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 길드 창설
그간 몇몇 사건을 겪으면서 꼼꼼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래서 이 사태를 그냥 넘기진 않았다.
‘관리국장과 했던 대화나, 어제 받은 문자를 고려하면 거미는 내게 신경 쓸 상황이 아니야.’
김설아는 특급 히어로가 3일 뒤, 거미 문제로 귀국 예정이라는 문자를 보내주었다. 그러면 대한민국에 관리국 소속 특급 히어로 전원이 돌아오는 셈이다.
정부는 지금 거미 사태 해결에 그 정도로 진심이고 국제 영웅 협회에 지원 요청도 들어갔다는 내용이 어제자 기사로 떴다.
그 결과 영국과 러시아 S급 히어로 두 명까지 입국 예정이라는 걸 고려하면, 그들이 날 감시하고 있을 가능성은 낮다.
‘지금 폭풍을 피하려고 조직원들의 해외 도피 같은 방법을 알아보고 있겠지. 타란툴라 본인이야 숨어서 엘릭서를 노리고 있을 거고.’
한창 바빠 죽겠는데, 그쪽에서 관리국의 경호까지 뚫어가며 날 신경 쓸 틈이 있을 리가 없다. 그 외에 나를 관찰할만한 건 관리국이나 학생들 정도다.
학생 쪽은 돌아와서 알아보는 바론 대부분 알리바이가 있다. 관리국은 이미 경호한다고 붙어 있는데, 굳이 따로 사람을?
‘설령 캔디나 국장과 다른 파벌이 있다거나 해서 감시하는 거라 해도 내게 직접적인 피해가 생기진 않을 거니 그 경우는 신경 쓸 필요가 없고.’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이번 감시는 나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면 지혜 쪽 문제라는 건데.’
이 문제는 나보다 전문가인 포르세티에게 SOS를 치기로 했다.
“어. 내가 말 안 했나?”
“또 뭐가 있습니까?”
“이한솔이라고 너희 반에 들어간 애 하나 있었지?”
임 교수가 수업에 들어온 이유를 모르겠다던 녀석이다.
“그게 설마 포르세티님 작품입니까?”
“내 작품은 아니고 거래야. 지금 지혜 짝으로는 가장 유력하거든. 네가 부탁했던 거잖니.”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한솔은 S급을 예상하는 전위다. 솔직히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는 거지만, 지혜와 짝이 되기에는 급이 전혀 안 맞는다.
“그건 그런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 중입니까?”
“이한솔이라는 애. 네 말대로 잠재가 S급은 맞는데 하자가 커. 저번에 네 말 듣고 나도 지혜 홍보 여기저기 돌렸거든. 우리 지혜, 지켜줄 전위 짝을 찾아야 한다며.”
“네. 그랬죠.”
“내가 단언하는데. 이한솔 그 녀석은 자기 잠재력인 S급까진 성장 못해. 최종 기댓값은 B+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예견에 난 눈이 휘둥그레져서 포르세티를 바라봤다.
“이 자료부터 봐야 할 텐데, 이건 너도 비밀 엄수 계약을 해줘야 해. 아니면 보여 주지를 못하거든.”
고개를 끄덕여 사인한 뒤, 여신이 제시한 자료를 읽어보는데 답은 금방 나왔다. 이한솔에겐 바로 눈에 띄는 마이너스 특성이 있다.
* 마력 노드 손상(F)
- 상태 : 3단계(1 ~ 7)
- 해당 특성의 보유자는 모든 특성 및 기술 습득에 잠재력 소모가 3배가 됩니다.
- 습득 불가능한 기술이 일부 존재하며, 고급 기술의 습득 시 불완전 기술이 될 확률이 있습니다.
- 큰 기술 사용 시 능력 하락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면 돌아오기 전, 이한솔이 B+에서 빌빌댄 것이 설명된다. 스포츠로 따지면 유리몸이다.
“대표적 함정 특성 중에 하나지. 심해지면 너희가 무협 소설에서 말하는 뭐더라?”
“절맥이요?”
“어. 그거. 그래서 특성 달아주다 멈췄는데, 손해가 막심했다더라.”
