런 본대 편제는 대개 둘 중 하나가 되는데, 지금 구성은 원거리 중심 정찰 본대가 택하는 편제다. 반대쪽인 암살 중심 편제가 되면 저격수를 소수로 둔 뒤, 나머지 전원을 암살자로 편성하게 된다.
‘그 경우, 저격으로 적을 혼란에 빠뜨린 뒤, 슬며시 포위해서 몰살해버리는 형태를 취하지.’
다만, 암살자는 직업 자체가 꺼려지기에 숫자가 적은 만큼 흔히 쓰이는 본대 편제는 아니었다.
“출발 전에 받은 보고에 따르면 슬슬 저쪽도 좀 제대로 된 것들이 나올 때가 됐다. 다들 긴장하자고?”
정찰 대장의 말에 전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계 교차로 방면에는 잔뜩 모여있는 어인으로 빽빽하다.
지난번, 인제에서 된통 당한 적 군단은 본부를 설악 휴게소 방면까지 쭉 뺐다.
“인제 군단이 위협해주기 전까진 일단은 아군 강역에서만 움직일 거니까 너무 깊게 추격하지는 말도록.”
그리고 지금 여기서 정찰대의 모습을 드러낸 건 일부러다.
‘안 싸우고도 적을 밀어낼 수 있다면 그리하려는 거지.’
북진 길드장이 요구했던 것처럼 아군 목표를 갈직교 방면이라고 여기게 하며, 적 병력을 최소 쌍다리 쉼터나 크게는 십이선녀교 방면까지 밀어내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적들에게 그리 보이도록 우리는 한동안 여기 강 너머에서 적 정찰대를 잡고 다닐 것이다.
“자, 그럼. 1팀! 그리고 2팀! 흩어져!”
주변 수색이 시작됐다.
퍼억!
개구리 위 독침병의 머리는 측면에서 날아온 화살에 터져나갔다.
주인의 죽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괴수는 혓바닥 사거리 끝에서 오가며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암살자를 바라보며 계속 움칫하기만 한다.
그리고 뒤편에서 미끄러지듯 접근해 안장에 뛰어오른 암살자의 단검에 머리가 뚫리며 마무리됐다.
이 패턴이 벌써 몇 번이고 반복 중이다.
“이걸로 서른아홉.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됐는데.”
적도 이쪽 계통의 네임드가 오거나, 혹은 정찰 병력을 물리거나. 그런 조치가 취해질 확률이 높다.
반나절 정도 신을 내며 게릴라를 펼치자 적의 하급 정찰병들이 강을 건너며 일제히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이어서 적이 진지를 해체하는지 분주해지는 모습이 눈에 띈다. 강 건너에서 함께 그 모습을 바라보던 김지성이 툭 내뱉었다.
“저쪽도 무리하진 않는군요.”
“이쪽 무력을 알았으니 병력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거겠죠. 지휘부 생각대로 고위 정찰 전력으로 펼친 무력 시위가 통했고 자신들이 열세인 건 분명하니 물러나려는 모양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뒤, 나는 작게 덧붙였다.
“그리고 이걸로 어느 정도는 안심이죠.”
“예. 양양 쪽에서 지원 예정이거나, 병력이 충분하다면 이리 쉽게 물러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사수해보려고 들었겠죠.”
김지성과 내가 나누는 대화에 팀의 레인저 한 명이 말을 보탰다.
“사전 계획대로면 인제 쪽도 진군을 시작했을 겁니다. 복귀합니까?”
대화에 끼어든 장현주는 레인저 트리를 탔지만, 저격도 되는 전천후 헌터였다.
B급 헌터에 감각 능력치가 몹시 높아서 정찰에 능했기에 2팀의 견시수를 맡고 있다. 양민석이라는 암살자가 B급으로 탐지를 담당했고 나머지는 전원 C급이다.
어지간한 B급 이상은 대부분 기억하는데, 이번 팀에 들어온 C급들은 전혀 들어본 일이 없는 걸 보니 대단한 잠재를 가진 사람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적 움직임도 보고해야 하니까 이제 복귀하죠.”
집결지로 합류했을 땐, 1팀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간부진은 대충 자른 나무 기둥을 사이에 두고 작전 회의에 들어갔다.
적의 상태가 만만하다고 여겼는지 이성훈 대장이 호기롭게 제안을 내놨다.
“여기 지나가면 조심조심해가며 움직여야 할 텐데, 마지막으로 날뛸 기회를 그냥 보내긴 아쉽지. 한 번 정돈 도발해보고 싶은데. 어때?”
“강을 건너가실 생각입니까?”
경계가 허술하다 싶으면 건너서 반대편 산 방면에서 올라가기로 계획되어 있지만, 아직 퇴각하지 않은 지금 시점에선 넘어가는 건 위험부담이 너무 크다.
