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 동해안 사태
직원 기숙사에서 일어나 출근하는 도중, 아카데미 한복판에 있는 거대 시계탑의 전광판에 뉴스 속보가 올라왔다.
단순히 영상을 찍은 것으로도 그 숫자를 표현할 길이 없어서 위성 사진까지 동원해가며 그 무지막지한 숫자를 추정해 내보내고 있다.
화면 속, 지금도 바닷 속에서 계속 기어나오며 동해안을 새까맣게 가득 메운 괴물 떼거리의 숫자는 공포감이 느껴질 정도다.
“와···.”
“저게 대체 뭐야?”
옆에서 걷던 교수들도 주변 인원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멈춰선 모습에 그 시선을 따라가다 걸음을 멈추고 황당함이 섞인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속보가 나가기 무섭게 나를 비롯한 강사들 손목이나 가방 등 여기저기서 헌터와치가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했다.
예비 전력인 교수, 강사들이나 은퇴 헌터들까지 소집 대기 명령이 떨어진 거다.
“2급이야. 오랜만인데.”
“예. 누가 봐도 심상치 않아 보이네요.”
마침 출근하던 임 교수도 나를 발견한 후 다가와서 내 옆에서 걷는다. 섰다. 1급은 대격변때나 발령되니 최고 수준의 비상사태 경보가 터진 셈이다.
‘그리고 이걸로 끝이 아니지.’
마치 이걸 기다렸다는 듯 북쪽에서도 죽음의 군세가 밀고 내려올 거다.
이때, 북진과 일원 길드가 발이 묶여버린다.
‘사실 북진은 고작 발 묶이는 수준이 아니지.’
여태 힘들게 북부 개척해놓은 땅을 모두 잃고 남쪽으로 쭉 밀려난다.
북진은 경기 북부와 강원 북부 전체를 세력권에 넣은 길드라 동쪽에서 밀려오는 해양 괴물의 공세와 북쪽에서 밀고 오는 아크 리치의 공세를 막아야 하는 처지다.
결국, 저 두 길드로는 힘이 모자라서 천안에서 급히 올라온 명성 길드를 배치하고 그도 모자라서 전남에서 청해의 주력까지 올라오고 나서야 북부 전선이 다시 안정됐었다.
기억하는 대로면 강원 남부는 경남을 세력권으로 둔 삼정, 강원 북부와 경북을 세력권으로 하는 태백이 막게 될 것이고 중부는 서울에서 출발한 금화, 그리고 대전에서 올라간 대한이 막을 것이다.
‘10대 길드 중에 남은 건 창천하고 금성.’
저 둘도 노는 것은 아니다. 각 길드가 빠지면서 생긴 각 지역 공백이나 뚫리는 지점을 막아설 예비대 역할을 창천, 금성, 그리고 관리국이 해결했다.
저 둘이 국제적 지원을 요청하기에 가장 영향력 있는 길드들이기도 했고 특별히 이런 건으로 명성을 떨칠 필요가 없는 길드들이라 자질구레한 후방의 일을 맡은 거다.
국내 10대 길드 전부가 이 사태에 매달렸을 정도의 국난이었다. 이 동해안 사태는 당시 멋 모르던 초보 헌터 시절의 나도 그 경과를 모두 기억할 정도다.
‘아마 지금쯤이면 한창 길드 마스터들끼리 모여서 회의 중이지 않을까.’
2급 경보가 발령된 탓에 헌터 협회와 정부가 논의한 뒤, 따로 지시가 내려올 때까지 교수나 강사들 모두 전투 대기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아카데미 정교수들은 전부 교장실에 모여서 회의에 들어갔고 사태 당일의 수업은 전부 학교장 지시로 휴강했다.
시간이 빈 지혜와 나는 곧장 차를 몰아 청수 길드 사무실로 이동 중이다.
“···솔직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요.”
“우리한텐 다행이지. 콩고물이 뭐라도 떨어질 건 확실하니까.”
실시간으로 헌터 와치를 통해 확인되는 적대 개체의 규모에 지혜는 완전히 질린 표정이다.
현재까지 동해안 전역에 잡힌 규모만 추산해봐도 괴물의 숫자가 천만 단위가 넘는다. 그리고 실시간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속초랑 동해는 이미 방어선이 무너졌다는데요! 강릉도 지금 포위당해서 위험하대요!”
길드 상황실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도착해 있던 이진아가 우리를 반기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강릉은 버틸 거야. 거기 경포 길드도 있고 각 거대 길드에서 출발한 비행선들이 최우선으로 그쪽으로 이동할 테니까.”
“그런가? 전무님, 뭐라 공지 뜬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어요?”
“근거는 SNS나 커뮤니티 사이트. 들어가서 대피 명령 검색해서 확인해봐. 강원도 북부는 1차로 인제, 강릉으로 대피하라는 명령이 떨어졌을 거야.”
“강원 북부 대피 장소. 고성도 있는데요?”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은데.”
