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59화 (59/128)

6장 - 동해안 사태

원래 빌드라는 것은 가치가 상당하다.

단순하게는 빌드 자체가 돈이 되는 것이 그렇다.

성좌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E에서 C급. 간혹 성좌가 없는 B급 잠재력인 헌터를 키우는 것에 있어서 빌드는 각 길드의 핵심 기밀이다.

C급과 B급이 보통 길드의 주력인 걸 고려하면 빌드를 캐내려는 스파이들로 각 길드가 종종 몸살을 앓는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

‘A급이나 특급도 빌드를 미끼로 영입이 되니 말 다했지.’

각 길드에서는 소속된 유명한 각성자와, 그가 쓰는 특별한 빌드를 홍보하는 것으로 유망주를 영입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지혜가 쓴 빌드 역시 알려지면 원하는 사람이 아주 많을 것이다.

‘지혜 등급 평가가 A+급으로 상향 조정될 거라고 했지.’

현시점 기준 B급 잠재력으로 평가 받던 각성자를 A+급으로 평가 받게 하고 제한적인 상황이라지만 특급 각성자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게 해주는 빌드다.

이런 빌드의 가치가 얼마나 높은지는, 신수빈이 자신의 빌드로 전 세계 1인 대회를 휩쓸기 전에는 본인의 초능력자라는 별명보다도 개인 빌드 전문가로 더 이름값이 높았던 것을 그 예로 들 수가 있겠다.

‘펠릭스 역시 그런 경우일 거고.’

오딘이 처음 계약을 맺을 때, 펠릭스의 특성에 맞춘 맞춤 빌드를 조건으로 계약 조건을 대폭 깎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 정도 되는 신좌라면 펠릭스에게 맞춘 특별한 빌드가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으니까.

‘가능성은 작지만 빌드 자체를 공개 불가로 오딘과 계약을 했을지도 모르지.’

당연히 그런 대가를 치렀다면 그가 빌드를 공개하지 않으려는 것이 당연하다.

그 가장 기본적인 쓰임새만 해도 지금 지혜처럼 독립해 길드를 세운다면 자기 밑천이 될 수도 있다.

돈을 중요시한다면 은퇴한 뒤, 대형 길드에 큰 값을 받고 팔아치울 수도 있고 후학 양성이라거나 명예에 관심이 있으면 인맥과 명성을 얻기 위해 빌드 연구가로 독일의 국가 아카데미 교수를 택할 수도 있다.

그걸 일부라도 날로 먹어보려던 그쪽 길드의 빌드 연구가들이 양심이 없는 거다.

“다 봤나?”

직접 보여주겠다는 펠릭스는 연무장에서 직접 기술을 시연하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여주었다.

다만, 다 보여주고 나서도 그리 기대하는 눈치는 아니다.

“빌드 상세를 알려주는 것도 아니고 고작 기술 시전 가지고 알아보라고 하면 어떤 빌드 전문가도 한 번에 문제를 파악하진 못합니다.”

“그러면 한 번 더 보여주지.”

“두 번째는 영상을 찍어도 되겠습니까?”

내 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대전쟁 시기로 쳐도 A급 하급 정도로 분류될 각성자의 전력을 다한 움직임이다. 지금 실력으로는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었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기술의 여파와 그 때문에 연무장 바닥에 새겨진 흔적만으로도 파악되는 건 있다.

‘아마도 열에 아홉은 능력치 불균형 때문이겠군.’

아마 길드 연구원들도 그 정도까지는 파악했을 것이다.

펠릭스가 한창 전성기일 7~8백 레벨대는 그리 문제가 되지 않던 것이 그의 감각 능력치를 비롯한 능력치들이 올라간 9백 레벨대에 접어들면서 생긴 문제일 가능성이 크다.

두 번째는 길드 보급창고에서 꺼낸 초정밀 모션 카메라와 함께 진행되었다. 그쯤엔 소문을 들었는지 길드원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구경을 나왔다.

몇 번 정도 돌려본 뒤에야 난 그가 사용하는 기술 연계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레벨업으로 기본 능력치와 감각이 올라가면서 느끼게 된 문제. 그리고 진짜 문제점은 3번과 4번 기술 사이에서 미세하게 끊기는 쪽이군요.”