“그러면 이한솔 후보생과 계약한 성좌는 누굽니까.”
“나타 태자. 나처럼 3세대라 봐야겠지만, 스스로 이름을 떨쳤으니 나로선 만만하게 보긴 힘들지. 교류에 있어서 이런 건 숨길 일이 아니라 서로 비밀 엄수를 걸고 자료를 교환했어.”
나타. 꽤 이름값이 있는 신좌가 나왔다. 봉신연의에서는 대놓고 주인공이고 서유기에서도 비중이 크다.
“그쪽은 지혜의 능력치를 보고도 이 거래를 수락한 겁니까?”
“결연 맺는 게 주 목적이니 서로 참작하는 거지. 이런 걸 보통 용자파티 짠다고 하는데, 해서 반드시 이어진다는 보장도 없어. 애초에 성좌끼리 협력이 목적이니까 등급을 맞추는 건 명목 상의 이야기거든. 물론, 너무 차이가 나면 안 되겠지만.”
포르세티에게 들었던 대로면 원래 다른 지방에 이해관계를 맺고 끼어들 때 가장 탈이 없는 방식은 이쪽 커뮤니티에 끼면서 새로운 이름을 받는 것이라고 했었다.
그 외에는 여러 다른 신화의 신들이 연합해서 상륙하는 방법인데, 대놓고 싸움을 거는 거라 작정하고 들어오는 게 아닌 이상, 그리 선호되진 않는다고 한다.
‘각 지역별로 자신들만의 방과 테이블이 있고 거기서 역할을 나눠 캐릭터를 움직이는 느낌. 딱 TRPG네.’
고대 신화의 신들이 움직이는 방식을 듣고 그런 인상을 받긴 했다.
“연락이 간 쪽은 지혜랑 썸타던 계약자 주인들인데, 총 아홉 명이 있어.”
난 그 짧은 시간에 지혜랑 아홉 명을 엮어 놓은 포르세티의 생각지도 못한 능력에 속으로 감탄사를 터뜨렸다.
“음. 동방 신화는 나타, 주작, 바리, 자청비. 서방신은 마하하고 내 라이벌이자 친구, 유스티티아. 나머진 성좌급이고 등급도 애매해서 후 순위로 밀어놨고?”
내가 그간 들어온 설명 대로면 명성은 사건과 인식에서 들어오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초기 능력치가 B급이거나 하면 현실에서도 특급을 예상하니 초반에 들어오는 명성 수치는 C급, D급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런 걸 고려하면 무슨 말을 하든 이한솔의 급은 현재 상태의 지혜보다는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니 결과만 생각해봤을때, 이한솔 정도면 포르세티가 원래 목적했던 걸 완벽하게 협상으로 얻어온 셈이다.
“주작이랑 인연을 맺는 게 좋은데, 아주 건성이더라.”
“건성이요?”
구체적으로 어떻냐고 물으니 그쪽은 인원을 따로 제시했고 그건 평범한 C급이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쪽 분위기는 나도 잘 모르겠네. 급이야 높지만, 썸 태웠던 각성자가 아닌 필요 없는 걸 꺼내다가 툭 던지는 느낌이었던 건 나타도 마찬가지였어. 교류에 그리 적극적이진 않았던 것 같아.”
그러나 이 말을 듣자마자 내가 주목한 건 교류보다는 나타가 필요 없는 걸 던지는 것 같다는 쪽이었다.
“포르세티님. 그러면 지혜를 가지고 하는 결연은 멈추는 것이 좋겠습니다.”
“왜? 솔직히 저 정도면 괜찮잖아? 이제 당장 네가 준비하는 침공도 다가오는데?”
물론, 그 말대로 당장 B급인 이한솔이 지혜를 거기서 지켜준다면 더할 나위가 없긴 하다. 하지만, 그런 방법만 있을 것 같지 않아서 그렇다.
“침공 뒤에는 그래도 몸값이 조금 더 뛰지 않겠습니까? 차라리 나타와 따로 거래해서 저희 쪽에 데려오는 건 어떨까요.”
“저 애를? 글쎄. 그래도 지금은 명성이 쏠쏠할 걸? 안 내줄 것 같은데.”