정부의 판단 근거는 이해가 간다. 뒤쪽에 금강산을 등지고 있고 거기 금강산 길드가 위치한 덕분에 방어하기에는 몹시 쉬운 편이었다.
다만, 회귀 전 기억으론 그 길드가 고성에서 방어전 하다가 인제 쪽이 동, 북의 협공에 버티지 못하고 밀리면서 고립된다.
금강산 길드는 거기 남은 시민과 버티다가 물자 부족으로 고사 당하면서 최후의 탈출을 시도하다 전멸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유성씨. 저희 성좌 님은 어떻게 하신대요?”
“저한텐 강릉으로 갈 거라고 하셨어요.”
“아. 그래요?”
두 여자의 대화에 나는 일단 긍정했다.
“성좌님 원래 계획은 그거긴 했는데···.”
지금 떠오른 기억 탓에 다시 계산 중이다.
물론, 원래 안대로 강릉으로 가더라도 광고 효과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김 전무님. 설마?”
“지금 고민하는 중이야.”
강릉으로 가면 안전하다.
이 당시 첫 게이트 사고로 안 좋은 취급을 받긴 했지만, 워낙에 엄청난 국난이라 나도 참가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그때 용병으로 참가했던 길드는 강릉으로 향했었다.
결국에는 후퇴하긴 하지만, 거기 있던 국민 전부 다 큰 사고 없이 비공정으로 열심히 날라서 안전지역으로 옮겼었다.
이후, 특급 괴수들이 오기 전에, 헌터들까지 전부 퇴각에 성공하면서 강릉 쪽은 땅을 잃은 것 외엔 피해가 거의 없었다.
반면, 인제 쪽은 공방전이 진행될 때도 인명피해가 무진장 발생했고 훗날 다시 동해안으로 밀어내면서 도시를 수복하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횡성 방어선까지 후퇴도 했었다.
훗날, 무용담을 자랑했던 북진 출신 헌터가 그 횡성 후퇴는 정말로 끔찍한 경험이었다는 이야기를 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지혜, 그러니까 대전쟁 이전, 광역에 한해서 준 S급인 능력자 하나. 그리고 기술 발동 기준으로는 마찬가지로 대전쟁 이전 기준 A급인 내가 추가된다고 했을 때, 인제의 함락을 막고 고성 방면을 뚫을 수 있나?’
중요한 건 그거다. 인제로 가는 경우의 장단점은 명확하다.
가장 큰 장점은 금강산 길드와 그 지역 주민에 생명의 빚을 지우는 것이다.
그 외에도 북진 길드와 부대끼게 될 거라 미리 친분을 쌓는 건 기본이고 지혜가 갖춘 능력에 대해서도 제대로 보여주고 호감을 살 수 있다.
‘무엇보다 이 사태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을 전국의 국민에게 극적으로 보이는 것. 이게 의외로 무시할 수 없는 힘이지.’
길드 사이에서 뭔가 사건이 벌어질 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는 때로 강한 명분이 되어주곤 한다.
고성 구원에 성공하면, 그 선두에 서게 될 지혜는 단순히 실력 있는 각성자 1이 아니라, 대참사를 막아낸 영웅 수준의 인지도를 얻을 거다.
[단점은?]
[위험합니다. 북쪽에서도 지금 초세기 들어갔는데, 곧 아크리치의 군단이 내려올 거지 않습니까.]
포르세티도 성좌에 제공되는 기능을 통해서 동해안뿐만이 아니라 북쪽에서도 곧 내려올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크리치도 그간 중국 방면을 상대하느라 남쪽을 굳이 도발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이 야금야금 뺏긴 땅을 쉽게 되찾을 기회라는 것 정도는 아는 거다.
[즉, 갔다가 일이 꼬이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거네.]
[그렇죠. 포르세티님께선 어떻게 하고 싶으십니까?]
[네 의견은?]
[저는 인제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모험 없이 따라잡기엔 선두주자가 너무 많으니까요.]
[잠시만?]
뭔가를 생각 중인지 포르세티에게서의 메시지가 멈췄다. 그사이에 현재 필드를 공략 중이던 인원을 제외한 나머지 길드원들도 속속들이 상황실에 도착하는 중이다.
유 회장이 딸의 경호를 위해 고용해서 끼워 넣은 몇 안 되는 기성 B급, C급 헌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E급이나 D급의 헌터들이고 이들은 전부 포르세티하고 계약을 마친 상태다.
그들과 가볍게 현 상황에 대해 잡담을 나누며 기다리자, 포르세티가 생각을 마쳤는지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어차피 너희 당장 가는 건 아니잖아?]
[그렇죠. 지금은 한국 길드들도 좀 버겁긴 해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실제로도 북쪽에서 내려오지만 않는다면 저희 계산상으로도 충분하지 않았습니까?]
충분히 막을 수 있는 걸 파이를 떡하니 떼어주는 자선사업가는 10대 길드 중 어디에도 없다.
오히려 남부 게이트 사태 터지고 딱 충분한 휴식 후에 터져서 딱 좋다며 지금쯤 신나서 축제 분위기일 거다.
