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 헌터의 성좌투자법-52화 (52/128)

6장 - 동해안 사태

[이번 쇼케이스. 네가 부탁했던 대로 나랑 인연 있는 곳 여기저기 힘 좀 썼어. 저급 헌터들 통해서 지켜보고 있을 거야. 다른 성좌와 거래하더라도 우리의 협력 관계는 계속 잘 이어가 줄 거로 믿어.]

나는 포르세티를 향해 고개를 끄덕여 보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그러고 보니 업적 포인트도 많이 들어왔지.’

해룡과의 일전, 그건 그 한 건으로 벌었다기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업적 점수다.

업적 포인트라고 하니 그간 머릿속으로 정리된 사실 하나가 떠오른다. 포르세티와의 대화에서 의심했던 건이다.

‘각 등급당 최소 기대치는 열 배···.’

포르세티가 말하길 잠재력 B급 헌터의 평균 기대치는 2,500만 명성이라고 했다.

심지어 그 명성이란 게 계약상 점수의 50%만 가져가게 되는 성좌와의 기본 계약상 점수다.

나처럼 시작부터 최악의 상황을 겪으면서 성좌의 선택을 받지 못해 홀로 업적 점수를 채워간 헌터가 끝까지 살아남았다면, 그 기대치는 평균으로 쳐도 5천만이어야 한다.

또, A급 헌터가 되면 산술적 계산으로는 2억 5천만이지만, 상황에 따라 버는 점수가 10억도 넘어갈 수 있다고 했다.

지난밤의 나처럼 운이 잘 따라줘서 등급 이상의 활약이 잦은 경우나, 성물 혹은 유물을 얻으면서 스펙 자체가 올라가는 경우다.

결사대까지 살아남았던 난 분명 유물 몇 개를 들고 있었다. 그렇게 돌아온 내 점수가 고작 1천만이라는 건, 터무니없는 소리다.

‘내가 이 기억을 가진 건, 숨겨진 뭔가가 있어. 정말 회귀라서 업적 포인트가 있던 거라면, 그 점수는 말이 안 된다.’

어쩌면 회귀가 아닐 수도 있었다.

양팔에 단검이나 간신히 들고 자리만 지키는 상태라 할 일이 없다 보니 잡생각이 많아진다. 일단, 지금은 길드원들 지휘하면서 지혜의 쇼케이스를 감상할 때다.

“전 그러면 자리로 가볼게요.”

“그래.”

지혜가 기술을 시전 할 자리를 잡기 위해 떠나자 살짝 떨어져 있던 안혜성과 이진아가 따라붙었다.

“슬슬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혜성씨, 안 그런 척하더니 긴장되나 보네.”

마른침을 삼키며 장비들을 하나 하나 만지는 혜성을 보며 이진아가 키득거렸다.

“그래. 군인들 움직임이 바쁜 걸 보니 시작하나 보다.”

난 안혜성의 말에 답해주곤 전방을 바라봤다.

어인 군단과 언데드 군단이 저 멀리 진형을 갖춘다.

총사령관이 없다고 해도 지난번 B급 브레이크 때처럼 여기저기 흩어져서 무질서하게 돌진, 무작정 들이받는 웨이브가 오진 않는다.

“그런데 군대 포격은 닿을 것 같은데 안 쏘네요.”

“그것도 효과가 아예 없진 않겠지만, 물자 낭비야.”

군의 포격을 미리 쏟아부어 진형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좋을 것 같기도 하지만, 지나친 낭비다.

폭격, 포격이 전투에 도움이 된다지만, 함부로 쓸 수는 없다.

‘주술계나 원거리 네임드 괴물이 있으면 그 포탄이 역으로 우리에게 돌아오거나 요격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잡병은 금방 정리할 수 있어. 중요한 건 고위 괴물과 네임드를 잡는 거다.’

잡병을 잡겠다고 쓰는 것이 아니라 그런 놈들 잡을 때, 도움이 되라고 그 비싼 돈 덩어리들을 퍼붓는 것이다.