“그건 좀 위험하지. 강기슭에서 폭격 시도해보는 정도를 생각 중이야. 대신 적이 발끈해서 네임드를 앞세워 추격해오면 한번 잡아보려는데. 반대하는 사람 있나?”
“괜찮은 시도긴 한데, 어인의 매복에 기습 당하지 않으려면 강바닥은 한 번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당연한 소리였기에 이성훈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막을 친 서포터를 앞세워 강바닥을 탐지한 후, 정찰조 원거리들은 일제히 자신의 가장 사거리가 긴 기술을 어인이 지어둔 강 건너의 움집에 퍼붓기 시작했다.
강기슭을 오가며 가치가 있어 보이는 물자, 건물들을 파괴하고 짐을 옮기던 어인들을 쏴 죽이기 시작하자 저쪽에서도 급히 대응에 나서며 원거리 공격을 해댔다.
“생각보다 침착하게 대응하는데.”
“마냥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은데요?”
정찰본대의 참모 중 한 명이 내뱉은 것처럼 저 멀리 쿵쿵 울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대장이 바라던 네임드 같은데. 어떻게 할까요. 처음 계획처럼 잡아볼 겁니까?”
“아니. 소리 보니까 대형 괴수라서 포격 위주인 지금 우리 조합으로는 피해 없이 잡기는 힘들걸? 정보 수집을 목표로 해보자고.”
잠시 기다리자 악어 머리를 한 어인 하나가 그 가재 괴물보다도 족히 열 배는 큰 거대한 악어 괴수를 타고 나타났다.
놈은 잠시 강 건너편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고함을 터뜨리더니 악어 괴수와 함께 강물에 뛰어들었다.
“뭐라는 것 같냐?”
“딱 봐도 이 비겁한 놈들! 거기 딱 서라! 뭐, 이딴 거 아닐까요?”
“극찬이로군. 기대에 더 부응해주자고! 쭉 물러난다!”
정찰대는 몹시 여유로웠다. 여기서 어두원교까지 작정하고 물러나면 놈이 쫓아오지 못할 걸 알기 때문이다.
거기에 건너오기 전, 뭍에서의 악어의 육중한 움직임을 고려해봤을 때, C급은 좀 아슬아슬하겠지만 나머지는 도주하면 절대 못 따라온다.
지금처럼 안전히 절반쯤 확보된 상태면 적의 정보를 습득하기엔 가장 좋다.
‘이런 조건이면 게임 레이드 뛰는 거나 마찬가지지.’
즉, 적 정보를 수집하는 게 주 임무인 정찰대가 가장 좋아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거다.
악어를 탄 놈이 강을 건너 급히 추격해왔지만, 계속 거리를 유지하면서 원거리 공격만 쏴 날린다.
추격전 끝에 어두원교 근방에 도달하자 악어 어인은 강물 속으로 들어가면서 추격을 포기했다.
그렇게 한 차례 푸닥거리를 한 탓에 소모한 전투자원의 보충을 위한 휴식을 취한다.
“악어 패턴이랑 위에 탄 놈이 보여준 기술 기록했지?”
“악어는 그냥 대형 B급 괴수 정도로 보이고 위에 탄 놈이 A급 네임드네요. 솔직하게 말해서 그 거리에서 창 던지던 건 놀라긴 했어요.”
“그렇지. 그 기술 만큼은 거의 저격수 사거리야. 지난 공세에선 못 본 놈인데, 회전이 벌어진다면 저게 돌격대장 역할을 할 것 같아. 본대에 알려야 하니까 2팀에서 한 명 보내자.”
대장의 제안에 나는 2팀의 C급 암살자 한 명을 본대로 돌려보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악어 놈이 계속 경계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B루트로 가자고.”
멀리 돌아가는 B루트를 택했기에 정찰대는 적 눈치 볼일 없이 고속으로 기동하기 시작했다.
남쪽으로 크게 돌아 어응골 방면에서 설악산으로 진입했고 이후 어은골을 지나 한계령 삼거리에 도착할 때까지는 별다른 척후 병력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명백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나는 주변 정찰을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생각한 것을 대장에게 내뱉었다.
“한계령 삼거리에는 적 병력이 있을 거라 예상했었지 않습니까?”
“그랬지. 이 삼거리를 포기한다는 건, 필례로 방면 길을 쓸 생각이 없다는 건데. 비워둔 이유를 모르겠어.”
이곳 한계령 삼거리는 양양에서 설악산 남쪽으로 대규모 병력을 이끌고 내려갈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다.
