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 동해안 사태
길드원들 전원이 버스를 타고 집결지로 이동을 시작했다. 물자와 사람을 실은 차량들이 오고 가는 통에 예전이라면 그럭저럭 한산했을 국도는 상당히 막혔다.
우리가 인제에 형성된 방어선에 도착했을 땐, 겨울이라 일찍 지는 해가 노을색으로 물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지휘부 쪽에 집결 보고하고 자리 받아올 테니 기다리고 있어.”
“네.”
서호교를 넘어 군과 협회에 도착했다는 것을 알렸다.
길드 마스터 대리로 간단한 서류 작업과 수속 절차를 마친 후, 우리가 맡을 작전 지역 및 주둔지를 배정 받을 수 있었다.
“이 정도로 넓은 지역을 우리 같은 신생 길드에 줄 정도면 여기 상황이 많이 심각해 보이는데요?”
“지금 고성 쪽 보급로 끊긴 지 벌써 1주가 넘었다니까. 그쪽으로 전력을 투사 중이니 고사리 손이라도 아쉬운 거겠지.”
“거기 맡던 팀이 없는 게 아니라 딱 봐도 그 팀 빼서 전방으로 보내고 우리를 그 자리에 땜빵 시키는 거야. 고성 쪽 상황이 아주 심각하나 보네.”
지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은 것을 내가 받고 그걸 옆에 따라와 있던 신수빈이 퉁명스럽게 받았다.
‘그래도 같은 아카데미 동기 졸업생이라고 자기들끼리가 편한가 보네.’
나타의 지시로 따로 합류한 탓에, 우리 길드 사이에 있는 게 어색한 이한솔도 길드 가입해서도 개인 연구하느라 친밀한 사람이 없는 신수빈도 일이 터져서 소집되자 슬그머니 지혜 옆에 측근처럼 붙어 있는 모습이다.
[음. 아~주 보기 좋네! 이러면서 정 드는 거지!]
물론, 포르세티는 그 풋풋한 청년들의 모습을 몹시 마음에 들어 했다.
어쨌든, 저 애들 말처럼 정부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지금은 작전 실패를 인정하고 고성을 구원하려는 건데, 사실 이전의 정부 작전이 아예 근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뭐, 고성이랑 인제에서 찍어 누르고 설악산 오대산 사이를 막은 뒤, 고성 쪽과 강릉 방면에서 포위해서 위아래로 때리는 걸 생각한 것 같은데.’
성공만 했다면 강원 북부 만큼은 깔끔하게 소탕할 수 있을 작전이긴 한데, 사태를 너무 과소평가한 셈이다.
“우리 주둔지 설치하고 물자 정리하는 동안 작전지역 먼저 살피고 오자.”
작전 지역을 보기 위해, 주둔지 건설을 감독할 몇을 제외한 길드 수뇌부들 전원이 서호교를 건넜다.
이후 통행증을 내밀며 요새화와 물자 비축 작업이 한창인 주둔지를 가로질렀다.
그러자, 지난 한 달간 공병대와 물류 협회 기사들이 합심해 건설해 놓은, 강과 강 사이를 틀어막으며 건설된 높이 십수 미터의 긴 성벽이 그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소양강 지류의 사이에 장벽을 세워놓고 1, 2, 3차 방벽을 차례로 형성해뒀다.
즉, 우리가 내린 주둔지 쪽의 강을 따라 건설 중인 장벽은 4차 방어선이다.
5차, 최종 방어선은 나들목 서쪽의 소양의 본진, 길드 요새다. 최종 방어선이 뚫리면 길드 내부에서 최후의 항전을 하다가 서쪽의 강 없는 방향으로 퇴각이다.
물론, 정상적으로 예상한 방면에서 적이 온다면, 그럴 때 이야기다.
퇴각 계획을 보면, 소양강 옆을 따라서 이어지는 이평로를 타고 합강 1교에서 국도로 올라탄다.