“제 생각으론 그쪽에서 지급하기로 했던 걸 다 지급하지 않고 계약 해지를 기다릴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언급하면서 협상을 해보죠. 일정 기간 명성은 그쪽에서 가져가고 대신 키우는 건 우리가 하는 쪽으로.”
그쪽 계약 끝나고 좋은 조건으로 잡아 채면 된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여신도 알 것이다.
“잠깐. 그거 좀 위험한 거 알지? 무조건 저쪽에서 특약 넣을 거고 혹여 사고로 죽기라도 하면 사전에 설정한 보험금을 지급해줘야 할걸?”
“계약 해지까지 이상한 빌드 타지 않게 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죠. 아니면 역으로 특약 걸어서 빌드만 저희 쪽에서 건드리는 것으로 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아무리 이한솔이 저런 똥통인 특성이 있다지만, 나타 정도나 되는 신좌가 빌드를 선별하고 온 힘을 다해 키웠다면 평범한 A급까지는 충분히 성장했을 거다.
하지만 회귀 전 이한솔은 B+가 끝이었다.
‘이런 면에서는 확실히 성좌와 계약이 꼬일 경우에는 우리에게 불리한 면이 있긴 해.’
성좌는 투자 실패를 인정하고 계약상 리턴에 비해 과한 투자를 해야 한다면, 포기하고 계약 해지를 감수할 수가 있다. 그러면 각성자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다.
“그런데 정말 계약을 해지할까? 이곳 동방 신화는 공부 중이라 아직 다는 모르겠지만, 나타의 이미지는 괜찮은 편이고 꽤 정의로운 신장이라고 들었는데. 아닌가?”
“호전적이며, 그만큼 사고도 많이 쳤고 손을 쓸 때는 또 가차 없는 모습도 보이죠. 만약, 나타 태자가 이한솔에게 잘해준다면, 정의보다는 측은지심 쪽인데, 그쪽은 아닐 것 같습니다.”
결과론적이고 내가 앞으로의 미래를 알기에 하는 이야기지만, 나타가 했을 행동이 예상이 간다.
“이건 나타의 입장으로 보면 말로 내뱉진 않아도 사기를 당한 느낌일 거고 의심도 가겠죠.”
그리고 다른 건 몰라도 자료상으로 나타에 대한 기록을 미루어보아 다혈질적인 건 확실하다.
“특성을 이한솔이 직접 보진 못했겠지만, 아시잖습니까.”
“계약 전 직접 기술을 익혀봤다면 티가 났을 것이다? 그래서 의심을 한다?”
“이한솔 후보생이야 경험이 부족하거나 사소한 거라 여겨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신좌로서는 그게 아닐 테니까요. 생으로 각성했던 직후가 아닌 이상, 자신을 속여서 계약했다는 의심이 안 갈 수가 없죠.”
실제로 특급이라면, 바로 제대로 된 신좌에게 걸려서 어마어마한 조건을 제시 받지 않는 한 바로 계약하는 경우는 드물다.
거기에 후보생이다. 기초적인 기술과 특성은 당연히 익혔다. 포르세티도 나타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러네. 남의 각성자에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아서 이한솔이 어떻게 될지는 생각을 안 해봤는데, 네 말이 맞겠어. 아마도 버려지겠네.”
“그래도 최대 A등급에 해당할 수준의 보상까지는 계약을 이행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좌 입장에서야 버려두는 게 낫겠지만, 그래도 체면 정도는 차릴만한 신이니까요.”
“자기 안에 들어온 것에게만 우호적이며, 자격을 보는 성향이다. 네가 저 나타 태자에 대해 생각한 건 이게 맞지?”
“나타를 지도한 게 태을진인이라 그렇지. 악신이 지도했다면 악한 신좌가 되었을 겁니다. 예상하기엔 대놓고 네겐 S급 잠재였기에 주기로 한 것이니, 주지 않겠다고 말할 거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각성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신좌의 입장에서 역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이야기다.
그런 계약을 이행하는 건 대놓고 호구인 거고 스스로 고구마를 퍼먹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계약을 이상하게 한 게 아니라면, 애초에 그런 지원 약속부터가 특정 등급에 도달하면 추가적인 지원을 하겠다. 그런 식이야.”
