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53화 (53/128)

6장 - 동해안 사태

전투 상태가 해제되자 시야 구석에 반투명한 알림창이 쌓인 것이 보인다.

대부분 직업 레벨이 올랐다는 알림일 것이다. 알림을 치워두고 이번 전투의 마무리부터 시작했다.

“저것도 다 공적이니까. 우리도 중앙으로 합류합시다. 여유 있으니 각자 캠 한 번 점검하시고!”

지혜가 해낸 일이 있으니 공적이야 충분하겠지만, 길드 기강을 위해서도, 주변 눈치나 평판을 생각해서도 놀고 있는 것은 좋지 않다.

각 길드의 각성자들이 미처 도주하지 못한 잔여 괴물들을 처리하고 도망치는 놈들도 추격해서 마무리한다.

패잔병의 추격까지 끝나자 전장 정리를 위해서 각 길드의 짐꾼들이 성벽 너머로 내려갔다.

해자 정리 같은 잡일에 말뚝하고 성벽도 보수해야 하니 짐꾼이나 공병들은 지금부터가 전쟁터다.

“적 병력 중 언데드도 있고 어인 놈들도 죽은 척하는 놈들이 있을 수 있어. 귀찮겠지만, 혜성이 네가 2팀 끌고 가서 보급팀 챙겨. 좀 수고해줘라. 내가 하면 좋겠는데, 지금 팔이 이런 상태라.”

“예. 걱정 마세요. 전무님.”

“그래. 믿는다.”

혜성의 어깨를 툭툭 쳐준 뒤, 돌아서려다가 생각난 것이 있어 보급팀장을 불렀다.

“아! 보급팀장님. 한군데 모았다가 지휘부에서 공적 참작해서 전리품 분배하는 방식입니다. 절대 길드 주둔지로 가져오거나 따로 챙긴다거나 하지 마세요! 돌려놓으면 큰 문제까진 안 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잡음 나올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다 끝나고 보너스는 확실하게 챙겨 드릴 거니까. 다들 문제 안 생기도록 합시다. 우리 같은 신생 길드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합니다.”

그래도 일 끝난 뒤의 전리품 수거 시간은 즐거운 법이다.

위기는 있었지만, 나름 깔끔하게 막아낸 것도 그렇고 큰 부상자 없이 길드원 전원이 살아남은 덕분인지 보급팀장의 대답에는 기운이 넘쳐 보였다.

그렇게 우리 길드 보급팀 짐꾼들도 그들의 전쟁터로 떠났다. 1팀, 그리고 간부진들과 함께 지휘부로 돌아가는데 내 옆에서 걷던 김수호 공략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지혜 아가씨가 저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대단하군요.”

“이제 많은 게 바뀔 겁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건 어떻습니까. 아직도 그대로입니까?”

“솔직하게 말하면 이전에는 좀 부정적이었죠.”

“지금은 좀 생각이 바뀌셨다는 말이군요.”

김수호 공략본부장은 유 회장의 인맥을 타고 우리 길드에 파견 형태로 이름만 올려둔, 용병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지혜의 말로는 유 회장의 경호팀장을 맡던 인재였다고 한다.

현재 B+급에 잠재 A급 판정을 받은 30대 인물로, 사실 회귀 전의 나보다도 조금 높은 평가를 받을 인물이다. 당연히 청수 길드 같은 신생에 올 급은 아니다.

“이번 사태 전부 끝나고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내 제안은 원래 하던 일인 요인 경호나, 공략본부장 같은 뒤에서 일하는 직책이 아닌, 현역 복귀를 요청한 것으로 김수호 본부장을 중심으로 길드 정예 팀을 구성할 생각이었다.

아직 잠재력을 다 채운 것도 아니라서 배후 성좌와 연결만 된다면 컨설팅의 여지도 있었다. 그런 만큼 놀려두기 몹시 아까운 인재였다.

우리는 아까 전투에서의 활약을 가지고 서로의 얼굴에 금칠해가면서 길드 주둔지에 도착했지만, 그곳에 지혜는 없었다.

“어디서 붙잡혀있나 보군요.”

“그럴 만도 합니다.”

“다들 정비나 하고 모이죠.”

모두 정비하고 다시 회의실에 대부분의 간부가 모였을 때쯤, 피곤한 기색의 지혜가 도착했다.

“늦었네.”

“서이수 길드장님께서 길드장급 회의를 요청해서요. 메시지라도 남겨놨어야 했는데, 깜빡했어요.”

“괜찮아. 우리도 전장 마무리 하느라 그리 오래 기다리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어?”

“저 보고 고성으로 같이 가자던데요.”

서이수는 지혜의 능력을 보곤 고성 방어에 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바로 대답한 건 아니지?”

“당연하죠. 길드원들이랑 논의 좀 하겠다고 답하고 빠졌어요. 돌아오는데 갑자기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혼났다니까요? 금성 길마님은 오늘 해지기 전까지 답해달라 하더라고요. 어쩔까요?”

