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 길드 창설
그렇게 어지간한 주의해야 할 점에 대해선 다 들었다.
‘포르세티에게도 분명 계획과 일정이 있겠지. 이번 같은 사고가 나지 않으려면 그것에도 맞춰야 한다.’
그랬기에 나는 오기 전에 생각했던 걸 잊지 않고 질문을 던졌다.
“포르세티님은 따로 계획이 있으십니까?”
“네가 당장 얼마 뒤의 이 나라 해안선 침공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나도 사건 하나를 준비 중이었거든. 너랑 만나기 전엔 다 망했었지만.”
“그게 뭡니까?”
“3년 뒤에 뉴질랜드에서 아주 특별한 게이트 하나가 등장할 거야.”
그 말에 바로 짐작 가는 게이트가 있었다.
‘그건 처참하게 공략 실패로 돌아가는데?’
최초로 엑스트라 등급을 받는 게이트다.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고작 3년 가지고 그 실패를 뒤집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배제해뒀었다.
“클리어하는 과정에서 특정 시간대의 세계관을 경험할 수 있는 환상향 열쇠를 받을 수 있어. 물론, 시스템도 반대급부로 난이도를 생성하니 미쳐 돌아갈 거고 다들 알고 있으니까 경쟁도 심하겠지.”
포르세티의 뉘앙스대로면 그 게이트가 엄청난 기회였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건 회귀자라도 알 수가 없는 정보다.
“환상향 간다고 끝은 아닐 테지만, 그런 걸 다 고려해도 분명히 엄청난 기회야.”
“게이트 등급이 어떻게 됩니까?”
“지금 너희가 말하는 S급은 ‘따위’로 생각될 정도.”
확인차 물었고 예상하던 답변이 돌아왔다.
“그 전에 거길 공략할만한 계약자를 만들어야 해. 빈털터리가 된 내가 다시 도전해볼 수 있게 된 건 전적으로 네 덕분이지. 너를 향한 지금 내 감사에는 그 부분도 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궁금한 게 있습니다. 환상향이 뭡니까?”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애초에 그런 비사가 있다는 것 자체도 몰랐다.
그 게이트는 공략 실패로 돌아가며 호주의 인류를 싹 증발시켜버리는 초대형 사고를 일으키니까.
“아스가르드, 올림포스 같은 각 신화의 세계관부터, 엘도라도, 아틀란티스 같은 장소까지. 본격적인 시작 전, 신좌들이 신성을 십시일반으로 모아 준비한 것들이 있지. 그리고 나도 그 안에는 나만 알고 있는 정보가 있어.”
“세계관. 아까도 나왔던 말인데. 좀 자세히 알 수 있습니까?”
“음. 이건 좀 돌려 말하는 선에서 설명이 가능한 것 같아.”
포르세티는 잠시 말을 고르는지 허공에 뭔가를 써나갔다.
“설명은 이걸로 시작해야겠네. 너는 지금 세기의 인간이 우주 밖의 어디까지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
“동면 기술 같은 건 없으니 수명의 한계를 말하는 거라면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우주선이 나온다는 가정에서 50광년 정도가 아니겠습니까?”
“지금 너희에게 허락된 건, 지구만이야. 일부를 제외하면 그 밖으론 절대 못 나가.”
상상도 못 해봤던 말에 나는 바로 반문했다.
“지금도 지구 밖 우주 관찰도 하고 인공위성도 쏘고 로봇 같은 건 충분히 보낼 수 있지 않습니까?”
“위성이야 지구에 속한 정도로 보고 달도, 로봇도 앞으로의 빌드업을 위해 임시로 허가됐기에 넘어간 거야. 그런 건 세계관이 확장된 게 아니지. 반드시 시스템적으로 확장이 된 후에야 자유롭게 넘을 수 있어.”
“그러면 신의 허락만 있다면 지금에라도 우주 진출이 가능하다는 겁니까?”
고민하던 포르세티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막대한 신앙이 필요해. 지구에선 홀로 시도할 수 있을 만한 신화는 하나 뿐. 다른 신화들도 합심하면 가능은 하겠지만, 아무래도 거기 눈치를 보거든. 어쨌거나 그게 바로 세계관이야.”
“격변 전, 우리가 우주 진출을 위해 생각하던 문제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군요.”
