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 길드 창설
길드 이름은 지혜가 원하는 것으로 하기로 했다.
한참 고민하던 지혜는 청수라는 길드명을 댔다.
“나쁘지 않네.”
깨끗한 물. 지혜가 추구하는 길드 운영 방식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다.
사실 나하곤 좀 어울리지 않는 느낌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감상은 삼키고 좋은 이름이라는 반응을 돌려주었다.
“그렇죠? 그런 훌륭한 사람들 모아서 책임감 있게 운용하고 싶어서요. 전 조직의 힘은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에서 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
그 뒤쪽은 내가 해결하면 될 테니 이런 일로 지혜의 신경을 긁을 필요는 없다.
살짝 적을 좀 부를 것 같은 성향이지만, 본인이 해결하기 힘든 일이 닥쳤을 때 어떻게 변해가는지 보면 그 그릇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연고지는 어디로 할까요? 그래도 같이 고민해보자면서요! 어디 생각하시는지 힌트 좀 주세요.”
논의는 하겠지만, 사실 연고지 결정권은 내게 있는 거나 다름없다. 그래서 내 조언을 구하는 것이다.
“서울 동북 지역 중 네가 원하는 곳으로.”
“서울에요? 하지만 서울은 좀 그렇지 않나···.”
그 말도 맞다. 이미 창천, 일원, 금성, 금화까지.
서울은 10대 길드 중 넷이 자리를 잡은 복마전이다.
지혜도 관심 없는 듯 하더니, 길드로라도 최고가 되고 싶은지 야망이 솟아오르나보다. 그래도 서울을 택해야 하는 이유는 여럿 있었다.
“먼저 네가 최대 성장했다는 가정 하에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며 이름값 유지하려면 북진하고 연계해야 해. 그러니 북진을 지원하기 쉬운 곳이어야지. 그게 거기 자리 잡아야 하는 첫 번째 이유야.”
“경기 북부를 휘어잡은 북진이니까. 연계하기 좋게?”
“네 빌드 특성상, 뭔가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북진과 연계는 필수야. 신생 길드인 우리로선 언론 부르는 것도 힘들다.”
언론을 부르려는 건 지혜의 능력이 대중에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그래야만 을이 아닌 갑의 입장에서 인재 수급을 한다.
“네 능력은 잘 숨기기만 하면 A급 정도로 보이게 만들 수 있지. 특정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특급이라 불릴 수도 있어. 측정에 관리국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그 정도는 거래로 막을 수 있으니까.”
유지혜는 아무리 여타 사항을 잘 쳐줘도 종합으론 B급이다. 그건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잘 숨겨야 한다. 다만, 경쟁 길드들은 등급 측정 시 문제가 생기길 원하겠으나 대한민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관리국은 유지혜를 종합 A급 판정을 해줘도 나쁠 것이 없었다.
“두 번째로는 길드 협조와 유망주 수급 때문이지. 10대 길드 연고지에 이미 살고 있거나 돈 문제가 있거나 한 경우는 좀 예외지만, 보통 길드원들은 가족과 함께 연고지로 주소를 이동하는 건 알지?”
“그렇죠. 자기 가족은 자기가 지키고 싶은 거니까.”
“너만 해도 10대 길드인데도 북진 이야기 듣자마자 좀 꺼렸던 걸 생각해봐. 이런 인프라 문제는 유망주 데려오는데 의외로 커.”
“하긴. 그러네요.”
괜히 10대 길드 중 넷이 서울에, 수도권으로 따지면 다섯이 이 주변에 자리 잡은 게 아니다. 관리국 본부에 군부대도 집중되어있으며,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어떤 국가든지 대부분 비슷했다. 다음은 지역적인 부분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마지막은 지역적인 이유야. 10대 길드 중 창천은 강남 자리 잡고 서울 동남쪽에서 경기 동남으로 영향력을 확장하지. 너, 그 앞마당에서 창천 넘을 자신 있어?”
“그건 좀···.”
“중부의 금성은 어차피 결연 맺거나 숙이고 가야 하니 괜히 거기 자리를 잡아서 심기 언짢게 할 이유가 없고.”
“어. 금성? 5위 아니에요? 어중간한데 숙이고 갈 바엔 차라리 1위인 창천이나 3위 일원하고 결연하는 게 낫지 않나?”
이런 건 이런 후보생 때는 잘 안 보인다. 순위 줄 세우고 최고만 바라보는 건, 진취적인 젊음의 본능이고 그 이상을 자연스럽게 보는 건 연륜이 좀 생겨야 가능하니까.
“설명을 해보면, 일단 걔들 대한민국 최대 서포터 길드다. 거기에 그쪽 유망주들 요새 심상치 않아. 그게 아니더라도 길드장인 서이수 헌터는 서포터 협회 회장이야. 밉보이면 대한민국에서 뭐 하기 힘들어진다. 괴로워져.”
나는 그러면서 지혜에게 금성이 가진 힘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금성의 주력 사업은 서포터 파견이야. 한국 10대 길드 중에서는 규모 대비 가장 국제적으로 노는 길드고 창천 다음으로 국제인지도가 높을걸?”
