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58화 (58/128)

6장 - 동해안 사태

가장 먼저 정찰조에게 배정된 집결 장소로 향했다. 가장 먼저 만나야 하는 인물은 옛 상관, 내 기억 속 정찰대장이었던 김지성이다.

‘꼼꼼한 성격이지.’

성격대로라면 열에 아홉은 대원들 하나하나 챙긴다고 집결지에 먼저 도착해 있을 것이다.

발걸음을 서둘러 천막으로 가득한 집결 장소에 도착하자, 그곳에는 마스크부터 시작해서 발끝까지 온통 검은 일색의 옷을 입은 남자가 한 명 앉아있었다.

그는 고개조차 들지 않고 말했다.

“새로 오신 팀장님이십니까?”

“그렇습니다. 김지성 부팀장. 맞으시죠?”

내가 답하고 김지성이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친다.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사람은 각자 그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것을 아마도 그 역시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바로 지독하게 자신과 비슷한 인간을 보는 느낌.

보통 그런 사람을 만나면 둘 중 하나다.

‘도플갱어를 보는 기분이라 역겹거나, 아니면 친근감을 느끼거나.’

나 같은 경우엔 후자의 기분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내 정찰대원으로서의 모든 건 이 남자에게 배운 거니까.

“···맡을 임무에 대해서는 들으셨습니까.”

그러나 김지성은 잠시 침묵했을 뿐, 마스크 위로 드러난 눈동자 어디에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가 느릿느릿하게 말했고 나는 그걸 받았다.

“아직 명령서를 받지 못했으니 들은 적은 없습니다만, 예상은 가는군요.”

“그렇습니까?”

“인제 본대가 갈직교로 진군을 시작하면, 먼저 설악로를 타고 이동해 그곳에 퍼진 적 정찰대를 제거하며 나아가겠죠. 최종적인 목표는 본대가 상평초등학교에 집결해 병력을 추스를 때까지 양양의 상태를 파악해서 복귀, 보고하는 것.”

“기본적인 개념은 있으시군요. 다행입니다.”

그의 말대로 기본적이다. 작전 목표를 듣고 정찰대원이 이 정도도 명령을 예상하지 못하면 곤란하다.

“···자주 부딪치지는 않을 것 같으니 말이죠. 혹 들으셨으면 아실 것이고 모르신다면 미리 경고하지만, 전 제가 받아들일 수 없는 명령은 듣지 않습니다. 말을 잘 듣는 부하를 원하셨다면, 안타깝지만 절 죽이셔야 할 겁니다.”

김지성의 입가엔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물론, 그 전에 거기서 제가 당신을 죽이겠지만.”

“그건 실력에 자신이 있다는 말로 알아듣죠.”

"그건 당신이 나보다 강하다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힘으로 설득할 생각은 마시죠.”

이 성격은 지금도 여전한 모양이다.

“김지성 부팀장. 대화를 좀 하죠.”

“할 이야기는 없습니다. 당신은 명령을 내리고 나는 받습니다. 단, 이치에 어긋나는 명령은 듣지 않는다. 몹시 단순하고 명쾌한 결론이죠. 뭐가 더 필요합니까?”

난 일어서려는 김지성을 따라 일어났고 이어 금속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허공에서는 단검 두 개가 힘겨루기하는 중이다.

내가 홀스터에서 단검을 꺼내 찔러 들어갔고 그걸 감각으로 감지한 김지성이 돌아선 불편한 자세였지만, 한쪽 팔을 뒤로 올리며 뽑아낸 단검의 면으로 깔끔하게 막아낸 형세다.

천천히 돌아선 김지성이 입을 열었다.

“이건 어떤 의미로 해석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짧게 답했다.

“대화.”

그의 미간에 짜증이 담겼다.

내가 궁사인 걸 모를 리 없다.

그러니 결과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등급도 낮은 신입 애송이가 자기 잠재력이나 성좌가 준 장비만 믿고 실력으로 찍어 눌러 보겠다고 덤벼온다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래. 뭐가 됐든 어처구니가 없긴 하겠지.’

단검술을 주 무기로 하는 암살자에게 궁사가 실력을 증명하겠다며 단검으로 싸움을 걸어온 거다.