우리가 포격을 퍼부으면 놈들은 잘됐다고 물자만 소비시키다가 네임드급의 기운을 재충전하기 위해 후퇴할 것이다.

군이 제대로 된 힘을 내려면 적과 같은 계열의 아군 각성자가 반드시 견제를 해줘야만 했다.

쿵! 쿵!

그때, 지축을 울리는 소리와 함께 집결해있던 적 선봉이 진군하기 시작했다.

거리가 좁혀옴에 따라 멀어서 잘 보이지 않던 적 병력의 구성이나 군대 사이사이에 자리 잡은 네임드들의 모습이 보인다.

“네임드 중에 익숙한 건 나가 정도. 그 외에 특별한 병종 같은 건 없나.”

“저기 중앙에 뭔가 걸리는 게 하나 있는 것 같은데.”

“적 지휘부를 나르는 전차?”

안혜성의 말처럼 적진 중앙에 전차 같은 것이 누더기 같은 천으로 덮여 있다. 그리고 중심부에는 탑 같은 것을 올려서 인간형 네임드 몇 마리가 탑승한 것이 보였다.

다만, 꼼꼼하게 가려둔 데다가 지면에 빼곡하게 모인 적 병력들로 놈들이 타고 있는 것이 어떤 병종인지는 식별하기 몹시 어려웠다.

“좀 거슬리는데. 따로 준비한 비밀병기라도 되는 건가.”

그때, 뒤쪽에서 예정된 전투준비 신호를 보냈기에 우리의 생각은 거기서 멈췄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이 되자 각 방어지역을 맡은 길드장들이 휘하 길드원들을 격려한다.

우리 쪽에서 산발적으로 함성이 터져 나오자 적 진형에서도 지능이 높은 네임드급 괴수들이 지휘관처럼 괴성을 지르며 사기를 끌어올리면서 전진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돌진이 시작됐다.

가장 선두에 선 것은 가재들이고 뒤편으로 개구리들이 어기적거리며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 보인다.

“기병이 먼저 돌격해 오질 않네요. 맞추기 어려우니 최전방에서 교란할 거로 생각했는데···.”

“전달 받은 대로라면, 가재가 재생력은 없어도 방어력이 거의 트롤 수준이야. 그러니 기갑 전력 뒤에서 숨어 오려는 거겠지. 성벽에 도착하면 도약해서 위를 어지럽히려 할 거다.”

의문을 표시하는 안혜성에게 난 적 병종의 쓰임새를 설명해주었다.

“가재는 기갑부대면서 동시에 수송 부대야. 정란 같은 역할을 하는거지. 어인 병사와 독침병을 몸에 싣고 집게발로 성벽을 타고 오를 거다. 그리고 놈들도 오늘 공격으로 끝장을 보려는 것 같진 않아.”

“확실히 네임드들이 전면에 나서질 않는군요.”

우리 방어 상태를 확인하고 간을 보려는 거다.

내가 알기로 원래 공방전은 첫날부터 네임드들이 대거 투입되며 몰아쳤다고 하는데, 해룡이 격퇴당한 여파가 있는 것 같다.

‘셈에 능한 놈이 지휘권을 잡은 것 같은데.’

특급 초대형 이상으로 여겨졌던 브레이크다. 게이트의 네임드급 숫자도 어마어마했고 그중에는 어지간한 특급 소형 게이트의 보스급인 놈들도 널려있다.

하지만 이번 공격, 적의 근접형 네임드들이 하나도 나서질 않았다.

“그래. 네임드들이 대거 나서지 않는 한은 우리 1차 방어선을 고작 그 정도로 밀어내긴 힘들지. 하지만 저쪽도 뭔가 노리는 한 수 정도는 있을 거야. 간을 볼 방법은 많은데 굳이 병력을 낭비할 이유는 없을 테니까.”

안혜성의 고개가 내 시선을 따라갔다.

“언데드들···.”

