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 동해안 사태
첫 실습은 이한솔의 대검이 거대한 반달곰의 가슴을 뚫고 들어가는 것으로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되었다.
운 좋게도 네임드가 한 마리 있던 덕분에 인솔 헌터들하고 학생들의 회식비 정도는 나올 것 같다.
사실, 강좌 수준에서 게이트 공략 실습이라고 해봐야 별것 없다.
인원 분배부터 맞춰가며 가능한 수익을 내기 위한 목적으로 공략하는 길드나 파티 단위의 게이트 실습과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실례다.
학습 목적의 공략이라고 하면, 지난번 E급 정글 중형보다도 쉬운 게이트로 배정 받는 것이 보통이다.
‘어쩔 수 없지.’
아직 평화로운 시기였기 때문에 아카데미 과정 도중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하면 학부모 단체들이 바로 들고 일어난다.
당연히 해당 과목의 교수는 은퇴해야 한다. 그래서 대개 가장 난이도가 낮은 E급 소형의 평야 게이트나 강사와 인솔자들이 대처하기 쉬운 동굴 게이트가 선호됐다.
공략 진행하는 학생들도 헌터 아카데미를 다닐 수준의 고학년이라면 낮은 등급 후보생만 개중 에이스가 D+에서 C급 하위권 정도는 찍기 마련이다.
‘그런데 여긴 지금 각성 기준 B급이 있지.’
그런 학생들이 C급 이상의 인솔자들이 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공략을 진행하는데, 문제가 생기는 것이 더 이상할 것이다.
회귀 전, 나 역시 중앙 헌터 아카데미는 아니어도 지방 국립 아카데미의 인솔자 중 하나로 참여한 적은 있었다.
등급을 올려 능력을 입증하고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 게이트 공략 직후, 휴식기에 여러 제안을 받는다.
휴식기에 놀기 싫으면 이런 아카데미의 인솔자 요청을 수락하는 경우는 흔했다.
길드 역시 홍보 목적으로 제휴를 위해 연락을 해오곤 한다.
‘안전하고 편하게 공략하려면 받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리고 이거 해주는 대가성으로 받는 게 은근히 크다고 들었는데.’
물론, 특별반을 다루는 정교수들 정도 되면 평판을 신경 쓰는 편이고 대개 등급 높은 전직 헌터 출신이라 돈에 크게 구애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쪽은 대개 국가 게이트를 공략하는 관리국과 연계하는 편.
다만, 드물게 교수의 옛 소속 길드 정도를 받아주는 경우는 있다.
그렇기에 지금 내 강의처럼 특별반 인원 다수가 일반 반에 실습을 들어오고 게이트를 찾게 되면, 그 정보를 들은 온갖 길드에서 제휴 요청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사실 정교수 심사를 앞둔 임 교수의 상황이라면 거절했을 건데, 내가 껴 있으니 가능하다 보고 나를 통해 계속 제안이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리고 결국, 두 번째 실습은 임 교수가 나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길드 제휴로 하기로 한 상황이다.
“후배님. 그거 꼭 받아야겠나? 내가 E급 하나 괜찮은 것 봐둔 게 있어서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데?”
“그래도 10대 길드 잖습니까. 교수님도 아카데미에 뼈 묻으실 거 아니시면야···.”
“이봐. 나 얼마 뒤에 3차 정교수 심사야. 부정 타니까 그런 말 말아.”
“하하···.”
“망할. 이번에도 떨어지면 진짜 길드 교육팀에 지원이라도 해봐야 하나.”
임 교수도 슬슬 그런 걸 고민해볼 시기다. 보통 임교수처럼 아카데미의 동종 경력자들이 각 길드 교육팀으로 스카우트 당하거나 하면 거기 과장급이 된다.
여기서 나이를 더 먹게 되면 중소형 길드로 가서 팀장을 달거나, 후배한테 팀장님 하면서 사회생활을 해야 하기에 갈아타는 일이 확 줄어들게 된다.
노선을 갈아타려면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그래도 5차까지는 비벼볼 수 있지 않습니까.”
“씁! 부정 탄다니까. 이번에 무조건 될 거야.”
“어쨌든, 여기 후보생들도 금성의 선배들이랑 친분 다지는 건 나쁘지 않죠. 거기에 저도 좀···.”
“그래. 그렇긴 하지. 그나마 10대 길드랑 하는 거니까 조금 덜 꼼꼼하게 봐도 되겠어. 일거리 줄어드는 건 좋군.”
“혹여 게이트 사고가 발생해도 책임 소재 넘기기도 쉽죠.”