지금 김지성이 내 상관이던 때와는 달리 현시대 기준의 B급 수준이라고 하지만, 이런 초근접 상황에선 내가 전성기여도 박빙일 것이다.

하물며 전체적인 능력치가 딸리는 지금 상태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질 리가 없다.

나는 확신했다.

'처음 마주치는 거라면 이기진 못해도 지진 않는다.'

격돌 직후, 서로 힘을 주며 밀어내자 약간의 거리가 벌어진다. 직후, 나와 김지성의 양손에선 엄지와 검지를 움직이며 단검이 현란하게 돌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겉멋을 부리는 것이라 볼 수도 있겠지만, 격돌 직전까지 최대한 자신의 그립을 속이기 위한 동작이다.

서로 사선으로 걷던 소강상태는 잠시뿐, 먼저 짓쳐들어온 쪽은 김지성 쪽이다.

속도는 저쪽이 위. 하지만 힘은 등급이 딸린다 해도 미세하게나마 내가 우위일 수밖에 없다. 그걸 벌충하려면 속력을 힘으로 전환하는 것이 당연했다.

김지성에겐 공격 우선권이 있었고 그는 해머 그립으로 움켜쥐고 찔러 들어오는 걸 택했다. 그리고 내 선택은 세이버 그립으로 흘려내는 것이다.

허공에서 단검이 몇 번이고 부딪치며 초당 10회가 넘는 울림을 퍼뜨린다.

정수로 찔러올 땐, 서로의 손날이 유려한 원을 그리며 격투를 하는 것 같은 소음을 내며 쳐내는 것이 반복됐다.

혹 역수로 검을 숨기며 궤적을 파악하기 힘들도록 속임수를 쓰면 보법을 밟아 거리를 벌려 시간을 확보한다.

그렇게 여유가 생긴 손으로 정수로 쥐어 잡은 단검을 들이대며 쳐낸다.

‘이게 암살자들의 초근접 상황에서의 전투법이지. 이렇게 대장이랑 어울리는 것도 참 오랜만인데.’

묘한 그리움과는 별개로 손은 몹시 바쁘다. 암살자들은 대개 치고 빠지며 치명적인 급소만을 지독하게 노린다.

애초 단검이라는 게 다른 부류의 무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힘을 제대로 실을 수 있는 장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각성자가 되며 기운을 쓸 수 있게 되면서 암살자도 목이나 심장처럼 협소한 부위만 노리진 않게 되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단검은 속도를 이용해 치명상을 가하는 무기지 적을 가르고 파괴하는 종류의 장비는 아니다.

그래서 암살자끼리의 전투를 보게 되면 초근접 상황에서 한 폭의 춤사위를 보는 듯한 전투가 펼쳐지게 된다.

‘물론 지금은 서로 치명적 급소는 노리고 있진 않지만.’

어쨌거나 아군이고 실력의 증명이 목적이니 김지성도 급소를 노리진 않는다. 먼저 제대로 된 상해를 입는 쪽이 지는 거라 암묵적으로 합의한 채 합을 겨루고 있을 뿐이다.

칼소리와 격투로 인한 충격파가 퍼지자 어느새 구경꾼이 주변에 꽤 많이 모였다.

겨루는 내내 인상을 구기고 있던 김지성은 거리를 벌리더니 들고 있던 단검을 천천히 내렸다.

“···주변에 불청객이 많군요. 이쯤 하시죠, 팀장님.”

마저 못해 그리 내뱉는 그의 표정은 의심과 당황, 짜증이 섞여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이었다.

그도 아는 거다. 이대로 몇 분이고 더 싸워봐야 절대 승부는 나지 않았으리라는 걸.

고작 첫 전투에서 그 허실을 파악할 정도로 미래의 김지성 대장이 자신의 단검술을 허투루 만들진 않았다.

“그러죠. 대신 다른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당연히 거절하면 계속 싸우겠다는 뜻인 걸 모를 리 없다. 김지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말없이 돌아 먼저 걸었고 나는 따라갔다.

숙소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김지성이 물어왔다.

“단검술. 어디서 배웠습니까?”