생각해보면 지금 벌어지는 일과 앞으로 벌어질 일만 해도 상식을 벗어나는 일들뿐이다.
갑자기 생긴 마력이라는 새로운 자원부터가 반칙이다.
신들이 마음만 먹는다면야 다음날 우주 항행을 위한 기술이 개발되는 것도 이상할 게 없다는 뜻이다.
“그게 아니라면, 우리 차원 밖의 우주라는 형태로 붙어있는 별급 차원들 사이에 합의하는 방법이 있지. 그러니 답만 말해준다면 지금 당장도 가능은 하다. 하지만 가능성은 아주 낮음. 그 정도? 유성. 온라인 게임은 좀 해봤니?”
“예. 그렇긴 합니다만···.”
회귀 전이지만, 이 시기면 열심히 했었다.
“게임 식으로 말한다면, 지구 밖에 보이는 우주는 아직 클로즈베타 중인 세계라는 거야. 그럼, 여기서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질문하나 해볼까? 과연 오케아노스는 실제로 존재했을까?”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지만, 정답이 예상된다.
나는 답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을 읽었는지 포르세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올림포스의 세계관에서는 오케아노스가 존재했지. 아스가르드의 세계관에선 세계수 위그드라실이 있었고. 오래전, 지구의 모든 지역은 각각의 차원장으로 갈라져 있었단다.”
“하지만 그전에도 몇몇···.”
말하다가 방금 이야기했던 달 탐사나 로봇이나 관측기구를 생각하곤 깨달았다.
“같은 별이라는 가까운 위치에 있던 차원이야. 원래도 일부 선택 받은자와 신들 사이에선 교류 정도야 있었지. 뭐, 비단길이나 그런 것? 그러다가 이 지구내의 전 차원에 큰 합의가 있었고 그로 인해 역사도 개변 수준으로 수정되고 오류도 많이 발생했지.”
그 예시에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신화의 허구성은 합쳐지는 가운데 서로의 타협으로 만들어진 오류다.
다른 신화가 이리 많은 오류가 발생하게 된 원인도 자동으로 예상이 갔다.
“그게 바로 세계관이군요. 어느 정도는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합의된 오류라는 건 아마도···.”
“그래. 너도 슬슬 눈치챘나 보네. 성스러운 네 글자. 솔직히 뻔하잖아? 가장 크고. 거기가 통합을 주도했지. 다 죽어가던 올림포스가 가장 먼저 찬성했어. 덕분에 잊힐 뻔하다가 신앙을 엄청나게 내놓는 것으로 살아남았거든.”
“잊힌다···.”
“신은 죽진 않지만, 사실상 죽이는 방법이지. 뭐, 신좌인 이상 스스로 소멸하지 않고 그 기나긴 세월을 버틸 수만 있다면 언젠가 기회야 오겠지만.”
그리고 포르세티는 몇 마디를 더 보탰다.
“그리고 내가 지금 시점에선 제약이 너무 많다고 했잖아? 그래도 지금 너희가 겪는 것이 그 신화와의 신과 연관이 있다는 것쯤은 말해줄 수 있어.”
천사들이 성좌로서 계약하는 것으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으며,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널리 믿어지는 신의 이름이다.
대전쟁 중에도 자신의 천사들만을 보냈을 뿐, 끝까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신을 단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신.
25억 기독교와 20억 무슬림.
70억 중, 45억이 그 신앙을 바치는 이 별의 주신이라 할만한 존재다.
“궁금한 것이 아주 많아진 표정이네. 하지만 너처럼 우리와 밀접한 일을 한다면 결국 모든 걸 알게 될 거야. 지금은 그 이상을 알려고 하진 마.”
거기까지 대화 후, 축객령에 현실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번 대화로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인 탓에 좀 어질어질했지만, 쉴 틈은 없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오늘 만날 녀석은 그 신수빈이다.
“강사님께서 저 같은 녀석을 무슨 일로 보자고 하신 건지 모르겠군요. 잠시뿐이라도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났으니 나오긴 했지만, 사적인 이야기라거나, 혹은 제 진로에 대한 부분이라면 딱히 대화하고 싶진 않습니다.”
꾹 다문 입술과 칼 하나 안 들어갈 것 같은 냉랭한 타입의 마스크.