거기서부터 쭉 국도 타고 후퇴하면 되는데, 난 이게 계획대로 안 된다는 것을 잘 기억하고 있다.
“와, 여긴 무슨 장성을 건설해놨네요.”
“동해안 수복에 실패하면 앞으로도 여기서 쭉 막게 될 거니까. 어차피 지을 거니 미리 자원 투자한 거겠지.”
서호교 건너편 집결지 쪽은 기본적으로 소양강 지류가 흘러서 돌아 나가는 형태라 3면에서 자연지형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서쪽만 틀어 막으면 강을 해자로 삼아 거대한 요새 도시를 건설할 수 있는 지형이다.
그렇게 요충지인 만큼, 현시점에선 북진 길드 산하 소양 길드 본진이 위치한 장소다.
그 소양 길드는 사태 터지자마자 강 건너 주둔한 을지부대와 함께 여기 진을 치고 방어선 만드는 작업을 했고 그게 어느 정도 안정된 지금은, 문제가 생긴 고성 방면으로 길을 뚫는 중이다.
“아직도 민간인들이 탈출해 넘어오는 일이 잦으니, 밖에서 전투하실 때는 항시 구조를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성벽에 도착해 넘어가려고 하자, 입구를 지키던 장교 하나가 다가와서 주의사항을 당부했다. 괴물의 매복 따위로 생각하고 선제대응하지 말라는 소리다.
“알겠습니다.”
1차 방어선 입구를 통해 나가자 시야 끝에 이미 전투 중인 파티들 몇이 잡힌다.
우리가 타고 온 설악로의 46번 국도 방향, 우편의 다리는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끊여져 있었다. 집결지 쪽 방어 지점을 소호교 한 방향으로 통일하기 위해 그런 것 같다.
“저기도 지혜 네가 자리를 잡기에 괜찮아 보이긴 해.”
“끊긴 다리 위에서 너머로 원거리 공격 하라는 거죠?”
“저기 짓고 있는 건물들만 봐도 그런 목적이겠지.”
대놓고 비행선 정류장이나 원거리의 전투를 위한 첨탑 따위를 짓는 걸 보니 일부러 장거리 직군들 저 위에서 싸우라고 저 지점에서 다리를 끊어 놓은 거다.
차량 같은 거 대기시켜 놓으면 유사시 국도 타고 쭉 빠져나가도 되고 아니면 글라이더 같은 걸 대기시켜놨다가 타고 뛰어내려도 된다.
‘그나저나 이게 뚫렸다는 말이지. 얼마나 개떼같이 몰려온 거냐?’
설악산 남부 전선이 유지가 안 됐고 북진의 북쪽 전선도 밀려난 탓이긴 하겠지만, 이 정도로 철벽을 쳐 놓고 뚫렸다는 게 이런 철저한 방어선의 모습을 보면 쉽사리 믿기질 않는다.
“지혜 너는 예정대로 이 주변 지맥부터 찾아봐.”
지혜가 이번에 막 익힌 디스트로이어 기술은 대지 아래, 마력이 흐르는 지맥 위에 있어야지만 그 위력이 증폭되는 기술이다.
한 번 기술을 사용할 때 강하게, 그리고 길게 사용하려면 미리 지맥 위치를 다 파악해 둬야만 한다.
“설악산이 옆에 있어서 그런지, 이리저리 지맥이 많이 보이네요. 그러면 저는 그렇다 치고 다른 인원들은요?”
“난 정찰조들 데리고 담당 지역 경계까지 나가볼 생각이야. 표식은 남겨둘 테니 2팀은 정찰조가 지나간 자리 따라서 주변 정리하면서 이동하고 1팀은 지혜 너랑 안쪽부터 구역 정리하는 쪽으로 가자.”
다들 여기 놀러 온 것은 아니라는 것 정돈 인지하고 있었기에 도착하자마자 쉴 틈도 없이 내려온 지시지만, 불만 없이 따랐다.