여기서 뭔가 있다면 언데드다. 아크리치가 하도 오랜 시간 동안 북쪽 땅을 점령하면서 게이트를 대부분 처먹어서 병종이 뭐가 있을지 나도 짐작이 안 간다.

‘뭐, 하지만 이번에 한해서는 뭘 준비했든 소용없을 거다.’

놈들이 뭔가 해내기엔 아직 고성으로 떠나지 못한 서이수도 있었고 적들이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지혜라는 변수도 있었다.

2차 성벽의 망루 중 지맥과 연결된 장소에 자리를 잡은 지혜는 포르세티의 신호를 받으면 그때 기술을 사용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적의 진군이 시작되었으니 슬슬 준비 중일 것이다.

‘지금 상태 기준으로 17분 30초였나?’

시전 시간이 정말 더럽게 길긴 하다. 레벨이 오르면서 직업 특성을 추가하면 지금도 긴 저 시간이 더 길어진다는 걸 생각하면 나는 답답해서 못할 것 같다.

적이 족히 몇 킬로미터는 되는 거리에서 천천히 전진해오다 보니 오는 시간만 족히 몇 분은 걸렸다.

물론, 사거리가 나오면서부턴 이쪽에서도 군과 원거리들의 사격과 폭격이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공격 대부분은 적이 준비한 새로운 병종에 의해 대부분이 차단되었다.

“저건!”

적 진형의 한가운데, 그저 지휘관이 탑승한 정체를 모를 전차 비슷한 것이라 여겼던 것은 땅을 기면서 움직이고 있는 거대한 자라였다.

놈들이 자라 위에 설치한 탑으로부터 하늘로 푸른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하늘에서 분수처럼 퍼지며 일정 범위의 병력을 원거리 공격으로부터 지켜내기 시작했다.

[전 병력 대기! 보호막에 C급 이하의 공격이 먹히지 않으니, 그 이하 원거리들은 외곽으로 목표를 바꾸거나 보호막 범위 내로 우리가 들어갈 때까지 마력을 아낄 것!]

비공정으로부터 서이수의 명령이 내려오자 미친 듯이 퍼부어지던 아군의 원거리 공격은 확연히 줄어들어 고위 각성자들의 것만 산발적으로 터졌다.

그 정도는 적군 네임드 원거리들이 대부분 요격해내고 있었기에 상대편도 주력을 보존한 채, 성벽으로부터 수백 미터 정도까지 거리를 좁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성벽에 적들이 도달했다.

여태 기갑 전력 뒤에 숨어 전진해오던 개구리들이 일제히 뛰어오른다. 가재들이 일제히 성벽을 집게로 찍으며 매달리자 성벽 전체가 크게 흔들리기까지 했다.

개구리가 뛰어내리는 건 우리 길드가 자리 잡은 방면도 마찬가지다. 난 태양을 가리며 짙은 그림자를 만드는 개구리의 하얀 배를 보며 안혜성을 불렀다.

“안혜성!”

“네! 갑니다!”

혜성이 고함을 내지르며 개구리가 착지하려는 지점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래도 몇 차례 상대해봤다고 개구리에 설치된 안장 위, 고삐를 당기는 어인 기사를 향해 길드원들의 깔끔한 일제 사격이 퍼부어졌다.

순식간에 제 주인을 잃은 개구리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다 숫자의 폭력에 쓰러지며 성벽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아주 좋아! 잘하고 있어! 그러면 이제 올라오는 놈들 노리자. 우리 전력으론 팀장급 이상을 빼면 가재는 치명타를 주기 힘드니까 신중하게 급소 위주로 봐!”

그래도 필드에서 상대하던 것보다는 편할 거다.

특히 가재 눈 같은 부위는 원래 거대한 집게발로 가려서 공격하기가 어려운 부분인데, 지금은 그 두 집게가 붙잡혀 있으니 평소보다는 쉬울 것이다.

일단, 우리 방면은 어렵지 않게 막아내는 느낌이다.