오대산과 설악산 사이의 산지에 퍼져 저지선을 형성하고 있는 부대들의 뒤를 칠 수 있는 경로기에 당연하지만, 이 산 아래쪽에는 레인저들이 지금도 수시로 오가며 적의 혹시 모를 기습을 대비하고 있을 것이다.
“예감이 좋지 않습니다.”
“슬슬 적에게도 패전보가 들어갈 시점이긴 하지. 놈들도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다면, 그게 그리 이상할 건 없겠어.”
정찰대장의 말처럼 상황을 보면 적진 어디선가 내가 알던 동해안 사태와는 다른 변수가 생기고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정찰대는 곧 놈들이 뭔가 수상한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설악로를 지켜볼 수 있는 능선을 타고 쭉 내려가다 등선대 근처의 폭포가 보이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 계곡 물길을 따라 엄청난 수의 어인이 주둔한 것을 확인했다.
정찰대는 곧장 그곳에서 가까운 은신처로 돌아와 회의에 들어갔다.
“엄청 많은데요. 저 정도면 거의 군단급인데?”
“아군의 진군을 예상한 건가?”
“정말 그런 거라면 바로 돌아가서 후퇴해야 한다고 알려야 합니다..”
잠시 떠드는 소리로 혼란스러웠으나, 난 곧장 반대 의견을 냈다.
반박할 근거가 없었다면 그 의견대로 바로 돌아가서 알려야 하는 정보가 맞다. 하지만 지금은 그리 보기에는 우연일 것 같은 요소가 많았다.
“만약 그랬다면 어인이 삼거리까지 점령하고 있을 겁니다.”
참모진도 바보가 아닌 만큼 그 말이 의미하는 건 바로 알아챘다. 아마 진정한 뒤에는 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 곧 말했을 것이다.
“그렇군. 잠시 당황했어.”
“2팀장 말대로 아군 군단을 앞뒤로 고립시켜 잡아먹으려는 거라면 퇴로를 만들어줄 이유가 없겠죠.”
간부진들도 대부분 동의를 표했다.
“그리고 저 어인들이 하던 행동, 혹시 보신 분 계십니까? 저만 본 건지 확인을 하고 싶은데요.”
내가 내뱉자마자 몇 명이 손을 든다.
지위가 가장 높은 참모가 대표로 입을 열었다.
“분명, 돌덩이를 잔뜩 나르고 있었지.”
“뭔가 공사라도 하는 것처럼?”
“종합해보면 전략을 눈치챈 게 아니라 놈들이 뭔가 하고 있다는 거군.”
나는 그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제 예상으로는 설악-오대 저지선 라인을 뚫으려는 것 같습니다. 인제 군단을 노리는 게 아니라면 여기 있는 병력이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죠.”
“강릉의 병력을 나누어 우회하려고 한다?”
“아뇨. 지금 강릉 방어선은 놈들도 우리를 압박하느라 버거운 것으로 압니다.”
거긴 지금도 강릉에서 출동한 병력이나 비공정이 게릴라를 펼치고 있고 전국에서 모집한 전력의 투입으로 전황은 나름 팽팽하다.
놈들이 뭔가 빼버리면 바로 티가 나서 그쪽에서 대응할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 의미하는 건 하나다.
“아예 양양을 비웠다고?”
“저게 목표인 그 양양에 남아있던 병력이다. 이 말을 하고 싶은 거군.”
난 고개만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
놈들은 속초부터 고성까지 쭉 주둔해있었고 서쪽의 저지선 라인에도 충분한 병력을 깔아둔 상태다.
아군이 아예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고 설악로 방면으로 돌아서 뒤를 치려는 특공대 같은 게 내려올 길만 막고 있으면 큰 문제는 없을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
더불어 지난 공세로 적에게 정보를 수집하는 집단이 있다면 인제 방면에 주둔한 아군 병력 숫자를 파악할 정도는 됐다.
정상적으로 생각하면 그 병력이 나온다고 해도 최대 갈직교 방면을 정리하는 정도가 한계다.
‘전략적인 이점이 아무것도 없기에 진군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테지.’
상식적으로 인제를 지키려면 그쪽 병력은 움직일 수가 없다.
북진 길드의 그 도박수를 예상하는 것까지 해내긴 절대 쉽지 않다. 그런 가정까지 해야 할 정도로 전장을 엄청 넓게 보지 않는다면, 적도 합리적인 판단을 한 거다.
“잘만 하면 놈들의 의도도 분쇄하고 여기 설악산에 분산된 적 병력을 고립시키거나 전멸시킬 수도 있겠어.”
그 말처럼 지금 이게 생각보다 엄청난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런데 돌고 돌아서. 그럼 놈들이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지금부터 그걸 알아보는 게 저희 일이겠죠.”
그리고 내 머릿속에는 뭔가 떠오를 듯 말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