“바로 그걸 알아본 거면 확실히 실력 있는 빌드 전문가는 맞나 보군. 독일에서는 세 군데. 딱 세 곳에서만 그걸 알아차렸어. 그러면 혹시 그 해법도 제시할 수 있겠나?”

“3번 기술을 빼시죠. 그 자리에 무난한 다른 기술을 실험해보면 해결될 겁니다. 3번과 4번이 모두 좋은 기술은 맞지만, 몸에 좀 무리가 가고 상성도 너무 안 좋습니다.”

내 해법을 들은 펠릭스는 고개를 저었다. 부정적인 표정은 아닌데 몹시 씁쓸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한숨을 깊게 내쉰 펠릭스가 박수를 몇 번 쳤다.

“한 번에 그걸 알아차린 건 확실히 대단한데. 청수? 이름도 못 들어봤는데, 그런 작은 길드에 소속된 게 맞나?”

“지금 제 답에 문제가 있습니까?”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던 초기에 메르세데스에 거금을 주고 의뢰했을 때, 그곳 수석 연구원이 당신이 말한 그 해법을 제시했었지.”

메르세데스라면 독일 4위인 잘 나가는 길드다.

펠릭스도 처음에는 길드 소속 연구원들에게 찾아다니며 잘만 물어봤던 모양이다. 그가 그런 연구원들에게 학을 떼게 된 건 그런 검증된 곳을 지나 은거 기인을 찾아다니다 보니 그리된 것 같다.

그는 바로 동작을 취하곤 1번에서 4번까지의 기술, 아니 한 가지 동작이 늘어 5가지 기술을 내게 연속으로 펼쳐 보였다. 예상하기로 메르세데스에서 제시한 해법 같다.

“물론, 거기서 말한 대로 이렇게 가면 문제가 없어. 기회를 잡았을 때 기준으로 안정감은 나쁘지 않아. 그리고 추가 기술로 인한 잠재 소모도 그리 크진 않았지.”

“문제가 생겼군요.”

“초당 가한 피해량이 약 6% 감소했고 완전공격기회는 17%나 감소했어. 사실, 전자는 큰 문제가 아니지만, 그쪽도 헌터니 잘 알 거야.”

“FAC 17%면 크군요.”

“물론, 나아진 부분도 있긴 하지. 순간 공격력은 올랐으니까. 아마 대회 같은 곳에서는 그나마 좀 낫겠지. 그리고 메르세데스에선 안타깝게도 그게 최선이라더군.”

펠릭스는 문제가 아니라지만, DPS도 절대 작은 지표는 아니고 특히 FAC(Full Attack Chance)가 그 정도나 감소했다면 쉽게 택하긴 어려운 선택이다.

FAC 지표가 떨어진다는 건, 문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라 전투 난도가 올라간다고도 해석된다. 즉, 저걸로 한 전투에서 주력기를 한 번이라도 더 쓸 수 있느냐 없느냐, 실수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갈릴 수도 있다.

“이걸 해답으로 생각하고 끝낸다면 내 순위가 크게 떨어지겠지. 그쪽은 모르겠지만, 난 좀 악연으로 엮인 경쟁자가 있거든. 그래서 그간 거슬려도 쭉 그대로 써왔는데. 레벨이 오를 때마다 점점 더 불편해지는 느낌이야.”

“잠시 시간을 좀 주시죠. 적어도 오늘 오후까지는 결론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는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지만, 난 그의 잠재와 사용한 기술에서 몇 가지 특성이나 빌드에 사용된 기술 이름을 몇 가지 정도는 유추할 수 있었다.

다만, 이런 소소하면서도 제한적인 상황에서의 빌드 수정은 아무리 미래 지식이 있는 나라도 섣부르게 단정 지을만한 사항은 아니었다.

아마 메르세데스의 수석 연구원도 그랬겠지만, 나도 논의할만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서 내 결론을 평가해주고 혹 뛰어넘을만한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다.

“···그리고 이게 내가 유추한 펠릭스의 특성과 기술 내역이야.”

“꽤 재밌네요. 참고할만한 것도 좀 있고?”

신수빈과 나는 펠릭스의 영상을 분석하면서 서로 정리해둔 빌드 자료들을 가져다 논의하는 중이다.

“두 가지 방법을 생각하고 있는데. 첫째는 3, 4번 기술은 그대로 두고 기술을 끼워 넣는 쪽이야.”