말은 이렇게 하지만, 시중에 돌아다니는 현대물 헌터 소설의 단골 소재인 아카데미 실습에서의 게이트 사고가 날 확률은 몹시 낮았다.
‘원래 게이트 공략할 땐 단독행동 자체가 용인이 안 되는데. 어지간해선 일어나지 않는다고 봐야지.’
아주 드물게 게이트 내부 숨겨진 던전에 빨려 들어가는 경우가 있긴 한데, 그 경우도 강사와 인솔자들이 독식할 생각에 욕심만 안 부리면 사고는 나지 않는다.
물론, 대놓고 가능한지 여부만 말한다면야 있을 수 있다.
빌런이 습격을 했는데, 사고 막는다고 모인 헌터들이 그걸 수습을 못 하고 그 와중에 그만한 헌터들을 압도할만한 그런 빌런 조직이 학생들을 놓치며, 하필 거기에 저런 던전이 있다면?
그래서 일부 학생들이 그 숨겨진 던전에 들어가 살아남고 기연도 먹는,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연속 주사위가 전부 맞아떨어진다는 기가 막한 확률놀음이 모두 맞아 떨어지면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런 사례가 있긴 하지. 대부분은 성좌가 따로 안배한 일이라는 게 밝혀지곤 하지만.”
“하루에도 수천 개의 게이트가 전 세계적으로 공략되는데, 성좌들이 따로 기획하는 게 아닌 이상 몇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일인 거죠. 그게 저희가 아니길 빌 뿐입니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임 교수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봐, 김유성이. 자네 지금 전화 돌리기 귀찮나?”
“아, 아닙니다. 이것만 하면 이제 이 과정도 신경 쓸 건 거의 없는데 빨리 끝내야죠. 이건 뭐 직접 게이트 공략하는 것보다 실습 준비하는 게 더 머리가 아프네요.”
“그리고 난 이 짓을 매년 하지. 실습 나가는 강의를 맡으면 매번 이래. 자네도 처자식 한 번 딸려봐. 어디서 귀찮은 티도 못 내게 된다고.”
뭐라 위로할 말이 없어서 머리만 긁었다.
지금 임교수와 나는 앞선 두 게이트에 이은 마지막 게이트 협조 요청을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는 중이다. 그래서 첫 실습 끝나고도 정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 마지막 게이트는 공략 자체를 못할 것 같은데.’
그쯤이면 동해안에 초대형 브레이크 터지면서 괴물들이 밀려오기 시작할 거다. 그러면 인솔자 맡을만한 고등급 헌터를 구할 수가 없어서 실습이 취소되겠지.
‘생각해보니 개꿀인데.’
임 교수가 계약할 때 끼어들어서 특약을 좀 넣어야겠다.
‘혹시 모를 사유로 공략 불가능할 경우, 돈 받고 외부 길드에 양도할 수 있도록 해두면 우리 길드 창설 후 첫 공략 게이트로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겠지.’
정말, 이 아카데미 강사 자리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 그 자체다.
졸업 전 최종 게이트라고 임 교수가 인맥을 동원해 D급 소형을 잡아보려는 중이라 더 그랬다.
가로챌 생각에 군침이 아주 싹 돌았다.
착착 진행되어가는 이쪽과 마찬가지로 지혜의 길드 창설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이미 청수라는 길드명으로 법인 등록이 됐고 임시로 부지에 컨테이너 시설을 가져다 놓고 입구에 길드 간판을 거는 것으로 최소한의 구색은 갖췄다.
[우선 당장 쓸 길드 사무실이나 창고, 길드원들 편의 시설은 근처 건물 계약하는 것으로 해결했어요. 그거 여기저기 흩어져 있으니까. 김 전무님, 아시죠?]
[알겠습니다. 길드장님. 자료 보내주면 바로 뿌릴게.]
강의 준비하랴, 길드 설립하러 다니랴, 그간 쌓은 인맥 유지한다고 사람들 만나러 다니랴, 진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다.
[요새 공사는 다음 달부터 들어갈 거고 길드 공략 들어가려면 호흡부터 맞춰야 할 거니까 첫 시설은 훈련장부터 지을 예정이에요.]
[컨테이너 여섯 동 중에 기숙사가 넷이고 그럼 나머지 둘은?]
[한 동은 물자창고. 아직 요새화는 멀었지만, 길드 물자 비축 규정은 지켜야죠. 나머지 하나는 정비실이요.]
길드는 대격변이나 게이트 브레이크에 대비한 일종의 지역 요새이자 쉘터다. 그렇기에 국가에서 길드 허가를 쉽게 내주고 설립 지원도 빵빵하게 해주는 것이다.