* * *
한편, 그 시각 고성 외곽의 금강산 근처의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 지형에 지어진 금강산 길드의 상황은 시시각각 안 좋아지고 있었다.
그 길드의 주인인 김정우는 난간 위에서 길드 내부를 가득 메운 피난민의 모습을 보며 깊게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장군님 말씀 듣고 튀는 거였는데.”
처음엔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던 말인데, 진짜 죽을 거 같으니 후회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물론,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것도 정부 지시 무시하고 피난민들 이끌고 같이 도망친다는 말이지 자신의 길드만 튄다는 뜻은 아니다.
[것 봐라 이놈아! 내가 너 망하게 한다고 삼십육계를 쓰라 했겠느냐?]
“아니. 제가 여기 기반 어떻게 쌓았는데, 고작 그 정보 하나만 듣고선 어떻게 싹 내버리고 도망갑니까? 저희 길드 평판은 어쩌고요? 그리고 정부에서 사수하라고 했는데, 씹고 튀었으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 얼굴 못 들고 다닙니다.”
[그래도 그게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느냐. 원래 전쟁이라는 건 다 하늘의 뜻과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고 모름지기 전장에 나간 장수의 판단은···.]
“제가 다른 지역에서 온 길드장이면 장군님 말이 맞죠. 그런 전략적 판단을 할 수도 있는 거고요. 하지만 장군님. 전 장군님 시대로 따지면 이 지역 호족이란 말입니다.”
[끙···.]
“여기 피난 온 사람들 상당수가 저희 길드랑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분들이고, 또 믿고 이리로 왔을 건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면 양심이 있지 어떻게 버리고 갑니까?”
마지막 말 만큼은 옛날 사람인 그의 성좌, 강감찬조차 쉬이 반박하기가 힘들었는지, 말을 멈추고 조용해졌다.
사실, 신좌나 세계구급 성좌가 아닌 이상, 현재 A급 평가를 받는, 대전쟁 기준으로도 치더라도 현 B급에다가 잠재는 A급인 김정우 정도의 계약자를 지역급 성좌들이 다수를 보유하긴 쉽지 않다.
그만큼 강감찬에게 있어 김정우는 귀한 자원이었기에 이 사태가 터지자마자 귀한 명성 점수까지 써가며 북쪽에서 또 몰려온다는 사실과 돌아가는 정세가 좋지 않음을 경고하며 길드원 끌고 바로 퇴각할 것을 권유했었다.
물론, 거절했기 때문에 이 상황이다.
그리고 고성은 지금 완전히 고립되었다.
아무리 정보를 얻었더라도 혼자면 모를까, 한 집단의 장인 김정우로선 쉬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정부에서 내려온 명령도 그렇고 힘들게 쌓아온 기반 날아가는 것도 그렇고 여태 대한민국이 잘 해결해 왔던 것처럼 이번에도 충분히 막지 않을까 싶은 것도 그랬다.
그는 일주일 전의 그 망할 전문을 떠올렸다.
- 육로가 막혀 당분간 고성으로의 물자 보급이 어려울 것으로 보이니, 고성 지역 맹주인 금강산 길드는 이에 대비할 것.
김정우는 헌터 협회로부터 전달된 전문을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갈 뻔했다.
-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솔직히 저희 길드가 대형 길드도 아니잖아요.
곧장 협회에 연락을 걸어 비공정 지원을 요청했으나, 강릉 쪽 상황이 급하다며 당분간 버티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비공정은 돌아가는 상황에 따라 산발적으로 보내줄 수도 있고, 혹은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애매모호한 말 뿐이다.
그제야 그는 성좌가 여기 있으면 죽는다고 도망치라던 것이 떠오르며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장군님. 저희 이거 버티면 희망은 있습니까?”
[네가 한 말이나 돌아가는 상황을 본다면 강릉에서 민초들 전부 날아다 옮길 때까지 어떻게든 버티면 되겠지.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죽기 싫으면 버텨야 하지 않겠느냐? 네 선택은 이미 끝났고 그런 이상 달라지는 건 없다!]