국내는 물론이고 국외로도 용병으로 엄청나게 파견을 보낸다.
지금 해외로 나가서 각국 최고 길드에 속한 헌터들에게 한국 2, 3위인 청해, 일원이랑 금성의 이름을 물어보면 앞의 둘은 몰라도 금성은 알 것이다.
“국외 스트리밍 플랫폼 영상들 속에 등장하는 우리나라 각성자가 어디에 가장 많이 속하는지를 통계 내보면 그때 알게 되는 사실이지.”
“헤, 그런 건 몰랐네요.”
이유 설명에서 조금 엇나갔지만, 이 헌터 사업이라는 게 중소규모를 벗어나면 단순히 자기 길드 역량 하나만으로 모든 걸 진행하는 게 아니다.
거대 게이트 공략을 하게 되면 작은 길드들에 일정 구역 외주도 주고 관리국이나 군대에 협조 요청도 하며, 자국 프리헌터 용병 고용하는 건 물론, 종종 외국 유명 용병들도 끌어오게 된다.
그럴 때, 사망률을 낮출 서포터를 얼마나 끌어오느냐, 그 능력은 정말 중요하다.
거기에 금성은 안 그래도 원래 길드 랭킹 2, 3위 오가던 놈들이 이번엔 S급 확정 성장하는 주문계 원딜이랑 A급 서포터까지 추가로 가져가게 생겼다.
‘능력 있는 서포터는 항상 부족하지. 굳이 그런 부분이 아니더라도 어떤 헌터라도 최고의 서포터랑 일하고 싶은 건 당연한 거다. 어떤 경우에도 무조건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길드야.’
그런 길드로 금성 외에 또 하나를 든다면 북진이다.
‘북쪽 땅 수복에 진심인 건 북진밖에 없어.’
어차피 북쪽 정권도 대격변으로 무너졌겠다, 한반도 수복하고 재건해야 한다고 말은 항상 나온다.
사실 재건까지는 하면 좋고 못 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최소한 거기 있는 아크리치와 그 죽음의 군단 만큼은 대전쟁 전에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그 지역이 막혀 있던 탓에, 급히 육로를 뚫던 도중에 중국이 망했고 이후 그 경계를 요새화하고 안정적으로 병력을 다 합류시킨 외계 군세에 이후 우리나라하고 옆 섬나라도 차례로 각개격파 당했다.
그리고 근거지 사라진 인간들 처지야 뻔한 일이다. 이것까지 지혜에게 이야기하진 않았지만, 서울 동북부에 자리 잡아야 하는 이유는 잘 이해한 것 같다.
어쨌든, 이게 내가 지혜의 능력치 분배를 본 후에 그렸던 그림이었다.
“아···.”
“이해했어?”
지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저 설명하면 서울 남서부는 관리국 영역이라 길드 청정지역이고 일원은 서울 서북부에 자리 잡고 있지.”
서울은 5 분할로 10대 길드와 관리국까지 균형을 이루고 있으니 동북에서 서쪽으로 대놓고 움직이지 않는 한, 인천 쪽으로 확장하는 일원하곤 바로 이해관계가 부딪치진 않을 거다.
그래도 가능한 충돌을 줄이려고 인연이 생긴 최서린과 강소연을 그리 보내보려 시도했던 건데, 금성으로 갈 것 같으니 이쪽도 주시해야 하긴 한다.
“따라서 성장하면서 파이를 뺏게 될 길드는 금화야. 가능하면 동대문구는 피하는 걸 추천하마.”
“그러네요. 거기 자리 잡으면 바로 눈에 띄겠죠.”
“그건 대놓고 하청을 달라는 거지. 그럴 바에는 대놓고 강남에 자리 잡고 말지.”
밑으로 들어갈 거면 그나마 1위인 창천 밑에 들어가는 게 낫지 않겠나. 강남구는 창천의 연고지다.
연고지 길드는 기본적으로 자기가 자리 잡은 지역을 지킬 의무를 지게 되고 강남은 인재건, 치안이건 가장 몰리는 지역이었다.
한국 1위 길드가 자리 잡은 탓에 한국에서 가장 높은 집값을 자랑한다.
유지혜도 지금은 영등포구의 헌터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지내지만, 본가는 역시 강남에 있었다.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는 북진이랑 연계해서 금화가 우리 방해하거나 일거리 뺏는 걸 쳐내야겠지.”
“금화만 문제는 아닐 것 같은데.”
“그래. 텃새야 어디든지 있는 거니까. 그래도 이번에 관리국이랑 인연이 닿았으니 잔챙이들은 어느 정도 커버 쳐줄 거야.”
나를 첩보물의 요원 같은 거로 생각했는지, 지혜의 눈이 살짝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관리국이라고 하니 뭔가 있어 보였나 보다.
“그러면 아버지 회사가 노원에 있으니까 강북에 자리를 잡을게요.”
“좋아. 그럼 연고지는 됐고 다음은 길드 법인 설립인데, 10명의 헌터가 필요해.”
“그 정도면 어렵진 않을 것 같긴 한데. 강사님 쪽에선 몇 명이나 가능하세요?”