“잠깐, 생각 좀 하자.”

“그래야죠. 아! 다른 분들 의견도 들어봐야겠으니, 다들 생각 정리해주세요!”

잠시 후, 모두 생각을 마친 듯 서로 눈치를 보는 모습에 내가 가장 먼저 운을 뗐다.

“내 생각에는 별로 좋은 판단은 아닌 것 같다. 일단, 지혜 너 자체가 공중전이 벌어진다거나, 사고로 보호받지 못하는 곳에 떨어지면 완전히 무력할 건데, 우리로선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어.”

그리고 내 발언이 끝나자마자 손을 든 김수호 본부장도 내게 힘을 보탰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길드가 가진 이점을 하나도 활용하지 못하는 게 걸리는군요.”

“이점이라면···.”

“저희 길드 급에 맞지 않는 유 회장님께서 지원하시는 풍족한 보급. 그게 저희의 강점 중 하나죠. 지혜 아가씨. 고성으로 가면 그런 이점을 살리기 어렵습니다.”

“아까 내 의견에 더하자면, 그런 문제가 있으니 네가 가면 우리도 전부 고성으로 가야 해. 비공정에 그런 자리를 내는 것도 문제고 사지가 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것에 길드원 사이에 불만이 나올 수도 있겠지.”

“김 전무, 제가 발언 좀 해도 될까요?”

이쪽은 유 회장이 인사팀장으로 밀어 넣은 은퇴한 C급 헌터, 동시에 지혜의 고모인 유소령이다. 그녀가 손을 들어 발언권을 요구해왔다.

“네. 말씀하시죠. 인사팀장님.”

“저도 김 전무가 제시한 문제점에는 공감합니다. 다만, 이걸 수락해서 얻을 수 있는 장점이나 거절했을 때의 문제점도 논의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서요.”

“그렇군요. 일단, 수락하면 금성 길드장의 호감을 사고 금성의 그늘에 들어갈 수 있겠죠. 금성 길드장이 그럴만한 이미지나 소문을 가진 인물은 아니긴 하지만, 거절할 경우 보복이 들어올 수도 있고요.”

인사팀장의 걱정에도 일리는 있었다.

“네. 저도 그걸 생각했어요. 우리 지혜 능력을 생각하면 금성뿐만이 아니라 금강산 길드에도 큰 빚을 지워둘 수 있겠죠. 이건 김 전무랑 지혜 성좌가 우리 오빠에게 제시했던 대전략에도 딱 맞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우선, 저도 인사팀장님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금성 길드장과는 추후 대규모 게이트가 발생할 시에 우리를 데려가 주기로 이야기가 오간 상태입니다.”

난 서이수에게 영업해서 따온 구두 약속 내용을 이 자리에서 가볍게 언급했다. 그리고 지혜가 이렇게 활약한 이상, 저 장점은 그때 가서도 충분히 채울 수 있다.

“음, 그 정도의 약속이 돼 있다면야···. 굳이 위험을 감수할 이유는 없어 보이긴 하네요.”

“네. 그때 잘해도 될 테니까요!”

생각지 못한 큰 계약을 따와서인지 지혜가 눈이 초롱초롱해져선 외쳤다.

“네. 지혜 길드장이 이 업계 신입인 점이나, 위험성을 언급하면 이 제안은 거절하는 것이 그리 어렵진 않을 겁니다. 문제는 서이수 길드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 지휘부에 정식 요청해서 데려가는 경우인데···.”

“그런 경우야 어쩔 수 없죠.”

“사실, 나는 차라리 인제 방어선에서 뚫고 나가는 게 낫다고 보고 있거든. 이건 금성 길드장과 만나서 설득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

“그건 김 전무가 알아서 하면 될 것 같고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까 결론은 난 것 같네요.”

“예. 일단 여기 모이신 분들은 이제 쉬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해 지기 전에 지혜와 함께 서 길드장을 만나러 가보겠습니다.”

두 사람이 휴식을 위해 숙소로 떠나고 나는 서이수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생각에 잠겼다. 그때, 지혜가 내 옆구리를 툭툭 찔렀다.

“유성 오빠.”

“···왜?”

“그, 그러니까. 아까부터 성좌님이 이상한 소릴 하시거든요? 좀 설득해줘요!”

내가 얼굴에 물음표를 가득 채우고 쳐다보자 지혜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아! 제발! 절대 안 된다니까요!”

평소 침착한 지혜가 이렇게까지 발작하는 건 또 처음이라 나도 궁금해졌다.

“대체 뭔데 그래?”

“그···.”

뭔가 부끄러운 짓을 시킨 건지 지혜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 그리고 지혜를 통해 우리 대화를 듣고 있었던지 내게도 포르세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그거 기술 쓸 때 양손으로 하트모양 만드는 게 그리 어려운 건 아니잖아? 아까 그 망할 밋밋한 삼각형보단 낫지 않아? 아니면 좀 더 멋진 포즈를 생각해보던가!]

