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55화 (55/128)

6장 - 동해안 사태

차를 마시며 여유를 즐기고 있자 서이수의 말대로 저쪽으로부터 다시 통화 요청이 들어왔다.

[내 강릉서 이야기는 들었다. 한창 바쁠 텐데, 잡담이나 하자고 연락한 건 아닐 거고. 갑자기 뭔 일인고?]

[문주님! 지금 13번 고지서 긴급 지원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북쪽 상황이 장난이 아닌지, 우리가 대화를 시작하기가 무섭게 부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방 안으로 들어와선 전황을 급히 보고했다.

[이제 때려 죽여도 남은 게 없다! 후퇴시키고 군에 연락해서 그 방면 초토화하라고 해! 어차피 놈들도 잡졸들 가져다 퍼붓는 거 아니냐!]

지시를 받은 부관이 뛰쳐나가고 조용해지자 서이수가 운을 뗐다.

“상철 아저씨. 이름 좀 빌려주실 수 있어요?”

[뭐가? 갑자기 내 발언권이라도 필요한 거냐?]

“아뇨. 발언권이야 한 명 추가된다고 딱히 뭘 할 수도 없을 거고. 지금 아저씨가 가진 작전권이 필요해요.”

서이수는 짤막하게 우리 계획을 언급했다.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1차 공격을 성공적으로 막아냈다는 말에 북진 길드장이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

[정찰 들어온 거나 내가 수집한 정보론 거기 전력 가지고 그거 피해 없이 막는 건 어려웠을 건데? 어디 특급이라도 지원 온 게냐? 그럴 여유 있으면 우리 쪽에 좀 보내라고 해라! 여기 아주 죽겠다!]

“제가 듣기론 명성이 곧 그리 올라갈 거라고 전해 들었는데, 연락은 갔어요?”

[요 며칠 그런 거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 뭐, 명성 정도면 급한 불은 끄겠구먼. 오는 건 좋은데 지금 몰려오는 꼴을 보니 그 가지곤 턱도 없을 건데. 그래도 빨리 올라오라 그래라!]

“북쪽 상황이 아주 힘든가 보네요. 그래도 몇 주 전에 중국 쪽에 연락해서 공세 좀 취해달라고 했었는데···.”

그리 말하는 서이수의 눈동자에는 당혹감이 서렸다. 이대로 놔두면 인제 방면을 막기 힘들지도 모른다는, 일이 심상치 않다는 걸 깨달은 거다.

북진은 길드원 평균 전투력만 따지면 창천 다음이다. 그런 북진이 지금 버겁다고 할 정도니 상황이 심각한 건 분명하니까.

그리고 아마 내 기억으론 지금쯤 북방 방어선이 전부 돌파 당했을 시점이다.

[그 되놈들, 우리가 기회 생겨서 단독 작전으로 북쪽 땅 수복할 때마다 발작하는 놈들 아니냐. 지들 일도 아닌데, 이번에도 대충 시늉만 하고 말겠지.]

기본적으로 북쪽의 같은 적을 상대하기 때문에 중국하고도 오랜 세월 국제 공조나 군사 협조를 해오긴 했다.

다만, 그 땅의 수복 후 분배에 관해서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잡음이 많다.

[우리 불난 것 보고 웃으며 구경이나 하고 있지 않겠느냐. 이러다가 완전히 망할 것 같으면 그때나 발등에 불 떨어져서 움직일 건데. 그때가 산해관 넘어 거 좀 두들긴다고 망할 해골 놈이 잘도 돌아가겠다.]

“뭐, 그쪽이 좀 그렇긴 하죠.”

[우리가 그간 북방에 죽어라 쌓은 장성 싹 다 내줬고 여 강원도가 오늘 방어선 무너지고 쭉 후퇴하면서 1리쯤 내줬으니 저짝 방면은 이제 하루에 아무리 못해도 5리씩은 밀릴게다.]

“저···짝이요?”

[경기! 일원 아들이 맡은 경기 북부 말하는 게다. 거긴 평지 아니냐? 이대로 두면 한 달이면 파주까지 쭉 밀릴 건데. 씁···, 또 우리 애들이 내 욕하겠구먼. 명성 걔들은 올라오면 바로 파주로 달려가라 그래라!]

“뭐, 아저씨 판단이야 신뢰할만하죠. 그리 전달해둘게요.”

[서 길드장. 그런데 말이야. 회전 벌이면 이길 자신은 있나? 거기 병력 싹 말아먹으면 금강산 북쪽에 퍼져있는 우리 애들도 모조리 후퇴해야 할 건데. 이거 도박수 아니가?]

“그래서 그런데. 영감님, 영상 보낼 테니까 함 봐줘요. 사실, 나 이거 보고 해보려고 마음먹은 거거든.”

잠시 후, 언제 찍어 놨는지 서이수 길드장이 보낸 지혜의 활약을 시청한 뒤, 능력에 대한 설명을 들은 정상철 길드장의 소감이 들렸다.