“뭐, 그렇죠. 보통은 그걸 생각하니까요. 그렇게 보면 메르세데스 수석도 바보는 아니네요. 최적이랍시고 한 게, 분명 순수 딜러로서는 최선이 맞는 것 같은데?”

“그래. 우리가 제시해야 할 건 따라서 제어 및 버프, 디버프 계열이야.”

“그러고 보면 기술이 전부 뇌속성이었죠.”

“그렇지. 그래서 난 진입 전에 뇌명을 쓰게 하고 3, 4번 동작 사이에는 마검 계열의 스파클링 소드를 끼워 넣는 게 어떨까 생각 중인데.”

“아, 스파클링 소드. 그거 강제 동작이죠?”

스파클링 소드는 어떤 상황에서도 강제로 해당 기술 발동을 위한 최적의 기수식과 동작을 취하게 해준다. 허공에 뜨던, 뭘 하던 무조건 연계되어 나간다.

사용 뒤에는 자연스럽게 착지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나게 되고 그러면 극히 부자연스럽던 펠릭스의 3, 4번 기술 사이를 깔끔하게 메꿔줄 것이다.

그로 인해 떨어지는 딜은 사전에 뇌격 공격력을 증폭시키는 뇌명을 미리 사용하게 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계산 좀 해보죠.”

잠시 후, 신수빈은 복잡한 수식 계산 끝에 정답을 도출해냈다.

“제 예상으론 무 속성 상대로 대략 0.47%의 DPS가 올라갈 거고 완전 공격 기회는 1.5237%가 떨어집니다. 이건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쓰인 기술에 대한 우리 예상이 틀리지만 않았다면 이 방법이 가장 무난하겠네요.”

“그런데 너도 알겠지만, 이건 단점이 있어.”

“알아요. 뇌속성 증폭이라 그쪽 저항이 높으면 높을수록 딜이 폭락하죠. 뭐, 그런데 그거야 그런 놈 상대할 때만 투 트랙으로 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우린 컨설팅만 해주는 거고 본인 선택이고?”

신수빈의 말대로 선택은 어쨌거나 펠릭스의 몫이다.

“그런데 강사님. 다른 하나는 뭡니까? 오히려 전 그게 궁금한데요.”

“4번 기술을 갈아치울 거야.”

“그게 핵심 주력기잖아요?”

“3번 기술이 우리가 예상한대로의 이름이라면, 특성 하나 추가하는 걸로 4번에 아드리비툼을 연계할 수 있어. 대신 아트리비툼까지 배워야 하니 잠재가 빡빡할 거야.”

“아드리비툼 그거 사용 난이도가 미쳤을 텐데···.”

“대신 익숙해질 수만 있으면 30%는 공격력이 올라가겠지.”

아드리비툼, 마검계 최종기 중 하나로 일순간 허공에 그려지는 수십의 공격선을 따라 정확하게 검을 휘두르면 추가적인 엑스트라 일격을 가하는 기술이다.

그 일순간의 시전자의 인지 시간은 극도로 느려지며, 육신은 마력으로 초가속한다. 그려진 선을 따라 하지 못하더라도 그 시간 동안 시전자가 휘두른 참격은 전방으로 그대로 퍼부어지는데, 결코 약한 기술이 아니다.

”그렇게 갈아엎는 쪽은 아예 생각을 못 해봤는데, 확실히 강사님 안목은 배울 데가 있네요. 아! 그런데 지금 여기 사이에 써먹을 수 있는 건 전쟁군주 계열 버프 기술, 멈출 수 없는 의지도 있습니다.”

“멈출 수 없는 의지? 동작 페널티랑 경직을 없애는 쪽이었나.”

“추가로 어떤 자세에서도 기술 취소가 가능합니다. 부상 위험이 있고 대규모 기술의 틈을 파고드는 게 문제잖습니까? 페널티를 없애는 쪽으로 가보죠.”

“기술 시전 자체는 안정적으로 나가긴 하겠는데, 그거 사용 중에 딜 감소하는 페널티 있잖아. 어떻게 해결하려고?”

“그건 워로드 조금 탄 김에 3번 앞에 웹소드를 끼얹으면 어떻습니까?”

