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 동해안 사태
* * *
지속적인 공격을 받은 해룡의 비늘은 여기저기 성한 곳이 별로 없고 3분의 1 정도는 깨져나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니 다들 슬슬 보스가 위기감을 느낄 때가 다가왔다는 것 정도는 짐작하고 있다.
막 주변의 나무들을 쓰러뜨리면서 광란을 일으키는 해룡을 보며 블랙은 쓴웃음을 지었다.
“참, 우리 전력이 모자란다고 해도 그렇게 몸 성히 돌아가시려고 하면 쓰나···.”
오랜 기간 괴물들과 전투하며 살아남은 감으로 미루어보아 달아나려는 첫 시도의 전조증상이다.
게이트였다면 저리 달아나 봐야 공략하는 동안 이미 포위망을 갖추고 한곳으로 몰아넣었을 테니 천천히 공략하면 되는데, 필드에서 싸우게 되는 괴물들은 이게 너무 귀찮다.
취약한 방면의 포위망으로 도망치리라는 것 정도는 지휘를 맡은 두 특급 역시 예상을 하고 있었다.
위에서 상의했을 때 일부러 비워두기로 하기도 했고 막아내기 위한 한 수를 남겨두기도 했다.
물론, 서포터인 서이수가 저걸 막는다는 말은 아니고 블랙에게 한 수가 남아있는 정도다.
여기서 한 차례 제대로 카운터를 먹여서 막아내면 잠시라도 그로기 상태에 빠질 것이고 그 타이밍을 잘 노리면 한동안 전장에 복귀하지 못할 정도로 상처를 입혀 돌려보내는 것 정돈 가능할 것이다.
“부탁한다.”
블랙은 소환수의 목덜미를 살살 긁어주며 신호를 보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검은 깃털들이 일제히 금색으로 빛난다.
까마귀의 뒤편으로 새빨간 화염의 고리와 후광이 퍼져 나가며 추적추적 비 내리는 춥고 어두운 밤하늘에 태양이라도 떠오른 듯한 위엄을 보였다.
화려한 준비 동작은 잠시뿐, 포물선을 그리며 급강하한 불타는 까마귀는 날아든 방면에 대규모 산불을 일으키며 그쯤 돌진을 시작한 해룡의 머리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들기 시작했다.
특급 소환수가 전력을 다해 뿜는 마력의 격류에 주변 대기가 일그러지고 지나치는 자리마다 기압이 요동치며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그렇게 태양 까마귀가 해룡과 충돌하려던 그 순간, 거기 탑승해 끝까지 전방을 주시하며 타이밍을 재던 블랙의 입에서 기술의 시동어가 내뱉어졌다.
“[템페스트].”
일반인이라면 그 소리만으로도 죽이고도 남을 굉음이 터져나가며 충돌 지점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퍼져 나간다.
마력을 있는 대로 뿜어가며 전력을 다해 달리던 괴수와 부딪친 무시무시한 충격량을 버티지 못하고 까마귀가 즉시 역소환 된다.
기술명을 내뱉자마자 발생한 충격파에 소환수에 타고 있던 블랙 역시 앞에서 대부분의 충격을 흡수해줬음에도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편 허공으로 수백 미터는 튕겨 나갔다.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충격량이었지만, 베테랑 영웅답게 그는 허공에서 바람을 움직여 몸을 고정했다. 블랙은 제 기술이 만들어낸 참상을 확인했다.
해룡과 충돌하며 역소환 되던 그 순간, 까마귀 몸의 그 초고열의 불꽃은 기술로 불러낸 폭풍의 인도를 받아 해룡의 몸을 소용돌이치듯 휘감으며 깡그리 태우고 지나갔다.
소환수 기술에 담긴 막대한 열량 에너지까지 단 하나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블랙 스스로 개발한 연계 기술이다.
“특급 대형괴수의 전력을 다한 충격량은 아직도 피해 없이 막아내기 힘든 건가. 이젠 레벨도 더럽게 안 오르는데, 삼족오 같은 놈을 하나 더 불러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블랙은 입안에 고인 피를 내뱉곤 투덜거렸다.