‘진짜 거대 길드들 가보면 무슨 옛날 판타지 영화에 나오는 최후의 요새 같이 생겼지.’
어쨌든, 그런 연유로 길드는 일정 숫자의 지역 피난민을 받아줄 의무가 있었다.
요새 내부에는 그를 위한 시설을 갖추고 반드시 비축 물자에다 수원, 전기, 식량 시설 따위의 자급자족을 위한 구조물을 갖춰야만 한다.
그 외에 지금은 밖으로 빠졌지만, 인사팀, 공략팀, 교육팀, 지원팀 같은 각 부서 사무실도 들어와야 하고 괴물과 전투를 하는 군사기업인 만큼, 내부에 의료 시설은 필수.
이 의료 시설은 일반인에게도 개방해서 부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실제로 창천이나 금성 정도로 서포터 여유가 큰 길드쯤 되면 게이트 질병 연구팀까지 운영한다.
‘길드 소속 서포터들의 부수입원이기도 하지.’
빌드, 약물, 장비 등의 연구는 각 길드의 자산이자 기밀이니 길드 부지 내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고 그 외에도 헌터 제조업 같은 각종 수익을 위한 공장 시설을 짓는 경우나 관광 사업을 하는 예도 있다.
[그런데 비공정 부지는 어쩔 생각이야?]
[아니. 전무님.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세요? 좀 이르지 않나? 그때쯤이면 어차피 주변 용지 사서 지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요.]
비행기가 아니라 비공정이다. 즉, 활주로를 짓는다는 말이 아니었다.
격변 이래, 바다에 온갖 괴물들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해로는 안전하지가 않다. 육로, 해로, 항로 중에 가장 위험한 게 바닷길이다.
그렇다고 항로가 완전히 안전하냐고 묻는다면 그것도 아니긴 한데, 말 그대로 하나의 필드나 다름없어진 바다와 비교하면 하늘길은 양반이었다.
비행기들은 속도는 빠르지만, 각성자들이 공중에서 대응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그래서 확실하게 안전히 확보된 영역으로만 날아다닌다.
그리고 그러면서 그 하늘길을 청소하기 위해서 비공정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각국 각성자들이 비행선 타고 올라가서 주기적으로 자국 공역을 청소하지.’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무역이나 외국과 교류를 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다.
북진 길드가 거대 길드로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고 항상 애국 길드를 외치는 근거기도 하다.
‘거기 길드 마스터도 캐치프레이즈를 잘 짠 거지.’
정부와 기업이 북진 길드에 꾸준히 투자하는 이유다. 어떻게든 북쪽 뚫어서 육로로 철도만 연결되면 그놈의 물류비 절감이 어마어마할 테니까.
[내수만 파먹고 살 순 없잖아. 사건 있을 때마다 다른 길드나 국가 비공정에 껴서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지. 심지어 길드 간판인 너는 활약할 수 있는 데가 한정되어 있으니까. 외국이라도 갈 수 있으면 가야지. 설립 초기에 네 명성 올리는 건 아주 중요해.]
[하지만 제대로 하려면 선단을 구성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힘들잖아요.]
물론, 나도 그런 선단을 구성하자는 건 아니었다.
비공정은 전부 게이트 소재에 생산계 각성 장인들의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고작 한 척을 사들이는 것도 지금 청수 길드 정도의 소형 길드라면 원래 엄두를 낼 물건이 아니다.
[하나로 시작하자는 거지. 국내 돌아다니는 시간이 크게 절감되니까. 공역 정리작업 참가만 해도 지원금 꽤 나오는 건 알지? 그래서 운용할 부지 정도는 갖추자 이거야.]
[지방에 파견하는 것도 고려하시나 보네요. 하긴, 지난번 남부 게이트 사태 같은 것 사고 없이 제때 들어가려면 우리 배 한 척 정도는 있긴 해야겠죠. 고민해볼게요.]
[그래. 부탁할게.]
포르세티의 예전 네 번째 C급 각성자를 데려오는 일도 그렇고 이번에 오딘에게 받기로 한 A급 각성자도 외국에 있으니 길드가 자리를 잡으면 외국에 나갔다가 올 생각이다.
비공정이 한 척이라도 길드에 있어 줘야 날 주시하고 있을 몇몇 집단에게도 특이한 티 안 나도록 출장도 다녀오고 그럴 수 있을 거라 내겐 특히 민감한 부분이었다.
그렇게 바쁘지만, 무난히 반복되는 일상을 보내던 차에 내 주변으로 다시 특별하다고 할 만한 일들이 몇 가지 연달아 일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