신수빈은 그런 청년이었다.
그리고 첫 만남부터 몹시 직설적이었다.
“신수빈 후보생. 내게 딱 30분만 내 주시죠.”
“알겠습니다. 저도 능력이 있는 헌터분과 굳이 척을 지고 싶진 않으니, 그 정도 시간은 투자할만하겠죠. 말씀하시죠.”
난 쓴 표정을 지었다. 이건 일종의 거래다.
‘대충 어떤 타입인지 알 것 같네.’
신수빈은 자기가 시간을 이렇게 투자했으니 이 대화에서의 거절 같은 일로 자신에게 성적 상의 불이익을 주는 일은 없길 바란다고 돌려 말하는 것이다.
“먼저, 내일 첫 실습인데, 가능하겠어요? 아직도 조원을 못 구한 것으로 아는데.”
그 말에도 눈을 살짝 찡그린 정도일 뿐. 신수빈은 담담하게 답했다.
“언제나 그랬듯 남는 자리에 들어가게 되겠죠. 제 업보니 그리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다들 절 좋아하진 않겠지만, 그렇게 남는 녀석들도 제가 공략 과정에서 파티 구실 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알 테니까요.”
“신수빈 후보생은 아직도 전투 직군에 미련이 많습니까?”
“강사님도 제가 전투 직군으로 가는 건 절대 불가능하다고 보시나 보군요?”
잠시 침묵이 흐른다. 나는 그에 부정하는 대신 기술명을 말했다.
“멘탈 매트릭스와 매직 리플렉터. 아직 사용하질 않는 걸 보니 지금은 구상단계인가 보군요.”
내 말에 신수빈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내가 아는 걸 풀었다.
“멘탈 매트릭스는 약간의 마력으로 발동할 수 있고 나머진 정신력으로 버티는 방어막이지만, 익히기까지 서포터 레벨을 너무 먹고 매직 리플렉터는 빌드는 조금 잡아먹어도 마력 능력치를 사실상 봉인. 효율도 안 높고?”
매직 리플렉터는 마력을 다 소모하면, 그때 2차 자원인 정신력으로 보호막을 지탱한다. 보호막 유지하는 순간 마력이 없는 거나 다름없어진다는 뜻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으니 결국 둘 중 하나로 빌드를 타야겠죠. 어찌 되었건 최우선은···.”
다음 말은 듣고 있던 신수빈에게서 똑같은 내용이 동시에 내뱉어졌다.
“몸을 보호하는 것부터니까.”
그래도 방금 내 발언으로 경계심이 좀 풀어진 모습이다.
“강사님도 빌드 연구를 많이 하셨나 보군요. 네 맞습니다. 제 민첩 수치는 완전히 쓰레기니, 제가 전투 직군으로 가고자 한다면 결국 방어막과 이동기를 움직임의 중추로 삼아야 합니다.”
조금 놀랐던 표정도 벌써 가라앉았다.
사실 난 신수빈이 보여줬던 기술들로 얼추 예상만 할 뿐이다.
기억 속 그가 보여준 것들에는 기존 빌드상으로는 전혀 알 수가 없는 직군 전용 기술이 대단히 많았다.
‘그건 결국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숨은 직업을 발견함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 의미겠지. 이 녀석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빌드 개척자다. 신수빈이 몇 개의 빌드를 그 과정에서 개발했을지 짐작도 안가.’
일단 나는 신수빈에게 원래 그가 택했던 기술을 내뱉었다.
“하지만 보호막은 멘탈 매트릭스 쪽을 택하게 되겠죠.”
“음···.”
“특성으로 특수 자원을 쓰는 직군이 아니라면 이동기에는 마력이 반드시 들어가니까.”
“대안을 찾고 있지만, 네. 결국, 그 기술이겠죠. 보호막 계열에 75레벨을 들이붓는 게 필수라서 고민이 많습니다. 그래도 이런 걸 같이 고민해줄 수 있는 선생님은 처음이네요.”
거기까지 말한 신수빈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고작 이런 대화를 하려고 절 따로 불러내신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제가 신생 길드를 하나 차릴 예정인데, 거기 영입을 하고 싶어서 불렀습니다.”