어쨌든, 그 무시무시한 고통과 충돌의 여파에 쇼크라도 왔는지 해룡은 제자리에서 간헐적으로 꿈틀거릴 뿐, 전혀 움직이지를 못한다.
그 사이, 도망친 해룡을 급히 뒤쫓은 공격대원들이 다시 포위망을 구성하고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해룡에게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살을 파고드는 공격들에 정신이 들었는지 몸을 돌돌 말며 피격 면적을 줄인 해룡이 눈을 번쩍 뜨곤 위협하듯 머리를 치켜들곤 괴성을 질렀다.
“원래 겁먹은 개가 더 크게 짖는 법이지. 그 녀석은 어딨지?”
심상치 않은 기술을 준비하던 그 녀석. 분명히 지난번 카페에서 캔디 녀석에게 소개받았던 궁사다.
준비중이었던 건, 분명 그가 알고 있는 대로라면 등급이나 신입이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강력한 기술이다.
“한 번 본 적이 있어. 레인저 계열 쪽, 아스트룸이었나?”
어쨌든, 그가 멈춰 세운 지금이 기술을 쏴 날릴 절호의 기회임은 확실했기에 블랙은 몸을 추스르면서도 유성의 위치를 찾았다.
그러나 보스 주변의 그 어디에도 유성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그리고 한 차례 추격해온 이들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낸 괴수가 반격을 가하려는 듯, 힘겨운 표정으로 기운을 끌어모으며 주변 바람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브레스! 피해요!]
그건 누가 봐도 숨결 전조 증상이었고 해룡이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심지어 서이수나 방어하려고 자리를 잡았던 전위들도 마찬가지다.
[잠깐!]
뭔가 이상하다. 상황은 명백히 숨결을 가리키고 있긴 했는데, 지금 상황에서 발악하듯 숨결을 뿜어낼 상황인가 한다면 그건 아니다.
용의 숨결은 용종 괴수의 최후의 수단이라고 할 법한 기술이라 레이드 한 번에 두 번 쓰면 많이 쓴 것이다.
지금은 숨결을 뿜어낸 지도 얼마 안 됐고 조금 전, 그런 상황에서 마력까지 써가며 탈출 시도를 했다.
남은 힘을 모조리 긁어내면 또 쓸 수야 있겠지만, 이런 상황에서 할만한 짓은 아니었다. 쓰는 것 만으로도 다시 그로기 상태가 될 것이다.
해룡도 숨결을 뿜어 완벽하게 퇴로를 뚫지 못하면 확실히 탈출할 수 있는 상황에서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이건 좀 이상한···.]
뭔가 이상함을 느낀 블랙만 머릿속을 맴도는 생각을 정리하려 했으나, 이미 멀찍이 멀어진 전위와 비공정으로 인해 포위망은 급격히 헐거워졌다.
[이런 망할! 다 돌아와!]
그리고 바람 소리와 함께 자욱하게 먼지구름이 일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방대한 마력의 섬광 같은 건 어느 방향으로도 뿜어지지 않았다.
블랙의 말도 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 모두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동일했다.
‘속았다.’
초를 다투는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상식을 벗어난 돌발 상황을 모조리 예측하긴 원래 어려운 법이다.
그것도 누군가 지휘하는 상황인데 잘못된 지시가 나오기까지 했다. 충분히 속을 만 한 상황이었으니 다들 조건 반사적으로 움직인 걸 탓할 수도 없다.
“하···.”
이제 고작 한 차례 기술을 퍼부었을 뿐이다. 원래라면 진형을 다시 갖췄으니 몇 차례 탈출 시도를 틀어 막으며 상처를 지속해서 입히는 것이 보통이고 정상이다.
해룡은 쭉 공격을 받아 치명상에 가까운 상처를 입어가며 간신히 포위망을 헐겁게 만들고 도망친다는 정석에 가까운 방법을 쓰는 대신, 남은 마력을 긁어모아 블러핑을 치고 그 마력으로 연속 탈출 시도를 한 것이다.
