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 동해안 사태
화살을 시위에 걸어 당기려다가 놓칠 뻔했다.
‘뭐 이런···.’
시위를 당기기 시작하자 에너지의 격류가 회전하며 퍼져 나간다.
지금의 너 따위는 백색 화살을 쏴 날릴 자격이 없다는 듯, 그 힘을 견디지 못한 팔이 제멋대로 굴면서 화살도 미친 듯 위아래로 흔들렸다.
착용하고 있던 가죽 장갑은 갈라지고 찢겨 터져나가 바닥에 떨어졌다.
“읍···.”
팔에 마력을 두르면서까지 억지로 화살을 안정시켰지만, 시위를 당기기 시작하자 다시 미친 듯 진동하는 화살에 나는 신음성을 내뱉으며 시위에 걸었던 화살을 되돌렸다.
‘안돼. 조준을 유지하는 건 무리다. 일순간, 전신에 마력을 둘러서 육신을 강화하고 순간적으로 쏴날려야 해.’
물론, 이러면 정확도를 기대할 수가 없다.
‘따라서 근거리에서 정확도가 필요 없을 순간에 쏴 날릴 필요가 있다.’
내가 안전한 곳에서 저격할 방법은 없어졌다.
그렇다면 전투가 벌어지는 장소에서 기회를 봐야 한다.
나는 곧장 화살깃을 쥔 채 허공에서 섬광이 오가는 저 멀리 전장이 펼쳐진 땅 아래를 목표로 달리기 시작했다.
물론, 알고 있다.
저긴 내 분수에 맞지 않는 전장이다.
저긴 비공정 위의 A급 각성자들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것으로 수많은 어딘가의 이야기 중, 가장 최단시간에 퇴장한 회귀자가 될지도 모른다.
애초에 고작 화살 한 발 날리자고 저기까지 갈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 전투가 끝나고 바로 복귀해서 보스몹이 나타난 것만 본대에 알리더라도 괜찮은 공훈 정도는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죽을 수도 있는 길이다.’
하지만 그것도 알고 있었다.
중요한 순간에 결단을 망설였던 놈들은 전부 죽었다.
그것이 옳건, 틀리건 전투에서 선택은 항상 상대보다 빨라야만 한다.
다가온 기회를 포착하고도 붙잡지 못하는 놈이 영웅이 될 자격 따윈 없다.
달린다.
먼 거리가 아니었기에 점점 전장은 다가오고 전황도 눈에 들어온다.
처음 기습당할 때처럼 함께 당하는 것을 피하고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함인지 다섯 갈래로 갈라진 비공정들은 고도를 올리고 내려가며 해룡으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빙글빙글 돌고 있다.
그리고 그 하늘 멀리 예전에도 지금도 영웅이라 불리는 남녀가 보인다.
그 방향을 바라보던 순간, 내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까마귀 위에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라도 된 것 마냥 열성적으로 거대한 바람의 팔을 휘두르던 블랙과 내 눈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다시 해룡 방향으로 향했다.
우주 전함의 포격을 피하는 쾌속선 마냥, 하늘에서 이리저리 급격히 방향을 전환해대는 까마귀 위는 누가 봐도 정신이 없어보인다.
그러나 블랙은 능숙하게 해룡에게 피해를 누적시키고 있었고 공중전 전문가라는 그 명성에 걸맞게도 잠깐의 순간조차 놓치지 않았다.
몇 번이고 블랙이 잡아채려는 손길을 몸을 튀겨 떨구거나 깔끔하게 피해낸 해룡이었지만, 다섯 비공정에서 타이밍을 맞춘 원거리들의 주력기 합격이 퍼부어진 직후에도 그런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까마귀에서 뛰어내리면서까지 기회를 놓치지 않은 블랙의 일격에, 그 깍지낀 거대한 바람의 소용돌이 주먹에 제대로 얻어맞은 해룡이 산봉우리에 그대로 처박혔다.
[됐다. 거기 전위들! 마력 못 일으키게 막아!]
그러나 그 공격조차 별것 아니라는 듯 해룡은 처박히자마자 바로 몸을 일으키곤 급히 제게 일렬로 달려오던 비공정을 향해 그 커다란 입을 쩍 벌린다.
마치 예상이라도 했던 듯한 행동에 지금 내가 저 비공정 위에 있는 것이 아님에도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지성이 있는 고위 괴수답게 숨결을 쏘기 위한 기운을 숨겼다.
그리고 저렇게 기운을 숨기는 작업은 지금의 내가 아무런 짓도 못 하고 마력만 소비하는 것처럼 기운 소모가 상당한 일이다.