기술을 바라보다가 이상한 부분에 꽂혔는지 목소리에 못마땅한 느낌이 만반이다.

[그리고 이런 핑크핑크한 게 있어야! 어? 폭력적인 이미지도 많이 희석되는 거지!]

지혜의 심정이 곧바로 공감이 갔다.

나도 계약상 갑이나 다름없는 성좌가 저딴 걸 시켰으면 아마 수치심에 죽고 싶었을 거다.

계약자가 아닌 인간에게 목소리를 전달하면 소량이지만 명성이 나가는데, 급하게 나한테까지 들리게 말하면서 공감을 요구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시키고 싶은가 보다.

“그거 완전 마법 소녀···.”

“자기 일 아니라고 막 말하지 말고!”

나는 지혜를 그저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저 수치사 하는 꼴 보고 싶지 않으면 좀 말려봐요!”

포르세티의 로맨스에 대한 집착을 생각해봤을 때, 지혜의 이미지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으니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 같아서다.

[지혜야! 원래 이런 건 트레이드 마크가 있어야 더 오래 기억되는 거야! 언니 믿지?]

잘도 믿겠다.

[이걸로 명성 더 벌어서 이 언니가 너한테 빵빵하게 투자할게!]

“절대! 그딴 걸로 기억되고 싶진 않거든요?!”

“···뭐, 하면 확실히 명성이 좀 더 벌리긴 하겠는데.”

“오빠!”

바로 옆자리에서 터진 그 초고음에 귀가 찢어지는 줄 알았다.

눈을 부릅뜨고 살벌하게 노려보는 지혜에게 난 곧바로 두 손을 들어 항복 표시를 하고 태세 전환을 했다.

“이거 지혜 정신 건강에 몹시 안 좋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포르세티도 이런 문제에 있어선 절대 만만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너도 의견이 막 반대는 아닌 거지? 어차피 우리 지혜, 그 기술 쓰면 한동안 그로기잖아. 정신 상태랑은 전혀 상관없지. 그리고 원래 하다 보면 자기도 즐기게 되어있어.]

“아니. 그게···.”

묘하게 맞는 말이라서 바로 반박을 못 했다.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암묵적 동의를 한 거나 다름없는 말에 지혜는 도움이 안 된다는 표정으로 쌍심지를 켜고 노려보는 중이고 정신 차려보니 내가 두 여자 사이에 낀 형국이다.

“윽! 갑자기 위가···.”

나는 지혜의 얼굴과 천장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배를 움켜쥐곤 곧장 문밖으로 탈주했다.

그리고 잠시 후, 서이수를 만나러 가기 위해 슬쩍 방으로 돌아온 나는 몹시 해탈한 표정의 지혜를 만날 수 있었다.

“설마···했어?”

많은 걸 함축한 내 말에 지혜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위기 상황에 쓸 수 있게 방어용 유물 하나 주신다고.”

“아?”

“정신을 차려보니 딜을 외친 후였어요. 내가 왜···그랬지. 아···.”

이제야 뜬금없는 사건의 진의를 알겠다. 사실 이건 포르세티가 크게 쓴 거다.

‘이럴 때 보면 날카롭단 말이지. 기술 동작이 불편하다는 건 핑계. 유물 건네줄 이유가 필요했나 보네. 그냥 퍼주는 건 모양새가 안 좋으니까.’

본인 능력 구조 상 목숨 구명할 기술이 필요하다는 걸 잘 아는 지혜가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던진 거다.

본심도 좀 섞였나?

사실, 어차피 지금 지혜 가지고 한참 벌어야 하는 포르세티로선 자긴 손해 볼 게 하나도 없는 제안이기도 했다.

그간 지혜에게 보호용 하급 유물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냐고 내가 넌지시 운을 뗐었는데 포르세티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사소한 거라도 원하는 걸 얻어냈으니 성좌는 성좌다.

“어차피 쿨타임이라 한동안은 쓸 일 없을 거니까···.”

나는 계속 현실 부정하는 지혜의 어깨를 말없이 토닥여줬고 지혜는 하늘 한 번 보고 땅 한번 보더니 한숨을 크게 내쉬곤 미래의 자신에게 이 문제를 미뤄두기로 했다.

[나중엔 대사도 외치게 할 생각이야. 너도 괜찮은 거 있으면 의견 내줘.]

한술 더 뜨고 있던 포르세티의 메시지 내용은 지혜는 모르는 게 약일 것이다.

좀 사소한 사건이 지나가고 우리는 인제 방면의 금성 길드 주둔지로 찾아갔다.

“어서 와. 그때 한 말이 허풍은 아니었네.”

그리고 서이수는 친히 마중을 나오면서 친절한 미소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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