어렵지 않다는 건 아마 지혜의 부친과 이야기를 해봤을 때를 말하는 거겠지.
“최소로 잡아도 다섯까지는 확실할 거야.”
나하고 안혜성은 확정이고 지난번에 같이 공략했던 헌터 중 몇 명과도 이미 이야기가 되어있다. 안혜성이 확실하다고 이야기한 짐꾼 헌터도 둘 있다.
그간 인연 쌓은 헌터들하고도 꾸준히 연락을 돌리는 중이다. 개중 넌지시 떠봤을 때,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기성 E급 각성자도 몇 명 떠오른다.
그리고 건너 알게 된 사연 있는 헌터들도 몇 명 정도는 만나보고 스카우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뭐, 길드 창설 자체가 불가능할 리는 없겠지.’
최악의 경우라도 포르세티의 목록에 방치된 각성자들을 대충 이름만 올리는 명목으로 잡템 혹은 값싼 특성 쥐여주면서 써먹는 방법이 있다.
“졸업 동기 중 관심 보일 얘들이 있긴 한데, 등급도 낮고 아직 유망주 수준이라 주축으로 삼긴 곤란하겠죠. 아버지하고 이야기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순수하게 제 능력으로 데려올 수 있는 기성 헌터는 없어서요.”
“너무 걱정하진 마. 혼자서도 인원은 다 채울 수 있을 테니까.”
“하긴, 성좌님께서 이미 뭔가 준비해 놓으신 거겠죠?”
지금 이 믿음을 보니 이 녀석은 확실하게 포르세티에게 넘어온 것 같다.
* * *
“그래? 기특하네.”
그리고 오랜만에 포르세티와 직접 대화하러 올라왔다.
“그때 조언해주신 대로 성좌들의 세계에 대해 알기 위해 왔습니다.”
“네가 이 세계에 대해 가장 먼저 알고 싶은 건?”
“신좌와 성좌의 차이가 뭡니까?”
전부터 묻고 싶었던 거다.
“재밌는 질문이네. 음. 역시 신성이겠지. 지적 생명체에게 충분한 양의 신앙을 받았는가. 그게 신과 성좌를 가르는 기준이야. 물론, 네가 묻는 건 이런 게 아니겠지.”
그건 정보부를 통해 이미 알던 사실이다.
난 침묵하며 침착하게 여신의 말을 기다렸다.
“신성은 불멸. 한번 신좌가 되면 신성을 다 써버리지 않는 한은 소멸하지 않지. 내가 알기로 한 세계관의 지성체 인구 1% 이상이 신이라 믿어 소망을 바치면 그 성좌에게 신성이 생길 거야. 너도 가능할지 모르지.”
세계관이라는 말에 뭔가 있는 것 같지만, 당장 아는 정보만 가지고 이야기해보면 전 인류의 1퍼센트, 그러니까 지금은 약 7천만 정도가 그가 신이라 믿어야 한다는 소리 같다.
“반대로 말한다면 성좌들은 죽는다?”
“신은 독립적으로 존재해. 하지만 성좌는 ‘역사’에 의존하지. 신성을 얻어 소망이 된 신들과 달리 그들은 역사를 통해서만 불멸하는 거야. 따라서 그들은 별과 운명을 함께하지.”
그 말에 속으로 벼락이 치듯 뭔가가 스쳤다.
‘신들은 차원과 별을 혼용하는 경우가 많다.’
결사대 정보부에서 그런 사소한 말을 봤던 것 같다.
그 말대로면 성좌들은 차원 전쟁에서 패배하면 전부 사라진다.
‘그걸로 대격변 때 성좌들은 전력을 다했으나 신좌들이 전력을 다하지 않은 이유가 이해가 가. 차원이 침략당해 망하더라도 신좌들에겐 살길은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 말은 신들은 언제든 손을 뗄 수 있으니, 그들 대부분이 인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버릴 이기적인 존재라 본다면 우리는 반드시 최후까지 인류의 대세와 승기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포르세티를 보니 뭐라 뻐끔거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 성좌 취급하더니, 이런 쪽에서는 또 각성자 취급? 더 알려주고 싶은데 그 이상은 제약이 있네. 하긴, 아직 본편은 시작도 안 했으니까. 또 궁금한 건?”
“신들이 각성자와 계약하고 지원하는 정확한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원론을 말한다면, 성좌는 신좌가 되기 위해. 신좌는 세상에 영향력을 넓히고 신앙을 모아 차원을 주도하기 위해서. 하지만 그건 하나의 이유일 뿐. 하지만···, 나머지는 나중에 말하자. 들려주지 못하는 연유와 연관이 있네.”
여신은 제약이 있다며 말하지 못하지만, 이미 알고 있다.
타 차원의 침략. 그 대전쟁에 대항하기 위해서겠지.
그 외에도 북구 신화 내에서 포르세티를 비롯한 신들의 지분, 전 세계의 신화 세력도, 현재 내가 활동하는 지역 주변의 주요 각성자를 어느 신과 성좌들이 보유하고 있는지 등 민감한 사항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었다.