즉, 해룡도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그런 만큼 막대한 에너지가 순식간에 해룡의 몸속에서 그 힘을 키우고 주변 바람은 맹렬하게 빨려간다.
용 계열의 주특기라 할 수 있는 용의 숨결이다.
그리고 3초.
그건 용의 숨결이 전위들을 내려주기 위해 급히 날아들던 비공정을 향해 뿜어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렬로!]
다만, 먼지 구름 밖으로 해룡의 머리가 드러나던 그 순간에 앞서 퍼지던 낭랑한 외침이 있었다.
오히려 정상적이라면 산개하는 쪽이 더 생존 확률이 높을 텐데, 그것을 정확히 역행하는 지시였으나 날아들던 비공정들은 본능인지 그 순간의 판단인진 모르겠지만, 필사적으로 선두에 선 비공정 뒤를 향해 기동했다.
‘뭘 하려는지는 알겠지만, 이게 거리가 되나?’
순간적으로 든 생각은 그랬다.
그리고 새파란 숨결이 방사형으로 퍼져 나가며 뿜어져 구름에 구멍을 내곤 지나갔다.
그 서슬 퍼런 섬광이 지나간 자리, 놀랍게도 떨어져 내리는 비공정은 오직 옆구리가 터져나간 한정 뿐이었다.
황금빛 파장을 흘리는 선두 비공정의 강화된 보호막 뒤, 일렬로 숨은 나머지 비공정 네 척 전부가 무사했다.
또, 까마귀에서부터 이어진 몇 줄기의 황금빛 광선들이 비공정을 끌어다가 강제로 일렬로 세워둔 모습이 보인다.
마치 채찍을 휘두른 것 같은 광선 줄기들의 끝은 까마귀 위 서이수의 손가락이다.
[아! 역시, 내 능력이란!]
다 들으라는 듯한 특유의 자기도취는 넘어가고 과연 한국 최강의 서포터라는 위명에 걸맞은 판단과 능력이었다.
해룡이 그들을 속이고 승부를 걸었다는 걸 파악하고 이어질 공격까지 예측한 지시를 내렸다. 또, 저건 예측이 실패한 것이었다면 낭비가 될 수도 있던 큰 기술이다.
시전시간도 있으니 이것 역시 한발 앞서서 미리 준비했다는 뜻이다.
“헛소리 그만하고 내려가기나 해! 저속으로 저공 비행하는 게 쉬운 줄 아냐?”
“참나. 나 여기서 짐짝 취급하는 게 맞아? 나 없었으면 이게 됐겠니?”
큰 역할을 해낸 두 특급 각성자가 까마귀 위에서 투닥거리며 다투는 사이에도 비공정에선 전위들이 뛰어내리며 군중 제어기를 때려 붓고 있다.
그만한 제어 기술이 없는 헌터는 큰 기술로 무기를 박아넣은 뒤, 충격이 큰 기술을 터뜨리는 방식으로 다시 부유하려던 해룡의 몸속에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해룡은 애초에 하늘을 날기 위한 육체 기관이 없다. 그렇다는 건 주문계 능력 혹은 마력을 소모해서 하늘을 날아다녔다는 것. 그리고 그건 지금처럼 마력적 충격이나 제어 기술로 시도할 때 충분히 방해할 수가 있다.
하지만 땅에 떨어졌다고 해서 특급 괴물인 해룡의 위협이 약해질 리가 없다.
“그거! 막으면 안···.”
해룡의 움직임에 대응하면서도 전장을 살필 수 있던 일부 베테랑들이 급히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곧바로 해룡의 몸 위로 뛰어내린 게 아닌, 지상에서 접근하던 일부 젊은 유망주들은 새하얗게 빛나는 비늘에서 뿜어져 나간 레이저를 달리던 걸 멈추고 몇 걸음 물러나며 안정적으로 튕겨냈다.
그리고 그건 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해룡에게는 아주 쉬운 먹잇감이다.
대부분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방식으로 막았던 유망주 십수 명은 그걸 막아내자마자 위에서 내리친 육중한 꼬리에 그대로 곤죽이 되었다.
“나랑 여기서 잡담할 시간 있으면 저런 거나 구해! 좀 내려라. 이 짐짝아!”
“아니. 나 좀 편하게 싸우게 해주면 덧나니?! 그리고 나 방금 큰 기술 썼잖아! 방금 비행하던 위치에선 시야도 안 나왔고! 참나, 누가 들으면 내가 놀다 애들 죽인 줄 알겠네! 억까는 자제 좀 하죠. 블랙씨?”
결국, 해룡 주변을 날아다니며 블랙과 티격태격하던 서이수 길드장이 까마귀에서 뛰어내렸다.