“분명, ‘누구한테도 가르쳐준 적 없을 텐데’ 말이죠? 당신이 내 입장이라면, 그걸 말하겠습니까? 그 정보가 어떻게 쓰일지도 모르는데.”

당신의 뭘 믿고 이야기해 주냐는 뜻이다.

지금 내가 피식 웃으며 내뱉은 이 말에 그는 지금쯤 머릿속이 복잡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에 침묵이 흘렀다.

“알아서 생각하라는 말이군요.”

“그게 우리 같은 정보를 다루는 사람들이 하는 일 아닙니까?”

남정네의 사적인 관심은 사양이지만, 이 경우에는 필요한 일이다.

그는 청해 소속이고 거긴 오래지 않아 무너진다. 그 상태에서 김지성이 청수 길드에 대해 알아보다 보면, 분명히 우리 집단의 성장 잠재력이 보일 것이다.

‘영입 낚시질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지.’

어쨌든, 내 말에서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염탐, 성좌, 회귀, 시간여행, 환생 등이다.

성좌가 있는 세상이라도 판타지에 가까운 것들이 섞여 있지만, 어쨌든 추측해볼 수 있는 건 많다.

당연히 앞의 두 가지가 가장 유력하다 생각하겠지만, 냉정하게 보면 이것으로 확실한 건 오직 하나뿐이다.

정확히는 내가 그와 연관이 있다는 것 하나. 그리고 거기서 확실해지는 것은 최소한 그는 내 전투 실력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원인이 뭐가 됐든 우리는 같은 단검술 유파를 공유한다는 말이니까.’

그리고 이 남자는 거기까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을 사람이 아니다.

그 정도의 생각을 할 시간을 준 뒤, 나는 품에서 종이 한 장을 꺼내서 그 앞으로 내밀었다. 짧은 시간 조사한 자료다.

“청해 소속이시더군요. 그리고 파벌은 중립. 독불장군이어도 다른 이들이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만합니다.”

아무리 내부 상황이 개판이라도 청해는 공식 한국 길드 중 2위다. 지금은 그런 연유로. 청해가 해체된 후에는 그 실력 때문에 아무도 건드리지 못했을 거다.

“그래서. 무슨 대화를 하자는 겁니까?”

“마침 저도 작은 길드지만 정찰대를 맡고 있고 당신도 거대 길드의 정찰대 소속이죠. 당신도 정찰조를 움직일 때의 원칙이 분명 있을 겁니다. 예를 들면···.”

‘암살자의 은신과 레인저의 동화는 최후의 수단이니 미리 사용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단, 혼자 있는 경우는 제외한다.’같은 원칙들 말이다.

“반드시 쓰지 않고 갈 수 있는 길을 먼저 찾아봐야 하고 은신과 동화를 쓰는 것은 최후의 수단이죠.”

“그 부분은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군요.”

“아아, 낌새가 이상하다면 근거를 찾기 전까진 건드리지 않는다. 그것도 제 원칙이죠.”

내가 말을 끊으며 또 치고 들어가자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그래. 그건 내 원칙이기도 하지. 그래. 당신, 정체가 뭐지? 마치 물어봐 달라는 것처럼 말하는군.”

내가 아는 대장은 끝까지 정중한 가면을 유지하고 직접 뒤로 알아볼 인물인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감정을 드러내며 추궁해왔다.

아직은 젊음 특유의 혈기가 남아있나 보다.

“어차피 말한다고 믿지도 않을 것 아닙니까. 원칙대로라면?”

원칙 중에는 적의 입에서 나오는 정보엔 반드시 의도가 담겨 있으니, 의도가 짐작되기 전까진 활용하지 말라는 것도 있었다.

“그런 중요치 않은 것보단, 당장 임무에 관해 이야기하죠. 세부적인 것에서 우리 스타일이 다를지는 모르지만, 부대를 움직이는 데 있어선 비슷한 점이 많을 겁니다. 이 대화는 그 차이를 좁히기 위해 하자는 겁니다.”

여기서 서로의 차선만 합의해서 맞춰두더라도 이 팀을 완전히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난 전력을 다하지 않았음에도 당신 상대로 방어전에 성공했습니다. 당신도 전력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이 정도 이야기를 꺼내는 건 충분할 실력이라 생각하는데요.”