물론, 뭐든지 결과가 중요한 법이다. 실패의 대가가 크지만, 성공만 한다면 해룡 쪽이 큰 이득을 보는 건 분명하니까.
“이 뱀 대가리가···.”
블랙은 허탈한 표정으로 다시 초고속 돌진으로 포위망을 뚫고 달아나려는 해룡의 모습을 바라봤다.
전투는 끝났다.
그리 여기며 천천히 바닥으로 내려서려는 그의 시선 끝에 반짝이는 백색의 무엇인가가 잡혔다.
* * *
벌써 전투 시간은 20분을 넘어갔다.
사실, 조금 전 그로기 상태에서의 공격 기회는 솔직히 나도 꽤 끌리긴 했다.
그게 안전하기도 하고 여기 있는 이들에게도 살짝이나마 실력을 보여줄 수 있으니 여기까지 올라온 값은 충분히 하는 셈이다.
물론, 나도 해룡의 행동에는 순간적으로 속았다.
이런 도박수는 지휘하는 자가 정말 천부적인 감으로 막아내거나 애초에 이중 삼중으로 대비돼 있어야 하는데 이 경우는 그중 그 어떤 경우도 아니었다.
“이번 생은 운이 따르는 건가?”
원래라면 내가 두 번째 탈출을 막는다고 해도 조금 전, 블랙이 막아낸 직후 정도의 공격권 한 번 정도를 얻을 수 있었을 뿐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탈출을 막아낸다면 그건 다르다.
‘죽인다.’
하지만 아직 난관은 남았다. 예상해야 한다.
괴수가 가까워지는 속도와 화살의 위력을 스스로 견딜 수 없어, 준비하고 기다리는 시간 따위는 허락되지 않은 내가 쏴낼 순간적인 타이밍. 그걸 잡아내야 한다.
‘머리를 맞춰야 한다. 몸통은 맞춰봐야 의미가 없어.’
그걸론 저 돌진이 막히진 않는다.
내 화살은 블랙이 사용했던 아까의 기술에 비하면 무게감이 약하다. 아까처럼 그로기 상태로 빠뜨리려면 반드시 머리를 맞춰야 한다.
다가오는 속도와 점점 커져오는 해룡의 머리. 나는 거의 때가 다가왔음을 느끼곤 눈을 감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5..4..3..2..1
다 세기가 무섭게 번개처럼 움직인 팔이 시위를 당긴다. 순식간에 가해지는 부담을 견디지 못한 활대에는 쩌적거리며 금이 간다.
절반 쯤 당겼을 땐, 칼날이 내 몸 위를 덮은 자연적 마력 장벽을 찢어발기며 소매로부터 팔꿈치까지의 방어구를 끝장내버렸고 조금 더 가자 팔에서 피보라가 압착기로 짜내듯 뿜어져 나온다.
'아...?'
솔직히 어떻게 쏴냈는지도 모르겠다. 순간적으로 시야가 암전되며 정신을 잃었고 다시 정신이 들었을 땐, 화살의 후폭풍에 휘말려 그대로 하늘을 날고 있었다.
[뭐해! 달려! 저거 위력이 부족해. 곧 깨어날 거다!]
[당장 못 도망가게 막아요!]
낙법도 못하고 구른 여파로 전신을 때리는 격통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서도 두 특급 각성자의 외침만큼은 정확하게 잡아챘다.
‘성공했나.’
팔이 전혀 움직이질 않는다. 덕분에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것에도 시간이 한참이나 걸렸다. 그리고 시선을 하늘로 올렸을 때, 난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꼈다.
거기에 한쪽 눈이 박살이 난 채, 엄청난 분노에 휩싸인 해룡의 남은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우···운이 좋군.”
어찌나 당황스러웠는지 입 밖으로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튀어나왔다.
운이 지나치게 좋긴 했다. 설마 그 화살이 눈을 향해 정확히 날아간 데다 심지어 그것에 반응조차 못 해서 눈을 감지도 못했을 줄은 몰랐다.