“아! 웹소드로 문제의 기술 시전 전에 아예 상대 반격의 가능성을 없애자는 거군. 차라리 종합적인 쪽에 집중해서 파티 기여도 지표를 올리자는 거구나?”

“네 그것도 방법이죠.”

나는 곧바로 펠릭스를 불러서 우리가 내린 결론을 말해주었다.

“확실한가?”

“모두 계산한 데이터는 있습니다. 확인해보시죠.”

내가 건넨 자료를 받은 펠릭스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슐츠도 문제 해결한다고 그간 빌드 공부를 많이 했는지 바로 알아듣는 것 같다.

“다만, 세 가지 전부 해볼 순 없을 겁니다. 앞에 둘 중 하나라도 익히는 순간, 세 번째 경우는 잠재력이 모자라니까요.”

“내 기술을 전부 정확하게 유추해낸 것도 놀랍지만, 여기에서 딜을 더 올릴 수 있다는 건 더 신기한데···.”

“세 번째는 기댓값일 뿐입니다. 아드리비툼이라는 기술 특성상 시전자 역량에 따라 기댓값이 천차만별인데 최악에는 기존 4번 기술을 쓰는 것보다 약 9%가량 감소할 수도 있습니다.”

냉정하게 선을 긋는 내 말에 그는 정중하게 자세를 고쳐잡았다.

“어쨌든, 평균값, 그러니까 보수적으로 잡아도 약 5%의 딜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는 말 아닙니까. 완벽하게 펼치면 최대 32.3%의 상승이고? 여태 누구도 내게 이런 파격적인 해답을 제시한 적은 없었습니다!”

최대한 존중하는 의도가 담겼는지 통일언어로 해석되는 말투가 곧장 존대로 변했다.

“어차피 선택은 슐츠씨 당신 몫입니다.”

“아닙니다. 이 도움은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사적인 문제는 해결되었으니, 그보단 이곳 동해안 사태 이야기를 좀 하고 싶군요.”

“아, 물론 듣고 왔습니다. 이번 사태에서 그 조건부 특급이라는 헌터를 안전하게 보호하면 된다고 하더군요. 저도 그만한 대가를 받고 온 것이고 그건 제게도 좋은 일이라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길드 총무과를 찾아가시면 용병 신분증을 드릴 겁니다.”

슐츠는 우리 용병으로 활동하게 될 거고 그가 획득하는 전리품은 우리가 가져가는 것 없이 모두 그가 가져가게 될 것이다. 나는 양양과 그곳에 있을 보스의 공략에 대해 그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그리고 그 공략에서 제 도움을 받고 싶으신 겁니까. 음···.”

“병력이 없을 거란 지휘부 판단대로면 그렇게까지 힘들진 않을 겁니다. 혹시 제 도움을 빚이라 생각하신다면 이걸로 갚으셨다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아닙니다. 그걸로 이번 일을 없던 것으로 하긴 그렇죠. 인류의 대의를 위한 명예로운 일이 아닙니까? 말씀하신 정도의 일이 확실하다면, 제게도 좋은 경력이 될 겁니다. 그러니 이번 도움은 나중에 따로 갚겠습니다.”

“그리 생각해주신다면 감사할 뿐이죠.”

그 후, 펠릭스와는 소소한 사적 대화를 나누며 잠시 친분을 다졌다. 하지만 그도 나도 할 일은 많았기에 그 이상의 교류는 나중을 기약했다.

헤어진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계좌로 돈이 입금되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A급 각성자라 그런지 통이 크긴 크네. 앓던 이를 빼준 덕분이겠지.’

통장으로 바로 50억대의 금액이 들어왔다.

슐츠가 이미 맞출 건 다 맞추고 돈 쌓아두는 사람이라는 건 고려해야겠지만, 어쨌든 A급 장비 하나를 맞출 수 있는 돈이다.

빌드 전부를 상담해준 것도 아니고 사소한 부분을 해결해준 것임을 고려하면 상담료치곤 몹시 크다.

‘그러고 보니 슐츠에게 10대인 각성자 자녀가 있었지.’

그런 걸 고려하면 아마도 빌드 전문가로서의 내 잠재력을 보고 앞으로 잘 지내자는 의미도 포함된 것 같다.

그 이후로는 눈코 뜰 새 없이 출정을 준비하느라 바빴다.

그날 밤, 준비를 마친 정찰대는 양양 방면으로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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