어차피 비슷한 성향이니 견해차가 크진 않겠지만, 지금 이건 내 이야기를 무조건 들으라는 게 아니다.

단순히 대화하자는 정도면 그 정도는 내가 보여준 실력만으로도 팀장과 부팀장 같은 관계에선 존중을 받아야 했다.

“···인정하죠.”

이제 강릉 방면에 가까워지면 지금처럼 생선 대가리에 가까운 어인이 아니라, 스스로 아틀란티스 인이라 주장하는 거의 인간 형태에 가까운 반인반어가 등장했다.

그리고 나가나 세이렌 같은 놈이나, 거대 해양 괴수하고도 마주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김지성과 내 지시가 엇갈리면서 어기적대면 진짜로 전멸하는 수가 있다.

‘물론, 나야 보스급만 아니면 살아나갈 자신은 있다만.’

그렇게 실패하는 것만으로도 내 평판에는 악영향이다. 나머지는 전부 성격 좋은 인원들로 채워준다고 했으니 김지성만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으면 그런 위협을 사전에 차단할 수 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그 견해차라는 걸 좁혀보죠.”

그리고 거의 하루를 꼬박 채우는 대화 끝에 우리는 부대의 운용에 관한 생각 차이를 꽤 많이 좁힐 수 있었다.

“네 판단은 꽤 냉혹한데.”

“그러는 지성 형의 원칙은 좀 무르게 해석할 여지가 항상 있지.”

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아서 말을 놨다. 물론, 이번 임무에서 공적인 상황에서는 그가 나를 상관으로 존중할 것이다.

어쨌든 미래의 김지성 대장의 것보다는 그래도 내 판단이 무른 편인데 지금의 그와 비교하니 내 판단이 훨씬 냉혹하다. 특히, 낙오된 병력에 관한 판단에서 가장 그랬다.

그래도 아직 젊어서 그런지 미래의 그 철옹성이었던 고집과는 달리 대화가 통했기에 내가 제시하는 예시나 이유 등에 어느 정도는 수긍하고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암살 계열 대원은 형이 맡아. 암살자들은 큰 대전략만 내가 정할 거고 사소한 것까지 터치하진 않을 거야.”

아직 사소한 것에선 좁혀지지 않는 게 있으니 그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좋다.

그렇게 출발하기에 앞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여지 하나를 어느 정도 차단했고 그렇게 출정 준비를 하는 사이에 펠릭스가 우리 진형에 도착해서는 곧장 나를 찾았다.

“반갑군. 펠릭스 슐츠다.”

“오래 시간을 낼 수는 없습니다. 곧 정찰대가 출정 예정이라서요.”

정찰대는 하루 일찍 출발할 예정이었다. 다행히 대개 고위 각성자라면 성좌에 받아서 하나씩 들고 있는, 통일언어를 쓰게 해주는 장비를 펠릭스가 보유한 덕분에 통역 없이도 사적 대화에는 무리가 없었다.

“빌드 전문가라고 들었다. 내 문제점에 대해 파악해줄 수 있나? 해결해준다면 사례는 꼭 하지.”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입니까?”

“오딘이 알려준 연계기를 쓸 때, 동작이 몇 군데에서 끊기는 느낌이야. 여태까지 그리 큰 문제는 없었는데 이상하게 실력이 늘면 늘수록 거슬리더군. 분명 동급 각성자나 괴수 계열 상대로는 괜찮겠지만···.”

“더 속도가 빠른 각성자나 인간형 상위 괴물을 만나게 되면 봉인이라는 말이군요.”

전투하다 보면 기회라 여겨서 몸이 반사적으로 기술을 사용하게 될 수도 있고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 법이다. 남들은 잘 모르지만, 자기는 그게 위험하다는 걸 느끼니 얼마나 스트레스겠는가.

“이게 아무래도 내 상징이나 다름없는 기술연계니까.”

“상세 빌드는 말씀해주실 수 없을 거고?”

“그랬다면 지금 내가 여기까지 급하게 널 찾아오지도 않았겠지.”

난 고개를 끄덕이고 그를 우리 길드가 사용 중인 임시 연무장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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