[영상 그 여아, 들어간 문파는 있나? 마치 하늘의 신장 같구먼. 우리 문파에 아주 딱 맞는 인재 같은데. 이거 여고수처럼 잘 꾸며다 홍보 좀 하면 내년엔···.]

그리고 난 그런 애가 이제 하트를 쏠 예정이라면 반응이 어떨지 몹시 궁금해졌다.

그 생각을 하며 옆을 슬쩍 바라보니 같은 생각을 했는지 지혜의 안색이 푸르죽죽해졌다.

“어림도 없어요, 영감님. 내가 우리 길드 이사진 시켜준다는데 깠다니까?”

[다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다. 이 나라에 애국과 협의가 살아있으면 당연히 우리 북진에 들어오지 않겠나?]

그 자신만만한 모습에 서이수는 뭔가 장난기가 솟아 올랐는지 할 말이 많다는 표정이었지만, 자신이 지금 부탁하는 처지란 건 기억하고 있었는지 평범한 감상을 내놨다.

“뭐, 그건 따로 만나게 되면 잘 해보세요. 그런데 그 애도 이미 자기 길드를 가져서 쉽진 않을걸요?”

[뭐, 됐다. 그건 사적인 거니 나중에 생각하고. 서 길드장이 가져온 게 아주 생각할 거리가 많게 만드는 작전인데···. 그 명성 그 아들은 언제 올라온다고 했나?]

“닷새 정도 걸린다고 했었죠?”

[음···.]

잠시 뭔가 고민하던 정상철은 이내 눈을 매섭게 뜨곤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좋다. 쉽진 않겠다만, 이거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자!]

“오! 그러면 저희 공격 허락하는 거죠?”

[거 기다리라.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게다. 가서 명성 애들 무슨 수를 써서든 3일 내로 철원까지 올라오라고 해라.]

“···네? 물자라든가 소집이라든가 전쟁 준비가 그렇게 빨리 되는 건 아닐 텐데요.”

서이수의 말에 북진 길드장은 코웃음을 쳤다.

[이놈들은 국난이 우습게 보이나! 오면서 다른 문파들 강제 징발하든 뭘 하든 해내라고 해! 제멋대로 뺀찌 돌리는 놈은 이 정상철이랑 다 끝나고 일대일 면담할 각오 하라고 하고!]

“하하···.”

정작 전달해야 하는 건 본인이라 그런지 서이수는 떨떠름한 웃음만 흘렸다.

[그리고 너희도 지금 함부로 기세 타고 놈들 추격하지 말아라! 내 명령이라 하고 병력 다 모아가 갈직교 방면으로 움직여. 그래야 놈들이 전 병력을 한데 모으는 게 아니라 병력을 나누고 간만 볼 거다. 다 모여 있으면 어디로 튈지 몰라 귀찮아진다.]

적의 뒤를 치는 게 아니라 갑자기 설악산 방면으로 이어지는 통로, 이전 우리 작전 지역이기도 했던 갈직교 방면을 공격하라는 말에 서이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요?”

[적 지휘관은 밀어낸 김에 양양 방면의 좁은 길이나 확보하는 거로 생각할 테지. 그러면 이수 넌 그대로 인제 병력 최소한의 수비만 남기고 끌고 가서 양양 탈환하거라. 적 병력은 강릉과 고성 방면에 몰려있으니 거긴 취약할 게야.]

“잠깐만요. 그러면 저쪽이 알아채고 인제를 들이치면 저희 퇴로가 끊기는데요?”

[그놈들 절대 못 알아챈다. 그리고 설령 그걸 알아차렸을 쯤에는 그런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을 게다.]

그쯤 되자 나도 북진 길드장이 뭘 노리는지 알아차렸다.

“이거 설마···.”

[그쪽 아는 내가 뭘 하려는지 안 모양이구만.]

“북진 길드장님. 지금 전 병력 끌고 남하하시려는 겁니까?”

서이수의 눈도 동그래졌다.

“상철 아저씨. 그러면 북쪽 방어선 싹 다 밀리는 거 아니에요?”

[내가 시간은 최대한 끌겠다만, 어차피 이대로면 못 지킬 방어선이다. 그리고 강원 북부도 철원, 화천, 양구, 인제를 이은 선 아래로 시민들 이미 전부 대피했잖느냐?]

저 북쪽의 시체들과 우리의 가장 큰 차이를 말하자면, 역시 기동력이긴 하다.

빠른 개체와 느린 개체가 섞여 있고 주력이 대부분 거대하고 느린 종류인 아크리치의 군세와 비교하면 우리 인간 측은 전 병력이 일정 수준 이상 속도를 낼 수가 있다.

[사흘 정도면 차량 징발하고 퇴로 짜는 시간으로는 충분할 테지. 양양 북부와 인제, 그리고 고성에서 생선 놈들을 포위해서 쓸어버린 후, 반전해서 명성의 뒤를 받칠 생각이다. 그 이후엔 너희 쪽은 강릉 방면을 압박하면 되겠지.]