“강사님도 창천의 전직 지휘부 헌터를 판단에서 이겨 먹었다는 제 머리가 탐나십니까?”
신수빈은 피식 웃으며 집게손가락을 굽혀서 자신의 머리를 톡톡 쳤다.
“죄송하지만, 그건 솔직히 운도 좋았고 한 끗 차이였어요. 그리고 저는 아직 길드 가입하고 싶은 생각 없습니다.”
“만약, 전투 직군으로 영입하려고 한다면 어떨까요? 그래도 없습니까?”
이 말은 정말 뜻밖이었는지 신수빈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그래도 거절하겠습니다. 솔직히 들어갈 생각 없긴 하지만, 만약 길드에 들어간다고 하면 창천 연구원으로 지원할 생각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의외네요. 이유를 혹시 들을 수 있겠습니까?”
“신수빈 헌터. 이 길드를 발판으로 삼아도 됩니다. 일단 함께 해보시죠. 어쨌든 레벨링은 해야 하지 않습니까. 짐꾼으로, 아니면 연구 남는 시간에 눈치를 봐가며 짬짬이 레벨업하는 식으로 시간 낭비라도 할 생각입니까?”
하지만 신수빈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길드 영입한 뒤에 계약서 독소조항으로 옭아매기라도 할 생각입니까? 아니면 뭐 후보생 괴담처럼 게이트 사고를 뒤집어씌워서 협박이라도?”
“신수빈 헌터 본인은 자신이 그런 거에 걸려들 거로 생각합니까? 그리고 그렇게 영입해서 얼마나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까요? 정 의심되면 표준 계약서 양식 가져다가 변호사랑 상의해가면서 직접 써서 가져오세요.”
피식 웃으며 건넨 내 마지막 말에서야 그는 침묵했다.
그제야 내 의도를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렇다면 이제 들을만한 자세가 됐다.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만약, 오직 정신력만으로 싸울 수 있는 빌드가 있으면 신수빈 헌터는 아마 최소 A급이 될 겁니다. 그도 그럴 게, 신수빈 헌터, 정신력 잠재 예상 수치만큼은 역대급 아니었습니까?”
“말이야 듣기 좋은데···.”
초기 정신력 S급이라는 미친 능력치를 보여주고도 신수빈이 아주 낮은 종합 잠재 등급 판정을 받은 이유라면, 어떤 특성을 가져다 붙이고 공개된 어떤 빌드로도 도저히 쓸만한 전투 직군이 나올 각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그가 성공하는 미래를 안다.
“전 신수빈씨 인생에 투자하는 것뿐입니다.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이 필요한 빌드를 찾을 수 있게 될 때까지 도와드릴 겁니다.”
나도 빌드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걸 보여줬으니, 앞으로 남은 강의 기간 동안 미래 빌드를 논의하며 식견을 뽐내면 친밀감도 쌓일 거고 구미도 당길 거다.
“나중에 본인이 받았다고 생각하시는 만큼만 갚아주시면 됩니다. 물론, 계속 좋은 인연 이어갈 수 있으면 더할 나위가 없을 거고요.”
“이거 당사자인 저보다 더 확신하시는 것 같네요.”
“원래 투자란 그런 거죠. 개발자는 ‘이게 되나?’ 할 수 있지만, 밖에서 보면 ‘이게 되기만 하면!’으로 보일 때가 있는 법이죠. 물론, 약간의 수고와 돈이야 들겠지만, 그 반대급부는 A등급의 각성자로 아주 크잖습니까.”
거기까지 말한 나는 은근하게 물었다.
“신수빈씨는 힘들 때 건넨 도움을 잊을 정도로 파렴치한 사람입니까?”
그리고 내 말에 그는 단호하고 짧게 답했다.
“전 받은 만큼은 확실하게 갚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야 신수빈의 얼굴에도 처음으로 우호적인 웃음이 떠올랐다.
“음. 저에 대해 깊게 관심을 둔 것도 알겠고 순수하게 호의로 접근한 것처럼 느껴지긴 하네요. 알겠습니다. 돌아가서 며칠 간 곰곰이 생각해보겠습니다.”
냉소적이고 의심이 많은 성격 답게 바로 승낙의 말을 내뱉진 않았다. 하지만 좋은 인연으로 만났다는 느낌 만큼은 확실히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