다만, 그렇게 너무 운이 좋아서 내게 엄청난 고통을 받은 해룡이 날아간 방향을 기억해 이쪽으로 친히 행사한 것은 그 모든 것을 뛰어넘을 불운이었다.
해룡의 머리 위, 뿔에 천천히 전류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브레스라도 뿜고 싶은 표정인데 그건 무리인가 보다.
‘민첩이라도 전성기 때 그대로면 어떻게 해보겠는데.’
낮은 민첩 수치가 발을 잡는다. 혹시나 모를 회피 가능성도 배제하겠다는 건지, 광역기를 쓰려는 모습이다.
아까 공중전 동안 질리도록 보여줬던 전류 구슬이 해룡의 뿔 끝에 형성되고 이미 뒤돌아 달아나기 시작한 내 뒤를 쫓기 시작했다.
그 구슬이 바닥에 닿는 순간 폭발과 함께 주위로 전류 폭풍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다행히 폭심지에선 벗어났지만, 아직도 지나치게 가깝다. 특급 괴수의 기술이다. 내 형편없는 장비와 내구도로는 스치기만 해도 위험하다.
갈래갈래 뻗어지는 번개 줄기가 몇 번이고 스쳐 가며 전방에 작은 크레이터를 만든다.
그리고 결국, 전력으로 발휘하던 감각 능력에 암담한 것이 잡혔다. 나는 전격 중 하공중에 뜬 내가 절대 피할 수 없는 경로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대로···. 죽는 건가?’
주마등이라도 느끼는지 순간적으로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고개를 돌려 이쪽으로 날아오는 전광을 바라보며 마음의 준비를 하려던 그 순간, 정면의 나무를 뚫어버리며 날아온 황금빛 채찍이 내 다리를 휘감았다.
몸에 닿은 황금빛 줄에서는 아까부터의 지휘로 인해 익숙해진 서이수 길드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대 저항하지 말고!]
황금 채찍이 닿은 몸에서 순간적으로 반발이 일어나려 했으나,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몸에서 마력 장벽을 의식적으로 흩어버렸다.
직후, 우측으로 급속하게 끌려가며 분명 내 사망 선고였을 그 전광에서 벗어난다.
즉시 이어 날아온 두 개의 황금빛 줄이 내 몸통과 팔을 붙잡고 하늘로 띄워 올렸다.
그 채찍은 몸이 지면과 평행을 이루도록 강제로 조정한다. 떠오르기 무섭게 곧바로 전류가 바닥으로 쭉 깔리며 내 몸 바로 아래와 전방의 나무들을 모조리 베어버리고 지나갔다.
끝이 아니다. 여전히 빗발쳐오는 수많은 전류 사이로 곡예 비행을 하듯이 내 몸은 허공에서 이리저리 꺾인다.
그리고 나는 한참동안 어떻게든 강제로 공간을 찾아서 그 그물 같은 전류의 망을 빠져나오는 자신의 몸과 주변 광경을 입을 벌린 채 부릅뜬 눈으로 구경해야만 했다.
“···이건 좀 힘드네. 그러면 이걸로 빚은 갚았다?”
그리고 그렇게 바닥에 엎어졌을 땐, 땀을 훔치며 나를 내려다보는 한 여자의 얼굴과 뜬금없는 소리가 있었다.
“뭐야, 반했니?”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곤 그녀에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너 제법이더라. 덕분에 저거 잡겠어. 자, 그럼 좀 이따 봐?”
그런 말을 남기며 서이수는 앞서 달려가고 있는 전위들을 따라서 전방으로 달렸다.
‘피해있자.’
전장으로부터는 좀 떨어져 있었지만, 아직 여기도 안전하진 않다.
그렇게 적당히 은신할만한 장소를 찾아 몸을 뉘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강화까지 풀려버리자 절로 신음성이 튀어나왔다.
저 멀리 폭음을 듣자하니 아직도 전투는 한창이다.
긴장이 풀려서인지, 몸 상태가 엉망이어서인지 몰려오는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고 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