금성의 서이수면 10대 길드장치곤 사람 아주 좋기로 알려진 각성자였고 말은 저렇게 했지만, 방금 상황에 책임감을 느낀 것 같다.
블랙은 그녀가 뛰어내리자마자 바닥에 처박힌 해룡의 일반적인 공격은 전혀 닿지 않을 위치까지 다시 날아올라 거리를 유지했다.
[자! 지금부터 여기 지휘권은 나. 금성의 서이수가 접수하겠어요?]
딱히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기에 자연스럽게 지상에 내려선 인원들의 지휘를 서이수가 맡는 그림이다.
그리고 서이수는 자기가 왜 한국 10대 길드 중 5위에 자리매김한 길드장인지 톡톡히 보여주기 시작했다.
[셋!]
아주 얇은 보호막이 맨땅에 하나씩 형성이 된다. 주변에 있는 인원은 정확히 셋. 보호막 계열의 기초 기술이었고 그게 형성된 의미는 셋이서 뭉치라는 것이다.
[다섯! 둘!]
그녀는 동시에 황금빛 채찍을 여기저기 뻗어 이리저리 필드에 퍼진 병력의 위치를 바꿔갔다.
그러자 중구난방으로 흩어져 있던 인원들이 어느새 꽤 질서정연한 진형을 갖췄다.
아까에 비하면 보스에게 들어가는 반격의 수준이 다르다. 해룡이 공격 자리를 선택할 때 신중할 만큼 가능한 한 흩어졌고 서로 상성이 좋은 인원끼리 잘 배치됐다는 뜻이다.
[블랙! 위쪽은 네가 조절해!]
[알겠다.]
블랙과 마찬가지로 비공정 역시 전위들을 내려준 뒤에는 다시 흩어져 해룡의 점프나 육체 공격은 닿지 않을 거리를 유지했다.
그리고 그 범위가 유효 사거리 미만인 이들은 이미 지상에 내려와 있다.
다만, 저 멀리 보이는 서이수의 표정은 언뜻 봐도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해. 특급을 제대로 사냥하기에는 사람이 모자라다.’
오래 살아남으면서 내 전황을 보는 눈 하나 만큼은 어지간한 대형 길드의 장이나 특급 헌터보다도 더 확실해졌다.
비공정 두 대가 시작과 동시에 격파당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숨결 맞을 때 또 한 대가 빙글빙글 돌며 추락하지 않았다면, 해룡의 지상을 통한 탈출도 충분히 막아내고 격파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해룡의 힘이 다 빠지기 전에 작심하고 한 방면으로 탈주하려고 하면 결국에는 가게 둘 수밖에 없을 확률이 크다.
몇 차례 정도야 한국의 특급 능력자 중에서도 상위권인 블랙이 있으니만큼 막아 세우겠지만, 특급 전위가 있는 것도 아니라서 도망치려 들면 결국 못 막는다.
그 탓인지 서이수의 지휘가 조금 보수적으로 바뀐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력을 보존하려는 건가.’
그녀는 해룡에게 상처를 입혀 쫓아내는 정도의 선에서 공략 목표를 잡은 모양이다. 그리고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확신할 수 있었다.
‘어차피 난 여기선 잉여 전력이다.’
애초 화살에서 새어나가는 마력을 숨기려 기척을 최대한 죽이고 움직이고 있었고 공격 한번을 하지 않았던 만큼, 자리를 뜨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한참 이리저리 돌아다니던 나는 현재 진형에서 가장 방어하기에 취약한 자리를 찾았다.
지형이 높낮이가 다르고 지나치게 울퉁불퉁해서 전위들이 모으기가 힘들 장소다.
그러나 바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자리를 잡을 장소는 여기가 아니다.’
아무리 보스의 탈주를 막기 힘들 것이라 해도 저기서 지휘하는 둘이라면 한 수 정도는 분명히 남겨둘 것이다. 따라서 이곳이 막힌다면 바로 보스가 다음 탈출로로 삼을 위치다.
거기가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었다.
그리고 마침, 주변을 살피니 그럴만한 장소 두 곳을 모두 겨냥할 수 있을만한 위치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리 자리를 잡은 채 마력 소모를 담담하게 버티면서 침착하게 기회를 기다리기 시작했다.
전투는 격화되어간다.
주변에서 하나둘 전투의 흔적을 따라 낙오된 헌터들이 합류해나간다.
조금 더 기다린다면 해룡의 명령을 받은 병력이 산으로 올라오겠지만, 그리 버티기 어렵다는 걸 느꼈는지 드디어 놈이 기습적으로 튀어 나갔다.
내 예상대로 처음 봐뒀던 포위망의 가장 취약한 방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