“금강산이랑 옛 휴전선 라인에서 막으시려는 거네요. 그리고 북진과 교대한 명성은 서쪽으로 이동하고요. 성공하면 동해안 북부 수복이 가시권이 되겠지만, 방어선은 아슬아슬하네요.”

[금강산 방면은 방어하기 좋은 지형이고 서쪽 요충지인 철원은 명성의 집결지니, 허투루 뚫리진 않을게다. 다만, 너희가 양양 점령에 실패하면 고작 고성의 구원과 북부 방어선을 맞바꾸는 셈이지. 전략적으론 큰 실패인 게다.]

“···그 양양에 병력이 적다고 해도 보스 하나 정도는 있겠죠?”

[그거 병력도 거의 없이 혼자 있는 것 잡을 자신 없으면 말하거라. 생각 바꾸기엔 아직 안 늦었다.]

정상철의 말에 서이수가 슬쩍 내 쪽을 바라봤다. 이 분위기에 취한 건지 난 반사적으로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뭐, 해봐야죠. 저기 고성에 있는 사람들 다 죽게 둘 수는 없으니까. 전략적으론 실패라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이건 사람은 다 구하잖아요?”

[그렇지. 서 길드장. 네 말이 맞다. 그게 바로 우리 같은 무인들이 추구해야 할 자세, 바로 협의지.]

그다음부터는 정상철로부터 언제까지 어떻게 기동해서 시간을 맞춰야 하는지나, 전장으로 삼기에 유리한 지형이라거나 북진 길드장에게 세부적인 작전을 지시 받는 시간이었다.

[좀 긴데. 내용은 다 기억했나?]

“네. 걱정마세요.”

[그러면, 서 길드장. 열흘 뒤에 보세!]

그렇게 훈훈하게 통신이 끊어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서이수가 손뼉을 쳤다.

“아 맞다. 영감님! 이번에 신작 무협 소설이 무려 전체 베스트 3위까지 올라왔는데. 아세요?”

[니 지금 나 약 올리나? 요새 내가 그거 볼 시간이 있겠간? 그리고 니 아까도 그랬지. 내가 그 근본 없는 이상한 별명 붙이지 말라고 했나? 안 했나?]

아까 일까지 떠올랐는지 북진 길드장의 표정이 야차같이 변했다. 하지만 자주 겪는 일인지 서이수의 표정은 생글거리던 것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뭔 소설이고? 간만에 무협 대작이라도 나왔나?]

아! 그 미소와 목소리엔 숨길 수 없는 기대감과 기쁨이 담겨 있었다!

서이수는 말없이 자기 휴대폰을 켜서 화면에 뭔가를 띄워 내밀었고 아주 잠깐의 침묵 후, 회의장에는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고함이 울렸다.

“갈! 이딴 건 무협이 아니다!”

입가의 수염을 푸르르 떨던 정상철은 먼저 통신을 끊어 버렸다.

그리고 갑자기 터진 굉음에 회의실로 뛰어 들어온 금성의 당직 길드원들은 배를 잡곤 웃기 바쁜 길드장만 보고 돌아가야 했다.

그 테이블 위, 휴대폰 화면 속에는 무협 로판 특유의 하늘하늘한 표지와 긴 제목이 적혀 있었다.

'음. 천마대공은 선 넘었지.'

굳이 북진 길드장이 아니더라도 무협 좀 봤다면 각혈할 것만 같은 제목에 난 조심스럽게 휴대폰의 옆 버튼을 눌러서 그 화면을 몰래 꺼버렸다.

“아, 진짜 내가 저 반응 보려고 이런 거 모아 둔다니까? 그런데 이것도 난 나름 재미있었는데 말이지. 하여튼 컨셉 하나는 확실한 영감님이야.”

“그런데 이거 3위는 아니었을 건데요.”

“물론, 합성이지. 상철 아재는 그런 건 아예 찾아볼 생각도 안 해서 모를걸? 어쨌든 그러면 결정이 났네. 우리는 3일 뒤, 양양 방면으로 진군할거야.”

“저희는 뭘 하면 됩니까?”

“상철 아재한테 명령서가 오면 편제부터 다시 짤 거야. 지혜는 보스급 공략할 때 아니면 나랑 같이 움직이면 될 거고 넌 정찰대 및 공략조 양쪽 편성할 생각인데, 따로 배치 받고 싶은 데라도 있어?”

그 정도면 불만은 없다. 난 고개를 저었다.

"그럼 움직이자. 난 비공정 인원들부터 만나야 해. 너희도 그 시간 동안 준비할 거 있으면 빨리 하고."

우린 서이수와 작별 인사를 나눈 뒤, 곧장 청수 길드로 돌아왔고 그녀에게 들은 내용을 길드원들에게 공유하며 전쟁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걸로 모든 것이 정리됐으니 이제 내 개인적인 일을 볼 때였다.

'직업 레벨이 대체 몇이나 오른 거냐?'

지혜가 활약한 직후에 울려왔던 알림의 숫자는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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