가재들 몇 마리가 어인들과 함께 올라와서 성벽 일부를 점거하기도 했지만, 이쪽 숫자가 훨씬 많다 보니 금방 성벽 밖으로 몰아냈다.

나는 우리가 있는 방면의 마지막 어인 독침병이 날린 가시를 쳐낸 후, 놈을 걷어차 성벽 밖으로 떨어뜨리곤 주변을 살폈다.

“혹시 사상자 있나?”

“부상 1인! 명진이 목에 독침 맞고 정신 잃었습니다! 즉시 해독은 했고요!”

당한 부위가 목인 거면 잠깐만 방치되어도 죽을 수 있는데, 전황이 안정적이라 그런지 조치가 빨리 됐나 보다.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지시를 내렸다.

“치료한 서포터가 후방으로 이송해. 정신 차리면 바로 합류하라 전달하고.”

“알겠습니다. 전무님!”

슬슬 시간상 지혜의 기술이 시전이 될 때가 됐다 싶어 나는 여유가 생긴 틈에 전황을 살폈다.

우리 쪽은 깔끔하게 막아내는 그림이지만, 적 병력이 집중된 중앙은 혈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저 멀리 수많은 좀비를 매달고 성벽 방향으로 직진하는 살덩이 괴물 수십 마리의 모습이 보였다.

“저거···.”

무슨 수작인진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행동이 수상했다. 하지만 성문 방면을 수비하는 쪽은 그걸 파악할 정신머리가 없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다. 펄쩍펄쩍 뛰어다니는 개구리, X자로 집게발을 모은 채 여러 마리가 모여 성벽 위에 격벽을 만드는 가재 괴물들 탓에 1차 방어선 안쪽까지 적 병력이 계속 뛰어들고 있었으니까.

‘설마 1차 방어선이 하루 만에 뚫리는 건가?’

지휘부에서 급히 외곽 쪽 여유 병력을 빼서 중앙으로 보내려는 중이지만,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아까 보았던 살덩이 괴물이 적 병력이 빼곡하게 모인 중앙을 파고들어 그 방면 성벽에 닿는 순간,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났다.

“뭐야? 저게 왜 폭발해!”

그게 황당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나 보다.

우리 옆 방면을 맡던 길드장도 입을 벌리고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성벽에 부딪히는 괴물들이 연달아 폭발한다. 저 정도 폭발력이면 자원을 퍼부어 단단하게 보강한 성벽이라도 버티질 못한다.

“폭탄 좀비! 살덩이 괴물에 들어있어요!”

서포터라 감각 능력이 가장 높은 이진아가 우리 중에선 제일 먼저 무엇 때문에 폭발하는지 알아차리고 외쳤다.

자세히 관찰하니 그녀의 말대로 활활 타오르는 좀비의 파편이 보였다.

이대로면 중앙이 뚫린다.

하지만 우려와 다르게 성벽은 멀쩡했다.

해룡을 상대할 때 봤던 황금빛 보호막이 해당 방면을 보호하고 있었다. 서이수가 보호막을 펼쳐 막아낸 것이다.

다만, 폭탄 좀비를 삼킨 살덩이 괴물이 달리는 장소가 중앙뿐인 것은 아니었다. 언데드 본대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살덩이 괴물의 숫자도 상당해 보인다.

[최대한 막다가 2차 방어선으로···.]

서이수로부터 퇴각 준비를 지시하는 목소리가 나오다 말고 멈췄다.

일전에 블랙이 보여줬던, 그 기술을 쓸 때 느껴졌던 수준의 막대한 기운이 2차 성벽 방면에서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늘이 급격히 어두워진다.

순수하게 마력으로 만들어진 거인의 형상.

보통 오륙 미터 정도인 거인화 수준이 아니다. 마치 신이라도 강림한 것 마냥, 두 손을 하늘로 들어 올린 여성의 상체가 우리 뒤편, 성벽 위로 솟아 올랐다.

거신은 감고 있던 눈꺼풀을 연다.