사실, 깔끔하게 정리만 할 수 있으면 저 많은 괴물이 전부 돈이다.
[내가 보기엔 너희끼리 가는 것만 가지곤 어려울 것 같아. 내가 펠릭스를 그리로 보낼 테니까, 오면 그 팀이랑 같이 이동해. 한 달쯤이면 대충 어디가 위기인지 정도는 너희 쪽에서도 다 알겠지.]
[펠릭스를 움직이시려고요? 이번에 크게 쓰시는군요.]
펠릭스 슐츠는 우리가 오딘에게 거래 대가로 받은 A급 잠재의 각성자다.
현재 능력은 대전쟁 기준 B급이니, 지금은 A급으로 평가를 받는다. 그런 만큼 이미 독일에 괜찮게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나도 오딘이 기성이라 불릴 만한, 이미 잘 키운 각성자를 내줄 줄은 몰랐다.
몇몇 덤처럼 쓸모없는 특성이 보였지만, 이제와서 고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저 녀석은 내가 컨설팅할 것이 많지 않았다.
그래도 앞으로 펠릭스의 육성에 대해 자문을 하고 일정 금액도 투자하는 대신, 25%였던 안혜성과 포르세티가 20% 이상은 주지 않으려던 이진아의 지분을 35%까지 끌어올리는 협상을 했다.
덕분에 별의 강화는 안혜성의 힘과 이진아의 정신력 능력치를 끌어올 수 있는 상태다.
그 모든 것이 적용되면 기술 사용 시의 내 능력치는 주 능력치에 차이는 좀 있었지만, 회귀 전의 능력치 총합에 거의 필적한다.
[유럽 쪽 계획을 틀긴 해야겠지만, 이쪽 계약자하고 저쪽 계약자랑 접점을 만들어놓는 의의도 있고 정체된 펠릭스의 레벨링도 어느 정도 할 기회니까.]
[그러면 인제 방면으로 가는 걸로 이야기해두겠습니다.]
[그래. 나도 한 달간 근처 성좌들 한 번 원정 가자고 꾀어볼게.]
포르세티의 지원 약속까지 받았으니 충분히 해볼 만 하다. 당장 집결할 수 있는 인원 전원이 온 것을 확인한 나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언급했다.
“우리는 인제 방어선 방면으로 지원을 넣을 겁니다.”
“동기들 연락 돌려보니 다들 강릉으로 간다고 하던데. 그쪽이 안전하지 않겠습니까?”
“당장 우리에게까지 기회가 올 가능성이 낮고 길드 마스터의 아카데미 졸업도 기다려야 하니까요. 강릉 쪽은 우리 길드가 활약하기엔 거의 자리가 없을 거라는 판단입니다.”
내 말에 잠시 가정이 있는 베테랑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있었지만, 그들도 이내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잘못하면 괴물 구경도 못 하고 돌아오는 수도 있으니···.”
“지난번이랑 다르게 우리도 낄 수 있을 법한 사건인데, 칼질은 해보고 돌아와야지! 그래야 나중에 어디 가서 동해안 사태에 참가했다고 이야기라도 한다고.”
나는 손뼉을 쳐 소란스러워진 장내를 정리하고 미리 준비해뒀던 D급 소형의 자료를 길드원들에게 돌렸다.
잘하면 얻어올 수 있다고 언급하자 환호성이 터졌다.
“해당 게이트 공략은 안혜성 2팀장 주도로 진행하게 될 예정이고 김수호 공략본부장님은 지휘 본부와 예비대 운용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다음 배정될 게이트는 이번 사태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협회에서 별말이 없으면 길마님하고 1팀이 공략하게 될 겁니다. 그리 알고 준비해주세요.”
간단한 공지 후에 회의를 파했다.
길드원들 중, 남아서 잠시 쉴 인원들은 휴게실로 향했고 훈련을 하러 가거나 개인 용무를 보러 가며 주변으로 흩어진다.
그렇게 동해안 사태 첫날이 지나갔고 시간이 흘러 아카데미 학기도 끝났다
그간 임 교수에게 받아낸 D급 게이트를 2팀이 무난하게 공략에 성공했고 계속 동해안 사태와 관련된 뉴스를 주시하며, 길드원들과 강의 후 필드 사냥하러 다니거나 건설중인 길드 건물들을 정비했다.
강의 뒷풀이와 지혜의 아카데미 졸업식까지 모두 마친 뒤, 비로소 우리가 제출한 태백산맥 방어전 참가 신청에 협회의 답신이 왔다.
“집합 장소는 인제 원통로 서호교 방어선입니다! 길드에서 내일 오전 7시에 출발하니, 준비할 거 다 미리 챙겨 놓으시고 절대 늦지 않도록 하세요!”
지혜의 낭랑한 외침과 함께 청수 길드의 조촐한 출정식이 마무리되었다.
‘이제 시작이다.’
처음 포르세티를 만나고 세웠던 계획.
이제야 그 출발선에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