“이런, 망할···.”
이전까지는 물자 퍼부으면서 1차 방어선에서 잘 막고 있었지만, 물자를 아껴야 하면서부터 어쩔 수 없이 군부대의 포격이나 사격 지원을 최소화해야 했고 방어선 보수도 정말 급한 것만 해야 했다.
그러면서 각성자의 근접전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전략까지 수정한 결과, 1차 방어선에서 버티는 건 일주일이 한계였다. 결국, 오늘 아침 고성 1차 방어선이 저 두족류 어인 떼거리에 밀려났다.
“길드장님. 이거 사람들 진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간이야 물자가 풍족하니 불만 나올 것은 없었지만, 이제는 최종 결정권자인 그가 모든 안 좋은 상황에 결정과 책임을 져야 했다.
김정우는 그 선택이 가져올 책임의 무게에 편두통이 이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는 그나마 자신이 대격변 시대 경험자라는 것에 깊게 감사했다.
당시 금강산 길드의 주인이었던 전 길드장이 했던 조치들이 그나마 지금 상황에 침착해지는데 도움이 됐다.
“뭘,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보급 끊긴 상황 알리고 우선 배급부터 줄여. 그나마 전기나 통신은 어지간해선 안 끊길 테니까 전력 아낀다고 핸드폰이나 전자기기 압수할 필요는 없겠네.”
“그거 핸드폰 쥐여주면 사기에 안 좋지 않을까요? 지금 말 나온 것도 뉴스로 고성 쪽 고립됐다는 말에 지금 말 나오고 있는 건데요.”
“그 사람들이 외부 사람들한테 계속 불만 이야기해줘야 여론 움직이고 이쪽에도 지원도 오고 하는 거야. 아직 공병이건, 예비대 건 여력 있으니까 움직여서 산에 동굴이나 더 파라고 해.”
이런 식으로 동굴을 파둔다면 최후의 방어선까지 밀렸을 때, 진짜 마지막으로 그 좁은 길목을 헌터들이 막고 버팀으로서 민간인들을 며칠이라도 더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 동굴 안에 합숙소 짓고 피난민 전부 몰아넣어. 그래서 민간인이랑 전투 인원이랑 생활 공간도 분리시켜놔.”
“길마님. 그러면 반발이 좀 심할 것 같은데요?”
“뭐, 배급? 그럼 식량 떨어지면 다 굶어 죽게? 너 연봉 그것도 다 이런 거 욕 받이 하고 통제하는 거도 포함된 거야. 혼자 총대 메기 무서우면 내가 시켰다고 하고 지원팀장 끌고 가서 같이 말해.”
“아뇨. 아뇨. 그게 아니라. 뭐 배급이야 불만은 터지겠지만, 다 속으로는 이해하겠죠. 그거보단 우리만 편한 데서 생활한다고 막 뭐라 말 나오는 거 아닙니까?”
“헌터들이나 군인들이 정신 나가서 민간인들한테 몹쓸 짓 하거나 그러는 것보다 이게 나아. 인사 팀장아, 대격변 시기엔 원래 다 이랬어.”
결국, 그 외에도 이것저것 통제할 사항을 지시 받은 인사팀장은 시원하게 욕을 한 사발 뱉은 뒤에 투덜거렸다.
“하, 이거 무슨 아포칼립스 쉘터에서 좀비 막는 기분인데요?”
“얌마. 말이 씨가 된다. 아포칼립스에서 쉘터 같은 건 결국 다 죽잖아. 그냥 나중에 올 대격변 예행연습한다고 생각해. 개같이 힘들겠지만, 버티면 지원이 오긴 오겠지. 설마 죽기야 하겠냐?”
물론, 김정우는 성좌로부터 들은 북쪽 언데드까지 내려온다는 정보는 혼자만 알고 그냥 속으로 삼켰다.
정부도 생각이 있으면 그걸 대놓고 떠들진 않을 테고, 지금 시점에 알아봐야 사기만 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