눈으로부터 보랏빛 전광을 뿌리는 거신이 양 손바닥을 맞댄 후, 천천히 두 손바닥 사이를 벌리자 그 사이로 끔찍한 파괴의 격류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만큼은 적도 아군도 일부 겁 없는 언데드나 지성이 약한 괴수를 제외하면 자신의 목소리를 잊었다.

“[파괴의 화신 - 포스 캐논]”

그리고 그 지혜의 모습을 한 거신으로부터, 확신을 담은 목소리가 전장을 울렸다. 그녀는 손바닥 사이에 모인 기운을 슬쩍 밀어내듯 전방으로 뻗는다.

자연스레 삼각을 형성하는 두 손 사이의 공간으로부터 이 지역의 지맥과 연결된 순수한 마력의 섬광이 저쪽에서 달려오던 언데드들을 향해 뿜어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적 진형 네임드들이 섬광 방면으로 보호막을 형성한다. 수십 겹으로 중첩되는 보호막에 섬광은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엄청 화려하긴 한데, 생각보다는 위력이 별로인 것···.”

내 쪽을 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이진아의 말을 끊고 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냥 지켜봐.”

잘 막아내는 모습에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던 적 진형의 네임드들 표정이 굳어버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지속되는 타격으로 보호막에는 마력이 계속 빨려 나가는데, 거신은 어디까지 버티나 보자며 섬광을 뿜어내는 것을 멈추질 않는다.

결국, 버티지 못한 보호막이 먼저 터져나갔다.

방해꾼을 치워낸 섬광은 그 방면으로 진군하던 언데드를 모조리 소멸시키면서 지나갔다.

끝이 아니다. 지혜는 그대로 언데드 진형을 향하던 두 손의 각도를 조금씩 우측으로 틀기 시작했다.

‘화신 형성에 들어간 그 마력이 다할 때까지 계속 퍼붓는다. 최대 공격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지속력 만큼은 미쳤지. 말 그대로 양민 학살에는 최강인 직군이다.’

대전쟁 시기, 마력 B급이나 A급이 한계인 각성자들을 배치해도 요충지에 지어진 전초기지를 노리는 잡병들로부터 최소 하루는 버티게 해줬던 기술이다.

‘하물며 지혜의 마력은 기형적 분배라 S급이지.’

뭔가 잘못됐음을 깨달은 해당 방면의 어인 군단 지휘부는 곧장 병력을 퇴각시키려 했지만, 성벽에 바짝 붙은 놈들을 제외하면 그 어떤 놈들도 도망칠 수 없다.

사거리 하나만큼은 모든 직군 중 최상위인 디스트로이어다. 섬광은 시원하게 쭉 쓸어버리며 뻗어 나갔다.

결국, 화신을 형성한 마력을 다 퍼부어 크기가 있는 대로 쪼그라들었을 시점에는 언데드 지원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어인 군단도 섬광의 추격에 약 5분의 1가량이 소멸해버렸다.

지혜의 손길이 향했던 방면에는 곧바로 뒤돌아 달아난 고급 병종 일부와 공격을 버텨낼 힘이 있는 네임드 급을 제외하면 잡병들은 그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다.

생각지도 못한 막대한 피해 때문인지, 아니면 준비한 수가 모두 날아간 탓인진 모르겠지만, 어인 군단은 그대로 퇴각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추격하란 말조차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지휘부도 놀라기는 놀랐나 보다.

‘뭐, 특급 각성자가 전력으로 펼치는 최종기 수준 일격이 뜬금없이 튀어나왔으니. 놀랄 만도 하지.’

다만, 저건 재사용 대기 시간도 긴데다 주변 지맥도 손상시킨다.

한 지역에서 너무 자주 쓰면 땅이 죽어버린다든가, 자연 재해가 일어난다거나 하는 부작용이 있어 자주 쓸만한 기술은 아니다.

지혜의 쇼케이스가 몹시 충격적이었는지, 방어선에 모인 이들의 시선이 그녀가 위치한 망루 방향을 떠나질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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