포르세티의 말대로면 나타로서는 퍼주지만 않고 계약의 갱신만 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 꺼리길 것 없이 쉬웠을 거다.
“그럴 수도 있겠군요. 물론, 어디까지나 제 이야기는 전부 추측입니다.”
“내 생각도 같으니까 그건 걱정하지 마. 가서 슬쩍 떠보지 뭐.”
“다시 돌아와서, 이한솔 역시 나타가 타협안을 내민다면 수락할 수밖에 없겠죠. 신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 헌터 사회에 언급하기라도 하면 그것도 큰일이니까요.”
이한솔은 그렇게 최초의 계약 기간인 몇 년 후에는 나타에게 버려졌을 거다.
이후에는 소문 정도는 돌았을 테니, 어떤 성좌도 이한솔이 혹할만한 조건을 제시하진 않았겠지.
“그래서. 이번에도 데려오면 잘 키울 자신은 있어?”
“딜을 넣어야 하는 전위가 아니라 작정하고 탱커로 키우면 그렇게 많은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페널티의 큰 기술이라는 문제는?”
“안 쓰면 됩니다.”
대놓고 같은 그리고 작은 기술만 연달아 쿨 타임을 돌려가며 쓰는, 지구전에 특화 타입의 탱커로 키우면 된다.
이 빌드는 큰 기술도 안 쓰고 고급 기술도 거의 익히지 않는다.
“아! 지구전 전용의 탱커? 이런 시기엔 나오기 힘들 텐데, 벌써 그런 빌드 구상한 게 있는거면 확실히 너한테는 뭔가 있긴 있네.”
대전쟁 시기에 워낙 잡몹들하고 초장기전으로 싸울 일이 많다 보니 만들어진, 대전쟁용 탱커 최적화 빌드다.
그런 장기전을 할 일이 흔치 않고 능력치의 균형을 추구하는 지금 시기에는 연구도, 언급도 안 되는 빌드였다.
다만, 성좌들 사이에는 이런 타입의 탱커에 대해선 이미 빌드가 있는 모양이다. 포르세티와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비교해가며 조금 더 논의해보는 것도 좋겠다.
“분배가 안 맞으니 S급은 힘들겠지만, A급은 그래도 무난하게 만들 수 있을 겁니다. 솔직히 B급에 지혜 맡길 생각도 했었는데, 이 정도면 감사히 받아먹어야죠.”
“그리고 그게 지혜에게도 더 좋고?”
“네. 눈치채셨나 보네요.”
여신이 눈치챈 것처럼 지혜는 애초에 단기전을 할 일이 없다. 밀려드는 잡몹 다수에게서 지켜내는 것이 지혜를 지키는 전위가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다.
몇 가지 보호 기술 정도만 암살자나 저격수에게 지켜내기 위해서 추가로 익히기만 하면 됐다.
“암담한 상황에서 데려오는 거니 말도 잘 들을 거고요.”
“그래. 점점 내 휘하 계약자 구성이 갖춰지는 것 같네.”
“그러면 그 협상은 포르세티님께 맡기겠습니다.”
“아. 잠깐만!”
궁금증을 해결하고 돌아가려는데, 포르세티가 나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이어진 설명에 큰 오해를 하고 돌아갈 뻔했다는 걸 깨달았다.
“경고하는 걸 잊을 뻔했네. 나타하고 둘 사이 이어주려 구상하면서 시련 일으킬만한 걸 집어넣었어. 나타 쪽에도 물어봐야 정확하겠지만, 네가 느낀 시선은 아마 사랑의 방해꾼으로 집어넣은 그 녀석 쪽일 거야. 가깝게 지내는 게 거슬렸나보네.”
“···이거 혹시 황씨 가문의 그 녀석입니까?”
“그래. 성씨가 황이고 듣기로 집안이 좀 빵빵했던 기억이 있네. 귀찮게 굴 수도 있으니 잘 대비하고 있어.”
나를 지켜보던 그 시선은 이한솔이 아니라 황씨 가문의 망나니, 황정윤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